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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굵은 소금을 뿌려 놓은 듯 군락으로 소담스레 피어난 메밀꽃수지생각 2007. 9. 12. 16:08
굵은 소금을 뿌려 놓은 듯 화려하진 않지만군락으로 소담스레 피어난 메밀꽃
메밀꽃 필 무렵의 작가 이효석의 이름을 딴 이효석 문화제가 열리는 강원도평창엘 다녀왔다.
지난 9월8일 잠실역에서 오전 8시 30분이 다 되서 출발한 버스를 타고 거의 다섯 시간이라는
시간을 소비하고 도착한 강원도 평창엔 벌써 많은 이들이 이 축제에 참여 하느라 좁은 길 한
켠으로 차승용차들이 굽이굽이 세워져 있었는데 마치 큰 뱀이 이동을 하느라 스멀스멀 움직이는
것 같아 보였다.
차에서 몇 시간을 버티며 온 까닭에 채 차가 서기도 전에 일행들은 일제히 메밀꽃이 화사하게 맞
아주는 들녁으로 달려 나갔다. 가산 이효석을 기념해 “매년 9월 초순(9월7~~9월16일) 에 시작되는
이 축제는 봉평면 창동리 일대 5만 여평의 메밀밭을 배경으로 펼쳐진다.
우리 일행은 일단 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 근처 식당으로 들어갔다. 김치와 두부로 소를 넣은밀전병에
막걸리, 그리고 메밀국수를 먹었다. 시장이 반찬이라고 막걸 리가 한잔 들어가니마치 내가 메밀꽃 필
무렵의 허생원이 된 듯 모든 것이 다 용서 될 수 있었다. 주린 배를 채우고 일단 메밀밭으로 옮겼다.
사진으로만 봤던 커다란 메밀밭이 한낮의 햇빛을 받아서 화사하게 빛나고 있었다.
일주일 내내 비가 오락가락 했었는 데 9월의 첫 주말 행락객의 불편을 덜어줄 심사였나 ?
하늘은 맑게 개였고, 메밀꽃밭은 끝이 없었다.
어린아이들과 모처럼 나들이 나온 행락객들 얼굴도 햇볕을 받아 환한 웃음으로 피어났다.
이장 저장을 오로지 말과 함께 수 십 년 떠돌던 허생원이 읊조렸던 것 같이 길 양 옆으론
이미 갖가지 시장이 열려 있었다. 다만 아쉬운 것은 예전의 그 물건들이 아니라 그저 관
광객들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 먹는 것 위주였다는 것만 빼곤 말이다.
“ 울 여름장이란 애시 당 초에 글러서, 해는 아직 중천에 있건만 장판은 벌써 쓸쓸하고
더운 햇발이 벌여놓은 전 휘장 밑으로 등줄기를 훅훅 볶는다. 마을 사람들은 거지반 돌아
간 뒤요, 팔리지 못한 나뭇군패가 길거리에 궁싯거리고들 있으나 석윳병이나 받고 고깃마
리나 사면 족할 이 축들을 바라고 언제까지든지 버티고 있을 법은 없다. 춥춥스럽게 날아
드는 파리떼도 장난군 각다귀들도 귀치않다.
얽둑배기요 왼손잡이인 드팀전의 허생원은 기어코 동업의 조선달에게 낚아보았다.
"그만 거둘까?"
"잘 생각했네.봉평장에서 한번이나 흐뭇하게 사본 일 있을까. 내일 대화장에서나 한몫
벌어야겠네. "
"오늘밤은 밤을 새서 걸어야 될걸?"
"달이 뜨렷다?"
절렁절렁 소리를 내며 조선달이 그날 산 돈을 따지는 것을 보고 허생원은 말뚝에서 넓은
휘장을 걷고 벌여놓았던 물건을 거두기 시작하였다. 무명 필과 주단바리가 두 고리짝에
꼭 찼다. 멍석 위에는 천조각이 어수선하게 남았다.
다른 축들도 벌써 거진 전들을 걷고 있었다. 약바르게 떠나는 패도 있었다. 어물장수도,
땜장이도, 엿장수도, 생강장수도 꼴들이 보이지 않았다. 내일은 진부와 대화에 장이 선
다. 축들은 그 어느쪽으로든지 밤을 새며 육칠십리 밤길을 타박거리지 않으면 안된다.
장판은 잔치 뒷마당같이 어수선하게 벌어지고, 술집에는 싸움이 터져 있었다. ”
- 이효석의 메밀꽃 필무렵 중 일부 인용 -
이리저리 장을 떠돌던 허생원이 정말 생각지도 않다가 물레방앗간에서 울고 있던 한
처녀를 달래주다가 인연을 맺었던 커다란 물레방아가 여기저기 세워져 있었고, 이효석생가 터도
보수 되어 관광객의 발길을 붙들고 있었다.
이 메밀꽃은 수십년 동안 효석의 생가 터 근처에서 수 만평이 피고지고 있건만 가신님은 어디에서
이 만발한 메밀꽃 향을 맡으려나 ?
올해는 가산 이효석선생의 탄생 100주년이 되는 해.
이효석은 강원도 평창군 봉평면 창동리에서 1남 3녀중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14세가 될 때까지 봉평과
평창에서 성장기를 보낸 그는 1936년 한국단편문학의 전형적인 수작이라 할수 있는 "메밀꽃 필 무렵"
을 발표하여 당대 최고의 소설가로 떠오른다.
주요 작품으로는 메밀꽃 필 무렵, 산협, 개살구, 고사리, 들, 산 등의 단편과 영서의 기억, 늪의 신비, 등
의 산문이 있다. 이중에서도 메밀꽃 필 무렵은 장돌뱅이의 만남과 이별, 그리움, 떠돌이의 애환 등을
담고 있으며 봉평장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글로써 보여주는 작품이다.
메밀꽃 필무렵 이효석의 연보( 1907년 2월 23일-1942년 5월25일) 를 알기위해 인터넷을뒤지다가
이효석의 장녀 이나미(75세) 씨가 천호동소재 300만원짜리 월세방에서 허리를다쳐 투병중이란
우울한 소식을 접하고 마음이 무거워졌다.
이분은 생전에 흩어져 있던 이효석 글들을 모와서 이효석 전집을 두 번이나 냈지만 사후 50년 이란
저작권법에 따라 이미 50년이 지났기 때문에 한 푼의 인세도 거둬들이고 있지못하다는 우울한
소식이 있었다. 물론 인세를 거둬들이기 위해 이나미 씨가 전집을 내지는 않았겠지만 이효석
문화제를 해마다 펼쳐서 이효석의 이름으로 관광객을 모으고 수입을 올리고 있는 강원도는
이나미 씨를 돌봐주어야 하지 않을까 ?
아버지의 나이보다 배로 살고 있는 이효석의 장녀 이나미씨가 처한 상황을보니 오히려 흐드러지게
핀 메밀꽃이 슬퍼 보인다. 더구나 이효석의 생가 터도 복원돼 있었는데 이효석의 장녀가 생을 거
기서 맞이하면 되지않을까 ? 우울한 마음에 눈시울이 붉어진다.
과연 삶이란 무엇일까 ?
이효석이 ‘메밀꽃 필무렵’에서 밝히고 있듯이 그저 허생원 마냥 이 곳 저곳으로 부유하는 먼지와
다를 게 무엇이랴.
그저 한낮 흩어지는 구름일 뿐......
* 복원된 이효석 생가터
출처 : 예사회(예술사진동호회)글쓴이 : 수지 원글보기메모 :'수지생각'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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