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독기 품은 中, 기술자립 굴기지금 이곳에선 2025. 3. 16. 12:59
독기 품은 中, 기술자립 굴기
[WEEKLY BIZ] 다음 목표는 금융...달러 밀어내고, 위안화 기축통화 노린다
입력 2025.03.13. 18:26업데이트 2025.03.16. 02:01
WEEKLY BIZ 뉴스레터 구독하기 ☞ https://page.stibee.com/subscriptions/146096
그래픽=김의균·DALL-E
“양탄일성(兩彈一星·원자탄, 수소탄과 인공위성 개발)부터 선저우(神舟·유인 우주선), 창어(嫦娥·달 탐사선), 5세대 이동통신(5G), 양자 컴퓨터, 딥시크까지 중국인의 분투는 멈추지 않았습니다.”
중국의 외교 사령탑인 왕이(외교부장 겸임) 공산당 중앙외사판공실 주임의 말에는 거침이 없었다.
중국 최대 연례 정치 행사 양회(兩會·전국인민대표대회,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를 계기로 지난 7일 열린 외교부장(장관) 기자회견에서 자국 관영 매체 기자가 “미국은 중국의 과학기술 혁신을 받아들이지 못해 ‘경쟁하지 못하면 빼앗고, 얻지 못하면 부술 것’이라고 한다”고 하자 나온 대답이었다.
이번 양회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비롯한 국가 고위 관계자 입에서 나온 핵심 키워드는 ‘기술’과 ‘혁신’이었다. 시진핑은 “기술 혁신과 산업 혁신이 새로운 고품질 생산력을 발전시키는 기본 경로”라며 “산업 시스템을 현대화하고 교육, 과학기술, 인재 양성을 조화시키는 게 필수적”이라고 했다. 이번 업무 보고에서는 6세대 이동통신(6G), 휴머노이드 로봇, 인공지능(AI) 스마트폰 등과 같은 말도 처음 등장했다.
세계 2위 경제 대국 중국이 미국과 대결하면서 ‘분투’를 이어가고 있다. 비록 성장 둔화와 부동산 위기 등 우려는 있지만, 중국은 도널드 트럼프 1기 때 본격적으로 시작한 제재를 뚫고 제조업과 첨단 기술 분야의 발전을 거듭 중이다. ‘저비용·고성능’ AI 모델로 세계를 놀라게 한 딥시크가 대표적이다.
미국 의회는 턱밑까지 쫓아온 중국의 위협을 느끼고 지난달 중국의 제조·혁신 역량을 가늠하는 청문회를 열기도 했다. 그렇다면 중국은 제조·혁신 부문에서 미국이 걱정할 만큼 성취를 이뤘을까. WEEKLY BIZ가 미국 제재 속에서 성장해 온 중국의 지난 10년을 되짚었다.
그래픽=김의균
◇10년 맞은 ‘메이드 인 차이나 2025’
키 1m30㎝짜리 인간형(휴머노이드) 로봇은 이제 정말 사람 같았다. 이 로봇은 춤추고 손뼉 치기는 물론 인간처럼 균형을 잡으며 자전거와 호버보드(바퀴가 달린 전동 스케이트보드)까지 탔다. 이 로봇엔 거대언어 모델(LLM)까지 탑재돼 ‘머리’도 똑똑해졌다. 시간이 적힌 스마트폰 화면을 보여주며 “지금 몇 시냐”고 묻자 “지금은 아침 5시 42분”이라고 답한다. 중국 스타트업 애지봇(즈위안로보틱스)이 만들어낸 최신형 로봇 ‘링시X2’는 세계 최고 수준의 로봇 성능을 자랑했다.
‘메이드 인 차이나’는 싸구려 이미지를 깨고 첨단 기술과 혁신이란 새 단계로 진입하고 있다. 시작은 10년 전이다. 2015년 시진핑과 중국 국무원은 ‘메이드 인 차이나 2025(MIC 2025)’라는 국가 전략 계획을 내놨다. 중국을 ‘세계의 공장’에서 벗어나 더 높은 가치의 제품과 서비스를 생산하는 곳으로 바꾸자는 게 이 계획의 핵심이었다.
차세대 정보 기술 산업, 휴머노이드 로봇, 항공 우주 장비, 해양 공학 장비, 첨단 철도 운송 장비, 신에너지 차량, 전력 장비, 농업 기계·장비, 신소재, 바이오 의약품 및 고성능 의료 기기 등 열 가지 목표를 두고 중국을 제조업 강국으로 만들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핵심 기술 부품 및 기초 소재의 국산화율을 2025년에 70%까지 달성하는 목표도 포함됐다.
당시 이런 계획에 “허무맹랑한 목표에 가깝다”는 평가도 나왔다. 유럽의 유수 중국 연구소 중 하나인 메르카토르중국연구소(MERICS)는 2016년 보고서에서 이 계획을 두고 “양적 목표에 대한 집착, 비효율적 자금 배분, 지방정부의 캠페인성 과잉 지출이 우려된다. 중국 지도부가 세운 야심 찬 목표가 기간 내 달성되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고 썼다. 그런데 반전이 일어났다.
그래픽=백형선
◇허무맹랑? 전기차는 목표 세 배 초과
“10년 전 발간한 공식 서적과 기타 권위 있는 출처를 바탕으로 당시 제시한 260여 목표를 정리한 결과 86% 이상을 달성했음이 확인됐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최근 보도에서 지난 10년 동안 진행된 MIC2025 성적을 이렇게 매겼다.
2025년엔 목표 대부분이 달성된다는 전망과 함께였다. 미·중 무역 전쟁이 발발한 2018년부터 중국의 제조업 육성 계획은 미국 견제를 피하기 위해 “소설 해리포터 속 이름을 부르는 것조차 금기시된 ‘볼드모트’ 같은 처지”(이코노미스트)로 취급되며 조용히 진행됐지만, 야심 찬 목표는 결실을 보았다는 평가다.
무엇보다 몇몇 산업군에서 중국은 독점에 가까운 지위를 확보했다. 대표적 산업이 전기차다. MIC 2025에 따르면 중국 정부는 당초 2025년까지 전기 자동차 300만대를 판매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하지만 중국은 지난해 이미 1000만대 이상을 판매해 목표를 초과 달성했다. 전 세계 판매량의 3분의 2에 가까운 수준이었다.
전기차 시장 장악의 바탕에는 배터리와 태양광 발전이 대표하는 재생에너지 부문이 있었다. 2015년에 ‘10년 후엔 중국에서 사용하는 태양광 패널과 배터리의 80%를 국산으로 만들겠다’는 목표를 세울 때만 해도 이루기 어려워 보였다. 중국은 당시에도 전 세계 시장에서 태양광 패널 65%, 배터리 47%를 점유했으나 유럽의 높은 기술력을 따라가긴 버거웠다.
그러나 이제 이 두 분야 세계 시장 점유율은 90%와 70%로 급등했다. 규모의 경제로 가격 경쟁력을 갖추고 기술력까지 향상되자 중국산 전기차, 태양광 패널을 쓰지 않고는 친환경 정책을 이어가기 어려운 수준이 됐다는 평가다. 드론(무인기) 시장은 중국 천하를 이어간다. 중국의 드론 제조 업체 DJI는 소비자(취미)용 드론 시장 점유율에서 90%를 넘어섰다.
◇때릴수록 강해진 중국
그렇다면 어떻게 중국이 이런 성과를 낼 수 있을까. 미국의 견제가 쇠 담금질하듯 오히려 중국 제조·혁신 역량을 높이는 ‘제재의 역설’이 일어났다는 해석이 나온다. 미국은 트럼프·바이든·트럼프로 이어지는 행정부에서 보수와 진보를 가리지 않고 중국을 제재해 왔는데, 이런 제재가 오히려 중국을 자극했다는 뜻이다.
전병서 중국경제금융연구소 소장은 “스마트폰이나 전기차 같은 분야는 미국이 가만히 뒀으면 이 정도까지 성장하지 못했을 수 있는데 제재를 가하니 어떻게든 달성해 보겠다며 일종의 독기를 품고 더 노력한 측면이 있다”며 “내수 차원에서도 애국 소비를 부추기는 환경이 만들어졌다”고 했다. 중국공정원(CAE)의 중국 제조업 전략 연구위원인 장지위안 역시 SCMP에 “서방의 봉쇄로 중국은 기술 자립을 위해 더욱 노력했다”고 평가했다.
실제 스마트폰은 미국의 제재 ‘약발’이 안 먹힌 대표적 분야다. 트럼프는 중국의 스마트폰과 통신 장비가 미국 시장을 위협하자 2019년 화웨이와 ZTE의 미국 사업을 전면 차단하는 행정명령을 발동했다. 화웨이는 사면초가였다. 미국 사업길이 막힌 데다, 세컨더리 보이콧(3자 제재)에 대한 우려로 다른 나라에서도 사업이 속속 막혔다.
심지어 미국은 화웨이 런정페이 회장의 장녀인 멍완저우 최고재무책임자(CFO)를 이란 제재 위반 혐의로 체포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세계 스마트폰 시장은 미국의 계획과는 다르게 흘러갔다. 중국인들이 자국산 제품을 더욱 열심히 사줬다. 샤오미·오포·비보 같은 브랜드가 세계 시장에서 치고 올라왔다.
결국 중국의 톱3 스마트폰 브랜드의 세계 시장 점유율은 2016년 4분기 기준 23.6%에서 지난해 4분기 29.3%까지 올랐다. 애플(미국)이나 삼성전자(한국) 외 스마트폰 브랜드가 대부분 중국 브랜드임을 감안하면 지난해 중국의 전 세계 스마트폰 시장 점유율은 60% 이상으로 추정된다.
5G 통신 장비 시설에선 화웨이를 내세워 미국 제재를 정면 돌파했다. 특히 이 시장에선 자국의 내수가 확실한 역할을 했다. 중국은 지난해 국토 전역에 5G 통신망을 구축했다. 전국에 설치한 5G 기지국만 384만곳에 이른다. 이 수량은 전 세계에 구축한 기지국의 60% 이상을 차지한다.
특히 화웨이는 인민해방군의 지원을 받아 운영하는 기업이란 의혹 때문에 제재 대상에 올랐는데, 이제 중국은 보란 듯이 세계 최초의 군용 5G 시스템을 개발했다. 군용 5G 기지국은 반경 3㎞에서 군사 로봇 1만대를 동시에 제어할 수 있게 해준다.
대중 제재의 대표 격인 반도체 분야에서도 중국의 추격이 매섭다.
이코노미스트는 “미국이 반도체와 반도체 제조 장비에 대한 수출 통제를 시행하기 전에도 이 분야는 암울했다”며 “오히려 일부 사람은 이런 제한이 혁신적 해결책을 촉진하고 있다고 주장하며, 중국은 자국 내 최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 업체인 SMIC에 보조금을 늘리고 있다”고 전했다.
그래픽=백형선
◇국가 주도 부양책이란 ‘반칙’이 키워
다만 중국 정부는 주요 기업에 보조금을 쏟아붓듯 해왔고, 이는 미국 및 서방의 제재 명분이 되고 있다. 글로벌 시장에서 공정한 경쟁을 해서 승리를 거둔 게 아니라, 국가 주도 부양책이란 일종의 ‘반칙’을 써서 전기차·태양광·드론 등에서 결실을 보았다는 뜻이다. 아울러 중국은 착취에 가까운 저임금 노동으로 산업을 끌어올렸다는 비판도 받고 있다.
중국의 이런 막대한 보조금은 특히 연구·개발(R&D)에 투입됐다. 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에 따르면, 중국은 2017~2019년 국내총생산(GDP)의 1.7% 이상을 산업 정책에 지출했다. 이런 비율로 자금이 10년간 투입됐다면 3조달러 이상이 쓰였다는 추정이다.
중국 정부의 의도에 따라 기업들의 투자도 빠르게 늘었다. MIC 2025는 기업들에 총수익의 1.68%를 R&D에 투자하도록 목표치를 정해줬다. 2015년 1% 미만이었던 비율을 끌어올리라는 사실상의 지시였다. 그리고 중국 기업들은 이런 목표를 2023년에 이미 달성했다.
R&D 투자는 중국의 과학기술 역량을 끌어올리는 밑거름이 됐다.
과학 학술지 ‘네이처’가 발표하는 과학 논문 성과 순위에서 지난해 중국 대학 8곳이 10위 안에 들었다. 이 발표가 처음 나온 2016년엔 베이징대(9위) 하나만 10위 안에 들었는데, 이번엔 2~9위가 모두 중국 대학이었다. 중국의 과학 논문은 현재 산업계에서 핵심 기술로 꼽히는 분야에서 특히 성과가 크다.
호주전략정책연구소(ASPI)가 지난해 내놓은 ‘20년 동안의 중요 기술 추적: 장기적 연구 투자의 보상’에 따르면 중국은 현재 핵심 기술 64종 중 57분야에서 선두를 차지했다. ASPI는 AI, 반도체, 방위, 우주, 에너지 등 기술을 세분해서 인용도가 상위 10%에 드는 논문의 국적을 분석했는데 중국이 압도적인 성과를 거뒀다고 평가됐다.
2000년대 중반 기술 64종 중 60종에서 선두를 차지했던 미국이 현재 7종으로 줄어든 점을 감안하면 학술적으론 중국이 미국을 앞지른 셈이다. 제니퍼 웡 렁 ASPI 수석연구원은 “중국은 지난 10년 동안 학술적 위상을 크게 강화했다”며 “고성능 컴퓨팅, 첨단 집적회로(반도체) 설계·제조 등 분야에서는 2020년대에 들어서야 조금씩 앞서기 시작했는데, 이는 중국이 AI와 컴퓨팅 분야에 집중하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했다.
그래픽=백형선
◇다음 목표는 ‘금융 굴기’
과학기술과 제조업 분야 혁신을 이어가는 중국의 다음 목표는 어디일까. 상대적으로 취약했던 금융 분야가 다음 굴기(崛起)의 목표일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 예상이다. 미 달러는 여전히 국제 거래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지난해 1월 기준 전 세계 외환 거래의 90%가 달러로 이뤄졌다. 다만 중국은 앞으로 달러에서 벗어나 위안화 중심의 새로운 금융 생태계를 욕심 내고 있다.
최근 급물살을 타고 있는 중국의 미국 국채 매각도 기축통화인 달러 지위를 흔들 수 있다. 미 재무부 자료에 따르면 중국은 1분기에 533억달러 상당의 미 국공채를 처분했다. 2022년 중국이 매도한 198억달러, 2021년 205억달러를 훨씬 넘어선 규모였다.
대신 금(金)을 사들이고 있다. 중국의 중앙은행인 인민은행은 4개월 연속 금 보유량을 늘리고 있다. 이달 인민은행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금 보유량은 지난달 말 기준 7361만온스(약 2289.53t)로 전월 대비 16만온스 증가했다. 가격으로 환산하면 금을 265억3000만달러어치 보유하고 있다.
2015년 이후 최고 수준이다. 블룸버그는 “중국의 금 매입이 최근 금 가격 상승의 중요한 원동력”이라고 보도했다. 미 국채를 팔아치우고 금 보유량을 늘려 달러 지배력을 약화시키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강준영 한국외대 교수는 “중국의 미국 견제 계획은 1단계 산업, 2단계 국방, 3단계 금융이라는 단계를 밟아나가고 있다”며 “최종 목표는 위안화를 달러에 버금가는 기축통화로 만드는 일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WEEKLY BIZ 뉴스레터 구독하기 ☞ https://page.stibee.com/subscriptions/146096
https://www.chosun.com/economy/weeklybiz/2025/03/13/V6LOLBOKLVEY5P3ZXB4ZKJOUQY/
'지금 이곳에선' 카테고리의 다른 글
‘월 671만원’ 시그니엘 관리비 깜짝…“연봉 1억도 못내” (2) 2025.03.17 뉴잼/ 뉴스가 재밌다 (2) 2025.03.16 독일이 국방비 늘리려 '부채 브레이크' 푼다는데 (0) 2025.03.16 올해 크리스마스 미국 아이엔 선물 안주신대 (0) 2025.03.16 금 제값 받기 꿀팁 찾으려, 돌반지 팔아봤습니다 (0) 2025.03.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