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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네마 천국과 토토(2)
    문화 광장 2008. 9. 5. 11:35

    시네마 천국과 토토(2)
     
     

     
    1930년대가 되어 영화로 발을 넓혀 활발한 활동을 하던 토토의 인기가 최고에 이르렀던 시기가 2차 대전이 끝난 이후인 1947년에서 1952년 사이입니다. 시네마천국에서 소개된 '비주의 소방관들' 역시 그 때 만들어진 작품이지요. 극장 무대에서 갈고 닦은 실력이 바탕이된 그의 코믹 연기는 2차 대전의 직 후 실의에 빠져있던 이탈리아 인들에게 웃음을 주는 신선한 청량제와 같았습니다. 풍자와 해학 그리고 서민들의 힘든 삶이 묘사되는 그의 영화를 보면서 사람들은 울고 웃었다고 하는군요.

    이탈리아 최초의 컬러 영화가 바로 그를 주인공으로 한 영화였고 그의 이름을 제목으로 사용한 영화가 30편이 넘었습니다. 예전 우리 나라에는 영화배우 박노식 씨를 주연으로 하는 '남대문 출신 용팔이', "운전수 용팔이' 와 같은 '용팔이 시리즈' 영화들이 있었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토토가 주연하는 "토토와 클레오파트라. 아라비아의 토토, 토토 지옥에 가다." 등등 그의 이름을 흥행에 이용한 영화가 많았지요.

    비록 전성기를 지난 1962년에 만들어진 영화이지만 아래에 소개하는 영화의 한 장면은 토토의 재치와 위트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기꾼토토(Tototruffa)'라는 제목으로 번역이 될 듯 한데 자신이 트레비 분수의 주인이라고 하면서 미국에서 돈을 벌어온 '재미교포' 한 사람에게 트레비 분수를 팔아먹는 장면입니다. 마치 우리의 고전 중에 나오는 봉이 김선달과 흡사한 이야기입니다. (링크를 따라가시면 영어 자막이 달린 클립을 보실 수 있습니다.)

    그런데 배우로서 인기의 절정을 달리고 있던 그 시기였지만 그의 가족사는 오히려 반대로 치달았다고 합니다. 그의 첫 부인인 디아나 롤리아니(Diana Rogliani)는 1931년, 열 여섯의 나이에 토토를 만나 사랑에 빠지고 그 이듬해에 집안의반대에도 불구하고 그와 결혼을 합니다.  그리고 채 스물이 되기 전에 딸을 낳았는데 그 딸이 바로 1편에서 이야기한 릴리아나이지요.

    그런데 이 결혼은 오래 가지 못 했다고 합니다. 한 곳에 정착하여 안정된 가정을 꾸미고 싶은 아내의 생각과는 달리 무대 공연 때문에 두 사람은 전 이탈리아를 돌아다녀야 했고 심지어 딸 조차도 태어난지 40일 만에 공연단에 끼어 여행을 나섰다고 합니다. 그리고 또 다른 문제는 토토 자신이 질투심이 매우 많았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어린 아내 곁에 다른 남자가 접근하는 것을 극도로 싫어했다고 합니다. (아래는 결혼 초 두 사람의 사진입니다.)
    최근 어느 인터뷰에서 그의 아내였던 디아나가 말한 것에 따르면 어느 날 토토의 공연을 객석에서 지켜보고 있었는데 극장 안에서 일하고 있던 소방관과 잠시 인사를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무대 위에서 공연을 하던 토토는 그 모습을 놓치지 않고 보아 두었다가 그 다음 날은 아예 아내를 자기 분장실 안에 감금하다시피 가두어 두고 밖으로 나오지 못 하게 했다고 합니다.

    결국 이러한 생활이 이어지면서 1939년에 두 사람은 이혼했지만 딸이 성장하여 결혼할 때까지 한 집에 살며 딸을 돌보기로 합의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두 사람은 이혼한 이 후에도 여전히 동거인으로서 수 년을 함께 살았습니다. 이 당시 두 사람이 맺었던 약속은  서로 다른 이성과 사귀는 것은 자유이지만 재혼을 하고 싶으면 딸이 시집갈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누구에게 유리한 조건이었을까요?
    이런 환경 속에서도 토토는 여전히 활발한 활동을 계속했고 아름다운 여성들에 대한 관심을 그칠 줄 몰랐습니다. 1950년대 초반에는 영화 촬영장에서 만난 실바나 팜파니니(Silvana Pampanini)라는 여배우에게 열렬한 구애를 했다고 전해집니다. 그러나 실바나는 토토를 아버지처럼 사랑한다는 말로 그의 구애를 거절했지요. 그 와중에 이 두 사람의 이야기가 언론에 알려지게 되었고 그 소식을 들은 아내 디아나는 한 변호사의 청혼을 받아들여 재혼을 하고 말았습니다. 그것이 1951년의 일이었고 아직 그들의 딸 릴리아나는 결혼을 하기 전이었습니다.

    과연 토토가 여전히 아내를 사랑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녀가 다른 사람을 만나 재혼을 하자 토토는 큰 충격을 받았고 또 화를 냈다고 전해집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는 다시 서른 살 이상이나 나이 차이가 나는 프랑카 팔디니(Franca Faldini)라는 배우를 사랑하게 되었고 스위스로 날아가서 비밀리에 재혼을 합니다. 토토가 처음 그녀를 본 것은 잡지 표지에 실린 그녀의 사진이었는데 그것을 보고 단박에 좋아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결국 그녀는 토토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그의 곁에 남아 그를 돌봅니다. (아래에 있는 사진이 바로 토토가 반한 그 잡지의 표지입니다.)
    토토는 배우였지만 자신의귀족 혈통을 아주 자랑스럽게 생각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언제나 남들이 자신을 부를 때는 '공(Prince, 이탈리아어로는 Principe, 公)' 이라는 칭호로 불러주길 원했다고 합니다.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재혼도 스위스에서 비밀리에 했다고 하는군요 서른 살 이상이나 차이가 나는 여성과의 재혼이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리는 것이 싫었던 게지요. 배우로서의 토토 자신은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될 수 있어도 귀족으로서의 안토니오 데 쿠르티스 후작은 그럴 수 없다고 스스로 말하기도 했습니다.

    1950년대 말이 되면서 토토는 병으로 시력을 거의 잃게 됩니다.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팬들에게 실망을 줄 수 없다고 하며 눈이 아픈데도 불구하고 공연을 강행했고 그것이 원인이 되어 거의 앞을 볼 수 없을 정도로 시력이 약화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러한 장애가 그의 활발한 공연 활동을 멈출 수는 없었지요. 비록 평론가들의 평은 좋지 않았지만 60년대에 이르기까지 열심히 배우로서 활동하면서 자신의 장기인 코미디 영화 뿐만 아니라 피에르 파올로 파솔리니 (Pier Paolo Pasolini)와 같은 감독들의 작품에도 출연을 했습니다. 특히 파솔리니의 '매와 참새(Uccellacci e Uccellini, 이탈리아어 그대로 옮긴다면 '나쁜 새와 작은 새'라는 의미인데 영어 제목이 매와 참새로 번역이 되면서 국내에도 그렇게 알려진 것같습니다.)에 출연하여 깐느에서 상을 받기도 했습니다.
    토토는 1967년 로마에서 갑작스러운 심장 마비로 세상을 떠났는데 그가 세상을 떠나며 마지막으로 남긴 말은 두 번째 아내인 프랑카에게 당신을 정말 사랑했었다는 말이었다고 합니다. 물론 그 자리에 있었던 그의 딸 릴리아나는 다른 말을 하고 있습니다만.
    로마에서 세상을 떠난 토토는 성당에서 거창한 장례식을 올릴 수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카톨릭의 교리에서 볼 때에는 죄를 짓고 있는 중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첫 번째 부인과 성당에서 올린 결혼이 무효가 되지도 않았는데 또 다른 여성과 결혼을 했으니 이것은 종교적인 입장에서는 죄를 짓는 것이었습니다. 영국의 왕 헨리 8세는 바로 같은 이유로 영국 만의 종교를 만들기도 했었지요.
    어쨌든 그 이유로 로마의 성당에서 간단한 의식만을 치른 토토의 유해는 그가 그토록 사랑했던 고향 나폴리로 옮겨집니다. 고향을 빛낸 나폴리의 아들을 맞는 나폴리 사람들은 고속도로의 출구에서부터 토토를 맞이했습니다. 수 만명이 운집한 가운데 성대한 장례식이 열렸고 토토가 무덤에 묻힌 이 후에도 다시 토토를 추도하는 의식이 열리기도 했다고 합니다. 토토가 묻힌 가족 묘지에는 그의 부모는 물론이고 젊은 시절 짧지만 뜨거운 사랑을 나누었던 릴리아나도 같이 묻혀 있었지요.

    배우로서 그리고 예술가로서 토토의 가치는 그가 세상을 떠난 후 더 인정을 받았는데 토토의 이름을 딴 거리와 광장은 물론이고 극장이나 레스토랑 등이 이탈리아와 전 유럽에 생겨났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의 고향 나폴리에서 토토의 위치는 단순한 배우로서가 아니라 하나의 숭배 대상으로서까지 올라갔습니다. 토토의 영혼이 나타나서 불행한 사람들을 도와주었다는 믿기 힘든 전설이 생겨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토토의 사진을 앞에 놓고 그에게 기도하는 사람들도 있다고 하더군요.

    40년 전에 세상을 떠난 이 전 시대의 배우이지만 극장 무대에서 갈고 닦은 연기력과 이탈리아인 특유의 유머와 위트가 섞인 그의 연기를 보고 있노라면 단순한 학습과 훈련만으로는 이루기 힘든 경지가 느껴집니다. 그리고 연기뿐만 아니라 시인으로서 그리고 작곡가로서 그가 남긴 작품들을 보면  정말 타고난 예술가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마저 듭니다.
    마지막으로 토토가 작곡한 노래로서 여러 가수들에 의해서 불려지면서 아직까지도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는 Malafemmina(나쁜 여자) 라는 노래를 소개합니다. 1951년에 토토가 작사,작곡한 이 노래는 원래 자신의 사랑을 받아들이지 않았던 여배우 실바나 팜파니니(Silvana Pampanini)에게 바친 노래라고 알려졌지만 나중에 토토가 남긴 악보의 원본이 발견되면서 실바나가 아니라 자신을 버리고(?) 변호사와 재혼한 첫 아내 디아나에게 보내는 노래라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이 노래는 1951년에 처음 공연되어 사람들의 사랑을 받기 시작했고 토토가 출연한 영화에서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아래에는 토토가 출였했던 영화 "토토,빼삐노 그리고 나쁜 여자(Totò, Peppino e la Malafemmena)"에서 테디 레노(Teddy Reno)라는 배우가 부르는 노래입니다. 비록 이탈리아말을 못 알아들으시더라도 배우들의 연기에서 노래의 의미가 느껴지시리라 믿습니다.

    클립 아래에 가사가 이어집니다. 과연 토토가 아내를 증오했는지 사랑했는지 한 번 알아 보십시오. 혹시 이 노래를 최초로 녹음한 자코모 론디넬라(Giacomo Rondinella)의 목소리가 궁금하신 분들은 링크를 따라가 보십시오. 음악과 함께 토토의 사진이 슬라이드쇼로 펼쳐집니다.

    Malafemmina(나쁜 여자)

    Si avisse fatto a n’ato chello ch’e fatto a mme
    c’ommo t’avesse acciso, tu vuò sape pecchè?
    Pecchè ‘ncopp’a sta terra femmene comme a te
    nun ce hanna sta pe’n’ommo onesto comme a me !

    만일 당신이 내게 한 짓을 다른 남자에게 했더라면
    그 사람은 아마 당신을 죽였을거요. 왠지 아시오?
    왜냐하면 이 땅 위에서 당신 같은 여인은
    나 같이 정직한 남자와 같이 있어서는 안되기 때문이오.

     

    Femmena, tu si na malafemmena...
    Chist’uocchie ‘e fatto chiagnere, Lacreme e ‘nfamità.
    Femmena, Si tu peggio ‘e na vipera,
    m’e ‘ntussecata l’anema, nun pozzo cchiù campà.

    여인이여. 당신은 나쁜 여인이요.
    내 눈을 눈물과 치욕으로 적시는구려.
    여인이여. 당신은 독사보다도 더 나쁜 사람이오.
    내 영혼에 독을 내뿜고 더 이상 나를 살아갈 수 없게 만들었소.


    Femmena, si ddoce comme ‘o zucchero
    però sta faccia d’angelo te serve pe ‘ngannà
    Femmena tu si’a cchiù bella femmena
    te voglio bene e t’odio, nun te pozzo scurdà

     

    여인이여 당신은 마치 설탕처럼 달콤하오
    하지만 천사같은 그 얼굴로 나를 속이고 있소.
    여인이여. 당신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소.
    나는 당신을 사랑하고 또 증오하오.당신을 정말 잊을 수가 없소.


     

    *원곡의 가사는 나폴리 방언입니다. 표준 이탈리아어와는 좀 차이가 있지요. 예를 들면 가사의 마지막에 나오는 'nun te pozzo scurdà" 는 표준 이탈리아어로 하자면 " non ti posso scordare" 가 됩니다. 그래서 제 능력으로 해석이 되지 않는 가사 중의 일부는 Internet Culturale - Malafemmena 에 번역된 영어 번역을 참조했습니다.

    ** 이 글을 위해 참고한 자료와 웹싸이트 그리고 이미지의 출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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