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 청주 ~ 보은
청주에서 보은 사이, 내 생각에 우리 산하의 크고 너른 땅에서 이만치 그윽한 곳은 달리 없을 것 같다. 강원도 정선이나 경상도 청송 일대를 떠올리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곳은 그윽한 곳이 아니라 아득한 곳이다. 산과 들이 긴장과 충돌로 서로를 밀어내지 않는 곳이다. 청주에서 옥천 사이, 그 사이의 작은 마을인 남이·문의·보은 등지에 문학의 유허가 그득하다.
옥천은 ‘향수’의 정지용으로 유명하다. 옥천에 가면 터미널이나 역에서부터 작은 학교의 담벼락까지 정지용의 시가 넘쳐난다. 해마다 문학제도 열린다. 거기서 대청호를 따라 조금 올라오면 문의면에 이른다. 문의면에서 오른쪽으로 가면 보은이고, 위로 올라가면 팔봉 김기진의 문학이 시작된 팔봉리와 민병산·신동문 같은 충북의 문재들이 모여들었던 청주시가 이어진다. 또 거기서 조금 더 가면 진천의 조명희와 괴산의 홍명희를 보게 된다. 차로 30분 이내의 거리에 이런 문학의 유산이 동네 느티나무처럼 우람하다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다.
정지용·김기진·신동문 등 문재들의 고향
보은 땅 속리산에 관한 소설 한 편을 읽어 보자. 송영의 장편소설 <금토일 그리고 월화수>다. 속리산은 예로부터 작은 금강산이라 부를 정도로 절경을 드날린 곳이다. 주능선 동북쪽이 경북 상주에 속해 있지만 대부분의 명승고찰이 보은군에 속해 있어 대개 보은 속리산이라 부른다. 법주사의 장엄함과 속리산의 웅대함이 있다.
“경내가 넓고 또 그 넓은 경내의 구석구석에 희귀한 풍물이 많았기 때문에 고찰의 경내를 한 차례 순례하는 데에는 시간이 많이 소모되었다. 그래도 여기서는 누구 하나 시간을 다투거나 서둘러 대는 사람이 없었다. 절간에 오래 괴어 있는 적막이 사람들의 발걸음을 느리게 하는지도 몰랐다. 처마의 풍경소리가 이따금 그 깊은 적막의 순간순간을 사람들에게 알리는 듯 들려왔고 어디선가 목탁소리와 염불소리가 끊임없이 들려왔으며 거대한 미륵불상 앞에서는 소복을 한 여인들이 합장하는 모습도 보였다.”
속리산 풍경소리는 느림 속 큰 울림으로…
바로 그런 느린 시간들이야말로 도심의 일상을 빠르게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는 간절한 것이다. 청주와 보은 사이, 문의면 일대로 가면 그렇게 흡사 시간이 정지된 듯한 즐거운 착시현상을 일으키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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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7년 11월에 완공된 대청댐은 대전과 청주 사이 중원군 일대의 지도를 바꿔 놓았다. 오랜 역사와 문화가 물 속에 잠겼다. 그 대신 대청호가 생겼다. 대청댐은 중원군을 안고 흐르는 금강을 막아 세운 것으로 높이 72m·길이 495m로 충주댐 이전까지는 가장 큰 규모였다. 문의면은 대청댐 건설로 확실한 변화를 겪은 곳이다. 댐 완공 이전에 문의마을은 충남 대전과 더 교류가 잦았던 남향 마을이었다. 그러나 마을과 대전 사이에 거대한 대청호가 생김으로써 하는 수 없이 윗마을 청주와 새로 교류를 터야 했다.
시인 고은은 대청댐이 생기기 전, 동료 문인 신동문의 모친 장례식 때문에 문의면 깊은 부락에 찾아온 적이 있다. <비극은 없다>를 쓴 소설가 홍성유와 함께 문의마을에 왔던 고은은 그윽하고 깊은 문의면의 숲과 능선에서 삶과 죽음 사이에 가로놓인 수많은 화두를 풀 만한 시 하나를 길어 올렸다.
<문화평론가>
겨울 문의에 가서 보았다.
죽음이 삶을 껴안은 채
한 죽음을 받는 것을.
끝까지 사절하다가
죽음은 인기척을 듣고
저만큼 가서 뒤를 돌아다본다.
모든 것은 낮아서
이 세상에 눈이 내리고
아무리 돌을 던져도 죽음에
맞지 않는다.
겨울 문의여, 눈이 죽음을 덮고
또 무엇을 덮겠느냐.
<고은 시 ‘문의 마을에 가서’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