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사 전이라면 조금 민망한 글이지만, 웃으면서 읽어주세요.^^
해학이 넘치는 이 기도는, 그러나 깊은 자기성찰 없이는
하기도 어려우며, 철학적이기까지 합니다.
2007년 6월 3일 서울대학교 학내 주일미사에서
김학선 신부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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똥 누며 드리는 기도
하느님, 오늘도 일용할 양식을 주시는 당신께 감사를 드립니다.
밥상에 앉아 생명의 밥이신 주님을 제 안에 모시며
깊은 감사의 기도를 드리는 것처럼
오늘 이 아침에
뒷간에 홀로 앉아
똥을 눌 때에도 기도하게 하소서.
제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제 뒷구멍으로 나오는 것이오니
오늘 제가 눈 똥을 보고
어제 제가 먹은 것을 반성하게 하시고
남의 것을 빼앗아 먹지는 않았는지,
일용할 양식 이외에 불필요한 것을 먹지는 않았는지,
이기와 탐욕에 물든 것을 먹지는 않았는지,
오늘 제가 눈 똥을 보고 어제 제가 먹은 것을 묵상하게 하소서.
어제 사랑을 먹고 이슬을 마시고 풀잎 하나 씹어먹었으면
오늘 제 똥은 솜털구름에서 미끄러지듯 술술 내려오고
어제 욕망을 먹고 이기를 마시고 남의 살을 씹어먹었으면
오늘 제 똥은 아무리 힘을 주고
문고리를 잡고 밀어내어도
똥이 똥구멍에 꽉 막혀 내려오질 않습니다.
오, 주님, 저를 불쌍히 여기소서.
똥 한 번 제대로 누지 못하며 살아가는
가엾은 저를 용서하소서.
내일 눌 똥을 걱정하지 않고
오늘 제 입으로 들어갈 감미로움과 달콤함에 눈이 먼
장님 같은 제 인생을 용서하여 주소서.
하느님, 어제 먹은 것을 오늘 비우게 하시니 감사 드립니다.
뒷간에 홀로 앉아 똥을 누는 이 시간은
내 몸을 비워 바람이 통하게 하고 물이 흐르게 하고
그래서 하느님 당신으로 흐르게 하는 시간임을 알게 하소서.
오늘 똥을 누지 않으면 내일 하느님을 만날 수 없음에
오늘 나는 온 힘을 다해
이슬방울을 떨구며 온 정성을 다해
어제 제 입으로 들어간 것들을 반성하며 똥을 눕니다.
오늘 제가 눈 똥이 잘 썩어 내일의 양식이 되게 하시고
오늘 제가 눈 똥이 허튼 곳에 뿌려져
대지를 오염시키고 물을 더럽히지 않게 하소서.
하느님, 오늘 제가 눈 똥이 굵고 노랗고 길면
어제 제가 하느님 뜻대로 잘 살았구나!
그렇구나! 정말 그렇구나!
오늘도 그렇게 살아야지 감사하며
뒷간 문을 열고 세상으로 나오게 하소서.
아멘.
[Handel]- sarabande
-月川 진강백 화백 그림-
나무는 꽃을 버려야 열매를 맺고
강은 강을 버려야 바다에 이른다.
-화엄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