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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사일 대신 달러…현대戰 승패, 경제 무기에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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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사일 대신 달러…현대戰 승패, 경제 무기에 달렸다

    ■국가는 무엇으로 싸우는가(에드워드 피시먼 지음, 알에이치코리아 펴냄)

    20년간 美 경제 무기화 전략 추적

    달러패권·은행망·첨단기술 지렛대

    제재·수출통제·투자제한 등 활용

    이란서 러시아·中까지 숨통 조여

    트럼프 2기, 경제무기 의존 심화

    韓 등 동맹에까지 무차별적 사용

    이재용 선임기자

    입력2026-03-27 17:51

    수정2026-03-27 23:50

    지면 17면

    국가는 무엇으로 싸우는가. 사진 제공=알에이치코리아

     
     

    2006년 이후 이란의 핵 능력이 빠르게 발전하자 미국은 이란에 대한 경제 제재 방안을 마련하는 데 골몰했다. 미국이 2005년 마카오의 방코델타아시아 은행에 보관된 북한 자산 2500만 달러를 동결하는 성과를 냈지만 이란은 북한과 체급 자체가 달랐다. 전 세계와 상업적으로 연결된 주요 석유 수출국인 까닭이다. 미국은 먼저 2011년 이란으로부터 원유 수입을 점진적으로 줄이는 나라에만 이란산 원유 구매를 허용하는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이어 2012년 이란의 석유 판매 대금을 해외 은행의 조건부 계좌에 쌓아두도록 강제하는 법안을 제정했다. 석유 판매 수익이 이란 정권으로 다시 흘러들어가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다. 이후 이란의 석유 판매량은 극적으로 감소했다. 경제난에 시달리던 이란은 2015년 미국과 핵 협정을 체결하게 된다.

    신간 ‘국가는 무엇으로 싸우는가’는 지난 20년간 미국이 안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미사일과 폭탄이 아닌 ‘경제 무기’를 개발하고 활용해온 과정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경제 전쟁’에 나서는 미국의 무기는 제재와 수출 통제, 투자 제한 등이다. 무기의 위력은 미국의 경제 패권에서 나온다. 미국 달러는 국제 무역과 금융의 기본 통화이며 미국의 주요 은행 네트워크를 통하지 않고는 글로벌 자금 이동이 불가능하다.

    저자인 에드워드 피시먼 미국외교협회(CFR) 지경학연구센터 선임연구원은 미국이 수행한 경제 전쟁의 최일선에 섰던 인물이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 당시 국무장관 정책기획실에 근무했고 국방부 합참의장 특별고문, 재무부 테러·금융정보 담당 차관 특별보좌관을 지냈다.

    책의 원제는 ‘초크포인트(choke point·전략적 요충지)’다. 초크포인트는 특정 길목이 막히면 네트워크가 마비될 수 있는 취약 지점을 뜻한다. 최근 미국의 공습을 받은 이란이 봉쇄에 나서며 협상 카드로 활용하는 호르무즈 해협이 대표적인 초크포인트다. 저자는 미국이 개발한 경제 무기는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초크포인트를 장악할 수 있게 해준다고 말한다. “미국은 제재를 강화하겠다고 더 이상 값비싸고 위험한 해상 봉쇄에 나설 필요가 없어졌다. 미국 대통령은 펜 한 자루만으로 예전의 봉쇄와 금수 조치보다 더 가혹한 경제적 처벌을 가할 수 있게 되었다.”

    저자는 특히 2022년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에 대한 미국의 제재가 경제 전쟁의 중요한 전환점이 됐다고 평가한다. 당시 미국과 서방은 러시아 석유 수출 제재를 두고 딜레마에 빠졌다. 러시아의 석유 수출을 막을 경우 글로벌 석유 가격이 급등하며 서방에도 충격을 주기 때문이다.

    이에 미국은 러시아의 석유 판매량은 줄이지 않되 러시아가 석유 수출로 얻는 수익은 줄이는 묘책을 짜냈다. 배럴당 60달러 이상의 가격으로 판매되는 러시아산 원유에 대해서만 운송과 보험 보장을 금지하는 ‘가격 상한제’다. 제재의 효과는 바로 나타났다. 지중해와 흑해를 잇는 보스포루스 해협에서 300m에 달하는 유조선들의 해상 교통 체증이 일어난 것이다. 제재 위반에 따른 불이익을 우려한 튀르키예 관리들이 각 유조선이 가격 상한을 준수했는지 철저하게 확인하면서 발생한 정체였다. 제재 이후 2023년 상반기 러시아의 석유 수출에 따른 수입액은 전년 대비 약 50% 감소했다.

    책은 경제 전쟁의 새로운 국면을 보여주는 사례로 미국의 중국 통신 기업 화웨이 제재를 짚는다. 미국은 중국의 ‘정보기술(IT) 굴기’가 미국의 안보에 심각한 위협이 될 수 있다는 판단 아래 미국의 기술을 사용해 만든 반도체를 화웨이에 판매하지 못하게 했다.

    저자는 이를 통해 미국 정부가 달러 등 금융 시스템 외에 첨단 기술도 초크포인트로 활용할 수 있다는 교훈을 얻었다고 분석한다. 미국의 경제 무기 의존은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 들어 더 심해졌다는 것이 저자의 판단이다. 그의 전임자들은 제재, 관세, 수출 통제를 상대의 행동을 변화시키는 일시적 수단으로 봤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세계 경제를 영구적으로 재편하는 수단으로 여긴다는 것이다. 트럼프가 경제 무기를 적대국뿐 아니라 한국·캐나다·유럽연합(EU) 등 동맹국에 쓴다는 차이도 있다.책에서 분석한 미국의 경제 전쟁에는 삼성전자·SK하이닉스 등 제재에 동참한 한국 기업의 사례도 등장한다. 저자는 한국어판 서문에서 “중국과 긴밀하게 경제적 유대 관계를 맺고 있으면서도, 미국과 오랜 안보적 유대 관계를 맺고 있는 한국과 같은 나라들의 경우 선택은 절대 간단하지 않다”고 썼다. 의도치 않게 트럼프발 경제 전쟁의 한복판에 선 우리 정부와 기업들에게 묵직한 숙제를 던져주는 책이다.

    884쪽, 4만 3000원.

    이재용 선임기자

     

    https://www.sedaily.com/article/20025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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