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신분 지우고 훔치고 이번엔 만들다…결핍이 빚은 욕망의 서사
    지금 이곳에선 2026. 3. 3. 17:54

    신분 지우고 훔치고 이번엔 만들다…결핍이 빚은 욕망의 서사

    [화차·안나서 레이디두아까지 동시대에 비춘 가짜의 자화상]

    살기위해 어쩔수없이 괴물이 된 ‘화차’

    성공하려고 남의 삶 탐한 ‘안나’ 넘어

    존재 자체를 만들어낸 ‘레이디두아’

    비틀린 계층상승 욕구 발판 삼아

    더 진짜같은 가짜 명품 탄생시켜

    껍데기가 본질 삼킨 현실 꼬집어

    연승 기자

    입력2026-03-02 17:19

    수정2026-03-02 23:47

    지면 26면

    넷플릭스 오리지널 ‘레이디 두아’의 스틸컷. 사진 제공=넷플릭스

    넷플릭스 오리지널 ‘레이디 두아’의 스틸컷. 사진 제공=넷플릭스

     

    “다시 태어나고 싶다.”

    명품 백을 품에 안고 세상을 등진 후 새로운 신분으로 다시 태어나 하이엔드 명품 브랜드 대표가 된 여성의 이야기가 국내외 시청자들을 사로잡고 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레이디 두아’는 가짜 신분을 이용해서라도 자기 인생을 명품으로 바꾸려는 한 여자, 사라 킴(신혜선)의 처절한 욕망을 그린다. 2일 넷플릭스 공식 사이트 투둠에 따르면 이 작품은 1000만 시청수(시청 시간을 작품의 총 러닝 타임으로 나눈 값)를 넘어서며 비영어권 쇼 부문 1위에 오르는 등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한국을 비롯해 일본·홍콩·말레이시아·멕시코 등 33개국에서 1위(2월 25일 기준)를 차지했고, 총 65개국 ‘톱10’에 이름을 올렸다.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시청률 조사 사이트 플릭스패트롤에서도 2월 넷플릭스 비영어 쇼 부문 7위에 올랐다.

    이를 두고 양극화 시대에 누구나 한번쯤 꿈꿔 왔을 ‘신분 리셋’이라는 서사에 자본주의 속성을 날카롭게 포착한 것이 주효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과거에도 신분을 바꾸고 인생을 리셋하는 여성들의 서사는 존재했다. 그러나 이 작품은 이전 주인공들보다 빈번하게 신분을 바꾸고, ‘명품 브랜드’를 자신과 동일시하며 자본주의 상품의 최상단에 오르려는 욕망을 거침없이 그렸다는 점에서 ‘가짜 신분 서사’의 결정판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이야기는 상위 0.1%를 겨냥한 하이엔드 브랜드 ‘부두아’가 새 시즌을 발표하는 날, 하수구에서 신원 불명의 여성 시신이 발견되면서 시작된다. 강력수사대 소속 형사 박무경(이준혁)은 사건의 실체에 다가가기 위해 시신과 함께 발견된 명품백의 주인이자, 부두아 아시아 지사장인 사라 킴의 뒤를 쫓는다. 사라 킴의 목표는 단 하나, 바로 자신이 만든 브랜드 ‘부두아’를 명품 반열에 올리는 것이다. 그리고 그 이면에는 그의 삶을 지배했던 결핍, 이를 감추려는 허위의식과 거짓이 자리하고 있다. “진실은 빛과 같이 눈을 어둡게 합니다. 반대로 거짓은 아름다운 저녁노을처럼 모든 것을 멋지게 보이게 합니다. 다만 들키기 전까지.”

    영화 ‘화차’의 스틸컷. 사진 제공=필라멘트 픽쳐스

    영화 ‘화차’의 스틸컷. 필라멘트 픽쳐스

     

    가짜 신분으로 인생을 리셋하는 여성의 서사는 ‘레이디 두아’가 처음은 아니다. 1960~70년대 미국 추리 소설의 단골 소재였으며 한국 영화 ‘화차’(2012), 쿠팡플레이 오리지널 ‘안나’(2022)에서도 과거의 자신을 지우고, 가짜 신분으로 살아가는 여성 주인공이 등장한다.

    다만 시대에 따라 신분을 바꾸려는 목적도 달라진다. 영화 ‘화차’를 연출한 변영주 감독은 “사회적 약자인 여성이 보편적인 방식으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무력감을 느낄 때 괴물이 되는 이야기”라고 전했다. 쿠팡플레이 오리지널 ‘안나’는 사소한 거짓말에서 시작했지만 거듭된 거짓으로 다른 인생을 살게 되고 결국 파국을 맞이하게 된 여성의 이야기를 그렸다. ‘화차’의 선영은 지옥에서 탈출하기 위한 방법으로 신분 리셋을 택했다면 ‘안나’의 유미는 성공을 위해 남의 신분을 훔치는 등 욕망이 더욱 강력해진다.

    쿠팡플레이 오리지널 ‘안나’의 스틸컷. 사진 제공=쿠팡플레이

    쿠팡플레이 오리지널 ‘안나’의 스틸컷. 사진 제공=쿠팡플레이

    ‘레이디 두아’에서 여성 주인공은 여러 차례 신분을 바꾸고 급기야 자본주의 결정체인 ‘명품’을 가짜로 만들어내며 진위의 구별이 모호해진 세상을 비춘다. 단순한 범죄 스릴러를 넘어 물질만능주의 시대에 우리가 잃어버린 ‘진짜’의 가치가 무엇인지 되묻는다. 극 중 재력가들이 사기 피해 사실을 알고도 자신의 품위가 떨어질까 봐 신고조차 하지 못한다는 설정은, 우리 시대의 허위의식을 날카롭게 꼬집고 있다.

    하재근 대중문화 평론가는 “대한민국은 다른 나라에 비해 유별나게 사치품에 대한 욕망이 강한 나라”라며 “사치품을 대하는 우리 사회의 허위의식과 계층 상승을 향한 욕구 등을 풍자한 이 작품이 높은 관심을 받은 이유”라고 짚었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레이디 두아’는 요즘 세태를 반영한 신분 지우기 서사의 극단을 보여준다”며 “과거의 단순한 신분 가리기가 아니라 더 화려한 신분을 추구하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활용해 강력한 유명세를 구축하는 현상을 드러냈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압도적인 신분과 성공에 대해서는 대중은 의심조차 하지 않는다는 점을 이용했다”며 “화려한 가짜 신분이 진짜를 역습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https://www.sedaily.com/article/20014190

     



    댓글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