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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단독] 영웅이라 말하지만…정작 소방관은 예우받지 못했다
    지금 이곳에선 2025. 11. 7. 09:28

    단독] 영웅이라 말하지만…정작 소방관은 예우받지 못했다

    9일 소방의 날…‘재난 트라우마’ 호소

    박고은기자

    수정 2025-11-07 07:30등록 2025-11-07 05:01

    2022년 10월29일 밤 10시15분 서울 용산 이태원 해밀턴 호텔 뒤 골목에서 압사사고가 발생했다. 사진은 30일 새벽 사고 현장 모습.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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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년 8월5일 울산의 한 저수지 주변 차 안에서 숨진 채 발견되 정우경 소방장(가명·사망 당시 41살)의 마지막 3년은 ‘재난 트라우마’라는 공무상 재해의 특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재난으로부터 시차를 두고 지속해 벌어지며, 당장 눈에 보이지 않는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정 소방장과 함께 발견된 메모 또한 3년 전을 멤돌았다. “너무 괴롭다. 같이 살고 같이 죽었어야만 했다.”

    2016년 10월5일, 정 소방장은 태풍 차바가 덮친 울산 울주군 구조현장에서 동료 강기정 소방사(가명·사망당시 29살)와 고립됐다.

    불어난 물 속에서 한 전봇대를 쥐고 버티다가 강 소방사를 잃고 살아나왔다. 몸의 상처는 치료됐으나 내면의 부상은 지속했다. 정 소방장은 그날로부터 8개월 뒤 “여전히 괴롭다. 같이 살고 같이 죽었어야만 했다”고 적었다. 사물함에는 세상을 떠난 순간까지 강 소방사의 소방복과 자기 것을 나란히 걸어뒀다. 정 소방장 메모에 반복된 “같이 살자”는, 두 사람이 버티다 못해 전봇대를 놓고 물에 몸을 던지며 외친 말이다.

    오는 11월9일, 63번째 ‘소방의날’을 앞둔 소방관들의 마음은 여느 때보다 무겁다. 정 소방장 죽음과 놀랍도록 닮은 ‘재난 트라우마’로 지난 7월과 8월 잇따라 동료를 잃었다. 10.29 이태원 참사에 투입됐던 남아무개(44) 소방장은 7월29일, 박아무개 소방교(30)는 8월20일 재난과 3년의 시차를 두고 각기 세상을 등졌다. 소방관들은 현장에서 벌어진 일이 아니라는 이유로 죽음 뒤 순직 인정조차 쉽지 않은 재난 트라우마의 현실을 짚으며, 소방관이 정신적 고통을 호소하고 지원 받을 체계와 조직 분위기가 마련돼야 한다고 요청했다.

    ‘죽음 이후 예우’조차 부족

    위성곤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인사혁신처에서 받은 자료를 6일 보면, 최근 10년(2015년∼2025년 6월) 동안 자살한 소방공무원 141명 가운데, 순직 인정자는 23명, 위험직무 순직인정자는 단 2명에 그쳤다. 특히 ‘고도의 위험을 무릅쓰고 직무를 수행하다 사망한 경우’ 인정되는 위험직무 순직 인정이 극히 드문데, 트라우마로 인한 자살 사망을 ‘직무 중 사망’으로 보지 않는 경향 탓이다. 정 소방장은 위험직무 순직을 인정 받은 이례적인 2명 중 1명이 됐다. 그나마 정 소방장이 생전 3년 전 재난과 연결된 고통을 호소하는 메모를 꼼꼼히 남기고, 가족과 동료들이 1년 이상 이들 증거를 모으고 공론화에 나선 결과였다.

    비슷한 상황은 지난 8월 이태원 참사 투입 이후 우울증을 겪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박 소방교의 장례 문제에서도 벌어졌다. 박 소방교 장례는 유가족과 노동조합 요청에도 기관장(소방관서장)으로 치러지지 못했다. 역시 위험 직무 수행 ‘도중’ 숨진 게 아닌, 3년 전 이태원 참사가 사망의 원인이라는 이유였다고 한다. 사망 당시 박 소방교가 속했던 ‘인천광역시 순직 소방공무원 등 장례 지원에 관한 조례’는 장례 지원 대상자를 “소방활동, 소방지원활동 등 직무수행 중이거나 소방교육·훈련 중 사망한 자”만 대상으로 한다.

    이창석 대한민국공무원노동조합총연맹 소방공무원노동조합 위원장은 “박 소방교 마지막 가는 길이라도 예우를 다하는 게 도리인데, 본부 쪽은 ‘규정을 어길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며 “시민을 더 구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시달리다 목숨을 끊었는데, 책임도 지려 하지 않는 모습에 실망스러웠다”고 토로했다. 소방청은 이 일이 있고서야 노조 요구에 따라 전국 소방본부의 관련 조례를 취합해 검토하고 있다.

    말할 수 없는 공무상 재해

    소방관들은 재난 트라우마가 상대적으로 가볍게 여겨지는 분위기 속에 정신적 고통을 토로하는 일조차 쉽지 않다고 전했다. 16년차 소방관인 오아무개(45) 소방위는 “수많은 죽음을 목격하고, 처참한 망자를 수습하고, 고통스러워하는 유가족을 지켜보면 우울감이 자연스럽게 동반된다”면서도 “우울증세를 회사(소방서)에 밝히는 것은 쉽지 않다. 예전보다는 나아졌다고 해도 여전히 정신적 문제로 도움을 요청하고 인정받기 힘든 구조”라고 전했다. 그는 우울감을 지속해 겪으면서도 소방관 14년차가 된 2023년에야 우울증 진단을 받고 처음 약을 복용했다.

     

    실제 지난해 소방청의 소방공무원 마음건강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참여 소방관 6만1087명 가운데 자살위험군은 3141명(5.2%)에 달했다. 외상 후 스트레스 증후군과 우울증을 겪는 인원도 각각 4375명(7.2%), 3937명(6.5%)로 집계됐다. 반면 양부남 민주당 의원실이 인사혁신처에서 받은 ‘정신질환으로 인한 소방공무원 공무상 요양 현황’을 보면, 지난해 정신건강 문제로 공무상 요양을 청구한 건수는 31건(승인 20건)에 그쳤다. 광범위한 정신적 고통에도 정작 이를 공적으로 인정 받고 치료 지원을 요청하려 나선 경우는 극소수에 그친 것이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정신적 고통은 소방관 스스로 해결할 수밖에 없다고 체념하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이태원 참사에 투입됐던 9년차 소방관 김아무개 소방교는 “이태원 참사는 말 그대로 현실성이 없는 현장이었다. 충격이 컸다”면서도 “참혹한 기억을 마음에 담아두지 않으려한다. 무던해져야 한다”고 되뇌었다. 강훈식 대통령 비서실장은 지난 5일 소방의 날을 앞두고 소방관 12명을 만나 “위험한 현장에 가장 먼저 들어가 가장 늦게 나오는 여러분이야말로 진정한 국민 영웅”이라며 “특별한 희생과 헌신에는 그에 걸맞은 보상이 따를 수 있도록 뒷받침 하겠다”고 밝혔다. 이창석 위원장은 ‘국민 영웅’의 정신적 상처 또한 외면해선 안된다고 재차 호소했다. “우리끼리도 ‘119라고 쓰고, 자부심이라 읽는다’며 독려하지만, 그렇게 뛰어들었다가 얻게 된 마음의 병에 대한 국가의 조처와 예우를 보면 힘이 많이 빠집니다. 대원들에게 현장에서 최선을 다하라고 말하는 것이 더이상 미안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박고은 기자 euni@hani.co.kr

     

    https://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122787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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