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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킹달러 80년 시대' 막 내리나
    지금 이곳에선 2025. 5. 20. 10:09

    '킹달러 80년 시대' 막 내리나

    [WEEKLY BIZ] [Cover Story] 최근 달러 가치 약세지만 여전히 무역서 압도적 유통량

    조성호 기자

    도움말=오건영 신한은행 프리미어 패스파인더 단장

    입력 2025.05.08. 18:04업데이트 2025.05.09. 09:03

    그래픽=김의균

    ‘화폐의 왕’ 미국 달러의 기세가 심상치 않다. 2차 대전 종전 이후 80년에 걸쳐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화폐의 자리를 굳혀온 달러가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취임 이후 흔들리고 있다.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라는 구호를 걸고 당선된 후 지난 100여 일에 걸쳐 밀어붙인 정책들이 오히려 달러의 힘을 빠지게 만든다는 평가가 나온다. 주요국 통화 대비 미 달러의 가치를 나타내는 ‘달러 인덱스’는 트럼프 취임 후 ‘강한 미국’에 대한 기대감에 4월 초 103까지 올랐다가 지난 8일 100 아래로 떨어졌다. 한때 1500원을 넘어설 수 있다고 예상됐던 달러 대비 원화 환율은 1400원 선 아래로 내려간 상태다. WEEKLY BIZ가 최근 달러가 흔들리는 원인과 전망을 분석했다.

    그래픽=김의균

    ◇알아야 할 배경①: 미국의 ‘소극적 방임’은 끝났다

    전문가들이 미국을 설명하며 자주 쓰는 ‘소극적 방임(benign neglect)’이란 표현이 있다. 미국 정부가 무역 수지 적자와 재정 악화를 인지하고 있으면서도 이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않고 방관하는 태도를 가리킨다. 미국의 이런 ‘초연함’은 그런데 불어나는 적자를 더는 참을 수 없다고 여겨질 때 갑자기 ‘불타는 보복’으로 변하곤 한다. 2001년 중국의 WTO(세계무역기구) 가입을 용인하고 이후 빠르게 불어나는 대중(對中) 무역 적자에 침묵하다가 2003년부터 존 스노 당시 미 재무장관이 압박해 중국의 위안화 절상(통화가치 상승)을 이끌어낸 것이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많은 전문가는 미국 정부가 2020년 초 시작된 코로나로 인한 경제 침체를 방어하느라 재정 적자가 빠르게 불어난 조 바이든 전 행정부 때가 ‘소극적 방임’에 금이 가기 시작한 때라고 평가한다. 이미 불어나고 있던 무역·재정의 ‘쌍둥이 적자’가 지속 가능하지 않다고 평가되는 수준으로 급증하자 미국이 돌변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가계와 마찬가지로 국가가 적자를 보게 되면 돈을 빌려서(국채를 발행해서) 메울 수밖에 없다.

    미 연방 정부의 부채는 2020년 27조달러에서 2023년 33조달러로 크게 불어났다. 국채 이자로 지급해야 할 돈이 급증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적자를 더 이상 감당하기 어렵다고 보고 “좋은 말로 할 때 무역 시스템 좀 바꾸자”고 은근히 압박한 사람이 바이든이었다면, 트럼프는 세계를 향해 “우리가 사기당했다. 물어내라”고 ‘호통’을 치고 있는 상황이다.

    ◇알아야 할 배경②: 무역으로 돈 벌어 미 국채 산 신흥국들

    그래픽=양진경

    미국에 대해 무역 흑자를 내는 한국·중국·일본 등은 물건을 팔고 달러를 받는다. 미 달러가 시장에 많이 풀리는(공급 증가) 셈이 되기 때문에 달러 가치가 낮아져야 자연스럽다. 달러 가치가 낮아지면 미국인 입장에선 (달러 기준) 수입 물가가 오르는 셈이 되고, 그러면 자연스럽게 수입품보다 상대적으로 가격이 저렴해지는 미국산을 사게 된다. 통화가치가 조정되면서 자연스럽게 무역이 균형을 찾아갈 수 있다는 ‘이론적’ 이야기다.

    현실은 달랐다. 한·중·일 등은 수출해서 번 달러를 시장에서 사용하는 대신 이 중 상당수를 ‘가장 안전한 자산’이라는 미 국채를 사서 외환 보유고에 쌓아놓는 데 썼다.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등을 거치며 외환 보유고를 든든히 쌓아놓고 미래를 대비하려는 국가들이 늘어나면서 생긴 일이다. 중국의 미 국채 보유량은 2010년 초 약 8900억달러어치에서 코로나 직전인 2020년 1조700억달러로 불어나 있었다. 한국의 외환 보유액 중 미 국채는 2010년 약 400억달러에서 작년 말 약 1250억달러로 급증(미 재무부 자료)했다.

    물건을 많이 판 나라들이 달러로 받은 대금으로 국채를 대거 사들이면 무슨 일이 생길까. 국채의 인기가 올라가기 때문에 금리는 내려간다.(그만큼 낮은 금리를 줘도 국채가 잘 팔리기 때문이다.) 반대로 미 국채를 사려면 달러가 필요하기 때문에 (달러 수요 증가로) 달러 가치가 올라간다. 이런 가운데 이 국가들의 기업과 국민이 미국 국채뿐 아니라 주식까지 대거 사들이기 시작하면서 달러 강세는 더 고착됐다. 다른 국가들은 ‘킹달러’라고 추켜세웠다. 하지만 미국 입장에서 ‘강한 달러’는 안 그래도 적자가 심한 무역 수지를 더 악화시키는 요인이어서 기분이 좋을 수만은 없었다. 그리고 트럼프가 왔다.

    ◇트럼프의 과제①: 무역 적자

    중국 등 미국에 수출을 많이 하는 나라들은 ‘미국인이 값싸고 좋은 물건이 필요해서 사서 썼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번 달러로 미국이 (재정 적자로) 빚낼 필요가 있어서 발행하는 국채를 사서 비축해놓은 것이 무슨 잘못이냐는 것이다. 트럼프의 생각은 전혀 다르다. “우리가 당신네 물건도 사주고, 국채 이자도 주고, (한국과 일본의 경우) 막강한 군사력으로 보호도 해주고 있다. 그런데 달러까지 강하게 만들어 우리 경제를 망치냐”라면서, 다른 나라들이 미국을 대상으로 사기를 치고 있다고 생각한다.

    무역 수지 적자를 줄이는 방법은 둘이다. 수입을 줄이거나, 수출을 늘리면 된다. 트럼프가 사실상 전 세계를 대상으로 벌이는 ‘관세전쟁’은 수입을 줄이기 위한 조치다. 미국 달러 가치가 내려가면 (수입 물가 상승으로) 수입도 줄고, (수출 물가 하락으로) 수출도 늘어날 수 있다. 트럼프가 그토록 싫어하는 무역 적자를 개선하려면 달러 가치 하락이 매력적인 방안이란 뜻이다.

    ◇트럼프의 과제②: 국채 이자

    미국의 무역 수지 적자와 재정 적자는 ‘쌍둥이’처럼 붙어 다닌다. 정부가 재정 적자를 감수하면서 달러를 풀면 그 달러로 국민이 수입품을 사다 쓰면서 무역 수지 적자가 불어난다. (물품 대금인) 달러를 받아든 수출국은 그 돈으로 미국 정부가 재정 적자를 충당하기 위해 발행한 국채를 사서 외환 보유고에 쌓아 둔다. 이런 식의 악순환이 ‘미국 입장’에선 발생해 왔다.

    발행한 국채가 늘어 정부가 지급해야 하는 이자가 증가한다는 점도 문제다. 미국이 국채 이자로 지급하는 돈은 2010년 4140억달러에서 지난해 1조1300억달러(약 1580조원)로 불어났다. 매일 4조원 넘는 돈이 국채 이자로 나가고 있다는 뜻으로, 이에 대해선 지속 가능한 수준이 아니라는 의견이 많다.

    그래픽=양진경

    이런 가운데 스티븐 미란 백악관 경제자문위원회(CEA) 위원장이 지난해 11월 내놓은 ‘글로벌 무역 시스템의 재구성 사용자 가이드’라는 보고서가 최근 화제가 됐다. 미란은 해당 보고서에서 외국인 국채 보유자에게 주는 이자에 세금을 부과한다거나, 미국이 방위를 제공하는 외국 정부에 기존 국채를 100년 만기 채권으로 바꾸도록 압박하겠다는 방안을 제시했다. 미국 국채 중 가장 많이 유통되는 것은 만기 10년짜리이고 현재 가장 긴 만기가 30년인데 이를 ‘100년 만기’로 교환하도록 하겠다는 뜻이다. 10년 만기 국채를 100년 만기로 교환한다는 것은, 10년 뒤에 상환하기로 한 빚은 100년 뒤에 갚기로 계약서를 다시 쓰자는 황당한 얘기와 다름이 없다.

    주먹구구로 계산해 전 세계에 부과하고 유예하는 등 오락가락하는 상호 관세, ‘세상에서 가장 믿음직한 자산’으로 여겼던 미 국채의 만기를 맘대로 바꾸겠다는 백악관 고위 당국자의 발상 등은 결국 미국이라는 국가 자체에 대한 신뢰에 금이 가게 만들었다고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국가에 대한 신뢰는 그 국가가 발행하는 통화에 대한 신뢰와 직결된다. 달러의 위상이 흔들리게 된 이유 중 하나다.

    ◇미국을 다시 전만큼 믿을 수 있을까

    트럼프가 ‘2기’ 취임 후 100여 일 동안 내놓은 정책들은 ‘룰을 잘 지키는 나라 미국’이라는 오랜 신뢰에 타격을 주었다. 그 결과 미국의 주식·채권·통화가치가 모두 하락하는 현상이 최근 발생하는 상황이다. 여전히 세계의 압도적 최강대국인 미국에 대한 신뢰가 이대로 점점 무너질지, 혹은 회복될지는 아직 미지수다. 트럼프의 주장대로 이런 조치가 무역·재정 수지를 개선시키고 미국의 제조업을 부흥시켜 미국에 대한 신뢰가 더 견고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전문가들은 적어도 ‘미국이 어디로 튈지 모른다’는 경각심을 세계 각국이 가지게 되었다는 점은 부정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갑자기 이상한 행동을 보이는 친구를 뺀 단체 채팅방을 만들어 다른 친구들끼리 뭉치듯이, 미국을 빼고 ‘규칙’을 정해보자는 움직임도 일고 있다. 아시아·태평양 국가들이 결성한 다자간 자유무역협정인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과 유럽연합(EU)의 교류 확대, 중국·러시아가 주도하는 신흥국 모임인 브릭스(BRICS)의 밀착 등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미국의 환율 전문가 마크 챈들러 베넉번글로벌포렉스 최고시장전략가는 지난달 버지니아대 강연에서 “2028년(트럼프 임기 말)이나 2026년(중간선거)을 기점으로 ‘우리의 실수였다’고 인정한다 해도 다른 국가들의 신뢰가 이전으로 돌아가긴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모건스탠리 최고 채권 전략가인 비슈와나트 티루파투르는 “일단 의심이 시작되면 ‘지니(램프에 사는 가상의 요정)’를 램프에 다시 집어넣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일러스트=양진경

    ◇그럼에도 ‘킹달러’가 붕괴하지 않는 이유

    많은 전문가는 그렇다고 해서 미 달러가 강력한 지위를 일순간 갑자기 잃지는 않으리라고 전망한다. 월스트리트저널 등에 경제 칼럼을 쓰는 폴 블러스타인은 예일대 강연에서 “달러의 지배력은 (글로벌 거래에서 익숙하게 쓰인 화폐를 계속 쓰려는) 관성과 ‘네트워크 효과(사용자가 많을수록 가치가 올라가는 효과)’ 때문”이라며 “달러처럼 수십 년 동안 국제적으로 널리 사용되는 통화는 드물다”고 했다.

    그래픽=양진경

    실제로 달러는 글로벌 무역 결제 자금으로, 여전히 압도적인 유통량을 유지하고 있다. 국제결제은행(BIS)에 따르면 투자자·기업이 외화를 거래하는 시장에서 달러는 약 90%의 거래에 쓰였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지난해 외환 보유고의 약 57%를 달러가 차지한 반면, 유로는 20%, 엔은 6%, 파운드는 5%에 불과했다. 국제결제은행에서도 2022년 투자자와 기업이 외화를 거래하는 시장에서 달러가 약 90%의 거래에 관여했다.

    현재로선 달러를 대체할 수 있는 경쟁자도 딱히 없다. 중국 위안이나 비트코인 같은 가상 화폐가 때때로 거론되지만 아직 달러의 위상을 무너뜨리기엔 한계가 있다는 평가가 대세다. 특히 중국 위안이 달러에 버금갈 기축통화가 되려면 그 어떤 경우에도 위안을 자국 화폐로 환전할 수 있어야 하는데 중국의 권위주의 체제가 이를 허용해줄지 불안해하는 시각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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