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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살에 처음 잡은 중학교 수학책, 폴리텍 나와 36살에 교수 꿈 이뤄지금 이곳에선 2025. 5. 20. 10:16
25살에 처음 잡은 중학교 수학책, 폴리텍 나와 36살에 교수 꿈 이뤄
[2030 취업 분투기] 한국폴리텍대학 익산캠퍼스 나노측정과 유민우 교수 이야기
진은혜 더비비드 기자
입력 2025.05.19. 06:00업데이트 2025.05.19. 14:22
경제에 위기 신호가 오고 있습니다. 그 어느 해보다 힘든 고용상황이 이어지고 있는데요. 어려움 속에도 희망은 있습니다. 취업난을 극복하고 있는 청년들을 통해 희망을 전하는 ‘2030 취업 분투기’를 연재합니다.
한국폴리텍대학 익산캠퍼스 나노측정과의 유민우 교수. /더비비드
공대 교수가 된 태권청년. 한국폴리텍대학 익산캠퍼스 나노측정과의 유민우(37) 교수의 삶은 태권도와 공학으로 압축할 수 있다. 두 단어의 간극 속에 공통점이 있다. 바로 열정과 집념이다.
합기도인이었던 아버지 영향으로 태권도를 시작한 유 교수는 아마추어 태권도 선수로 활동할 정도로 태권도에 진심이었다. 25살 늦깎이 대학생이 된 후에는 중학교 수학 문제집을 풀면서 기초부터 다쳤다. 그런 그가 졸업 후 모교 교수가 되기까지 걸린 시간은 10년에 불과하다. 유 교수는 진로 변경과 나이는 큰 변수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그를 만나 인생 스토리를 들었다.
◇ 태권청년의 이유 있는 진로 변경
아마추어 태권도 선수로 활동하던 시절의 모습. /유민우 교수 제공
태권도는 유 교수의 첫번째 꿈이었다. 태권도 도복을 입는 게 너무 좋아, 운동하기 전날 밤부터 가슴이 설렜다. 훗날 태권도장을 차리겠다는 야무진 목표도 세웠다. 중학생 때부터는 고등학교 태권도 감독이 운영하는 도장에서 훈련을 받으며 아마추어 선수로 활동했다. 태권도 외에 다른 선택지는 없었기에 자연스레 체육 대학에 진학했다.
하지만 1학년 1학기를 채우지 못하고 자퇴했다. 체대의 엄격한 규율과 군기가 화근이었다. “과 분위기와 맞지 않았어요. 시간을 낭비하는 게 싫어서, 학교를 떠나고 바로 입대했어요. 군에서도 태권도 교관으로 활동했죠. 전역 후 태권도 사범으로 일하며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나 고민에 빠졌습니다. 태권도 4단을 보유하고 있어서 도장을 차릴 수도 있었지만 내키지 않았어요.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때문이죠. 군 생활이 잘 맞아서 재입대해서 직업군인이 될까 고민도 했습니다.”
한국폴리텍대학 재학 시절 모습. /유민우 교수 제공
‘평생 기술로 평생 직업을’. 고민에 빠진 그에게 마법 같은 문구가 눈 앞에 펼쳐졌다. 한국폴리텍대학 신문 광고였다. “그때부터 어떤 기술을 공부해야 평생 먹고 살 수 있을까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한국폴리텍대학에서 운영하는 학위 과정도 파악했죠. 그렇게 나노측정과에 지원하기로 했습니다. 이 학과를 운영하는 캠퍼스가 전국에 딱 두 곳 뿐이었거든요. 희소성과 경쟁력, 모두 챙길 수 있는 학과라고 판단했습니다.”
예비 10번을 받았다. 앞 차례 순번이 빠지고, 입학 등록금을 내라는 문자를 받았을 때 뛸 듯이 기뻤다. 익산캠퍼스 나노측정과 12학번이 됐다. “처음엔 수업 내용을 하나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막 고등학교를 졸업한 동기들에게 밥을 사주면서, 내용을 좀 알려 달라고 부탁했죠. 특히 수학이 쥐약이었습니다. 중학교 1학년 수학 문제집을 사서 기초부터 풀었죠.
당시 김제 할머니집에서 통학했는데요. 수업이 끝나면 빈 강의실에서 밤 9시까지 공부한 후 막차를 타고 집에 가는 생활을 이어갔습니다.”
1학년 1학기부터 좋은 성적을 거뒀다. 자격증도 부지런히 취득했다. 학업 우수상을 받고 졸업했다. “정밀측정은 컴퓨터, 휴대폰, 자동차 부품 등의 제품이 도면대로 만들어졌는지 정밀하게 확인하는 작업으로, 기계 품질관리의 기초가 되는 기술입니다.
자동차 부품, 반도체 등 주요 산업군에서 꼭 필요로 하는 절차죠. 학교에서 정밀 측정의 꽃이라 불리는 3차원 측정기 실습을 주로 했는데요. 너무 재미있었습니다. 자격증도 빠릿빠릿 취득했습니다. 1학년때 정밀측정산업기사를 취득했고 2학년때는 품질경영기사를 땄습니다. 품질경영기사의 경우 4년제 대학을 나와야 응시자격이 주어지는데요. 상업 고등학교 재학 시절 땄던 기능사 자격증과 군 경력 덕분에 응시 자격을 받아 학과 최초로 취득했습니다.”
◇ 새롭게 피어난 교수라는 꿈
(왼쪽부터) 한국씰마스타 사원증, 품질관리팀 정밀측정실 내부. /유민우 교수 제공
졸업 후 자동차 부품 회사인 평화정공을 거쳐 반도체 장비 전문 제조 업체 한국씰마스타의 품질관리팀에서 근무했다. 3차원 측정기를 다루는 게 주 업무였다. 폴리텍대학에서 수차례 진행한 실습 교육과 자격증이 빠른 적응에 도움을 줬다.
유 교수는 촉망 받는 직원이었다. 한국씰마스타 근무 중 3차원 자동 측정 프로그램을 개발해 회사의 인정을 받았다. 측정 과정을 자동화하면 작업 속도가 빨라져 생산성을 끌어올릴 수 있다. 좋은 선례가 돼 준 덕에 2015년부터 지금까지 20명이 넘는 익산캠퍼스 나노측정과 졸업생이 한국씰마스타에 취업했다.
(왼쪽부터) 교재 초안을 들고 포즈를 취한 박한주(왼쪽) 교수와 유민우(오른쪽) 교수, 출판된 교재. /더비비드, 유민우 교수 제공
경력이 길어질수록 전문성을 높이고 싶다는 욕심이 커졌다. 문득 학점은행제를 활용하라는 은사의 교훈이 떠올랐다. “한국폴리텍대학 재학 시절, 조언을 아끼지 않았던 교수님이 계셨어요. 바로 박한주 교수님입니다. 박 교수님은 학점은행제로 학위를 취득하고, 대학원에 진학해 박사까지 도전해보라고 말씀하시곤 했죠. 누군가는 흘려 들었겠지만 제게는 치트키 같은 조언이었습니다.
자격증을 추가로 취득하고, 온라인 강의로 학점을 채워서 7개월만에 학점은행제로 4년제 기계공학 학위를 받았습니다.” 2017년 박한주 교수가 뜻밖의 제안을 해왔다. “한국폴리텍대학 재학 시절 제작한 정밀 측정 실습 교본을 보완해서 정식 출판하자고 하시더군요.
또, 책을 바탕으로 학생들을 지도해달라고 했어요. 생각하지 못한 길이었는데 가슴이 뛰었어요. 시간을 조율하기 위해 회사에 이 상황을 공유했습니다. 감사하게도 회사 이사님이 제 꿈을 응원해주고 싶다고 하셨어요. 새벽 근무와 주말 근무도 불사하지 않은 모습을 좋게 봐주신 것 같아요.”
(왼쪽부터) 시간강사 시절 찍은 사진, 퇴근 후 공부한 기록. /유민우 교수 제공
그때부터 ‘이중생활’을 시작했다. “매주 월요일마다 익산에서 시간 강사를 했습니다. 토요일 정오까지 회사에서 일하다가 일요일 아침에 전주 집에 와서 수업 준비를 하고, 월요일에 6~7시간 강의를 했어요. 그리고 곧바로 인천으로 넘어가서 야간 대학원 수업을 들었죠. 회사가 있는 김포로 복귀하면 자정이 훌쩍 넘었습니다. 2018년부터 2020년까지 약 2년을 주말 없이 살았어요.”
이 과정에서 교수라는 두번째 꿈이 피어났다. “처음 시간강사로 학생들을 지도했을 때 소름이 돋았어요. 산업 현장에서만 알 법한 내용을 알려주면서 희열을 느꼈죠. 이 길이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그때부터 교수 준비를 했습니다. 전주대 산업공학과에서 박사 과정도 시작했죠.
운 좋게 군산에 있는 한 학교의 전임 교수로 임용 됐는데요. 모교에 대한 미련을 못 버리겠더라고요. 제가 이곳에서 삶의 전환점을 맞이했으니, 학교와 후배들에게 보탬이 되고 싶었어요. 그래서 한국폴리텍대학 익산캠퍼스 교수직에 지원했습니다.
◇ 수업만 들어도 산업안전기사 자격증 취득할 수 있습니다
유 교수는 2024년 한국폴리텍대학 익산캠퍼스 나노측정과 조교수로 임용됐다. /더비비드
2024년 8월, 꿈에 그리던 한국폴리텍대학 익산캠퍼스 나노측정과 조교수로 임용됐다. 졸업 10년만에 모교로 돌아온 것이다. 2년이라는 짧은 시간 안에 정밀 측정 전문가를 양성해야 하기 때문에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쉴 새 없이 강의해야 한다. 실전형 인재를 배출하기 위해 실습 위주로 수업한다. 이론과 실습 비중은 약 3대 7이다. 학생들은 3차원측정실, 정밀측정실, 재료 실험실, 나노실험실 등 현장 장비로 무장한 공간에서 원 없이 실습할 수 있다.
현장 밀착형 기술뿐만 아니라 학생들의 잠재력을 최대치로 끌어올리자는 게 유 교수의 교육 철학이다. “학문의 즐거움을 알려주면서, 경험의 폭을 넓혀주기 위해 매년 학술대회에도 참가할 계획입니다. 현재 제주도에서 개최되는 학술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인공지능(AI)을 활용한 정밀측정 방안’을 주제로 연구 중입니다.
2024년 8월 임용 후 벌써 두번째 학술대회죠. 학생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파악하기 위해 1대1 상담도 자주 합니다. 학생들이 마음을 편하게 털어놓을 수 있게 연구실을 아기자기하게 꾸며 놨어요.”
3차원 정밀측정기로 학생을 지도하고 있는 유 교수. /더비비드
내년 학과 개편을 앞두고 기대가 크다. “학과명을 나노측정과에서 기계품질측정과로 바꿉니다. 보다 직관적이고 대중이 이해하기 쉬운 방향으로 바꾸기로 했죠. 가장 기대가 되는 건 과정평가형 자격 도입입니다. 산업안전기사는 기업에서 채용 할당량을 정할 정도로 취업에 도움이 되는 자격증인데요. 이 자격증을 취득하려면 학력, 경력 등 까다로운 응시 요건을 충족해야 합니다.
하지만 과정평가형 도입 학과에서 공부할 경우 해당 교육 과정을 이수하기만 해도 산업안전기사 자격증 응시 기준이 주어지고, 필기 시험이 면제됩니다. 학력이나 경력과 관련 없이 국비로 취업에 도움을 주는 자격증을 준비할 수 있다는 의미죠. 이공계로 전환을 모색하는 문과 출신이나 취업이 절실한 청년에게 큰 발판이 돼 줄 겁니다.”
◇ 남의 말에 내 한계를 가두지 마세요
제자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유 교수. /더비비드
유 교수는 학교와 산업 현장, 선배와 후배를 잇는 다리 역할을 하고 있다. “한국씰마스타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곳에서 길을 잘 닦아둔 덕에 익산캠퍼스 출신 입사자가 꾸준히 나오고 있어요. 올해도 졸업생 4명을 배출했죠. 작년에는 처음으로 나노측정과 동문회를 열었습니다. 08학번부터 24학번까지 한 자리에 모여서 네트워킹을 하고, 취업 정보를 주고 받는 시간을 가졌어요.
어쩌다 보니 다리 역할을 하고 있네요. 학부생일 때 은사님과 동료 교수가 됐으니, 더 잘해야겠다는 부담감도 갖고 있습니다.”
비가 오면 비를 막아주고, 눈이 오면 눈을 막아주는 ‘우산’같은 어른이 되고 싶다. “한국폴리텍대학은 제 인생의 전환점입니다. 24살의 제가 한국폴리텍대학을 만나지 못했으면 지금 어디서 뭘 하고 있을지 상상할 수 없어요.
만나는 사람에 따라 인생이 크게 달라질 수 있다고들 하잖아요. 저 역시 박한주 교수님 같은 분을 만나지 못했으면 이렇게 성장하지 못했을 겁니다. 저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어요. 동기를 부여하고, 열정을 심어주는 교수이자, 힘든 순간에도 이들이 갈 길을 안전하게 보호하는 우산이 되고 싶어요.”
사제 관계에서 동료가 된 박한주 교수와 유민우 교수가 서로를 마주보고 웃고 있다. /더비비드
진로 결정을 앞두고 고민에 빠진 청년들에게 남의 이야기에 내 한계를 가두지 말라고 주문했다. “대학원에 진학할 때 주변에서 ‘너무 늦었다’, ‘그 나이에 석사 졸업한다고 교수가 되겠냐’는 말을 하곤 했는데요. 귀담아듣지 않았습니다. 오직 제 목표만 생각했죠. 남들이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는 이유로 도전하지 않고 포기해버리는 분들을 많이 봤는데요. 안타까웠어요.
25살 새내기가 됐을 때, 너무 늦은 게 아닐까 걱정했지만 돌아보니 별로 늦지 않았어요. 작년 졸업생 중에선 33살에 대기업 신입이 된 제자가 있었습니다. ‘카더라’에 신경 쓰지 마세요. 원하는 바를 위해 노력하면 근처까지 갈 수 있습니다. 내 무기를 갈고 닦는데 집중하다 보면 몰랐던 세상이 펼쳐질 겁니다.”
※이 콘텐츠는 한국폴리텍대학과 공동으로 제작했습니다.
https://www.chosun.com/economy/startup_story/2025/05/19/BOWXF7MSU5AY3FMKCQ5QYO3FG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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