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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라제기의 영화로운 /배우 진 해크먼을 추억하며
    문화 광장 2025. 3. 16. 13:32

    한국일보의 영화전문기자. 문화부장, 에디터를 거쳐 영화라는 우물을 깊고 넓게 파는 중이다. 홍콩배우 임달화를 닮았다고 주장하며 '임다롸'라는 별명으로 영화인들을 비롯해 여러 영화로운 이들과 접선하고 있다.
    안녕하세요, sooji2님. 이번 주 잘 보내셨나요. 어느덧 주말이 눈앞입니다. 주말 짬 내서 영화나 드라마 한 편 보고 싶지 않으신가요. 이왕이면 세상사를 좀 더 넓은 눈으로 보게 해주거나 사회 흐름을 콕 집어주는 작품 말이에요. ‘라제기의 영화로운’은 의미 있는 영화나 드라마 관람을 원하시는 분들에게 작은 도움을 드리려고 합니다.
     
    “날 쏴 봐, 쏘라고!”
    영화 ‘용서받지 못한 자’(1992) 속 빌(진 해크먼)
    배우 진 해크먼을 추억하며😥
     
    영화 '프렌치 커넥션'(1971)
    영화팬들이 최근 깜짝 놀란 뉴스가 있습니다. 유명 배우 진 해크먼이 지난달 26일 아내 벳시 아라카와, 반려견과 함께 미국 뉴멕시코주 샌타페이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궁금증을 유발할 만한 상황이니 여러 억측이 나돌기도 했습니다.

    경찰 조사 결과 사인이 밝혀졌습니다. 아내가 한타바이러스 감염으로 급사했고, 치매 환자였던 해크먼은 아내의 죽음을 모른 채 일주일을 홀로 생활하다 심장마비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고령화 시대 남일 같지 않다는 생각이 드는 비극입니다(자세한 내용은 여기에서👉美배우 진 해크먼 사인은... "치매 앓다 '부인 사망' 모른 채 심장병으로 숨졌다").

    연기로 막대한 부를 일군 해크먼이 왜 가사관리자나 간병인들을 고용하지 않고 아내와 단 둘이 살았는지는 여전히 의문입니다.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로스앤젤레스를 벗어나 오래전 샌타페이에 정착했다고 하니 은둔형 삶을 추구한 데서 이유를 추정해 봅니다.

    진 해크먼하면 여러 영화들이 떠오릅니다. 여러분은 어떤 영화로 고인의 얼굴을 기억하시나요. 오늘은 그의 출연작들로 해크먼의 연기 인생을 돌아보려고 합니다.
    👉고집과 고약함 사이의 인상
    우직하다고 할까요, 고집스럽다고 할까요. 해크먼의 외모는 미남이나 스타라는 수식과는 거리가 있습니다. 강인한 인상으로 어찌 보면 고약한 성격의 소유자로 보입니다.
    저는 ‘프렌치 커넥션’(1971)으로 해크먼이라는 배우를 제대로 알게 됐습니다. 마약조직을 끈질기게 추적한 끝에 일망타진하게 되는 뉴욕 경찰서 소속 지미 도일(진 해크먼) 형사가 스크린 중심에 있는 영화입니다. ‘엑소시스트’(1973)로 유명한 윌리엄 프리드킨(1935~2023) 감독의 대표작 중 하나입니다.
    ‘프렌치 커넥션’은 미국 아카데미상 시상식 8개 부문 후보에 올라 작품상과 감독상, 편집상, 각색상 등 5개 부문 상을 받았습니다. 해크먼은 남우주연상을 받으며 생애 첫 오스카 트로피를 손에 쥐었습니다.
    해크먼이 선한 역을 연기한 흔치 않은 영화입니다. 동료가 죽는 등의 난관을 거치면서도 집요하게 마약조직을 쫓는 도일 형사의 모습이 인상적입니다. 고집스러운 얼굴의 해크먼이기에 더 잘 어울리는 역할입니다. 도일 형사가 도망치는 마약조직원을 계단 아래에서 총으로 쏘는 모습은 이 영화를 대표하는 명장면으로 유명합니다.
     


    👉해크먼이라 가능했던 악역 렉스 루터
    ‘프렌치 커넥션’ 다음으로 제 마음을 사로잡은 해크먼의 연기는 해양 재난 영화 ‘포세이돈 어드벤처’(1972)였습니다. 그는 목사 프랭크 스콧을 연기했습니다. 포세이돈이라는 대형 유람선은 선체에 문제가 있는데도 무리하게 운항을 합니다. 결국 자연재해를 만나 좌초하게 되는데요. 프랭크 스콧은 생존자들을 이끌고 살 길을 찾아 나서게 됩니다.
    스콧은 생존자들과 갈등을 가끔 빚고는 하지만 결정적인 순간 자신의 목숨을 던져 사람들을 구합니다. 뚝심 있는 얼굴에 고집불통 성격에도 불구하고 스콧이 결국 인간적인 면모를 드러내는 장면이 관객 마음을 흔들어 놓습니다.
    ‘프렌치 커넥션’과 ‘포세이돈 어드벤처’를 먼저 언급했지만 따지고 보면 제가 가장 먼저 본 해크먼의 출연작은 ‘슈퍼맨’(1978)입니다. 제가 이 영화 속 해크먼의 모습을 ‘프렌치 커넥션’과 ‘포세인도 어드벤처’와 연결을 못 시켰을 뿐입니다. 어린 시절 ‘슈퍼맨’을 보고 잊고 있다가 해크먼이 출연했다는 걸 뒤늦게 깨달은 것이죠.
    해크먼은 ‘슈퍼맨’에서 악당 렉스 루터를 연기했습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사막 지대 땅을 사들이고서 미사일이 해안가에 떨어지게 하기 위해 음모를 꾸미는 인물입니다. 그는 미사일이 폭발하면 샌안드레아 단층을 건드려 지진이 일어나고 자기 땅이 해안가가 돼 거부를 쥘 수 있다는 가공할 계산을 합니다.
    슈퍼맨은 렉스 루터의 음모를 분쇄하려고 하나 루터는 슈퍼맨의 약점을 잘 알고 있습니다. 외계 가상 물질 크립토나이트(슈퍼맨의 고향 행성 크립톤에서 생성된 녹색 결정물로 유독한 방사선을 방출)를 확보해 슈퍼맨의 힘을 빼놓는데요. 악마 같은 계략을 꾸미고서 음산하게 웃던 렉스 루터의 모습을 지금도 또렷하게 기억합니다.
    ‘수퍼맨 리턴즈’(2006)와 ‘배트맨 대 슈퍼맨: 저스티스의 시작’(2016)에서 배우 케빈 스페이시와 제시 아이젠버그가 렉스 루터를 각각 연기했는데요. 해크먼의 악역에는 한참 못 미쳤다고 생각합니다.


     
    👉주인공 빛나게 하는 악역
    ‘컨버세이션’(1974) 역시 그의 대표작 중 하나입니다. 영화 ‘대부’ 시리즈로 유명한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습니다. 해리 카울(진 해크먼)은 선인과 악인 사이에 있는 인물입니다. 어쩌면 우리네와 같이 보통 사람입니다.
    카울은 도청전문가로 음습한 일로 생계를 유지합니다. 그는 한 기업가의 의뢰로 데이트하는 남녀의 대화를 도청해 녹음하는데요. 카울은 기업가가 아내의 불륜 사실을 포착해 살인을 저지르려 한다는 걸 뒤늦게 알게 됩니다. 그는 살인을 막을 것인지, 거금을 받고 모른 척 할지 고민하다 양심에 따라 행동하게 됩니다.
    ‘컨버세이션’은 칸국제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았습니다. 해크먼은 온당치 않은 일을 하면서도 옳은 길을 택하는, 이중적인 면모를 이 영화에서 보여줍니다. 우직함과 고약함을 동시에 담고 있는 얼굴을 지닌 그였기에 관객들은 카울의 행동을 좀 더 설득력 있게 보게 됩니다.
    해크먼이 연기한 여러 악역 중에서 유난히 빛나는 역할은 또 있습니다. ‘용서 받지 못한 자’(1992)의 보안관 빌입니다. 빌은 마을 불량배들에게 돈을 받고선 불의에 눈을 감습니다. 이에 분노한 피해자 동료들이 왕년에 악명 높았던 총잡이 윌리엄(클린트 이스트우드)에게 문제 해결을 부탁하면서 벌어지는 일이 스크린을 채웁니다.
    윌리엄과 빌의 다툼은 쉽게 봉합될 수도 있었으나 두 사람은 목숨 걸고 끝까지 싸우게 됩니다. 일을 키운 건 빌의 자존심이라 할 수 있습니다. 빌은 적당히 타협하지 않고 윌리엄을 굴복시키려고 하다 되레 화를 당합니다. 해크먼다운 역할입니다. 해크먼은 이 영화로 아카데미상 남우조연상을 수상합니다.
    👉영화사에 남을 성격파 배우
    해크먼은 게이 코미디 영화에 출연한 적이 있기도 합니다. ‘버드 케이지’(1996)입니다. 이야기는 좀 복잡합니다. 게이로 드래그퀸 클럽을 운영 중인 아먼드 골드먼(로빈 윌리엄스)은 하룻밤 실수로 낳은 아들이 있습니다.
    골드먼은 동성 연인과 아파트에서 살고 있는데요. 아들이 약혼녀와 약혼녀 부모를 데리고 집을 찾게 됩니다. 골드먼은 아들을 위해 성정체성을 애써 감추려고 하고 이 과정에서 웃음이 만들어집니다.
    해크먼은 골드먼의 미래 사돈이 될 케빈 킬리라는 인물을 연기했습니다. 완고하고 보수적인 상원의원인 킬리가 개방적이고 진보적인 골드먼을 만나면서 유쾌한 장면들이 빚어집니다.
    해크먼의 어린 시절은 불우했습니다. 어려서 아버지가 가정을 버리면서 외할머니댁에서 자랐습니다. 한창 뛰어놀며 공부할 나이인 16세에 미 해병대에 입대했습니다. 제대 후 저널리즘과 방송 제작 등을 공부한 후 연기에 입문했습니다. 그가 배우로 살겠다고 결심한 나이는 30세입니다.
    그의 얼굴에 깃든 뚝심이 연기 인생에 힘이 됐을까요. 그는 마흔 넘어 연기 이력에 빛을 발합니다. 두 차례 오스카 트로피를 움켜쥔 거 이외에도 골든글로브상을 네 차례나 수상했습니다.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그의 부고를 접한 후 이렇게 애도를 표했습니다. “그보다 좋은 연기를 하는 배우는 없었다. (그의 연기는) 집중력 있고 본능적이었다.”
    ✋찬바람이 매섭지만 봄기운이 완연합니다. 이번 주말은 어떤 영화와 함께 보내실 생각이신가요. 이번 주에는 프랑스 영화 '에밀리아 페레즈'가 극장가에 첫 선을 보였습니다. 지난해 칸국제영화제 심사위원상과 여자배우상을 받았고, 올해 아카데미상 시상식에서 여우조연상과 주제가상을 수상한 영화입니다(자세한 내용은 여기에서👉마약왕에서 선행왕으로 변신한 트랜스젠더… 그의 죄는 용서받을 수 있나). 멕시코 비하 등 여러 논란이 있었으나 영화로서는 즐길 거리가 많습니다. 적극 추천합니다. 주말 건강하게 잘 보내세요~~🤗
     
    무얼 볼지 고르다가 시간만 허비한다는 ‘넷플릭스 증후군’이라는 말까지 생긴 시대, OTT 콘텐츠 2편씩 추천해 드립니다.
    한국일보의 영화전문기자. 문화부장, 에디터를 거쳐 영화라는 우물을 깊고 넓게 파는 중이다. 홍콩배우 임달화를 닮았다고 주장하며 '임다롸'라는 별명으로 영화인들을 비롯해 여러 영화로운 이들과 접선하고 있다.
    ‘라제기의 영화로운’은 매주 금요일 오전 11시에 보내드립니다.
    영화로운 주말 보내세요 😄

     

    한국일보 이메일 서비스 중에서 발췌 url 없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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