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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몹시 나쁜 선례’, 트럼프 당선이 키울 미국의 폭력과 분열지금 이곳에선 2024. 11. 19. 09:48
‘몹시 나쁜 선례’, 트럼프 당선이 키울 미국의 폭력과 분열
트럼프가 미국 사법·입법·행정을 완전히 주도하게 됐다. 지지층 간 정치적 갈등 역시 계속 고조되고 있다. 트럼프는 관례를 깬 승리 연설을 통해 지지층만을 향한 메시지를 냈다.
뉴욕·양호경 통신원
입력 2024.11.19 07:35 호수 896
대선 이후 만일의 사태를 막기 위해 10월28일 미국 워싱턴 DC 백악관 인근에 철제 장벽이 설치되고 있다. ⓒAFP PHOTO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2024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압도적으로’ 승리했다. 당초 재검표와 각종 소송 등으로 당선자 확정까지 2주가량 걸릴 것이라는 예상과 다른 결과였다. 트럼프는 격전지로 분류된 7개 주에서 모두 승리했다.
또 2004년 조지 W. 부시 대통령 이후 20년 만에 전국 투표수에서도 민주당 후보를 이겼다. 연방대법원 보수 우위 구성(보수 6명·진보 3명)과 주정부(공화당 27·민주당 23)까지 감안하면 트럼프는 사법·입법·행정을 완전히 주도하게 된다.
정책의 보수화는 이미 선거 과정에서 양당 전반에 나타났다.
카멀라 해리스 민주당 대선후보는 과거 내세웠던 자신의 진보적 정책들을 언급하지 않았다. 경제, 세금, 국경 안보와 이민자 문제를 두고 공화당에 끌려가는 모습을 보이면서 트럼프와 차별화하지 못했다. 민주당의 중산층 공략과 중도화 전략으로 해석되지만, 이미 트럼프가 선점한 이미지를 넘어서기에 부족했다는 평가다.
대표적으로 최대 경합 주인 펜실베이니아주의 중요한 이슈였던 셰일가스 추출 방식(프래킹)에 대해 해리스는 2020년 금지를 주장했다가 이번 선거에서 “금지하지 않겠다”라고 말을 바꿔 논란이 됐다. 경합 주를 의식한 조심스러운 선택이었지만 트럼프는 “뚫자(Drill)”라는 한마디로 상황을 정리해버렸다.
견제 없는 보수 우위 정국에서 트럼프 주도의 보수적 정책은 더욱 강화될 전망이다. 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치열한 선거 때문에 의원들이 말을 아끼고 있을 뿐 당내에서 해리스 후보의 정책 중도화가 트럼프 정책을 견제할 명분을 약화시켰다”라고 우려했다.
하지만 해리스가 가장 강조한 임신중지권은 7개 주에서 인정받았다. 이번 대선에서는 애리조나·네바다 경합 주를 포함해 10개 주에서 임신중지권 찬반 투표가 함께 실시됐다. 임신중지권 확대가 승인된 7개 주 중에는 트럼프를 지지한 미주리주 등도 포함되어 있다.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강조한 이 정책은 상대적으로 해리스에 대한 여성의 지지로 이어진 것으로 보인다. CNN 출구조사에 따르면 해리스의 지지율은 2016년 힐러리 클린턴 후보와 비교했을 때 전반적으로 낮게 나왔는데, 백인 여성 지지율은 소폭 높았다.
양당 지지자 모두 ‘폭력 사태’ 우려
더욱 큰 문제는 따로 있다. 지지층 간 정치적 갈등이 계속 고조되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에서는 선거에 패배한 후보가 승복 연설을 하고, 당선자에게 축하 전화를 한 후 승리 연설이 진행되는 것이 관례였다.
하지만 트럼프는 관례를 깨고 CNN, 〈뉴욕타임스〉 등 주요 언론이 당선을 확정하기도 전인 11월6일 오전 2시30분께(현지 시각) 승리 연설을 시작했다. 트럼프는 “역사상 가장 위대한 정치운동의 승리”라고 반복해서 강조했다.
2020년 대통령 선거 승리를 도둑맞았다는 주장의 연장선에서, 전체 국민이 아닌 자신의 지지층을 향한 메시지였다. 2008년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오늘 저는 여러분의 표를 얻지 못했을지도 모릅니다. (저를 지지하지 않은) 당신들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저는 당신들의 대통령입니다”라는 통합 메시지를 강조한 승리 연설과 상반되는 내용이었다.
뉴욕의 한 투표소에서 카멀라 해리스에게 투표하고 나온 한 인도계 여성은 사진 촬영 요청을 거부하면서 “무섭다”라고 말했다. 누구를 지지하는지 알려지면 위협을 받을지 모른다는 설명이었다. “투표가 끝나면 누가 이기든 서로 비난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선거가 끝난 이후 폭력 사태와 분열, 갈등에 대한 걱정은 NBC 뉴스 선거 출구조사에서도 확인된다.
미국인 70%는 ‘선거가 끝나고 폭력 사태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고 답했다. 이는 2021년 1월 선거 결과를 부정하는 트럼프 지지자들의 국회의사당 난입 사건 이후 커졌다. 이런 우려를 반영해 투표일 전날인 11월4일 수도 워싱턴 D. C.에서는 철제 장벽이 설치되면서 경비가 강화되기도 했다.
뉴욕에 사는 트럼프 지지자의 집에 걸린 깃발. ‘나를 비난하지 말라’는 내용이 담겼다. ⓒ양호경 제공
여론조사기관 입소스(Ipsos)의 10월 조사에 따르면 공화당 지지자의 59% 또한 ‘선거 이후 폭력 사태 발생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고 응답했다.
민주당 지지자가 많은 뉴저지주의 한 트럼프 지지자는 자신의 자동차에 트럼프 지지 깃발을 달고 다니는데, 가끔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향해 공격적인 욕설을 한다고 불만을 표시했다. 그는 “왜 나를 비난하는지 이해하지 못하겠다. 트럼프를 지지하는 게 민주주의를 강화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법치주의 원칙이 무너질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트럼프는 재선에 성공하면 자신을 기소한 연방 특별검사인 잭 스미스를 “2초 만에 해고하겠다”라고 지난 10월 밝혔다. 이에 반응하듯 트럼프 당선이 확정된 이후 법무부와 잭 스미스 특별검사가 당선자에 대한 기소를 중지시킬 방법을 찾고 있다고 미국 언론들은 보도했다.
내년 대통령 취임 전에 소송이 끝나지 않는 상황에서 대통령의 면책권 때문에 소송을 유지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법적 논리와 별개로 이에 대한 시민들의 상실감도 커 보인다. 뉴욕의 한 민주당 지지자는 “선거에 이겼다고 (법적인) 잘못이 용서돼서는 안 된다. 몹시 나쁜 선례가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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