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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라제기의 영화로운 영화 고독 1967
    문화 광장 2024. 8. 31. 10:21

    한국일보의 영화전문기자. 문화부장, 에디터를 거쳐 영화라는 우물을 깊고 넓게 파는 중이다. 홍콩배우 임달화를 닮은 외모를 발판으로 최근 클럽하우스에 ‘다롸몰’을 열어 영화로운 이들과 접선하고 있다.
    안녕하세요, sooji2님. 이번 주 잘 보내셨나요. 어느덧 주말이 눈앞입니다. 주말 짬 내서 영화나 드라마 한 편 보고 싶지 않으신가요. 이왕이면 세상사를 좀 더 넓은 눈으로 보게 해주거나 사회 흐름을 콕 집어주는 작품 말이에요. ‘라제기의 영화로운’은 의미 있는 영화나 드라마 관람을 원하시는 분들에게 작은 도움을 드리려고 합니다.
     
    “무서워요.”
    영화 ‘암흑가의 두 사람’(1973) 속 지노(알랭 들롱)
    알랭 들롱의 마력이 궁금하다면😳
     
    영화 '고독'(1967)
    제가 어렸을 적 프랑스 배우 알랭 들롱(1935~2024)은 미남의 대명사였습니다. “알랭 들롱 닮았다”는 말은 남자에 대한 최고의 찬사 중 하나였습니다(지금보다 외모지상주의가 강했던 시절이었다는 점 감안해 주세요ㅜㅠ). 로버트 레드퍼드나 몽고메리 클리프트(1920~1966)처럼 할리우드에도 극강의 미남들이 많았는데, 유독 들롱을 세계 최고로 치는 이유를 어린 저로서는 잘 몰랐습니다.

    아주 어린 시절 TV로 들롱의 출세작 ‘태양은 가득히’(1960)를 보며 저는 의문을 품기도 했습니다. 어디로 보나 부잣집 막내아들 같은 외모의 들롱이 가진 것 딱히 없는 청년 리플레이로 나왔기 때문입니다. 리플레이가 부잣집 외아들인 고교 동창 필립을 요트에서 살해한 후 짓던 우수 어린 표정에서 고개를 끄덕이기는 했지만 말이죠.

    지난 18일 세기의 미남 알랭 들롱이 세상을 떠났습니다(자세한 내용은 여기에서👉'태양은 가득히' 프랑스 명배우 알랭 들롱 별세). 여러분은 그의 출연작 중 어떤 영화를 보셨고, 어떤 작품을 좋아하시나요.
    들롱이 이탈리아 거장 루키노 비스콘티(1906~1976) 감독과 협업한 ‘로코와 형제들’(1960)과 ‘레오파드’(1963) 같은 걸작이 적지 않기도 하나 저는 그가 출연한 프렌치 누아르 영화들에 유난히 마음이 끌렸습니다. 특히 장 피에르 멜빌(1917~1973) 감독과 함께 한 범죄물들이 좋았습니다. ‘고독’(또는 ‘한밤의 암살자’, 1967)과 ‘암흑가의 세 사람’(1970), ‘리스본 특급’(1972)을 들 수 있습니다.
     
    👉과묵한 차도남의 매력
    들롱이 주연한 멜빌 감독 영화 중에선 ‘고독’이 가장 인상적이었습니다. ‘차가운 도시 남자’의 매력을 한껏 뿜어내는 들롱의 연기가 매력적입니다. 깃을 세운 트렌치코트를 입고 중절모를 쓴, 영화 속 들롱의 모습은 눈길을 잡기 충분합니다.
    들롱은 ‘고독’에서 살인청부업자 제프를 연기합니다. 제프는 완벽주의자입니다. ‘일’에 쓰기 위해 자동차를 훔친 후 번호판을 바꿔 자신을 감춘 후 의뢰 받은 일을 가차 없이 실행합니다. 경찰의 수사망을 피하기 위해 알리바이 마련에도 신경을 씁니다.
    제프는 어느 날 나이트클럽 소유주 마르테 살해 의뢰를 받습니다. 그는 “죽이러 왔소”라는 간단한통보와 함께 청부 살인을 저지릅니다. 문제가 발생합니다. 제프는 일을 치른 후 서둘러 빠져나가다 나이트클럽 재즈 피아노 연주자 발레리(캐시 로지에)와 마주칩니다. 발레리가 경찰에서 입을 열면 제프는 난처한 상황을 맞이할 수 밖에 없습니다.

     
    👉킬러이나 미워할 수 없는
    영화는 어두운 한 아파트 실내를 보여주며 시작합니다. 새장 속에서 새 한 마리가 지저귀고, 제프는 바로 옆 침대에 누워 담배를 피웁니다. 화면 한쪽에는 이런 문구가 떠오릅니다. ‘사무라이보다 더 고독한 자는 없다. 정글의 호랑이만 예외일 것이다.’(부시도)
    부시도(武士道)는 일본 사무라이들이 지켜야 할 행동 강령과 규범을 뜻합니다. 영화의 원제는 ‘Le Samouraï’. 영어로는 ‘The Samurai’입니다. 제프가 고독한 사무라이처럼 살아가는 킬러이기에 사용된 제목입니다. 국내에서는 괜한 오해를 부를 수 있어 ‘고독’ 또는 ‘한밤의 암살자’로 소개된 듯합니다.
    영화는 시작한 후 10분 동안 대사 하나 없습니다. 과묵한 제프의 내면을 반영하는 듯합니다. 제프는 상영시간 105분 동안 용건만 간단히 말하고는 합니다. 차량 번호판을 바꾸고 새 권총을 구입할 때도, 경찰 조사를 받을 때도 그의 입은 침묵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영화의 시간적 배경은 초봄인 4월입니다. 아직 겨울 한기가 남은 이 시기는 제프라는 인물과 어울리기도 합니다. 돈을 받고 치밀하게 일을 진행하는 킬러 제프는 기이하게도 악당으로 보이기는커녕 뭔지 모를 연민을 불러일으킵니다.

     

     

     

    👉스크린 밖 들롱을 보는 듯
    들롱은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네 살 때 부모가 이혼한 후 위탁 가정에서 자랐습니다. 여려 차례 퇴학을 당했고, 17세에 입대한 해군에서는 차량 절도죄로 불명예제대하기도 했습니다. 질풍노도라는 수식이 딱 맞을 청춘을 보낸 거죠.
    들롱은 ‘꽃미남’ 외모와 달리 거친 인생을 살아가는 역할을 주로 연기했습니다. 그는 “내가 아름다운 얼굴의 예쁜 소년일 뿐이란 걸 사람들이 잊게 하기 위해 수년 간 싸워왔다”고 여러 차례 밝혔습니다.
    들롱은 이미지가 고정되는 걸 두려워해 로맨스물 대신 범죄물에서 차가운 역할을 주로 했다고 하나 그의 ‘적성’에 맞는 선택이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밑바닥 삶을 경험해 봐서인지 그의 푸른 눈동자에는 슬픔과 냉소가 깃들어 있습니다. ‘고독’에서 제프의 무표정이 여러 표정을 만들어내는 데 눈동자의 힘이 크다고 봅니다.

    👉논란 남기고 간 프랑스 영화의 아이콘
    들롱은 연애사가 화려했고, 가족사가 복잡했습니다. ‘고독’에서는 제프의 연인 제인이 경찰 협박에도 거짓 증언을 하는 데요. 제인을 연기한 배우 나탈리 들롱은 알랭 들롱의 첫 아내입니다. 맏아들은 나탈리와의 사이에서 나왔고, 들롱은 네덜란드 모델 로잘리 판 브레멘과 동거하며 딸과 막내아들을 얻기도 했습니다.
    1970년대 미국 록밴드 벨벳 언더그라운드와의 협업으로 유명한 독일 가수 니코(1938~1988)와의 사이에서도 아들을 낳았으나 들롱은 친자가 아니라고 평생 부정했습니다. 개인사는 무척 소란스러웠다 할 수 있습니다.
    들롱은 말년에 인종차별과 여성혐오 발언으로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습니다. 눈부시고도 말 많은 인생을 살다 갔으나 그가 프랑스 영화의 아이콘이었다는 건 부정할 수 없습니다.
    영국 출신으로 프랑스에서 주로 활동했던 배우 제인 버킨(1946~2023)에게는 ‘프렌치 시크’라는 수식이 종종 따라붙었습니다. 남자 배우로는 들롱에게 선사하면 좋을 수식이라고 생각합니다.
    ✋더위가 조금 꺾일 때가 됐는 데 여전히 덥습니다. 다음주면 기온이 좀 떨어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기도 합니다. 밤에 에어컨을 켜지 않고 잘 수 있는 계절이 빨리 왔으면 좋겠습니다. 여름 휴가는 다녀오셨는지요. 저는 다음주에 늦은 휴가를 가려고 합니다. 다음주에는 여러분을 뵐 수 없겠네요. 다다음주 좀 시원해진 날씨 속에서 만났으면 좋겠습니다. 건강하고 편안하게 주말 보내십시오.🤗
     
    무얼 볼지 고르다가 시간만 허비한다는 ‘넷플릭스 증후군’이라는 말까지 생긴 시대, OTT 콘텐츠 2편씩 추천해 드립니다.
    ‘라제기의 영화로운’은 매주 금요일 오전 11시에 보내드립니다.
    영화로운 주말 보내세요 😄
    오늘 영화로운은 어떠셨나요?
    의견을 보내주시면 더 좋은 레터를 만드는 데 참조하겠습니다.

     

    한국일보 이메일 서비스 중에서 발췌 url없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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