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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상을 바꾸려 했던 소녀들…‘열광·성장·망각’의 씁쓸한 도돌이표
    지금 이곳에선 2024. 8. 17. 18:55

    세상을 바꾸려 했던 소녀들…‘열광·성장·망각’의 씁쓸한 도돌이표

    [한겨레S] 김도훈의 낯선 사람

    서맨사 스미스

    ‘기후 소녀’ 그레타 툰베리

    성장하자 미디어 관심 썰물

    ‘평화 소녀’ 서맨사 스미스

    소련도 미국도 정치적 이용만

    수정 2024-08-17 12:42등록 2024-08-17 12:00

    기사를 읽어드립니다

    미-소 냉전이 한창이던 1983년 4월 미국 소녀 서맨사 스미스(10)가 유리 안드로포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에게 받은 답장을 내보이고 있다. AP 연합뉴스

    그레타 툰베리라는 소녀가 있었다. 아니 잠깐. 그레타 툰베리는 이미 유명한 사람이다. 그는 2019년 유엔 본부에서 열린 기후행동 정상회의 연설로 시대를 대변하는 환경운동가가 됐다. 독자 여러분은 이미 지난 몇년간 그레타 툰베리라는 이름을 지겹도록 들어왔을 것이다.

    그레타 툰베리가 등교를 거부했다! 그레타 툰베리가 트럼프를 만나 인상을 썼다! 그레타 툰베리가 환경을 위해 범선을 타고 포르투갈로 갔다! 그레타 툰베리가 노벨평화상 유력한 후보다! 그리고 그레타 툰베리는! 그레타 툰베리는! 사라졌다. 그에 대한 마지막 기사는 반년 전이다. 네덜란드 정부 화석연료 보조금 지급을 규탄하는 시위를 하던 중 현지 경찰에 체포됐다는 소식이다.

    순식간에 유명해졌다 빠르게 잊히는 인물들이 있다. 21세기는 그런 인물로 넘친다. 그레타 툰베리는 그럴 인물은 아니었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어느 순간 그레타 툰베리라는 인물은 해외 주요 뉴스에서 슬금슬금 사라지기 시작했다. 거의 매달 그의 작은 행보까지 따라가던 미디어들은 갑자기 모든 관심을 잃어버리기라도 한 것처럼 굴고 있다.

    물론 여기에는 정치적 이유가 있다. 그레타 툰베리는 지난해 11월 네덜란드에서 기후 시위를 벌이던 중 팔레스타인 지지 선언을 했다. “우리는 환경운동가로서 억압받는 이들의 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국제적인 연대 없이는 기후 정의도 있을 수 없습니다. 지금 당장 휴전하세요. 팔레스타인은 자유로워질 것입니다.”

    팔레스타인 지지는 불순?

    즉각적인 반발이 이어졌다. 초록색 옷을 입은 한 남성은 연단으로 뛰어올라 툰베리에게서 마이크를 뺏으며 외쳤다. “나는 정치적 견해가 아니라 기후 시위를 위해 이곳에 왔습니다”라며 항의했다. 그날 이후 서구의 많은 환경단체가 툰베리와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독일 녹색당 대표는 “툰베리가 기후운동 얼굴로서의 신뢰를 스스로 떨어뜨렸다”고 말했다.

    최대한 넓은 대중과 기업의 지지를 모으려는 환경단체들로서는 툰베리의 정치적 발언이 운동의 범위를 제한한다고 생각했을 수 있다. 나라 잃은 민족에 감화하는 한국인에게 팔레스타인을 지지하는 건 당연한 일처럼 느껴지지만 국경을 넘어서면 꼭 그렇지는 않다. 유대인 학살과 중동 문제에 원죄의식을 느끼는 서구는 공식적으로 팔레스타인을 지지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북미와 서구의 거의 모든 정부는 공식적으로 이스라엘을 지지한다. 그건 쉽게 바뀌지 않을 것이다.

    툰베리에 대한 지지를 슬그머니 철회하는 이유가 그것뿐일까? 내가 보기에 갑작스러운 서구 정부와 환경단체들의 거리두기에는 본질적인 문제가 있다. 그들에게 그레타 툰베리는 이용하기 쉬운 아이콘이었다.

    10대 소녀가 순결한 얼굴로 “감히 당신들이 내 꿈을 앗아가다니!”라고 외치는 장면은 대중적인 효과가 압도적이었다. 소녀의 순진하지만 솔직한 의견에 귀를 기울이라! 문제가 있다. 그레타 툰베리는 더는 소녀가 아니다. 21살 성인이다. ‘아이다움’은 사라졌다. 더는 ‘기후 정의를 위해 거대 정부에 맞서는 어린 소녀’라는 이미지를 활용할 수가 없게 된 것이다.

    예상하건대, 서구 환경단체들은 더는 그레타 툰베리를 예전처럼 적극적으로 자신들의 얼굴로 내세우지는 않을 것이다. 내 예감이 틀리기를 바라지만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별로 없다.

    그레타 툰베리 이전에 세상을 바꾸려 했던 소녀가 또 있었다. 서맨사 스미스다. 1972년생인 이 미국 소녀는 1980년대 초 냉전 시대의 아이콘이었다. 평화의 상징이었다.

    그가 갑작스럽게 세상이 열광하는 아이콘이 된 이유는 편지 한장 덕분이다. 그는 1982년 11월 겨우 10살 나이에 당시 소련의 공산당 서기장이었던 유리 안드로포프에게 편지를 보냈다. “저는 서맨사 스미스입니다. 10살입니다. 취임을 축하드려요. 소련과 미국 사이에 핵전쟁이 날까 걱정입니다. 서기장님은 전쟁을 할 생각이신가요? 아니라면 전쟁을 막으실 생각인가요?

    굳이 답하지 않으셔도 좋지만 답을 보내주신다면 감사하겠습니다. 소련은 왜 미국을 정복하려 하나요? 하느님은 서로 돌보라고 세상을 만드셨잖아요. 서로 싸우거나 누구 하나가 세상을 정복하라고 만든 게 아니잖아요. 하느님의 뜻을 따르고 모두 행복해지면 좋겠어요. 답장 꼭 부탁드립니다.”

    오염되기 쉬운 순수함

    안드로포프 서기장에게 초청을 받아 1983년 7월 소련 아르테크 개척자 캠프를 방문한 서맨사(가운데)의 모습. 리아 노보스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그의 편지가 1983년 4월12일 소련 공산당 미디어인 ‘프라우다’에 실렸다.

    그리고 안드로포프는 정말로 그에게 답장을 썼다. “소련도 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내용의 상당히 공들인 답장이었다. 물론 “소련의 누구든 평화를 원합니다.

    소련을 건국한 블라디미르 레닌이 가르쳐준 교훈이기도 합니다”라는 소련답게 아이러니한 표현으로 가득했지만, 어쨌거나 “우리는 핵무기를 절대 사용하지 않을 겁니다”라는 확실한 의견이 담긴 편지였다. 마지막으로 안드로포프는 서맨사를 소련으로 초청하고 싶다는 의향을 밝혔다. 순진한 어린아이에게 보내는 일종의 정치적 제스처였다.

    아니었다. 유리 안드로포프 서기장은 서맨사 스미스와 부모를 공식적으로 초청했다. 1983년 7월7일, 서맨사 스미스와 부모는 모스크바에 도착했다. 공항에는 엄청난 환영 인파가 마중을 나왔다. 서맨사 가족은 7월22일까지 소련에 머물며 모스크바 등 여러 장소를 방문했다.

    지금은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의 촉매가 된 크림반도에서 공산주의 청년동맹인 ‘콤소몰’ 단원들과 어울려 지내기도 했다. 물론 이 방문은 소련 정부에 의해 철저하게 기획된 것이었다. 소련 정부는 미국과의 체제 경쟁에서 전혀 밀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서맨사 스미스 방문을 통해 서구, 특히 미국에 홍보하고 싶었을 것이다.

    당연히 그의 방문은 영상으로도 남아 있다(유튜브로 검색해 보시라).

    서맨사 스미스는 스타가 됐다. 셀레브리티가 됐다. 아이콘이 됐다. 소련이 그를 이용한 것처럼 미국도 그를 이용했다. 디즈니는 그를 ‘라임 스트리트’라는 티브이 시리즈 주연으로 기용했다. 소련을 방문하고 돌아온 지 5개월 뒤, 미국은 서맨사 스미스에게 ‘꼬마 친선대사’라는 직책을 주어 일본에 보냈다.

    그는 나카소네 야스히로 총리를 만나 “미국 소녀가 방문하는 나라에 미국은 폭탄을 떨어뜨리지 않을 것”이라고 연설했다. 히로시마·나가사키 원폭 투하 같은 일은 다시는 벌어지지 않을 거라는 이야기였다. 너무 유명해진 나머지 미국 정치인들도 서맨사를 만나 사진 한장이라도 남기려고 줄을 섰다.

    그래서 서맨사 스미스라는 소녀 덕에 냉전이 녹아내렸는가? 그런 일은 당연히 벌어지지 않았다. 당시 소련은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한 상태였다. 1984년 로스앤젤레스올림픽은 사회주의 동구권 보이콧으로 반쪽짜리 축제가 됐다. 핵전쟁에 대한 공포는 세상을 여전히 지배했다.

    1991년 소련이 갑작스레 붕괴하기 전까지 지구는 인류 역사상 핵 종말에 가장 가까운 상태까지 치달았다. 그나마 미국의 소녀에게 편지를 직접 보낼 만큼 개혁파로 알려졌던 안드로포프 서기장은 서맨사가 미국으로 돌아간 지 7개월 만에 병으로 급사했다. 서맨사 역시 불행히도 1985년 경비행기 사고로 사망했다. 겨우 13살이었다.

    아니다. 나는 서맨사 스미스의 업적을 과소평가할 생각이 전혀 없다. 이 소녀의 편지는 어쨌거나 냉전의 공포를 겪던 당대 사람들에게 희망을 안겼다. 소련도 사람이 사는 곳이고, 사람과 사람이 마주한다면 핵전쟁의 위기도 헤쳐 나갈 수 있으리라는 희망 말이다. 물론 희망과 현실은 다르다.

    많은 사람은 서맨사 스미스가 소련·미국 양쪽의 프로파간다에 순진하게 이용당한 뒤 잠깐의 유명함을 얻었다 요절한 소녀로 기억할 것이다. 실질적으로 그가 바꾼 것은 없었다. 정치적 어른들은 어떻게든 그를 이용하기 위해 갖은 애를 썼을 따름이다. 서맨사 스미스의 소녀적 순진함은 이용하기 쉬웠다. 이유는 하나다. 어린 소녀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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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른이 된 소녀’에게도 귀 기울일까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가 지난 4월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열린 글로벌 기후파업에 참석해 확성기를 들고 발언을 하고 있다. EPA 연합뉴스

    그러니까 마지막 질문은 이거다. 세상은 언제나 소녀들을 이용한다. 소년이 아니다. 소녀는 소년보다 이용하기 용이하다. 덜 공격적이고 더 순결하며 더 무해하다는, 오래된 젠더 감수성에서 발현된 이미지가 있기 때문이다. 서맨사 스미스가 그랬고 그레타 툰베리가 그렇다.

    사람들은 그들이 순진한 소녀의 얼굴로 어른들을 향해 ‘지구를 살리자’라고 말하는 걸 열정적으로 소비한다. 미스 유니버스 선발대회 참가자들로 하여금 “저의 소원은 지구 평화입니다”라는 말을 하게 만든 다음, 박수를 치며 보석이 박힌 왕관을 씌워주는 행위처럼 말이다. 거기서 끝이다.

    서맨사 스미스가 요절하지 않고 살아남았다고 하더라도 그의 효용은 금방 사라졌을 것이다. 그가 구체적인 정치적 의견을 가진 성인이 되는 순간, 어른들은 그를 찾지 않았을 것이다. 똑똑한 자기 의견을 가진 성인 여성은 불편한 존재가 되어버린다.

    그레타 툰베리는 더는 소녀가 아니다. 확고한 정치적 의견을 가진 어른 여성이다. 어른들로 가득한 정치적 단체들은 그레타 툰베리를 점점 더 불편한 존재로 여길 것이다. 아이콘적 지위는 점점 지워질 것이다. 물론이다. 나는 내 예감이 틀리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레타 툰베리가 계속해서 말하기를 바란다. 기후 정의를 위한 더 많은 일들을 해내기를 바란다. 소녀는 죽었다. 아니다. 소녀는 죽지 않았다. 죽지 않고 어른이 됐다. 세상은 어른이 된 소녀의 말에 귀를 기울일 것인가?

    김도훈│문화평론가
    영화 잡지 ‘씨네21’ 기자와 ‘허프포스트코리아’ 편집장을 했다. 사람·영화·도시·옷·물건·정치까지 관심 닿지 않는 곳이 드문 그가 세심한 눈길로 읽어낸 인물평을 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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