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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관곡지 촬영 후기
    수지생각 2008. 7. 25. 11:14

     

    관곡지에서 ... 제철을 만난 연들

     

     

     

     

     


    우리나라 최초 연 재배지인 경기도 시흥시 하중동 관곡지(官谷池) 주변에는 4만여㎡ 규모의 연꽃단지가 있다. 시흥시는 옛 관곡지의 명성을 되찾고 연근 재배로 농가소득을 증대하기 위해 마을 주민에게 예산을 지원, 관곡지 주변 논 4만여㎡에 수련 20여종을 심었다.
    이곳에 대규모의 연꽃 농장이 들어선 것이 올해로 만 3년째다. 약 3만여 평의 연꽃단지에서 무안 백련, 향백련, 홍련 등 여러 종의 연꽃과 50여 종의 수련을 재배하는데 관상을 겸하면서 연근을 생산한다.
    8월말부터 꽃을 피우기 시작한 연꽃은 오전 10∼11시 사이에 만개하기 때문에 사진을 촬영하려면 가급적 오전에 오는 것이 좋다고 시흥시는 설명한다.

    5백30여년 된 유서 깊은 작은 연못 관곡지는 조선시대 명신이며 농학자인 강희맹(1424∼1483) 선생이 세조 9년(146 3년) 중국 난징(南京)에 있는 전당지(錢塘池)에서 연꽃씨를 채취, 귀국한 뒤 연을 재배해 전국으로 확산시킨 연못으로 향토유적 제8호로 지정 관리되고 있다.(규모: 가로 23m, 세로 18.5m)
    이 못은 강희맹의 사위인 권만형(權曼衡, 사헌부감찰)의 집가에 있어 대대로 권만형의 후손의 소유가 되어 관리되어 오고 있다.
    특히 정조 21년(1797)에는 정조가 수원 현륭원(顯隆園)을 행차하는 길에 안산 관아(安山官衙, 안산시 수암동 256)에 유숙할 때 안산관내의 선비를 대상으로 과거를 실시하면서 어제(御題)로 시제(詩題)를 <강희맹이 사신으로 중국 남경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전당에서 붉은 연꽃씨를 채취해 왔는데. 그로부터 안산군의 별호를 ‘연성’ 이라고 했다>로 정할 만큼 관곡지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졌다.

    연당 한가운데에 있던 관상소나무는 관곡지의 품위를 돋보이게 하고 농학자로서의 기품을 상징하고 있는 듯했으나 1990년 9월에 폭우로 고사되었다. 못의 규모는 가로 23m, 세로 18.5m인데, 시흥관내의 연성초ㆍ연성중학교 등의 교명과 연성동의 동명 및 시흥시의 향토문화제명인 연성문화제(蓮城文化祭)의 명칭 등은 이 못에서 연유해 명명되었다.

     

     

     

    관곡지 촬영 후기

    지난 7월 19일 예사회 번개 촬영으로 관곡지에서 연을 촬영한다는 

    미션을 받고 광장동 총무님 댁에서 하룻밤을 유한 채 새벽 4시30분에 일어나 관곡지로 향했다.

    아, 물론 운전은 내가 안하고 우리 최한석지도님께서 모시러 (?) 집 앞까지 오셔서 감사한 마음으로 

    탔다. ( 분명사실임 )

    우리 여어뿐 총무 송진숙님은 새벽부터 일어나 달걀을 삶고, 모닝빵에 무슨 잼이더라 어머니가 손수 해주셨던 잼을 바르고 커피를 타고해서 차 타고 가며 먹을 간식거리를 준비 하였다.

    자다가 눈도 덜떨어진채 비몽사몽 달려간 관곡지....새벽 5시 30분

    아뿔사 !!그런데 비님이 오시는 거였다.

    기상대에선 비온다 소리 없었는 데 어이된 일인가 비도 소슬비도 아니고 팥알만한 굵기로 쏟아지고

    있었으니 차에서 내릴 엄두가 나지 않았다. 

    다행히 광주에서 올라와 함께 하신 권태순 님이 우산을 받춰 주셔서 이 공주(?)는

     차에서 내릴 수 있었다. ^&^

    그렇지만 부지런 한 찍사들 아니 욕심쟁이들은  비가 오거나 말거나 이미 우리보다 먼저 무수히 많이도 와서 진을 치고 있었다. ( 이런 웬수들 토욜일데 잠도 없나 ? )

    거의 10여년만에 만난 권태순 회원님이 친절히 우산을 받춰 주시기에 조그만 디카 하나 달랑들고 간 나는 이렇게 작품 사진(?) 들을 찍을 수가 있었다. 우히히~~스스로 작품 이란다.

    그러나 뭐 갔다 왔다는 증명을 남겨야 하기에 ...

    관곡지에는 참으로 이쁜 연( ?) 들이 많았다. 빨간 연, 분홍 연, 하얀연, 뾰족한 연, 둥그스럼한 연, 벌써 이세상 하직한 연, 아직도 봉오리인 연,  등등

    부지런한 몇몇 회원님들은 이미 사진기를 들고 현장으로 나가셨고 몇몇은 임시로 만들어 놨음직한 천막 밑에서  어디서 부터 어떻게 앵글을 잡아야 되나

    망설였다. 작품도 아닌 연꽃사진을 잔뜩 찍고 와보니 김윤종 회장님이 준비해오신 김밥들을 드시고 계셨다. (솔직히 이 김밥 맛은 영 젬병이었다) 그래도 새벽잠 설치고 나온 회원들을 위하여 손수 사오셨기에 몇개 집어 먹었다. 총무님이 준비하신 어머님이 만들어 주신 쨈맛이 너무 좋았나 보다.

    그리곤 우리 예사회 겉모습만 사진클럽이지 사실은 먹자클럽이란걸 아는 사람은 다 안다.

    오랜만에 나오신 지도 최한석님을 위하여 떡갈비를 드시러 가잔다.

    그런데 난 정말 이땐 몰랐었다. 울 지도님게서 떡갈비를 좋아 하신 다는 걸, 권태순 아찌와 나는 아니 무슨 새벽부터 떡갈비야 ? 칼국수나 두부전문집 그런델 가야지, 맞어 요즘 누가 밖에서 고길 먹어 등등 차도 얻어타고 가는 주제에 지도님의 깊은 뜻을 모른채 훼방만 놓고 있었다.

    어느 칼국수 집에 도착한 시각이 아침8시 30분, 그런데 식사는 오전 9시가 되야 한단다.

    그리곤 바로 근처 순대국 집이같은 데로 들어 갔다. ( 난 순대국 감자탕 이런 것 안먹는다.)겉으론 내색은 못한채 할 수 없이 따라 들어 갔다. 이것저것 보다가 주문한것이 역시 갈비찜 대로 3개 인가를 시켰다.

    속으로 결국 새벽부터 갈비찜을 먹는구나 하고 있었는 데 막상 나와보니 뼈만 앙상한 돼지갈비 찜이었다. 여기까진 그래도 괜찮았다. 맛을보니 왼 한약냄새 ? 아웅~~~이건 정말 아니다.

    그래도 같이 먹는 사람들을 위하여 두어번 살점을 집어 먹었다. 

    내가 앉은 테이블엔 5명이 앉아 있었지만 갈비찜은 반도 더 남았다. 옆 테이블로 원정보내고도 남았다.

    힝 이기모야 ? 그래도 정말 다행인 것이 누릉지와 반찬은 맛이 있었다. 누릉지 두그릇을비워 내고

    또 막걸리 맛이 죽여 주기에 참을 수 있었다.

    이날 첨 뵙는 회원 분들이 많이 나오셨다. 최한석 지도님, 김운섭 고문님, 김윤종 회장님, 전석주 회원내외분, 김팽년회원, 권태순회원, 박순영회원, 송진숙 총무, 첨뵙는 단풍나무님, 미네랄워터님, 그리고 저 ( 죄송합니다, 두분 성함을 미처 알지못했네여 총 14분이 나오셨는 데 한 분은 누구신지 ?  알려주세요) 

    비오는 토요일 신 새벽부터 14명의 회원님들이 모여서 막걸리 마시며 오손도손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음에 감사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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