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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 ‘색, 계’의 실제 모델 띵무춘과 쩡핀루
    문화 광장 2007. 11. 19. 15:58
     

     

    영화 ‘색, 계’의 실제 모델 띵무춘과 쩡핀루

    김명호 | 제36호 | 20071117 입력

     

    1947년 남경 전범재판에서 사형선고를 받는 띵무춘(왼쪽). 오른쪽은 25세 당시의 쩡핀루. [김명호 제공]

    중일전쟁(1937∼45) 기간 중 일본은 상해 지샤훼이로(路) 76번지에 특무기관을 설립했다. 중앙특무위원회 특공총부라는 공식 명칭이 있었지만 흔히들 “76호”라고 불렀다. 띵무춘(丁默邨)이 주임이었고 부주임 리스췬(李士群)과 우스빠오(吳世寶)는 실권자였다.
    재봉과 표구를 겸하던 집에서 태어난 띵무춘은 공산주의청년단(공청)의 전신인 사회주의청년단 단원이었지만 국공합작 직후 국민당에 입당하면서 특무세계에 발을 들여놓았다. 공개된 신분은 ‘민당중학’ 교장이었지만 실제로는 조사과의 행동대원을 지휘해 암살과 테러를 전담했다.
    1934년 군사위원회 조사통계국이 신설될 때 그는 3처장이었다. 그러나 1938년 기구가 개편되면서 1처는 중앙위원회 조사통계국(중통)으로 확대되고 2처는 군사위원회 조사통계국(군통)으로 승격했다. 3처의 기능은 두 곳에 편입되었다. 띵무춘은 미래를 기약할 수 없게 되었다. 폐병 3기였고 심장과 위장이 성치 않았던 그는 홍콩으로 나와 병을 치료하며 사업에 손을 댔지만 본전을 날려버렸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일본의 특무기관이 유혹하기에 좋은 대상이 되어 있었다.
    상해로 돌아와 76호의 주임이 된 띵무춘은 일본군 특무부대로부터 매달 30만원의 운영비와 권총 500정, 실탄 5만 발, 폭약 500㎏을 지원받아 중통과 군통에 대한 본격적인 파괴공작에 나섰다. 중통 중앙총부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띵무춘을 암살하라는 지령을 내렸다.
    중통 상해 지부는 미인계를 썼다. 띵무춘이 교장 시절 아끼던 제자 쩡핀루를 써먹기로 했다. 양우화보(良友畵報
    사교계에 널리 알려진 그를 끌어들이기 위해 쩡의 상해법정대학 동기생이 작전을 지휘했다. 쩡핀루는 많은 사진을 남겼다. 같은 모습의 머리 모양이 하나도 없을 정도로 치장에 신경을 많이 썼고 화려한 것을 좋아했다. 열정과 충동이라는 단어가 잘 어울리는 26세의 철모르는 귀한 집 딸이었다.
    부친은 장쑤(江蘇)성 고등법원 검사관이었고 모친은 일본인이었다. 항공기 조종사인 남편이나 다름없는 약혼자가 있었지만 중통은 그것도 고려할 대상으로 삼지 않았다. 그만큼 흉악한 시대였다.

    띵무춘은 욕실에서 밤을 새우고 욕조 위에 간이침대를 올려놓고 잘 정도로 의심이 많았다. 쩡을 바래다 줄 적에도 방탄차에서 내리지 않았고 약속 장소로 가는 도중 행선지를 바꿔버리는 습관이 있었다. 1939년 12월 21일 띵무춘은 일본특무부대장과의 만찬에 쩡과 동행하자고 했다. 쩡은 화장을 핑계 삼아 시간을 벌었고 그 틈에 중통과 연락했다. 만찬 장소로 가던 도중 “입고 있는 코트가 유행이 지났다. 시베리아 모피점에 들러 한 벌 사야겠다”고 했다. 미리 약속된 장소가 아니었기 때문에 띵무춘은 안심했다. 함께 옷을 고르던 띵무춘이 창밖을 스쳐본 후 황급히 200달러를 꺼내 쩡에게 건네주며 “네가 알아서 골라라” 하고는 밖으로 뛰어나가 방탄차에 올랐다. 죽여야 할 사람의 얼굴도 모르고 긴 모피코트를 입은 젊은 여자와 함께 나오는 중년의 남자를 기다리던 암살자는 띵무춘이 혼자 튀어나오는 바람에 저격 순간을 포착하는 데 실패했다. 차량을 향해 실탄 두 발을 발사하는 데 그쳤다.

    30, 40년대의 상해는 암살과 살인이 난무하는, 단 하루도 조용한 날이 없는 곳이었다. 이날의 총격 사건도 워낙 번화가에서 벌어진 일이었기 때문에 신문에 작게 보도되기는 했지만 흔히 벌어질 수 있는 일이었고 띵무춘도 조용히 수습하려고 했다. 그러나 동료 우스빠오를 독살한 바 있는 부주임 리스췬은 이 사건을 이용해 띵무춘마저 제거하면 76호의 전권을 장악할 수 있었다. 띵무춘의 주변을 항상 감시하던 리스췬은 쩡핀루를 체포해 사살해버렸다. 띵무춘은 76호를 떠났다.
    남경정부의 문화부 차장이었던 후란청은 이 사건을 아주 재미있어 했다. 동거하던 소설가 짱아이링에게 자신의 상상까지 덧붙여 자주 얘기했다. 후란청이 70년대에 절세의 미인이었던 우스빠오의 부인과 일본에서 결혼하자 그 소식을 들은 짱아이링은 후란청과 우스빠오의 부인이 예전부터 연인 사이였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40년 전 들었던 ‘시베리아 모피점 총격사건’을 소재로 ‘색,계’라는 단편소설을 써서 대만의 ‘人間’이라는 잡지에 발표했다. 감정(色)과 이성(戒)이 주제였다.
    2006년 상해영화제에 참석한 리안(李安) 감독은 짱아이링의 소설 중에서 ‘색,계’를 가장 좋아한다고 했다.
    (중앙일보 주말에디션)
     
     

    [Why] ‘색, 계’는 되고 ‘숏버스’는 안되는 이유

     

    시대에 따라 영화등급도 변화 성 표현에 있어 심의 대폭

     

    완화됐지만 심의의 기준과 원칙은 여전히 모호해

     

    오동진 영화평론가
    입력시간 : 2007.11.16 23:59 / 수정시간 : 2007.11.17 13:52

     

    이안 감독의 ‘색, 계’가 개봉 첫 주 30만 가까운 관객을 모으자 여기저기서 반색하는 목소리가 들린다. 비교적 뛰어난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이번 ‘색, 계’의 성공에는 영화 속 ‘리얼 섹스’ 논란을 등에 업은 ‘교묘한 입소문’이 크게 작용했던 점을 부인하기 어렵다. ‘색, 계’에서 주연배우인 양조위와 탕웨이는 실제로 정사를 벌이거나 최소한 그런 것처럼 강하게 묘사된다. 수입사 측이나 이안 감독도 리얼 섹스 논란에 대해 적극적으로 부인을 하고 있지 않다. 모두 세 번의 격렬한 섹스 신 중에서 세 번째 장면쯤에는 양조위의 성기가 실제 삽입됐음을 보여주거나 적어도 그렇게 느끼게 만든다.

    하지만 ‘색, 계’의 섹스 장면을 보면서 모두가 다 박수를 치는 것만은 아니다. 형평성 논란이다. ‘색, 계’는 이래서 되는데 다른 영화는 이래서 안 된다고 하는 것이 문제라는 것이다.

    그 ‘툴툴대는’ 사람들 가운데 대표적인 사람이 바로 영화사 스폰지의 조성규 대표(39)다. 조 대표는 ‘색, 계’를 보고 있으면 지난해 수입한 영화 ‘숏버스’가 생각나 마음이 부글거린다. 존 카메론 미첼 감독이 만든 이 영화는 영상물등급위원회로부터 제한상영가를 받아 수입한 지 1년이 넘었지만 국내 극장에서 상영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심의 당시 이 영화는 ‘극도의 외설성’ 등을 이유로 상영을 금지당했다.
    “‘숏버스’는 모자이크 처리까지 했음에도 불구하고 상영하면 안 된다고 한다. ‘색,계’ 역시 표현 수위가 상당하지만 일반 극장 상영이 가능하다. 볼 수 있는 섹스 장면과 볼 수 없는 섹스 장면에 대한 기준이 무엇인지 알고 싶다.”

    • ▲ 영화 '색, 계'의 한 장면.


    그는 현재 이 영화의 제한상영가 등급 판정에 대해 행정 소송을 벌이고 있다.
    여기서 잠깐, 국내의 영화 심의는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알아볼 필요가 있다. 1996년 헌법재판소는 국내에서 상영되는 모든 영상물에 관한 한 사전에 이루어지는 삭제 행위는 창작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으로 판결, 사실상 검열을 철폐시켰다. 거꾸로 얘기하면 1996년 전까지 영등위(당시 공연윤리위원회)는 문제가 있다고 판단되는 장면의 경우 자의적으로 ‘가위질’을 할 수 있었다는 얘기다.

    그러나 사전검열이 없어졌다고 해서 사전심의가 없어진 것은 아니다. 모든 영상물은 상영이나 공개 전에 심의를 받아야 하는데 그에 따라 그것을 볼 수 있는 연령 기준을 만든 것이다. 1996년 이후 영화진흥법 시행령은 몇 차례 수정되는 과정을 거쳐 현재 연령별 심의기준을 다섯 개로 분류하고 있다. ‘전체관람가-12세 이상 관람가-15세 이상 관람가-청소년 관람불가-제한상영가’가 바로 그것이다. 이러한 연령별 등급 기준은 다른 나라에서도 비슷한 형태로 도입하고 있는 제도로, 예컨대 미국의 경우 ‘G(General·전체관람가)-PG(Parental guidance suggested·부모동반 전체관람가)-PG13(Parental strongly cautioned·13세 미만 부모동반가)-R(Restricted·17세 미만 부모동반가)-NC17(No Children under 17 admitted·17세 미만 관람불가)’ 등으로 돼있다.
    국내 심의등급에 있어 문제는 영화 ‘숏버스’가 받은 ‘제한상영가’다. 제한상영 등급을 받은 영화의 경우 법으로 지정된 제한상영관에서만 상영하도록 돼있다는 점이다. 그런데 정작 국내에는 이 제한상영관이 없다. 따라서 제한상영 등급을 받게 되면 사실상 상영이 금지되는 꼴이 되고 만다. 때문에 영화사로서는 이 제한상영가를 받지 않기 위해 스스로 ‘가위질’, 곧 자기검열을 할 수밖에 없다. 사실상 사전심의가 아니라 사전검열이 이루어지게 되는 셈이다.
    성적 표현 수위에 관한 한 영상물등급위원회는 지금까지 대체로 배우들이 진짜 섹스를 하면 절대 안 된다는 것이 원칙이었다. ‘숏버스’처럼 리얼 섹스, 혹은 언시뮬레이티드 섹스(Unsimulated sex)를 보여주는 영화들 대부분이 상영불가를 받았거나 언감생심 일반상영은 꿈도 꾸지 못하고 영화제만 빙빙 도는 건 그런 까닭이다.
    세계적 감독인 영국 마이클 윈터바텀의 ‘나인 송스’가 대표적이다. 여성의 성기를 정면으로 보여주는 것은 물론, 섹스 도중 남성의 사정 장면까지 노출시킨 이 영화는 ‘숏버스’처럼 부산국제영화제 등을 통해 영화제용 작품으로 소개됐을 뿐이다. 일부 영화팬들 사이에서는 이미 ‘전설’이 됐다.

    프랑스 카트린 브레야 감독의 ‘로망스’는 모자이크는 기본이고 거의 난도질 상태로 극장에 나왔으며 같은 감독의 작품인 ‘육체의 해부’는 서울여성영화제를 통해 소개됐을 뿐, 극장 상영은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파트리스 셰로 감독의 ‘정사’ 역시 리얼 섹스 장면이 삭제된 채 상영돼 ‘맹탕’ 영화가 돼버렸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영화 ‘색, 계’가 일반 극장에서, 그것도 완전 무삭제판으로 상영될 수 있게 된 것은 성 표현에 있어서의 영화심의가 대폭 완화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색, 계’ 이후 상당수의 많은 영화들이 심의의 장벽을 넘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외설과 예술의 경계, 그 기준을 놓고 벌어지는 국가기관과 민간 영화업자들 사이의 논쟁, 논란은 우리 사회의 성 의식과 정치철학이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가를 보여주는 가늠자 역할을 하기도 하다. 영화인들은 심의의 기준과 원칙이 중구난방이라고 비판하지만 성적 표현의 수위는 상당 부분 그때그때의 사회적 통념과 개방 정도에 따라 영향을 받게 돼있는 것이 사실이다.
    최근 재개봉된 ‘더티 댄싱’이 바로 그 점을 정확하게 보여주는 사례다. 1988년 개봉 당시 미성년자 관람불가였던 이 영화는 이번 재개봉 과정에서는 15세이상 관람가를 받았다. 한편에서 보면 영화심의가 무원칙하게 이루어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또 한편으로 보면 20년의 세월 동안 우리 사회가 얼마만큼 개방되고 발전했는지를 보여준다.

    얼마만큼 개방되고 발전했는지를 보여준다.


    (조선일보 11.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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