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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I발 구조조정, ‘숙련 사다리’ 끊긴다…“신입 뽑아도 시킬 일 없어”
    지금 이곳에선 2026. 4. 6. 11:12

    AI발 구조조정, ‘숙련 사다리’ 끊긴다…“신입 뽑아도 시킬 일 없어”

    남지현기자

    수정 2026-04-06 09:24

    기사를 읽어드립니다

    11:06

    [AI시대, 위협받는 시민권]
    ①잠식당하는 일할 권리
    생성형 AI가 신입 직원 업무 대체
    보고서 검토·문서 등 시킬 일 없어
    현업부서 “차라리 과장급 채용을”
    노동연 “58%, 10년내 실직우려 답변”

    현대차그룹의 휴머노이드 로봇 ‘아틀라스’가 자동차 부품을 옮기는 시연을 하고 있다. 현대자동차그룹 뉴스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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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년차 소프트웨어 개발자 ㄱ씨는 최근 국내 한 정보통신(IT) 대기업으로 이직했다. 그는 “첫 직장을 구하던 2023년만 해도 코딩을 얼마나 잘 짜는지를 중요하게 봤는데, 최근에는 인공지능(AI)을 활용해 직접 코딩을 안 해도 되는 사람을 우대한다”며 확 달라진 면접 분위기를 전했다. 사내 직원들 사이에선 ‘인공지능을 써서 생산성을 끌어올리지 못하면 인사 고과에서 나쁜 평가를 받는다’는 말까지 나온다. ㄱ씨도 업무의 95% 정도에 인공지능을 쓰고 있다. 2022년만 해도 신규 채용 규모(신입+경력)가 전 계열사를 통틀어 600명에 이르렀는데 2024년엔 259명으로 대폭 줄었다. 이런 배경엔 인공지능이 적잖은 영향을 미쳤다고 그는 확신한다. 30대 초반인 ㄱ씨는 팀원 10명 중 막내다. 이 회사에서만 벌어지고 있는 일은 아니다. 소프트웨어정책연구소에 따르면, 경력 3년 미만 주니어 개발자가 전체 개발자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22년 26.9%에서 2024년 20.7%로 줄었다. 유일하게 인력 비중이 줄어든 연차였다.

    2022년 말 챗지피티 출시를 기점으로 일상을 파고든 생성형 인공지능이 ‘조용한 구조조정’을 일으키고 있다. 가뜩이나 기업들의 경력직 선호 현상이 굳어지는 가운데 신규 채용을 줄이는 주된 요인 중 하나로 인공지능이 지목받고 있는 것이다. 인공지능발 고용불안은 청년층을 비롯한 노동시장 취약계층부터 가시화되고 있다.

    5일 한겨레가 확보한 한국노동연구원의 ‘에이아이와 노동의 공존’ 보고서를 보면, 지난해 11월 500명의 사무·관리직 노동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전체 응답자의 58%가 향후 10년 내 인공지능으로 인한 실직을 우려했다. 특히 대리급 이하 실무자(36.4%)는 부장급 이상 관리자(25.5%)보다 10%포인트 이상 높은 불안감을 보였다. 연령별로도 20대(35.2%)가 50대(27.3%)보다 우려가 컸다. 아직 노동시장에 진입하지 못했거나 저연차인 청년들의 체감도는 확실히 달랐다.

    대학 졸업을 앞둔 취업준비생 ㄴ(23·경제학 전공)씨는 지난해 패션·화장품을 제조하는 스타트업에서 인턴(조사보조원)으로 일했다. 그는 본격적인 취업도 전에 인공지능의 위력을 실감했다. ㄴ씨는 “대표가 시장조사를 맡겨 이틀 내내 공을 들여 엑셀로 정리를 해 갔는데 그가 유료로 구독하는 생성형 인공지능이 5분 만에 정리한 자료보다 부실했다”며 “내가 열심히 공부하고 검색해서 찾아본 것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좋은 결과가 나왔다”고 했다. 대표는 ㄴ씨보다 인공지능을 더 신뢰하는 것처럼 보였다. 이후로 ㄴ씨는 고민에 빠졌다. “인공지능에 대체될 위험이 덜한 직업을 가져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게 뭔지 잘 모르겠다”는 것이다.

     

    신입사원 업무 삼킨 AI…초안 작성·요약·리서치 등

    인공지능은 실제로 기존에 신입 직원들이 해오던 일의 상당 부분을 대신 하고 있다. 한국노동연구원 조사에서 응답자의 30.2%는 과거 신입 직원들이 경력의 기초를 다지던 ‘핵심 훈련 영역’(보고서 초안 작성, 요약, 리서치 등)이 인공지능으로 대체되고 있다고 했다. “인공지능과 로봇 도입이 초심자가 전문가를 관찰하고 보조하며 배우는 기회를 박탈해, ‘숙련 형성의 사다리’를 붕괴시킨다”는 분석이 따랐다. 응답자들이 답한 인공지능이 빈번하게 사용되는 용도(복수응답) 역시 ‘문서 작성 및 리포팅’(68.8%), ‘지식 검색’(61.8%), ‘데이터 분석’(46%), ‘보고서 검토’(37%), ‘번역’(36.6%), ‘회의 요약’(32.8%) 등이었다. 같은 조사에서 전체의 23.4%는 소속 부서 채용이 줄었거나 줄일 계획이 있다고 답했다.

    이와 관련해, 한 대기업 지주사 인사팀장 ㄷ씨는 “우리뿐 아니라 다른 그룹에서도 리서치 업무 등 저연차 직원이 해오던 업무를 이제는 인공지능이 대신 하고 있다”며 “신입을 뽑아도 시킬 일이 없으니 현업에서도 차라리 과장급을 뽑아달라는 요구가 더 많다”고 했다. 이어 그는 “계열사 중에서 영업 쪽을 빼면 신입을 뽑았다는 곳을 찾기 어렵다”며 “앞으로 신입은 조직을 유지할 정도의 최소 규모만 채용하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실제로 한국은행이 최근 3년간(2022년 7월~2025년 7월) 연령대별 고용 증감을 분석한 결과를 보면, 청년층 일자리는 21만1천개 감소했고 이 중 20만8천개가 인공지능 노출도 상위 50% 업종에서 발생했다. 구체적으로 챗지피티 출시 이후 컴퓨터 프로그래밍, 시스템 통합 및 관리업, 출판업, 전문 서비스업, 정보 서비스업의 청년 고용이 감소 추세로 전환됐다. 반면 같은 기간 50대 일자리는 20만9천개가 늘었는데 14만6천개가 인공지능 노출이 높은 업종에서 늘었다.

    한국은행은 “청년층이 인공지능으로 대체하기 쉬운 정형화된 업무를 주로 담당하고 있는 반면, 경력이 쌓인 시니어는 업무 맥락 이해, 조직 관리 등 현재로선 인공지능이 대체하기 어려운 지식과 기술에 강점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그나마 신입을 뽑더라도 기업의 눈높이가 높아진 탓에 청년층은 이중고를 겪고 있다. ㄹ(24·중어중문학 전공)씨는 최근 한 대기업의 인턴 채용 공고(전략실 업무보조)를 보다가 깜짝 놀랐다. 국제중국어능력표준화고시(HSK) 6급이라는 요건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국가정보원 어학 특기자 채용 기준보다 높은 수준”이라며 지원자에 대한 요구 수준이 높아진 것이라고 했다.

    개발자로 1년간 일한 뒤 새 일자리를 찾는 중인 ㅁ(28)씨도 “2024년만 해도 서류 합격률이 20% 정도는 됐는데, 최근 5개월간 20곳 정도에 지원서를 보냈는데 단 한곳에서도 연락이 없다”며 “업무 역량을 키우기 위해 인공지능 관련 교육 과정에 등록했다”고 했다. 윤승규 취업 컨설턴트는 “신입 면접에서 경력 지원자용 질문이 나오는 추세”라며 “기업들이 단순 업무를 넘어 인공지능을 활용한 문제 해결 경험이나 능력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생산라인에 들어온 AI, 하도급 직원 200여명 공장 떠나

    이런 상황이 청년층에 국한된 문제는 아니다. 주요 기업은 이미 2~3년 전부터 생성형 인공지능 적용 업무를 발굴하고 자동화를 추진하기 위한 전담 부서를 운영해왔다. 반도체 핵심 부품인 적층세라믹콘덴서(MLCC, 전자제품 안에서 전기 흐름을 안정시키는 장치)를 생산하는 한 업체는 2019년부터 기존 설비에 인공지능을 적용해 공정 자동화를 추진해왔다. 기존에 하도급업체 직원 수백명이 달라붙어 현미경으로 일일이 제품 외관을 검사하던 공정에 인공지능을 적용한 것이다. 양품과 불량 제품의 사진 데이터를 인공지능에 학습시키는 동시에 부족한 데이터도 보완해 불량 검출률을 높였다.

    이처럼 인공지능이 생산라인에 도입되면서 최근 수년간 이 일을 하던 하도급 직원 200여명이 공장을 떠났다. 공정 자동화에 관여한 이 회사 간부 ㅂ씨는 “인공지능을 적용하면서 외관 선별기를 관리하는 사람이 5대당 1명에서 15대당 1명 정도로 줄었다”며 “기판 공정 마지막에 사람이 볼 수밖에 없던 공정에서도 인공지능으로 검출력을 높여서 사람이 보는 횟수를 줄여 인력을 크게 줄였다”고 설명했다. 관리자 직급인 ㅂ씨 스스로도 기술 발전 속도에 겁이 난다고 했다. 그는 “향후 5년이면 에이전틱 인공지능(스스로 목표를 세우고 실행하는 자율형 AI)과 피지컬 인공지능이 맞물리면서 제조 현장에 필요한 인력이 지금의 절반 가까이로 줄어들 수도 있지 않겠느냐”고 했다.

    노동법 울타리 바깥의 프리랜서들도 인공지능발 타격을 그대로 받고 있다. 8년차 프리랜서 영상 편집자 ㅅ(34)씨는 “인공지능 등장 전에는 2~3주 걸려 1분짜리 영상을 만들면 건당 200만~300만원씩 받았다”며 “20년차 베테랑 편집자들이 제작해온 작업물을 경력 1~2년차가 인공지능을 써서 그럴듯하게 만들어내니까 작업 단가가 뚝뚝 떨어지고 있다”고 했다.

    노동시장 불평등 구조 더 심화할 우려

    전문가들은 인공지능이 가져올 파장이 기존 노동시장의 불평등 구조를 더 심화할 위험성에 대해 경고한다. 한국노동연구원 조사에서도 소득이 낮을수록, 기업 규모가 작을수록 인공지능으로 인한 실직 우려가 더 크게 나타났다. 연구원은 “중소기업 노동자들은 기업의 경쟁력 하락에 따른 폐업 등 단기적 실직 위험뿐 아니라 인공지능 활용 역량을 체득할 기회조차 얻지 못해 장기적으로 노동시장에서 도태될 수 있다는 이중의 불안감을 대기업 종사자보다 높게 체감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김종진 일하는시민연구소 소장도 “인공지능에 의한 자동화는 전체 직무가 아니라 일부 업무 단위에서 이뤄지고 있다”며 “그러다 보니 근로기준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거나 노동조합이 없는 프리랜서나 하청 노동자는 가장 먼저 대체될 위험에 처하게 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근본적으로 기업이 인공지능 활용을 늘리며 신입 채용문을 걸어 잠그는 상황이 향후 인적 자본의 손실로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조성재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개별 기업 단위에서는 청년을 안 뽑고 기존 인력에게 인공지능을 쓰도록 해 생산성을 높이는 게 합리적 선택이겠지만, 국가적으로는 큰 인적 자본의 손실”이라고 했다. 이른바 ‘숙련 형성의 사다리’가 붕괴하면서 장기적으로 조직에서 허리 역할을 할 인력 양성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 2월25일 대통령 직속 국가인공지능(AI)전략위원회는 ‘인공지능 3대 강국’ 도약의 실행 계획을 담은 ‘대한민국 인공지능 행동계획’을 의결했다. 이재명 정부는 “굴러오는 거대한 수레를 피할 수는 없다”는 판단 아래 ‘인공지능 고속도로’ 구축에 속도를 내고 있다. 하지만 새로운 기술의 질주 속에 시민은 안전벨트 하나 없이 변화에 내몰린다. 누군가는 신산업의 흐름에 무사히 올라탔지만, 그보다 훨씬 많은 이들은 수레바퀴 아래에 놓인 삶이 위태롭게 흔들리고 있다. 인공지능 기술의 확산으로 일자리와 창작 생태계, 교육 현장의 균열은 이미 시작됐지만, 이를 떠받칠 제도와 안전망은 좀처럼 속도를 맞추지 못한다. 한겨레는 4회에 걸쳐 인공지능 시대가 불러온 변화와 그 이면의 그늘을 짚고, 시민의 삶을 지켜낼 제도적 대안과 국가의 역할을 묻는다.

    남지현 기자 southj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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