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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계 최대 산유국’ 미국, 베네수엘라-이란 차례로 친 이유
    정치,외교 2026. 4. 1. 16:35

    세계 최대 산유국’ 미국, 베네수엘라-이란 차례로 친 이유

    박현기자

    수정 2026-04-01 15:31

    트럼프의 야망, 제국의 본색
    ⑩ ‘에너지 지배’ 전략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워싱턴/AP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해 1월20일 취임 직후 ‘에너지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세계 최대 석유·천연가스 생산국이자 에너지 순수출국인 미국이 느닷없이 비상사태를 선포하자 국제사회는 어리둥절해했다. 미국 역사에서 에너지를 이유로 한 비상사태는 처음이었다. 트럼프는 이 조처가 송유관·정유시설·광산 등 화석연료 인프라 개발을 앞당기는 촉매가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같은 날 그는 석유·가스 시추를 신속히 허용하고 각종 규제를 대폭 완화하기 위한 ‘미국 에너지 잠재력 해방’ 행정명령에 서명했고, 파리기후변화협정 탈퇴도 지시했다.

    트럼프는 대선 유세 기간 내내 “드릴(시추하라), 베이비, 드릴”을 외쳤는데, 그 구호는 빈말이 아니었다. 올해 2월24일 백악관이 공개한 1년 평가 자료를 보면, 미국의 에너지 정책 방향이 전임 바이든 행정부와 정반대로 돌아섰음이 분명하다. ‘트럼프 대통령 아래, 미국의 에너지 지배력이 돌아왔다’는 제목의 이 문서는 석유 시추 허가 55% 급증, ‘아름답고 깨끗한 석탄’의 부흥, 국제 규제협정 탈퇴, 원자력 부흥, 전기차 의무화 중단을 성과로 나열했다. 온실가스 배출 규제의 법적 토대인 ‘온실가스 위해성 판정’ 폐기 역시 치적으로 내세웠다. 재생에너지 중심 에너지 전환 정책을 뒤집고 다시 화석연료 중심 체제로 회귀한 셈이다.

    ‘재생에너지 전환’ 흔들겠다는 야심

    미국은 19세기 중반부터 2차 세계대전까지 세계 최대 산유국 지위를 누렸다. 20세기 초·중반 전세계 산유량의 3분의 2를 차지했으며, 2차 대전 동안 연합군이 소비한 석유 70억배럴 가운데 약 60억배럴, 즉 85%를 공급했다. 탱크·군함·전투기 등 석유 기반 신무기가 승패를 갈랐던 두 차례 세계대전에서 산유국 미국의 영향력은 막강했다. 그러나 자동차 대중화로 석유 소비가 폭증하면서 미국은 1948년부터 원유 수입국으로 돌아섰다. 특히 1973년 4차 중동전쟁이었던 욤 키푸르 전쟁 때 아랍 산유국의 금수 조처로 유가가 4배 이상 치솟자, 중동산 원유는 에너지 안보를 넘어 미국 대외정책 전체를 제약하는 족쇄가 됐다.

    이 구도는 2010년대 ‘셰일 혁명’으로 뒤집혔다. 미국이 수압 파쇄 기법으로 셰일층에서 막대한 양의 원유와 가스를 뽑아내면서 에너지 지형이 바뀐 것이다. 미국은 2018년 사우디아라비아와 러시아를 제치고 세계 최대 산유국이 됐다. 지난해 기준으로 미국은 하루 약 1341만배럴을 생산했고, 사우디아라비아는 947만배럴, 러시아는 913만배럴 수준이었다. 이런 에너지 부국이 굳이 에너지 비상사태까지 선포한 배경은 무엇일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해 1월20일 워싱턴 캐피털원 아레나에서 열린 취임 퍼레이드 실내 행사에서 파리기후협정을 탈퇴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한 뒤 이를 들어 보이고 있다. 워싱턴/AFP 연합뉴스

     

    트럼프 행정부 에너지 정책의 핵심 키워드는 ‘에너지 지배’다. 이는 에너지 자립을 넘어, 에너지를 국가안보와 글로벌 영향력 확장의 핵심 도구로 삼겠다는 전략이다. 이 구상의 설계자 중 한명으로 알려진 다이애나 퍼치트곳로스(Diana Furchtgott-Roth) 헤리티지재단 에너지·기후·환경센터 전 국장은 “이 구상은 단순한 경제 정책이 아니라 전략적 독트린”이라며 네가지 목표를 제시했다. 미국 내 화석연료와 원자력을 활용한 에너지 자립, 국제 에너지 가격에 대한 영향력 행사, 미국과 동맹국들에 저렴하고 안정적인 에너지 제공, 중국의 그린에너지 공급망에 대한 의존도 축소가 그것이다. 지난해 2월 출범한 대통령 직속 ‘국가에너지지배력위원회’(NEDC)는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을 다시 ‘에너지 지배국’으로 돌려놓겠다고 약속한다”고 밝혔다.

    20세기 초·중반 누렸던 에너지 초강대국의 지위를 21세기형으로 복원하겠다는 선언이다.

    이 전략은 화석연료에서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이라는 서구의 정책 기조 자체를 흔들겠다는 야심을 내포한다. 퍼치트곳로스는 “탄소중립 목표를 거부함으로써 미국은 새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며 “에너지(화석연료) 친화적인 정책 아래 미국의 경제 성장이 가속화함에 따라 다른 국가들은 자국의 정책을 재고해야 할 것이며 그렇지 않으면 경제 침체 위험에 직면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1980년대 레이건 행정부의 대규모 감세를 선례로 든다. 1986년 미국의 최고세율 인하 이후 1988년 한해 동안 영국·캐나다·일본·뉴질랜드가 경쟁력 유지를 위해 잇따라 세율을 크게 낮췄다는 것이다. 에너지 정책에서도 주요국이 미국을 따를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희토류 대 화석연료, 미·중의 자원 대결

    마코 루비오 미국 국무장관은 올해 2월 뮌헨안보회의에서 의미심장한 발언을 했다. “‘기후 컬트’(기후변화 광신도)를 달래기 위해 우리는 국민을 가난하게 만드는 에너지 정책을 스스로 강요해 왔다. 그사이 경쟁국들은 석유, 석탄, 천연가스, 그 밖의 모든 자원을 착취해 경제를 돌릴 뿐 아니라 우리를 압박하는 지렛대로 활용하고 있다.” 지난해 중국이 미국의 고율 관세에 맞서 희토류 수출통제 카드를 꺼내 든 일을 겨냥한 말로 읽힌다. 희토류는 전자제품·반도체·자동차는 물론 미국의 첨단 무기에도 필수적인 원자재다. 미국은 중국의 수출통제로 자국 제조업체들이 생산 차질을 겪으면서 희토류 무기화의 위력을 실감한 바 있다. 러시아가 유럽의 러시아산 원유·가스 의존도를 지렛대로 삼아 유럽을 압박해온 행태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에너지 지배 전략 뒤에는 중·러와의 강대국 경쟁, 특히 중국 견제 구도가 짙게 깔려 있다. 베네수엘라 급습과 이란 침공은 이를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베네수엘라는 세계 최대 원유 매장량을 가진 국가로, 중국의 주요 원유 공급원 가운데 하나다. 이란 역시 막대한 원유·천연가스 매장량을 보유한 동시에 세계 원유·천연가스 운송량의 20%가 지나가는 호르무즈 해협을 통제하고 있는데, 이 해협은 중국의 에너지 생명선이기도 하다. 미국이 두 나라에 친미 정권을 세우면 중국의 에너지 수입 루트를 직접 압박할 수 있게 된다. 미-중 인공지능(AI) 경쟁도 빼놓을 수 없다. 인공지능 개발·운영에 필요한 데이터센터와 반도체 생산에는 막대한 전력이 든다. 트럼프는 이 수요를 화석연료 기반 발전으로 충당하겠다는 계산이다.

    미국 싱크탱크 애틀랜틱 카운슬의 에너지 전문가 사라 바크슈리는 “에너지 지배 전략은 에너지 자산, 전략적 요충지, 그리고 세계 에너지 흐름에 대한 통제까지 포함하는 개념으로 보인다”며 “중국이 광물 공급망에서 우위를 차지하고 있는 반면에 미국의 비교우위는 에너지 생산력, 해양 안보, 에너지 흐름 통제, 그리고 에너지 거래를 지배하는 국제 금융 시스템에 있다”고 말한다. 중국의 광물 지렛대에 미국이 화석연료 지렛대로 맞대응하는 형국이라는 진단이다.

    ‘자원의 저주’ 그리고 교란의 길

    “우리는 그 해협을 사용하지 않는다. 필요도 없다. 유럽은 필요하다. 한국, 일본, 중국, 그리고 많은 다른 나라들도 필요로 한다. 그러니 그들이 그 문제에 조금 더 관여해야 할 것이다.” 트럼프는 3월20일 이란의 호르무즈 해협 봉쇄에 대응해 다른 나라들의 동참을 압박하며 이렇게 말했다. 석유·가스 자립국이 된 미국의 힘과 위험성을 동시에 보여주는 발언이다. 해협이 봉쇄돼도 미국은 별문제가 없다는 인식을 드러내는 동시에, 해협 봉쇄라는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정권 교체 같은 공격적 목표를 추구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과거 미국이 원유 수입국일 때는 해상 교역로 안정을 놓고 다른 수입국들과 이해를 같이했지만, 이제는 교역로 안정보다 오랜 숙적 이란의 정권 교체를 우선순위에 둘 유인이 생긴 것이다. 이란 침공은 역대 어느 미국 대통령도 감히 시도하지 못했던 일이다.

    그러나 그런 야망을 실행하기에는 현실의 제약이 너무나 크다. 우선 미국 내 유가 급등은 트럼프의 유가 인하 공약에도 어긋날뿐더러 오는 11월 중간선거에도 커다란 악재다. 미국 내 유가도 국제 가격에 연동되기 때문에 생산 확대만으로 국내 가격을 통제하는 데 한계가 있다. 이란의 저항도 만만치 않다. 호르무즈 해협 봉쇄를 풀거나 핵심 산유 기지인 하르그섬을 장악하려면 지상군 투입이 불가피하다. 상당한 인명 피해와 장기 개입을 각오해야 한다는 얘기다.

    마이클 로스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UCLA) 교수와 에릭 부턴 조지타운대 교수는 포린어페어스 기고에서 석유·가스는 관대한 복지나 대외원조를 뒷받침하는 축복이 될 수 있지만 동시에 저주가 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이들은 “대체로 산유국은 더 권위주의적인 정권, 더 호전적인 외교정책, 더 높은 수준의 부패를 보이는 경향이 있다”며 “이런 흐름이 이제 미국에도 점차 적용되고 있다”고 말한다. 문제적 산유국은 내부 지향적인 ‘고립형’과, 국제 규범을 무시하고 해외 민병대를 지원하거나 이웃 나라를 침공하는 ‘교란형’으로 나뉘는데, 미국은 지금 러시아 같은 교란형의 길을 걷고 있다는 것이다. 트럼프의 에너지 지배 전략은 미국의 패권을 유지·강화하기보다는, 과잉 군사개입을 초래해 미국을 ‘자원의 저주’ 함정에 빠져들게 할 위험을 키우고 있다.

    박현 논설위원 hyun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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