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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허가된 착취①] 다치고, 버려지고, 죽는다...고용허가제에 갇힌 이주노동자
    지금 이곳에선 2025. 10. 14. 08:45

    노동/인권

    [허가된 착취①] 다치고, 버려지고, 죽는다...고용허가제에 갇힌 이주노동자

    2025년 10월 13일 13시 34분

    국내 이주노동자 수 150만 명 시대가 눈앞에 있다. 지난해 기준, 미등록 이주노동자를 포함해 국내 상주 이주노동자 수는 141만 명이 넘는다. 이들은 제조업, 건설업, 농축산업 등 내국인이 기피하는 산업 현장에서 한국경제를 떠받치는 버팀목 역할을 한다. 하지만 우리는 그들의 존재를 충분히 인정하고 있을까.

    이주노동자의 산업재해 사망률은 내국인의 3배 이상. 이주노동자는 내국인보다 더 많이 다치고, 더 많이 죽는다. 왜 그럴까. 전문가들은 그 대표적 원인으로 ‘고용허가제’를 지적한다. 2004년 도입된 고용허가제는 ‘사업주 동의 없이는 일터를 바꿀 수 없다’는 제약 조건 때문에 ‘현대판 노예제’라는 비판을 받는 제도다.

    제도가 만든 족쇄 속에서 오늘도 이주노동자들은 위험한 일터에 내몰린다. 앞서 뉴스타파는 다큐멘터리 <허가된 착취, 고용허가제의 굴레>를 통해 대표적인 이주노동자 정책인 ‘고용허가제’의 문제점을 집중 조명했다. 다큐멘터리에 모두 담지 못한 이주노동자들의 목소리와 그 대안을 두 차례에 나눠 심층 보도한다. <편집자 주>

     

    ① 다치고, 버려지고, 죽는다…고용허가제에 갇힌 이주노동자

    ② '시한폭탄' 달린 집… 이주노동자가 사는 비닐하우스(가제)

    “바이 바이, 잘못했어? ‘잘못했어’ 해 봐.”(웃음)

    지난 2월, 전남 나주의 한 벽돌 공장. 한 남성이 벽돌 더미에 비닐로 꽁꽁 묶여있다. 지게차가 벽돌을 들어 올리자 그대로 남성도 딸려 올라간다. 그의 주변에선 깔깔거리는 웃음소리가 들린다. 주변의 조롱 속에서 저항 한 번 하지 않은 채 이리저리 끌려다니는 남성. 그는 지난해 12월 고용허가제로 입국한 서른 한 살의 스리랑카 이주노동자다.

    지난 2월, 전남 나주의 벽돌 공장에서 스리랑카 이주노동자가 지게차에 벽돌과 함께 비닐로 묶인 채 이리저리 끌려다니는 인권유린을 당했다.

    해당 영상은 사건 발생 5개월이 지난 7월에야 세상에 알려졌다. 피해자는 지난 4월, 회사 관리자에게 영상을 보여주며 도움을 요청했지만 묵살당했다. 피해자는 자신을 조롱한 동료들과 석 달을 더 일했다. 트라우마는 갈수록 심해졌다. 결국 외부 인권 단체에 도움을 요청했다.

    영상의 파장은 컸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7월 24일, 직접 영상을 언급하며 “사회적 약자에 대한 야만적 인권침해를 철저히 엄단하겠다”고 밝혔다. 경찰과 고용노동부의 조사도 진행됐다. 조사 결과, 해당 공장에선 4년 전에도 다른 이주노동자를 상대로 유사한 괴롭힘 사건이 있었다는 진술이 나왔다. 직원 21명을 대상으로 약 2,900만 원의 임금을 체불한 사실도 밝혀졌다.

    해당 공장의 관계자는 “지게차 운전자가 피해자에게 미안해하고 반성하고 있다”면서도 “개인이 한 일인데 회사 전체가 욕먹게 된 상황은 억울하다”고 말했다. 회사 측이 이주노동자의 도움 요청을 묵살한 적이 있는지, 임금체불의 이유는 무엇인지 묻는 질문에는 ‘노코멘트’ 라고 답했다.

    ‘지게차 학대’ 피해자가 일터를 떠나지 못한 이유

    자신의 피해 영상을 세상에 알린 스리랑카 이주노동자의 바람은 하나였다. 그저 일터를 바꾸고 싶다는 것.

    피해 노동자는 지난 7월 24일, 기자들과의 인터뷰 자리에서 이렇게 말했다. “마음이 너무 다쳤어요. 스트레스 너무 받았어요. 다른 회사에서 일하고 싶어요.” 그의 바람은 피해 영상이 공개된 후인 지난 9월 1일에야 이뤄졌다.

    스리랑카 이주노동자가 끔찍한 인권유린을 당하면서도 일터를 바꿀 수 없었던 이유는 ‘고용허가제’에 포함된 ‘사업장 변경 제한’이라는 규정 때문이다. 여기에 발이 묶인 고용허가제 이주노동자는 올해 8월 기준, 34만 명이다. 왜 이들은 사업장을 마음대로 옮길 수 없는 걸까.

    '지게차 학대' 사건이 발생했던 전남 나주의 벽돌공장.

    ‘일터 이동의 자유’를 박탈한 고용허가제

    먼저 고용허가제가 어떤 제도인지부터 자세히 살펴보자.

    고용허가제는 중소기업과 농어촌 등의 인력난을 해결하기 위해 정부가 2004년에 도입한 대표적인 외국 인력 제도다. 고용노동부가 운영 주체다. 고용노동부가 동남아시아 등의 17개 국가와 양해각서(MOU)를 맺고, 산하 기관인 한국산업인력공단이 만 18세 이상 39세 이하의 청년 외국인을 선발한다.

    한국행을 원하는 외국인은 한국어능력시험과 건강검진 등의 선발 과정을 통과해야 한다. 합격자는 구직자 명부에 이름을 올린다. 고용노동부는 사전에 외국인 '고용 허가'를 받은 국내 사업주에게 외국인 구직자를 알선한다. 이런 과정으로 사업주와 근로계약이 확정된 노동자가 비전문취업(E-9) 비자를 받아 한국에 들어온다.

    '비전문 인력'이라 불리는 이들이 배치되는 일터는 내국인을 채용하지 못한 300인 미만 제조업체, 농어촌, 건설현장 등이다. 이른바 ‘3D 업종’이라 불리는 곳이다. 2023년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E-9 이주노동자 중 70% 이상이 30인 미만의 영세 사업장에서 일한다.

    고용허가제로 들어온 이주노동자는 주로 내국인이 기피하는 제조업, 농어촌 등에서 일한다. 이들은 특별한 사유 없이는 고용노동부가 최초 배치한 사업장을 옮길 수 없다.

    고용허가제 이전에는 1994년부터 운영된 ‘외국인 산업연수생 제도’가 있었다. 산업연수생 제도는 중소기업 등이 외국에서 이주노동자를 연수생 신분으로 데려와 일을 시키면서 근로기준법은 적용하지 않은 편법적 형태였다. 이주노동자 입국 과정에 정부가 아닌 민간 송출업체가 개입하면서, 임금과 노동착취가 빈발했다. 여기에 대안으로 나온 제도가 고용노동부가 운영하는 ‘고용허가제’였다.

    ‘강제 노동’ 비판 속 21년 유지된 고용허가제

    고용허가제 역시 21년 세월을 거치며 ‘현대판 노예제’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고용허가제로 입국한 노동자들은 내국인과 같이 근로기준법을 적용받지만, 나머지 권리는 엄격하게 제한당하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게 ‘일터를 이동할 권리’다.

    외국인고용법에 따르면, 고용허가제로 들어온 이주노동자는 정해진 기간, 정해진 일터에서만 일해야 한다. 근무 기간은 3년. 고용주의 요청이 있으면 최장 4년 10개월까지 일할 수 있다. 이 기간 노동자는 원칙적으로 일터를 바꿀 수 없다.

    특별한 사정이 있을 경우, 근무 기간 3년 중 최대 3회(연장 기간 중 2회)까지 이직할 수 있지만, 사업주 동의가 필요하다. 사업주 동의 없이 무단으로 이탈하면, 소위 ‘불법체류자’라 불리는 미등록 이주노동자가 된다. 국내 중소기업의 인력난 해소에 초점을 둔 제도 특성상 이주노동자가 쉽게 일터를 떠나지 못하도록 여러 제약을 둔 것이다.

    고용허가제 안에서는 고용주가 절대 군주 같은 그런 권한을 갖게 돼요. 아무리 열악한 사업장이라도 국가가 고용 알선을 해서 노동자를 사업장에 붙박이처럼 묶어주고, 고용주에게 노동자에게 군림할 수 있는 (사업장 변경 동의) 권한까지 줬으니까요. 자연스럽게 고용주와 고용인이 ‘주종 관계’가 되는 겁니다. 고용주에게 사업장 변경 동의를 받지 못한 노동자는 사실상 강제 노동을 할 수밖에 없는 구조에요. 사업주에게는 너무나 좋은 제도이지만, 이 주종 관계는 이주노동자들의 기본권, 인권, 노동권을 침해하는 근본 원인이 됩니다. 고용허가제를 ‘현대판 노예제’라고 말하는 이유죠.

    김달성 목사 / 포천이주노동자센터 대표

     

    예외는 있다. 사용자가 이주노동자에게 △임금체불이나 폭행 등 부당한 대우를 한 경우 △비닐하우스 숙소와 같은 가설건축물을 기숙사로 제공한 경우 등이다. 온전히 사용자의 귀책 사유로 이주노동자가 사업장을 바꿔야 할 때는 횟수와 무관하게 이직할 수 있다. 문제는 이를 피해 노동자가 스스로 입증해야 하는데, 그 과정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이 모든 과정을 거쳐 사업장 변경 허가를 받았더라도 족쇄가 풀리는 건 아니다. 퇴사 후 이주노동자에게 허용된 구직 기간은 3개월. 이 안에 새로 일터를 구하지 못하면 강제 출국당한다. 더 나은 일자리를 고르고, 따질 여유가 이주노동자에게는 없다.

    윤석열 정부 시절인 2023년 7월부터는 ‘권역별 이동 제한’도 생겼다. 전국을 5개 권역으로 나누고 그 안에서만 이직할 수 있게 한 것이다. 충청권에 배치된 노동자는 계속 충청권에서만 일해야 하는 식이다. 이주노동자의 수도권 유출을 막기 위한 조치인데, 겹겹이 쌓인 제약 조건 속에서 이주노동자는 일터 변경을 포기하기도 하기도 한다.

    사람보다 돼지가 우선이던 농장…결국 사람이 죽었다

    실제 사업주에게 폭행과 폭언을 당하고도 일터를 떠나지 못하고 목숨을 잃은 경우가 있었다. 지난 2월 22일, 전남 영암의 돼지농장에서 일했던 스물여덟 살의 네팔인 청년, 툴시의 이야기다. 그는 고용허가제로 한국에 온 지 6개월 만에 일터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스물여덟 살의 네팔 이주노동자 툴시는 고용허가제로 입국한 지 6개월 만인 지난 2월, 전남 영암의 돼지농장인 ‘우성축산’에서 일하다 사업주의 지속적인 괴롬힘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툴시가 일한 곳은 ‘우성축산’이라는 돼지 1만여 마리를 키우는 대형농장이었다. 이곳의 직원은 20여 명. 대부분이 네팔 이주노동자였다. 우성축산 사업주 홍 모 씨는 네팔인 팀장을 두고, 이주노동자들을 관리했다. ‘관리’라는 이름 아래 노동자를 감시하고, 괴롭혔다.

    “(네팔인) 팀장이 일하는 게 마음에 안 든다고 사장에게 이르면, 사장이 따로 불러서 볼펜으로 찌르고, 돈도 안 주면서 잔업을 시켰어요. 여기에 항의하면 수시로 ‘네팔 돌아가라’고 협박했고요.” 뉴스타파와 만난 툴시의 동료 파원의 증언이다.

    사장의 지속적인 폭력에 시달렸던 툴시는 다른 곳에서 일하기를 간절히 원했다. 하지만 끝내 일터를 빠져나오지 못했다. 사업주가 사업장 변경 동의를 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업주가 그냥 나가면 불법체류자가 된다고 했어요. 그래서 툴시가 일터를 떠나지 못했다고 생각해요. 우리에겐 자유가 없어요.” 툴시의 또 다른 동료 수잔의 말이다.

    외국인고용법상 이주노동자가 사업장에서 폭행을 당했을 경우, 이를 노동부에 신고하고 입증하면 사업장을 변경할 수 있다. 하지만 툴시는 증거를 모으지 못했다. 사업주는 CCTV가 없는 곳에서 툴시를 폭행했다. 네팔인 팀장은 일이 끝나면 노동자들의 휴대폰을 일일이 확인했다.

    지난해 10월 경 툴시와 동료들이 SNS에 올린 영상 중

    툴시는 용기를 내 작년 10월경 SNS에 도움을 요청하는 영상을 올렸다. 해당 영상엔 “저희 모두를 구해주세요”라며 두 손을 모으고 구조 요청을 하는 툴시의 모습이 담겼다. 하지만 이 영상은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 그 후로도 사장과 팀장의 괴롭힘은 계속됐다.

    노동부에 신고했지만 ‘조치 無’...알고도 외면했나

    툴시의 사망 전, 툴시의 동료 파원이 목포 고용센터에 피해 사실을 알렸다. 파원도 홍 사장에게 여러 차례 폭행을 당한 피해자였다. 목포 고용센터는 전남권의 고용허가제 사업장을 관리하는 고용노동부 목포지청 소속 기관이다. 하지만 고용센터는 신고를 받지 않고 파원 씨를 돌려보냈다. 일단 돌아가서 기다리라고만 했다.

    파원이 고용센터를 방문한 사실은 곧바로 사업주 귀에 들어갔다. 고용노동부 관계자의 전화를 받은 우성축산의 홍 사장은 이주노동자들을 불러 세워두고 2시간가량 협박성 발언을 쏟아냈다. “고용노동부에서 전화 왔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한국 경찰과 고용노동부가 너희 편 들 것 같으냐, 머리도 멍청하게 쓰지 마라, 너희는 힘이 없다”며 고함을 쳤다. 피해자들이 직접 녹음한 홍 사장의 육성 녹취에 나오는 내용이다. 홍 사장의 말대로, 당시 고용노동부는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았다.

    전남 영암에 위치한 돼지농장 ‘우성축산’ 전경

    “니들이 나가면 돼지는 누가 키우냐” 사업장 변경 거부

    홍 사장의 훈계를 듣는 자리에는 툴시도 있었다. 툴시와 동료 10여 명은 이날 사장에게 퇴사하겠다고 말했지만, 사장은 거부했다. 홍 사장은 “너희가 나가면 돼지 사료는 누가 주느냐, 업무 거부는 범죄다”라며 “당장 일을 하라”고 언성을 높였다. 이들의 퇴사 시도는 그렇게 무산됐다.

    고용센터의 도움을 받지 못한 파원도 결국 다시 돌아와 사장에게 ‘죄송하다’며 무릎을 꿇었다. ‘안에서 벌어진 일들을 밖에 알리지 않겠다’고 약속까지 했다. 그리고 나서야 비로소 사업장 변경 동의를 받았다. 파원은 그렇게 툴시 사망 이틀 전 우성축산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우성축산에서 툴시와 함께 일했던 네팔 이주노동자 수잔(왼쪽)과 파원. 이들은 뉴스타파와 인터뷰에서 자신의 동료 툴시를 죽음으로 내몬 고용허가제를 바꿔야한다고 말했다.

    폭행 등 가해 사실이 확인된 사업주는 최대 3년간 이주노동자를 받을 수 없다. 사실상 이주노동자 없이는 농장 운영이 어려운 사업주 입장에서 가장 피하고 싶은 제재다. 파원은 노동부 측이 사업주의 편의를 봐주기 위해 자신의 신고 접수를 받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제가 고용센터에 가서 신고하겠다고 했더니, 다시 돌아가면 사장에게 사업장 변경 동의 받을 수 있을 거라며 신고를 받지 않았어요. 만약 제가 고용노동부에 알렸을 때 제대로 조사가 이뤄졌다면 툴시가 죽지 않았을 텐데...앞으로는 노동자들이 도움을 요청하면 제대로 처리해줬으면 좋겠어요.” 파원의 말이다.

    파원의 주장은 사실일까. 뉴스타파는 목포 고용센터를 관할하는 고용노동부 목포지청의 입장을 물었다. 목포지청 관계자는 “파원과 툴시가 우리지청에 정식으로 사건 신고를 한 내역은 없는 것으로 확인된다”며 “다만 정식 신고 접수는 아니어도 담당자가 피해자의 고충을 듣고 사실 확인차 사업주에게 전화했을 수는 있다. 이는 통상적인 절차”라고 말했다.

    사실 확인 후 사업주에게 구체적으로 어떤 조치를 했는지 묻는 취재진의 질문에 관계자는 답변을 피했다. 그러면서 “외국인 노동자들에 대한 피해 호소를 무시한 바는 전혀 없으나 우리 지역에서 다시는 이러한 안타까운 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인권 보호에 만전을 기하도록 하겠다”고 답했다.

    13명 폭행, 2억 넘는 임금체불…뒤늦게 드러난 만행

    툴시가 죽고 나서야 우성축산 사장과 네팔인 팀장에 대한 경찰과 고용노동부의 수사가 시작됐다. 지난 8월, 1심 판결이 나왔다. 판결문에 따르면, 홍 사장은 무려 13명의 이주노동자를 상습 폭행했다. 화장실에 감금하고, 물탱크에 넣겠다고 협박했다. 홍 사장의 폭행에 뇌진탕을 입은 피해자도 있었다. 퇴직금과 연장근무 수당 등 전·현직 이주노동자 60여 명을 상대로 2억 5,000만 원이 넘는 임금도 체불했다.

     

    '우성축산' 홍 모 사장과 네팔인 팀장의 1심 판결문.

    1심 재판에서 홍 사장은 징역 2년에 벌금 100만 원을 선고받았다. 네팔인 팀장은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받았다. 현재 우성축산은 실형을 피한 네팔인 팀장이 또 다른 이주노동자들을 고용해 운영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망한 툴시의 동료였던 수잔은 이해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어떻게 툴시를 죽게 만든 사람들이 이 정도 처벌만 받죠? 팀장은 왜 감옥에 가지 않죠? 어떻게 사람이 죽었는데도 돼지농장이 그대로 운영되는 거죠?”

    목포지청 관계자는 “사업주 폭행 사건이 드러나기 전에 고용된 인력까지는 유지하고, 이후 신규 이주노동자는 배정하지 않을 예정”이라며 “현재는 네팔인 팀장이 아무런 문제 없이 사업장을 운영하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주노동자 규모 늘리면서 체류지원은 부실

    고용노동부는 해마다 10만 명이 넘는 이주노동자를 고용허가제로 받는다. 2023년 12만 명, 2024년에는 16만 5,000명으로 그 규모를 늘렸다. 하지만 툴시의 사례처럼 이들에게 부당한 일이 생겼을 때, 고용노동부가 문제를 적절하게 처리할 역량을 갖췄는지에 대한 의문은 여전히 존재한다.

    심지어 지난해 윤석열 정부는 이주노동자의 고충을 상담하고 통역을 지원하는 민간 위탁 기관인 '외국인근로자지원센터'의 예산 71억 원가량도 전액 삭감했다. 이주노동자는 대폭 늘리면서, 관련 예산은 축소한 것이다.

    당시 정부는 고용노동부가 해당 업무를 맡으면 된다는 입장이었지만, 정작 고용노동부 공무원들은 인력 부족을 호소한다. 익명을 요구한 지방고용노동청의 한 관계자는 "우리 지역에만 만 명 넘는 이주노동자가 있다. 수시로 상담 요청이 온다. 언어도 잘 통하지 않는 상황에서 이 민원을 어떻게 우리가 다 처리하느냐"고 토로했다.

    한국 정부가 이주노동자를 받기만 하고, 이들에 대한 체류 지원은 손 놓은 상황. 산재 피해 등 위기에 처한 이주노동자들은 오늘도 자신을 도와줄 기관을 찾아 길을 헤맨다.

    손가락 네 개 잘리고 ‘해고’된 이주노동자

    “저 어떡해요. 어떻게 먹고 살아요. 이렇게 손가락이 없어서…어떻게 네팔 돌아가요.”

    서른여섯의 네팔 출신 이주노동자 수메스는 인터뷰 내내 “어떡해”라는 말을 반복했다. 자신이 처한 상황을 해결할 방법이 딱히 없기 때문이다.

    그는 6년 전인 2019년 5월 고용허가제(E-9) 비자로 한국에 왔다. 재롱 많은 6살 아들을 두고 홀로 한국행을 택한 건 가족을 더 잘 돌보기 위해서였다. 몸이 아픈 부모와 의사를 꿈꾸는 아들의 생계가 수메스에게 달려 있었다.

    네팔에서 약학을 공부했던 수메스는 한국에서 일하며 번 돈으로 네팔에 약국을 차릴 계획이었다. 그러나 고용 기간, 코로나19가 발생하며 체류 기간이 길어졌다. 코로나로 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었지만, 한국에 머물며 돈을 더 벌 수 있단 생각으로 위안을 삼았다. 하지만 2년 전, 손가락 네 개를 잃는 사고를 당하며 그 꿈은 산산조각이 났다.

    뉴스타파 취재진과 인터뷰 중인 네팔 이주노동자 수메스. 그는 2년 전 전북 완주의 한우농장에서 일하다 손가락 네 개가 절단되는 사고를 당한 후 해고됐다.

    네팔 이주노동자 수메스는 2년 전인 2023년 1월 전북 완주의 한우농장에서 가동 중인 사료배합기에 손이 끼어 손가락 네 개가 절단되는 산재 사고를 당했다. 검지 손가락은 사료배합기 안에서 찾아내 접합했지만,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상태다.

    수메스는 2023년 1월 19일 전북 완주의 한 한우농장에 입사했다. 고용허가제라는 제약 속에서 어렵게 옮긴 세 번째 직장이었다. 해당 농장은 수메스를 포함한 네팔 이주노동자 2명이 한우 800마리를 관리하는 곳이었다. 수메스는 축사 바로 옆 관리사에 거주하며 아침부터 밤까지 하루 10시간 이상 소를 돌보고 분변을 치우는 일을 했다.

    한우농장에선 농기계도 다뤄야 했다. 소 사료를 발효하고 배합하는 기계였다. 이전에도 젖소농장과 한우농장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었지만, 사료배합기는 처음 접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사고가 발생했다. 사료배합기 안으로 수메스의 장갑 낀 손이 빨려 들어간 것이다.

    사료배합기는 기계 내부에 회전체가 있어 사람의 신체가 절대 접근해선 안 되는 위험한 기계다. 사료를 배출할 때는 배출구의 덮개를 일부만 열어 사용하고, 배합기 내부의 잔여물을 청소할 때는 기계를 멈춘 후 작업해야 한다. 그런데 수메스는 사료가 배출되는 배출구 덮개가 활짝 열린 상태에서 가동 중인 기계에 직접 손을 넣어 배출구 안의 잔여물을 제거했다.

    수메스가 사고를 당한 사료 발효 배합기. 전북 완주의 한우농장에서 일했던 수메스는 소 사료배합기 안에 남아있는 잔여물을 빼내기 위해 덮개가 활짝 열린 채로 가동 중인 기계에 손을 넣었다. 장갑이 빨려들어가며 손가락 네 개가 절단되는 사고를 당했다

    수메스가 사고를 당한 사료배합기. 외국인을 고용한 사업주는 이들이 이해하기 쉽도록 외국어로 된 안전표지판을 부착해야 한다. 배출구 왼쪽에 외국어 안전표지는 수메스 사고 당시 부착돼 있지 않았다.

    수메스는 이 기계가 얼마나 위험한지 별도의 안전교육을 받지 못했다고 했다. 안전 대책은 기계에 부착된 한국어 안전 표지판이 전부였다. 산업안전보건법 제37조에 따르면, 외국인 근로자를 고용하는 사업주는 근로자 다수가 사용하는 언어로 안전 표지판을 설치해야 한다. 하지만 사고 당시에는 한국어 표지판만 설치되어 있었다.

    안전 교육 받은 적 없어요. ‘여기 손 넣지 마’, ‘이렇게 위험해요’ 그런 거 말 하나도 없었어요. 사모님 딸이 먼저 기계에 손 넣어서 직접 (사료 가루를) 빼냈어요. 사모님 딸이 시키면 제가 그렇게 해야 하니까...안 하면 혼나요. 짜증내요.

    수메스 / 네팔 이주노동자

    수메스가 말하는 ‘사모님 딸’은 농장을 관리하는 사업주의 딸이다. 사업주 측은 수메스의 주장이 사실이 아니라고 부인했다. 수메스에게 “돌아가는 기계에 손을 넣지 말라고 안전교육을 했다”며 “다른 동료에게 확인해 보라”고 했다. 뉴스타파는 수메스와 함께 일했던 동료 A 씨에게 사실 관계를 확인했다. A 씨 역시 취재진에 “안전교육을 받은 사실이 없다”고 말했다.

    “사모님(사업주) 딸이 거짓말하는 거예요. 우리는 단 한 번도 기계에 손을 넣지 말라는 교육을 받은 적이 없어요. 사모님 딸이 먼저 손을 넣어서 사료를 빼냈고, 우리도 그걸 따라 해야 했어요. 저도 몇 번 손을 넣은 적이 있어요.” 수메스의 동료 A 씨의 말이다.

    전 직장에선 “불법체류자 돼라”며 쫓겨나

    수메스는 해당 업무가 위험하다고 생각했지만, 거부할 수 없었다. 더 이상 다른 일자리를 찾을 수 없는 상황에서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자칫 사업주에게 항의했다가는 일터에서 쫓겨나 불법체류자가 될 수 있다는 불안감도 있었다.

    실제 수메스는 전 직장에서 그런 위험을 경험했다. 그의 이전 직장은 전북 부안의 한우농장이었다. 그곳에선 한우 사육 외에 고추 농장 일까지 해야 했다. 근로계약서에 없는 일이었지만, 군소리 없이 일했다. 한 달 270만 원 임금을 받으며 아침 6시부터 저녁 6시까지 일했다. 송아지가 태어나면 밤이나 새벽에도 일해야 했다. 근로계약서엔 한 달 중 이틀 휴가를 준다고 했지만, 실제로는 쉬는 날이 없었다.

    그런데 일한 지 11개월이 됐을 때 갑작스레 해고를 통보받았다. 수메스는 사업주가 퇴직금을 주지 않기 위해 자신을 해고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퇴사할 수 없다고 버텼다. 사업주는 기숙사에 있던 수메스의 짐을 밖으로 내던지며 그를 쫓아냈다.

    왼쪽은 수메스가 2022년에 일했던 전북 부안의 한우농장 사업주가 수메스의 옷가지를 밖으로 내던진 장면. 오른쪽은 수메스가 부안의 한우농장에서 일할 당시 모습. 사업주는 수메스에게 근로계약서에 없는 고추 농장 일까지 시켰다.

    결국 수메스는 퇴사를 결정하고 사업주에게 ‘사업장 변경 사인’을 요청했다. 사업주는 해줄 수 없다며, “그냥 나가서 불법체류자가 돼라”고 했다. 수메스는 퇴직금을 받기 위해 버틴 것에 대한 보복이라고 생각했다. 어렵게 밟은 한국 땅에서 불법체류자가 될 수는 없었다.

    다행히 수메스는 사업주가 자신에게 물건을 집어 던지며 폭언하는 영상을 촬영해 증거를 확보할 수 있었다. 이를 고용노동부 전주지청에 신고했다. 사업주는 수메스가 관리자인 사업주의 딸을 성희롱했기 때문에 해고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뉴스타파에도 그렇게 설명했다.

    하지만 고용노동부 조사 결과, 수메스의 귀책 사유는 발견되지 않았다. 사업주는 고용노동부 신고 후에야 수메스에게 ‘사업장 변경 사인’을 해줬다. 그렇게 11개월을 근무한 후 전북 완주의 한우농장으로 근무지를 옮길 수 있었다. 그리고 이직 11일 만에 사고를 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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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하다 손가락이 잘린 상황에서 수메스는 해고 통보까지 받았다. 사업주는 산업재해 치료 중인 수메스에게 “손가락이 없으니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다”고 통보했다. 수메스는 치료가 끝나고 손가락이 나으면 일을 할 수도 있으니 기다려 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나 사업주는 수메스가 산업재해 보상금을 받는 데 협조한 것으로, 책임과 보상을 다 했다는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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