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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제기의 영화로운/ ‘미키 17'은 왜 실패했을까😥문화 광장 2025. 3. 30. 19:27한국일보의 영화전문기자. 문화부장, 에디터를 거쳐 영화라는 우물을 깊고 넓게 파는 중이다. 홍콩배우 임달화를 닮았다고 주장하며 '임다롸'라는 별명으로 영화인들을 비롯해 여러 영화로운 이들과 접선하고 있다.안녕하세요, sooji2님. 이번 주 잘 보내셨나요. 어느덧 주말이 눈앞입니다. 주말 짬 내서 영화나 드라마 한 편 보고 싶지 않으신가요. 이왕이면 세상사를 좀 더 넓은 눈으로 보게 해주거나 사회 흐름을 콕 집어주는 작품 말이에요. ‘라제기의 영화로운’은 의미 있는 영화나 드라마 관람을 원하시는 분들에게 작은 도움을 드리려고 합니다.“나도 이제 행복해도 괜찮아.”‘미키 17’ 속 미키 17(로버트 패틴슨)‘미키 17'은 왜 실패했을까😥영화 '미키 17'(2025)“기대를 너무 많이 하다 보니 만족도가 떨어지는 거 아닐까요.” 얼마 전 만난 어느 유명 감독이 제게 한 말입니다. 봉준호 감독의 신작 ‘미키 17’의 흥행 부진에 대한 짧은 언급이었습니다. ‘미키 17’에 대한 기대가 너무 크다 보니 실망이 정비례로 커져 흥행에 악영향을 미친 거 아니냐는 뜻이었습니다. 수긍이 가는 말입니다.‘미키 17’은 26일까지 288만 명이 봤습니다. 불황 터널에 갇힌 최근 극장가 사정을 감안하면 그리 나쁘지 않은 수치이나 봉준호라는 이름의 지명도를 생각하면 실망스러운 기록입니다.봉 감독은 ‘괴물’(2006)과 ‘기생충’(2019)으로 두 차례 1,000만 명 넘는 관객을 모았고, ‘설국열차’(2013)로는 935만 명을 극장으로 불러들였으니까요. '기생충'으로 칸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고 오스카 4관왕에 오른 이력이 휘황한 세계적인 영화인이기도 하니까요.👉기대 못 미친 흥행 성적이대로라면 ‘미키 17’은 관객 300만 명을 넘기기 힘들 듯합니다. 298만 명이 극장에서 본 ‘마더’(2009) 이후 최악의 흥행 성적을 남길 가능성이 큽니다(넷플릭스 영화 ‘옥자’ 제외). 해외 박스오피스 역시 신통치 않습니다.미국 흥행 집계 사이트 박스오피스 모조에 따르면 북미에서는 4,095만 달러를, 전 세계에서는 1억1,075만 달러를 각각 벌었습니다. 순수 제작비로 1억1,800만 달러가 들어간 점을 감안하면 기대에 한참 못 미치는 흥행 성적입니다.관객들의 평가가 이전 봉 감독 영화들에 비해 낮기도 합니다. “봉 감독 영화 중 가장 재미없다” “봉 감독은 영어로 영화를 만들면 매번 기대에 못 미친다” 등 혹평이 적지 않습니다. 봉 감독이 가장 가슴 아플 평가는 아마도 “봉준호 영화답지 않다”는 독설일 겁니다.‘미키 17’이 봉 감독의 ‘베스트’라고 할 수 없습니다. 흥행성이 강하지 않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 영화가 혹평에 시달릴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사회적 메시지를 장르 영화 틀에 꽤 조화롭게 녹여 낸 영화라고 봅니다. 우주를 배경으로 한 장르 영화의 전형성에서 벗어나려는 시도가 눈에 띄는 영화라고도 생각합니다. 미국 리뷰 사이트 로튼토마토 수치(평론가 78%, 관객 73%)가 양호한 편이기도 합니다.👉오락가락 개봉 일자가 불안했던 이유저는 상업적인 면에서 봤을 때 봉 감독과 ‘미키 17’의 만남은 불행이라고 여깁니다. 북미 주류 시장에선 먹히지 않을 영화에 대자본이 들어갔다는 판단에서입니다.‘설국열차’가 ‘미키 17’과 닮은 꼴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설국열차’ 속 기상 이변으로 꽁꽁 얼어붙은 지구는 ‘미키 17’ 속 얼음 행성을 떠올리게 합니다. 자원의 절대 부족, 계급간 유혈 충돌, 좁은 공간을 지배하는 독재자, 노동 문제(‘설국열차’는 아동 노동 문제를 다루죠) 등도 두 영화의 공통분모입니다.‘설국열차’는 한국에서 흥행에 성공했으나 북미에서는 별 재미를 못 봤습니다. 극장 매출이 456만 달러 정도에 불과합니다. 북미에서 5,384만 달러를 벌어들였던 ‘기생충’(2019)과 비교되는 수치입니다.‘설국열차’ 북미 배급사는 와인스틴컴퍼니였습니다. 맞습니다. 성폭력으로 업계에서 퇴출당한 하비 와인스틴이 설립하고 운영했던 회사입니다. 와인스틴은 ‘설국열차’처럼 메시지 담긴 SF영화는 북미 관객들이 어렵게 생각한다고 주장했다고 합니다. 주연배우 크리스 에번스의 출연 분량을 늘리고 상영시간(125분) 중 25분을 자르라고 봉 감독에게 종용한 걸로 알려져 있습니다.봉 감독은 고집과 기지를 발휘해 악명 높았던 ‘가위손 하비’의 가위질을 막아냈습니다(와인스틴이 물고기가 나오는 장면을 자르자고 하자 봉 감독은 “어부이신 아버지에게 바치는 장면”이라고 속이는 식으로 맞섰다고 합니다).하지만 와인스틴은 할리우드 흥행판에서 산전수전 겪은 인물입니다. 아무리 악인이라고 해도 ‘설국열차’에 대한 그의 판단을 무시할 수는 없을 듯합니다.배급사 워너 브러더스가 ‘미키 17’의 배급 시기를 자주 바꾼 점도 비슷한 이유에서라고 봅니다. 배급사가 영화에 알맞는 때를 찾기 위해 개봉일을 변경하는 게 당연하다고 하나 ‘미키 17’은 이례적으로 잦았습니다. 미국 언론에서 개봉 전 ‘미키 17’을 언급할 때마다 ‘Oft-delayed(종종 연기된)’라는 수식이 따라붙은 이유일 겁니다(자세한 내용이 여기에서👉봉준호 신작 ‘미키 17’ 개봉일은 왜 자꾸 바뀌는 걸까?).👉맥빠진 자막, 지나친 직설 화법한국 관객에게 해당하는 부분이겠으나 ‘자막의 장벽’이 있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봉 감독 영화의 장기 중 하나는 촌철살인 대사입니다. “가장 완벽한 계획이 뭔지 알아? 무계획이야”(‘기생충’) 같은 대사가 주는 말맛이 기막힙니다.하지만 ‘미키 17’은 모든 대사가 배우들이 입에서 다 나오기도 전에 자막으로 내용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배우의 표정과 말이 어우러져 빚어지는 재미가 적습니다. 한국 관객 입장에서는 맥빠지게 느껴질 듯합니다. 특히 서스펜스가 있는 장면에서 말이죠.봉 감독 영화답지 않게 지나치게 직설적인 화법도 재미를 덜어낸 듯합니다. 모국어가 아닌 영어로 대사를 만들다 보니 한국에서 연출했던 영화들과 결이 많이 달라질 수밖에 없는 것으로 보입니다.봉 감독의 페르소나라 할 송강호 같은 한국 배우가 출연하지 않은 점이 약점으로 꼽히기도 합니다. ‘설국열차’는 외국 유명 배우들에다 송강호와 고아성이 함께 출연했습니다. ‘옥자’도 변희봉과 안서현, 윤제문이 출연했습니다. 외국 배우들이 대거 나와도 한국 배우들이 정서적 균형을 맞췄으나 ‘미키 17’은 그렇지 않습니다.👉한국인 영어 영화의 한계?봉 감독은 ‘미키 17’ 개봉을 앞두고 한국 기자들을 만나 영어로 영화를 만들 때마다 왜 SF 장르를 선택하는지 말했는데요. “미국 문화를 상세히 알지 못하니 미래나 우주를 배경으로 한 SF를 택하게 되는 거 같다”고 했습니다. 그는 “1960년대 미국 사회의 정서를 세밀히 담아낸 (대만) 이안 감독의 ‘아이스 스톰’(1999) 같은 영화를 저는 만들기 힘들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봉 감독의 답변은 한국 감독이 할리우드에서 영어로 영화 만들기가 쉽지 않음을 보여줍니다. 박찬욱 감독은 예전 저와의 인터뷰에서 할리우드 영화 ‘스토커’(2013)를 만들면서 겪은 어려움을 토로한 적이 있습니다. 현장에서 대사 한 줄을 고치려고 해도 스튜디오 수장의 결재가 필요해 며칠이 걸리고는 했다고는 합니다. 상대적으로 감독의 발언권이 강한 한국 영화계와 할리우드의 문화 차이가 만만치 않은 스트레스를 줬다고 박 감독은 밝혔습니다.‘미키 17’의 흥행 실패는 여전히 높은 할리우드라는 장벽을 실감케 합니다. 봉 감독이 다시 할리우드 영화를 만들기가 쉽지 않아 보이는 것도 아쉬움을 남깁니다. 할리우드만이 능사가 아니겠으나 세계 영화의 본산을 호령하는 봉 감독의 모습을 보고 싶은 건 저 뿐만이 아닐 겁니다. 봉 감독이 부진을 털어내고 새로운 성취를 일궈 내길 바랍니다.✋4월이면 '영화로운'이 4주년을 맞이합니다. 여러분께 감사드리기 위해 이전과 다른 이벤트를 준비 중입니다. 다음 주 '영화로운'에서 공지 나가니 많은 참가 신청 미리 부탁드립니다. 산불 피해로 국민 마음이 타들어가는 요즘입니다. 즐거운 주말 보내시라고 하기에 민망한 이번 주입니다. 좋은 영화 한 편 보시라고 마음껏 권할 수 없는 시기이기도 합니다. 그래도 아무쪼록 주말 편히 보내십시오. 🤗무얼 볼지 고르다가 시간만 허비한다는 ‘넷플릭스 증후군’이라는 말까지 생긴 시대, OTT 콘텐츠 2편씩 추천해 드립니다.한국일보의 영화전문기자. 문화부장, 에디터를 거쳐 영화라는 우물을 깊고 넓게 파는 중이다. 홍콩배우 임달화를 닮았다고 주장하며 '임다롸'라는 별명으로 영화인들을 비롯해 여러 영화로운 이들과 접선하고 있다.‘라제기의 영화로운’은 매주 금요일 오전 11시에 보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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