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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m 콘크리트 둔덕, 충돌 땐 수천t 충격... 전문가 "규정 위반"지금 이곳에선 2024. 12. 31. 11:00
활주로에 남은 참사의 흔적 - 30일 ‘제주항공 참사’가 발생한 전남 무안군 무안국제공항 활주로의 모습. 활주로에 전날 사고 항공기가 동체 착륙을 하면서 남긴 검은색 ‘스키드 마크(급제동 시 도로에 남는 자국)’가 보인다. 사고기는 활주로를 벗어나 약 250m를 더 나아간 뒤 로컬라이저(방위각 지시 장치)를 세우기 위해 설치한 콘크리트 둔덕과 충돌했다. 충돌 직후 항공기는 폭발하며 두 동강이 났다. /장련성 기자
지난 29일 179명이 사망한 ‘제주항공 참사’의 피해를 키운 원인으로 무안공항 활주로 주변에 있던 착륙 유도 장치(로컬라이저)의 콘크리트 구조물이 지목되고 있다. 사고 당시 영상을 보면, 바퀴를 내리지 못한 채 ‘동체 착륙’한 사고기는 활주로를 벗어나 약 250m를 더 나아간 뒤 콘크리트 구조물과 충돌했다. 구조물과 충돌한 직후 항공기는 폭발하며 산산조각 났고 60m 떨어진 공항 외벽까지 깨뜨렸다.
로컬라이저는 공항 활주로 주변에 설치하는 안테나 모양의 시설이다. 전파를 쏴 항공기가 활주로 가운데 정확하게 착륙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역할을 한다. 방위각 지시 장치라고도 한다.
무안공항의 로컬라이저는 다른 공항과 달리 콘크리트 구조물 위에 설치돼 있다. 콘크리트 구조물은 기둥 모양으로 알려졌다. 그 위에 흙을 덮어 겉에서 보면 둔덕 모양이다.
둔덕의 크기는 가로 40m, 높이 2m, 두께 4m 정도다.
항공 전문가들은 “일반적으로 로컬라이저는 활주로 주변 바닥에 설치하는데 무안공항의 콘크리트 구조물은 이례적인 경우”라고 했다. 인천공항도 활주로 근처 지면에 로컬라이저를 설치했다.
그래픽=김현국
전문가들은 “이 구조물이 없었다면 인명 피해가 크지 않았을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김인규 한국항공대 비행교육원장은 “이번에 특히 인명 피해가 컸던 이유는 충돌 충격으로 엔진이 폭발해 기체가 손쓸 틈 없이 전소했기 때문”이라며 “로컬라이저를 (콘크리트 구조물 대신) 흙더미 위에만 세웠더라도 항공기가 폭발하지 않고 넘어갔을 것”이라고 했다.
황호원 한국항공대 교수도 “콘크리트 구조물이 없었다면 항공기가 로컬라이저 안테나와 공항 외벽을 부순 뒤 속도를 줄일 수 있었을 것”이라며 “구조물이 참사를 키우는 데 영향을 미쳤다”고 했다. 공항을 둘러싼 외벽은 이번 사고에서 동체 파편에 깨질 정도로 약하게 만들어져 있다.
국토부 출신 전문가인 A씨는 “사고 당시 무게 약 80t인 항공기는 속도를 줄이지 못하고 시속 200㎞ 안팎으로 콘크리트 벽과 정면 충돌한 것”이라며 “기체에 가해진 충격이 수천t은 될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29일 제주항공 여객기가 충돌한 전남 무안공항의 로컬라이저 구조물. 높이 2m의 콘크리트 구조물 위에 흙을 덮어 둔덕을 만든 뒤 콘크리트 판을 올리고 안테나 모양의 로컬라이저를 설치했다. /사진=장련성 기자, 그래픽=김현국·양인성
이 구조물을 두고 항공 안전 전문가들은 “규정 위반 시설”이라고 지적했다. 영국의 항공 전문가인 데이비드 리어마운트는 영국 스카이뉴스 인터뷰에서 콘크리트 구조물에 대해 “(콘크리트 구조물이) 그곳에 있는 것은 범죄에 가까운 일”이라며 “활주로에서 200m 떨어진 곳에 그런 단단한 물체가 있다는 건 어디에서도 본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국토교통부 예규 항공장애물 관리 세부지침 제25조에 따르면, 로컬라이저 등 시설은 부러지기 쉬운 장착대에 장착해야 한다고 돼 있다. 항공기와 충돌에 대비해 플라스틱 같은 유연한 재료로 만든 구조물에 장착해야 한다는 뜻이다. 미 연방항공청(FAA)도 활주로 주변에 로컬라이저 등 시설을 설치할 때 부러지기 쉬운 구조로 만들어야 한다고 정하고 있다.
콘크리트같이 견고한 시설은 공항에서 항공기 사고가 발생할 때 심각한 위험 요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콘크리트 구조물을 세운 이유에 대해 국토부 관계자는 “무안공항은 평평한 인천공항과 달리 활주로 남측의 지면이 낮다”며 “활주로와 평평하게 로컬라이저를 설치하기 위해 구조물을 만들어 높이를 맞춘 것”이라고 했다.
활주로 주변의 지형을 고려해 설치한 것이라는 설명이다.
주종완 국토부 항공정책실장은 “무안공항 말고도 여수공항과 청주공항 등에도 콘크리트 구조물 위에 로컬라이저를 설치해서 운영 중”이라며 “해외에도 미국 로스앤젤레스공항과 스페인 테네리페공항 등에서 콘크리트 구조물을 쓴 사례가 있다”고 했다.
다만 국토부는 해당 공항의 구조물이 어느 정도 높은지는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이를 두고 전문가들은 “무안공항의 경우 활주로에서 보면 구조물이 2m 정도 솟아 있다”며 “과하게 둔덕을 만든 것”이라고 했다. A씨는 “지형에 따라 높이를 맞추기 위해 콘크리트 구조물을 설치할 순 있지만 항공기가 닿을 수 있는 부분은 국토교통부 예규에 따라 유연한 재료로 만들었어야 했다”고 했다.
항공업계 관계자는 “항공기가 ‘오버런(항공기가 착륙하지 못하고 활주로를 통과하는 사고)’ 하는 상황에 대비해 로컬라이저는 반드시 항공기가 쉽게 뚫고 지나갈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며 “활주로와 수평이 맞지 않은 경우에는 일반적으로 콘크리트 구조물 대신 (부러지기 쉬운) 철골 구조물을 올린다”고 했다.
이에 국토부 관계자는 “공항 안전 구역 밖에 시설을 만들어 문제가 없다”고 해명했다. 활주로 주변 약 199m 구역 안에는 항공기 이착륙에 방해가 될 만한 이러한 구조물을 설치할 수 없는데 그 밖에 설치한 것이라 규정 위반이 아니라는 설명이다. 무안공항 로컬라이저 구조물은 활주로에서 251m 거리에 설치돼 있다.
국토부는 안전 구역 밖에 구조물을 설치해 문제가 없다고 밝혔지만 항공업계 관계자들은 “국제 기준으로는 규정 위반이 될 수 있다”고 했다.국제민간항공기구(ICAO)는 로컬라이저는 활주로 끝에서 300m 이내에 설치하면 안 된다고 정하고 있다.
미 연방항공청은 “로컬라이저는 활주로 끝에서 약 300m 떨어진 지점에 설치되어야 한다”고 정하고 있다. 항공업계에 따르면, 인천공항, 김포공항 등 국내 주요 공항들은 활주로에서 300m 이상 지점에 로컬라이저를 설치한 것으로 파악됐다. 무안공항의 시설이 국내 다른 공항과 비교해서도 짧은 것이다.
그래픽=김현국
항공업계 관계자는 “대부분 공사는 용역 계약을 체결해 진행한다”며 “무안공항 인근이 바다라 단단한 구조물이 필요하다고 판단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국토부에 따르면, 높은 구조물을 세워 로컬라이저를 설치한 사고 지점과 달리 활주로 반대편에는 활주로 주변 바닥에 로컬라이저를 세웠다고 한다. 그러나 이 로컬라이저는 최근 활주로 연장 공사를 하면서 철거된 상태다.
☞로컬라이저(착륙 유도 시설)
공항 활주로 주변에 설치하는 안테나 모양의 시설. 전파를 쏴 항공기가 활주로 가운데 착륙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역할을 한다. 덕분에 악천후에도 항공기가 안전하게 착륙할 수 있다. 방위각 지시 장치라고도 한다.
https://www.chosun.com/national/national_general/2024/12/31/ETADIMRWCRBLVIZ2AQE2OWQLH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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