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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화려한 휴가' 감독 "시민 응원봉이 국회 의사봉 작동시켰다"지금 이곳에선 2024. 12. 18. 11:33
[단독] '화려한 휴가' 감독 "시민 응원봉이 국회 의사봉 작동시켰다"
김지훈 감독, <오마이뉴스>에 소회 전해... "5.18 때와 다르지만, 역사의 중심은 결국 시민"
24.12.17 17:00l최종 업데이트 24.12.17 17:11l 이선필(thebasis3)
▲영화 <화려한 휴가>를 연출했던 김지훈 감독. 사진은 <니 부모 얼굴이 보고 싶다> 인터뷰 당시. ⓒ (주)마인드마크
"광주시민들은 그때 얼마나 외로웠을까 이번에 참여하면서 새삼 느끼게 됐다. 나와서 같이 알리고 행동하는 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민주주의라는 게 공짜로 얻는 게 아니구나. 제발 다음엔 온 국민이 이렇게 힘쓰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대통령 윤석열의 직무 정지가 확정된 지난 14일 저녁, 울먹이며 위와 같은 소회를 전하는 20대 청년들이 있었다. 영화나 책에서만 봤던 계엄을 몸소 겪고, 애써 여의도로 나가 자신의 목소리를 전하는 모습들에서 민주주의의 새로운 진화를 봤다는 것. 국회의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 직전 박찬대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과거가 현재를 구할 수 있는가.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그렇다'라고 답하고 싶다"고 말했다.
거리로 나온 10~30대들은 분명 영화 <서울의 봄>, <화려한 휴가>, 그리고 한강 작가의 <소년이 온다> 등을 떠올렸을 것이다. 자신들이 간접 체험한 25년 전 과거가 반복되게 하지 않기 위해 응원봉을 들었다. 선포 요건도 못 갖추고 심의·공고·통고 과정 모두 엉망이었다지만, 시민들은 발 빠르게 움직였다. 과거가, 역사가 현재를 구한 셈이다.
"역사의 중심은 정치인 아닌 시민"
17년 전 영화 <화려한 휴가>를 연출한 김지훈 감독도 그날 여의도에 있었다. 5.18 광주 민주화 항쟁을 정면으로 다룬 첫 상업영화로 평가받는 <화려한 휴가>를 두고 당시 김 감독은 "자유와 민주주의는 한 사람의 영웅이 만드는 게 아니다"라며 "5.18을 단지 복권하는 것에 역사적 소명이 있다고 생각하기보다는, 그 속에서 숨 쉬었던 사람들의 고민과 외침에 더 관심이 있었다"고 말한 바 있다.
17일 오전 통화가 된 김지훈 감독은 "여전히 현실감이 없다. 살다살다 겪지 말아야 할 세상을 만났다. 자책하고 있다"고 운을 뗐다.
"5.18 항쟁 때 10대였고, 30대가 돼서 <화려한 휴가>를 찍었고, 다시 비상계엄을 경험한 지금은 50대가 됐다. 역사와 진실의 문을 연다는 마음으로 영화를 만들었는데 또 다른 현실이 돼 버렸다. 영화를 리메이크한 것도 아니지 않나. 황당했고, 놀랐다."
김지훈 감독은 계엄 발동부터 탄핵소추안 통과까지 단, 11일이 걸린 것에 시민들의 힘이 절대적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1980년의 계엄이 있고, 그 주동자를 법정에 세우기까지 15년이 걸렸지 않나" 반문하면서 "엄청난 시민의식이며, 민주주의의 발동"이라고 소회를 전했다.
"광주항쟁을 다른 지역에선 폭동이자 북한국 개입으로만 알았고, 온갖 유언비어가 난무했다. 정부가 언론을 통제했고, 정부가 제시하는 자료만 사람들이 의지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광장은 100만, 200만 개의 응원봉이 역사의 렌즈 역할을 한 게 아닌가 싶다. 시민들의 응원봉이 국회의 의사봉을 작동시켰다. 그때의 광주는 고립됐고 왜곡된 정보로 보여졌다면 지금은 모든 시민이 다 체험했고, 언론도 함께 현장을 취재했다. 그만큼 사실을 정확히 보고 있는 것이다.
그때의 역사 현장도 그렇고, 지금도 거리를 가득 채운 건 시민들이었다. 계엄군이 국회로 향했을 때 막은 분들도 시민이었다. 상황은 변해도 역사의 중심은 결국 시민 같다. 시민들이 정치를 하는 것이지 일부 정치인들이 정치를 좌우한다고 볼 순 없을 것이다."
김 감독의 분석과 달리 정부·여당은 탄핵 트라우마를 언급하며, 필사적으로 이번 탄핵소추안 표결 때 반대표를 던졌다. 박근혜 국정농단보다 사안이 엄중한 내란죄 혐의이고, 명확한 증거들이 나오고 있음에도 105명 중 단 12명 만이 '반대' 당론에서 이탈해 탄핵 찬성표를 던졌다. 나아가 표결 직후 누가 찬성했는지 색출하고, 당에서 퇴출하려는 시도 또한 이어지고 있다.
"정치적 입장이나 견해가 다를 수 있긴 한데 거기서 배출한 대통령들이 두 번이나 탄핵 대상이 된 게 트라우마가 성립될 수 있을까. 국민의힘의 트라우마라기보다는 전 국민적 트라우마에 가깝다. 어떤 개인이나 집단의 문제가 아니라 나라의 문제다. 이럴수록 국민의 뜻과 같이 가야 한다.
박근혜는 법적 다툼의 여지는 있을 수 있겠지만 윤석열은 아예 국민을 잡으려 했고, 시민들을 공포에 떨게 했다. 다른 방법들이 있는데도 말이다. 계엄이라는 건 이젠 박제된 문구라고 생각했다. 젊은 분들은 그 존재조차 잘 몰랐을 테다. 영화로 치면 윤석열이 택한 게 엔지(NG)가 났음에도 계속 오케이샷이라고 하는 것과 같다. 시민이 주인공인데 그 주인공 자체가 촬영을 거부하고 연기하는 걸 원하지 않고 있다. 그럼에도 카메라를 돌리는 게 맞을까. 기획 의도 자체가 잘못된 것이라 생각한다."
하나의 생명체가 된 문화 예술의 힘
▲16일 오후 서울 종로구 경복궁앞에서 윤석열즉각퇴진사회대개혁비상행동 주최로 윤석열 대통령 파면과 처벌을 촉구하는 집회가 열렸다. 응원봉을 든 참가자들이 노래에 맞춰 구호를 외치고 있다. ⓒ 권우성
김지훈 감독 또한 내란 사태와 시민들의 저항을 지켜보고 직접 참여하면서 새삼 시대가 바뀌었다는 걸 체감했다고 한다. 비장함과 숭고함도 물론 중요하지만, 희극성과 즐거움 또한 핵심임을 그는 강조했다.
"20, 30대 젊은 분들이 역사의 주인공인 건 자명한 사실이고, 그분들이 이 사태를 바라보는 게 예전과 다른 것도 분명해 보인다. 학생운동이든 민주화운동이든 예전엔 역사를 바로 세운다는 갈망이 있었다면, 지금은 비극의 희극화라는 성격이 강해 보인다. 그러나 공통적으로 절박함이 있다. 축제하듯 케이팝 노래를 하는 건 절박함에서 나온 에너지라고 생각한다.
과거엔 정치 문제는 정치인을 통해 해결한다 생각했다면 지금은 좀 더 직접 민주주의에 가까워 보인다. 우리 때 운동은 독재를 척결하자며 한 목소리를 내는 함성이었는데 지금은 개개의 의견이 모여서 탄핵하라는 걸로 들리지 않나. 노래로 치면 과거의 운동이 일종의 독주였다면 지금은 화음이 어우러지는 오케스트라가 된 것이다. 엄청난 변화라고 생각한다. 응원봉을 봐도 각기 모양과 색이 다르잖나. 그게 어디를 향하고 있나, 같은 방향성을 지향하고 있게 된 셈이다."
여러 분석과 평가, 혹은 찬사가 있었지만 김지훈 감독은 분명 이번 일은 국민 개개인에게 큰 상처로 남을 수 있다고 걱정했다. 무서워하면서도 군인들을 막고, 환호하면서도 걱정하며 광장에 나온 사람들을 창작자로서도 꼭 기억하겠다는 다짐을 전했다.
"한강 작가의 <소년이 온다>도 그렇고, 오랫동안 진실을 향해 갈 때 노벨상으로 그 평가를 받은 것이라 생각한다. 창작이라는 건 이슈를 만드는 것도 있겠지만, 그 시선이 중요하다. 영화, 문학, 음악이라는 필터링을 통해 하나의 꼭짓점으로 가는 셈이다. 민주주의 완성에 예술이라는 게 큰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 딱딱한 역사책도 의미가 있지만, 창작물은 그 자체로 생명력이 있다. 많은 젊은이들이 움직인 것도 그런 창작물을 직간접적으로 고려해서 아닌가 싶다. 한강 작가님, 김성수 감독님 등이 큰 역할을 하셨다."
말대로 이제 헌법재판소의 시간이다. 김지훈 감독은 조심스럽게 의견을 전했다.
"감독들이 영화를 개봉시키면 나머진 관객의 몫이라고들 한다. 늘 관객이 옳다는 말이 있는데 국민들이 주인공이자 관객인 만큼 헌재에서도 정확하게 판단해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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