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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당신의 혀끝에서 그 맛이 느껴질 때 벌어지는 일 [물리학자 김상욱의 ‘격물치지’]
    문화 광장 2024. 11. 24. 10:27

    물리학자 김상욱의 ‘격물치지’

    당신의 혀끝에서 그 맛이 느껴질 때 벌어지는 일 [물리학자 김상욱의 ‘격물치지’]

    모든 감각이 종합적으로 어우러져 맛이라는 신비한 느낌을 만들어낸다. 〈흑백요리사〉의 경연 결과가 완전히 객관적일 수 없는 이유다. 과학적으로 맛은 왜 존재할까?

    김상욱 (경희대 물리학과 교수)

    입력 2024.11.24 08:07 호수 896

    넷플릭스 〈흑백요리사〉에서 심사위원들이 눈을 가린 채 음식을 맛보고 있다. ⓒ넷플릭스 제공

     

    넷플릭스 〈흑백요리사〉가 여전히 장안의 화제다. 그렇게 다양한 방법으로 요리를 할 수 있다는 사실에 놀랐고 요리사들의 숨 막히는 경연이 흥미로웠지만, 맛에 공정한 평가가 가능한 것인지 의문이 들기도 했다. 그래서 이번에는 맛의 과학을 이야기해볼까 한다.

    가장 근본적인 질문부터 해보자. 맛은 왜 존재할까? 과학적으로 보자면 맛을 느끼는 것이 생존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생명체가 살아가기 위해서는 외부에서 물질의 공급이 필요하다.

    공급된 물질은 생존에 필요한 에너지가 되거나 몸을 만들고 수리하는 데 사용된다. 만약 병균이나 독(毒)처럼 잘못된 물질이 체내로 들어온다면 우리는 엄청난 대가를 치러야 할 수 있다. 따라서 입으로 들어오는 물질이 내 몸에 필요한 것인지, 위험한 것은 아닐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

    ‘맛’은 바로 이 기능을 수행하는 감각이다.

    맛은 주로 혀와 코의 감각기관을 통해 감지된다. 혀로 느끼는 맛은 단맛·신맛·짠맛·감칠맛·쓴맛, 이렇게 다섯 가지다. ‘단맛’은 포도당을 감지한다. 포도당은 우리 몸의 에너지원이다.

    세포에 전달된 포도당은 호흡이라는 과정을 통해 ATP로 바뀐다. 사실 우리 몸의 진정한 에너지 화폐는 ATP(Adenosine triphosphate, 아데노신 3인산)다. 몸속에서 일어나는 대부분의 화학반응은 ATP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우리 몸은 1분에 40g, 하루에 58㎏ 정도의 ATP를 소모한다.

    58㎏이면 사람에 따라서는 거의 몸무게에 가까운 양인데, ATP를 재활용하기 때문에 가능하다. 이 정도 ATP를 공급하려면 매일 포도당 640g 정도를 먹어야 하며 음식으로는 2.1㎏ 정도가 된다. 그래서 우리는 날마다 먹어야 하고, 누구나 단맛을 좋아한다.

    식물은 잎에서 물과 공기를 이용하여 광합성으로 포도당을 합성한다.

    광합성은 잎에서만 일어나므로 합성된 포도당을 식물의 다른 부분으로 보내야 하는데, 이때 설탕의 형태로 전달한다. 그러면 줄기와 뿌리 등에 녹말의 형태로 저장된다. 우리가 보통 탄수화물이라고 부르는 물질이다. 입에서 녹말을 씹으면 포도당으로 분해되어 단맛이 난다. 설탕은 그 자체로 포도당과 과당의 결합체다. 그래서 설탕은 최고의 조미료다.

    수소이온, 나트륨이온, 아미노산의 맛

    ‘신맛’은 물에 녹아 있는 수소이온(H+)의 맛이다. 인간은 발효 음식을 먹는다. 발효와 부패는 한 끗 차이인데, 발효된 음식은 부패한 음식과 달리 보통 신맛이 난다. 물과 섞었을 때 수소이온을 만들어내는 물질을 산(酸)이라 한다. 식초에는 아세트산이 들어 있다. 사실 수소이온은 생명체에게 신맛 이상으로 중요하다. 포도당에서 ATP를 만들 때 수소이온을 이용하기 때문이다.

    수력발전소에서 물이 낮은 곳으로 떨어지는 힘으로 터빈을 돌려 전기를 만들듯이, 세포에서는 수소이온 농도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이동할 때 터빈 같은 것을 돌려 ATP를 생산한다. 이동한 수소이온(H+)과 산소(O)를 결합하여 물(H2O)이 되는 방식으로 수소이온을 제거해야 이 과정을 지속할 수 있다. 이때 필요한 산소는 혈관을 통해 모든 세포에 공급된다.

    피가 붉은색인 이유는 산소와 결합한 혈액의 철(鐵)이 붉은색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쉴 새 없이 숨을 쉬어야 한다.‘짠맛’은 나트륨이온(Na+)의 맛이다. 나트륨은 삼투압을 조절하고 신경 전기신호 발생에 필요하다. 뇌에서 신경세포들 사이 소통은 전기신호로 이루어진다. 인간이 만든 통신기기에서는 전자가 움직여 전기신호를 만든다.

    반면 신경세포는 나트륨과 칼륨을 움직여 전기신호를 만든다. 뇌의 무게는 몸무게의 2%에 불과하지만, 우리 몸 전체 에너지의 20%를 사용한다. 뇌가 사용하는 에너지의 절반가량이 나트륨이온을 세포 밖으로 퍼내는 데 쓰인다. 나트륨이 없으면 뇌의 활동이 멈춘다.

    모든 동물은 신경계를 가진다. 동물은 글자 그대로 ‘움직이는(動)’ ‘물(物)’이라 운동을 제어할 신경계가 필요하다. 따라서 모든 동물에게는 나트륨이 있어야 한다. 반면에 식물은 신경계가 없어 나트륨이 필요 없다. 동물이 식물만 먹어서는 나트륨을 확보할 수 없다는 뜻이다.

    식물만 먹는 초식동물은 항상 나트륨에 굶주려 있다. 육식동물은 다른 동물의 몸을 먹어서 나트륨 확보가 가능하지만 충분치 않기는 마찬가지다. 신경세포에서 전기신호를 만들 때 나트륨이온이 통과하는 통로는 오직 나트륨만 지날 수 있다. 즉, 나트륨을 대체할 수 있는 원자는 없다는 뜻이다.

    그래서 예로부터 나트륨과 염소의 화합물인 소금은 귀중한 자원이었다. 짠맛은 단순히 짠 미각이 아니라 모든 풍미의 기반이 되어 소금 없이 맛을 내기는 불가능하다. 나트륨이 꼭 필요한 우리는 짠맛에 미치도록 진화했다.

    MSG는 글루탐산의 감칠맛과 나트륨의 짠맛을 함께 가진 물질이다. 인공조미료의 원료인 MSG를 넣으면 음식이 맛깔나는 이유다.ⓒ연합뉴스

     

    ‘감칠맛’은 아미노산의 맛이다. 아미노산은 단백질의 구성 성분이다. 지금 우리 몸에서 일어나는 대부분의 화학반응을 제어하는 것이 단백질이다. 인간은 인간을 낳고 고양이는 고양이를 낳는 것은 유전자 때문이다.

    유전자가 가진 정보는 바로 단백질을 만드는 정보다. 생물은 ‘단백질의, 단백질에 의한, 단백질을 위한’ 화학기계다. 2024년 노벨화학상은 단백질의 3차원 구조 예측 인공지능 프로그램 알파폴드2를 만든 공로로 구글의 허사비스 등에게 수여되기도 했다(〈시사IN〉 제893호 ‘2024 노벨상 봤지? 인공지능 근간에 물리학 있다’ 기사 참조). 따라서 생존하려면 단백질 맛이 좋게 느껴져야 한다.

    감칠맛은 20여 종에 달하는 아미노산 가운데 주로 글루탐산과 아스파트산을 감지한다. 글루탐산에 수소 대신 나트륨을 붙인 것을 MSG(Mono Sodium Glutamate)라고 부른다. MSG는 글루탐산의 감칠맛과 나트륨의 짠맛을 함께 가진 물질이다. 인공조미료의 원료인 MSG를 넣으면 음식이 맛깔나는 이유다.

    후각을 묘사하기 어려운 이유

    ‘쓴맛’은 해로운 물질의 맛이다. 쓴맛은 다양하지 않다. 이것은 그냥 먹지 말라는 신호일 뿐이기 때문이다. 신생아 때에는 입안에 쓴맛 수용체가 많아서 못 먹는 음식이 많다. 신생아는 위험한 물질로부터 보호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며 쓴맛 수용체가 줄어 점차 쓴 음식도 잘 먹을 수 있게 된다. 쓰다고 모두가 해롭지 않다는 것을 학습한 덕분이다. ‘매운맛’은 맛이 아니라 통증이다. 고추에 들어 있는 화합물 캡사이신은 우연히 온도 수용체와 결합하여 뜨거운 통증을 일으킨다. 혀만이 아니라 눈이나 몸의 다른 부위에 캡사이신을 발라도 뜨거운 통증을 느낄 수 있다.

    음식을 먹을 때, 다섯 가지 맛만을 느끼는 것은 아니다. 세상에는 음식의 종류만큼이나 수많은 맛이 존재한다. 하나의 음식에서도 부위에 따라 씹을 때마다 수많은 맛이 느껴진다. 맛의 다양성은 미각이 아니라 후각에서 온다. 눈이 세 가지 색을 감지하고 혀가 다섯 가지 맛을 감지하는데, 코에는 무려 400여 종류의 후각세포가 있다. 아직 우리는 후각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다.

    후각은 묘사할 단어가 거의 없는 감각이기도 하다. 따라서 기억으로 되살리기도 힘들다. 눈 감고 어제 먹은 음식을 상상해보라. 눈앞에 음식을 그려낼 수 있으리라. 그때 들리던 로제의 ‘아파트(APT.)’를 머릿속에서 부르는 것도 할 수 있다. 하지만 음식 냄새를 떠올리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냄새는 기억에 저장되지 않는다.

    우리가 사용하는 향은 대개 식물이 만든 것이다. 식물은 향 제조 화학공장이기 때문이다. 식물은 움직일 수 없어서 적의 공격에 대해 화학무기로 반응한다. 바로 향이 식물의 화학무기다. 담배의 니코틴이나 커피의 카페인은 원래 독성물질이다. 담배나 커피가 몸에 좋지 않은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인간은 이것을 즐기는 희한한 동물이다.

    고추의 매운맛을 내는 캡사이신도 동물에게 통증을 유발하는 식물의 화학무기다. 하지만 새는 온도 수용체가 캡사이신에 반응하지 않아 매운맛을 못 느낀다. 새가 고추를 먹고 씨앗을 멀리 옮겨줘야 하기 때문이다. 캡사이신은 고추가 만든 정교한 화학무기인 셈이다. 왠지 고추는 유독 캡사이신을 즐기는 한국인을 미워할 것 같다.

    신생아 때에는 입안에 쓴맛 수용체가 많아서 못 먹는 음식이 많다.ⓒ시사IN 포토

    맛은 재료에만 있지 않다. 조리 과정에서 새로운 향이 생기기도 한다. 당과 아미노산을 함께 넣고 150~165℃ 정도로 가열하면 ‘마이야르 반응’이 일어나는데, 이때 수백 가지 향기 물질이 생성된다. 생선을 구울 때 물을 적절히 제거하지 않으면 물 때문에 온도가 충분히 오르지 않아 마이야르 반응이 불완전하게 일어난다. 생선을 굽는 것이 아니라 100℃의 물에 끓이는 셈이라 풍미가 떨어지게 된다. 맛은 미각과 후각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촉각과 시각, 때로 청각도 맛에 지대한 영향을 준다. 아무리 훌륭한 재료를 쓰더라도 불어터진 국수를 좋아할 사람은 없지 않은가.

    맛은 생각보다 복잡한 느낌이다. 모든 감각이 종합적으로 어우러져 맛이라는 신비한 느낌을 만들어낸다. 그래서 상당 부분 주관적일 수밖에 없다.

    〈흑백요리사〉의 경연 결과가 완전히 객관적일 수 없는 이유다. 본질적으로 미각은 몸에 필수적인 자원을 확보하고 해로운 물질을 거르기 위해 존재하며, 후각은 입으로 들어가는 물질의 좋고 나쁨을 정교하게 판단하기 위해 존재한다. 결국 맛은 우리의 즐거움이 아니라 생존을 위해 있는 것이다.

    ※ 참고 도서: 〈맛의 원리〉(2022), 〈물성의 원리〉(2021), 최낙언 지음, 예문당 펴냄 / 〈냄새〉 A. S. 바위치 지음, 세로북스 펴냄, 2020

     

    https://www.sisa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54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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