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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 귀여웠다간 뼈도 못 추리겠네 [임보 일기]지금 이곳에선 2024. 8. 18. 10:51
두 번 귀여웠다간 뼈도 못 추리겠네 [임보 일기]
애완에서 반려로, 반려 다음 우리는 함께 사는 존재를 무어라 부르게 될까요. 우리는 모두 ‘임시적’ 존재입니다. 나 아닌 존재를, 존재가 존재를 보듬는 순간들을 모았습니다.
박임자 (탐조책방 대표)
입력 2024.08.18 07:55 호수 882
언니 오빠들이 더 이상 기다리기 힘들었는지 “오늘이야!” 하고 외치고는 그동안 정들었던 둥지를 박차고 날아올랐어요. 나도 있는 힘을 다해 날개를 펼쳤는데 눈을 떠보니 길바닥이었어요. 까치 형아들이 저를 빙 둘러싸고 깍깍댔어요. ‘이제 죽었구나’ 하고 눈을 질끈 감았는데 ‘끼익’ 차 세우는 소리가 들리더니 여자 사람이 다가왔어요. 까치 형아들은 슬금슬금 도망갔어요.
7월5일 경기도 수원의 한 도로에서 어린 소쩍새를 발견했다. ⓒ박임자 제공
여자 사람은 손으로 나를 덥석 잡더니 “차들이 다니는 길에서 어쩌려고 그러고 있어?” 묻고는 도로 바깥으로 나를 데리고 나왔어요. 나오자마자 차가 ‘쌩~’ 하고 지나갔어요. 엄마가 둥지에서 나가면 차도 조심하고 까치도 조심하라고 했던 말이 생각났어요. 우리 같은 어린 새들은 너무 귀엽게 생겨서 사람들에게 발각되면 납치를 당할지도 모른다고 했어요.
아직 어려서 잘 날지 못할 뿐, 근처에서 엄마가 우리를 보살펴주고 있는데 사람들은 그것도 모르고 우리를 구해준다고 데려가는 일이 종종 있대요. 그러면 영영 엄마와 생이별을 하게 될지도 모르는데 말이에요. 여자 사람은 한 손으로는 나를 잡고, 다른 한 손으로는 네모난 기계에다 대고 말을 하기 시작했어요. 소쩍새가 어쩌고, 까치가 저쩌고, 도로가 어쩌고 하면서 말이죠. 그러더니 내 몸을 막 만졌어요. 날개도 펼쳐보고 몸통도 살펴보고 발가락도 만져보더니 기계에다 대고 “다친 데는 없는 것 같아요”라고 말했어요.
‘여자 사람아, 나는 괜찮단다. 이제 그만 날 좀 놓아주면 안 되겠니?’ 하고 부리로 ‘딱딱’ 소리도 내고 발버둥을 쳐도 아직 놓아줄 마음이 없는 모양이에요. 언뜻 들으니 충남야생동물구조센터와 이야기를 하는 것 같은데 그곳은 엄마한테 들은 적이 있어서 알고 있어요. 우리 같은 야생동물이 다치면 치료를 해서 원래 살던 곳으로 돌려보내주는 좋은 곳이라고요.
여자 사람은 기계에서 들리는 목소리에게 “다친 데는 없는 것 같은데 주변에 까치들이 많아서 괜찮을까요?”라고 물었어요. “주변에 덤불이나 숲이 있으면 그곳에 놔주세요”라는 답이 돌아왔어요. 여자 사람은 불안한지 재차 물었어요. “100m 정도 떨어져 있는 곳에 놔줘도 어미를 만날 수 있을까요?” “낮에 숨어 있다가 저녁에 소리를 내면 어미가 금방 찾을 거예요.”
충남야생구조센터의 자문을 받아 근처 숲에 어린 소쩍새를 풀어주었다. ⓒ박임자 제공
‘들었지? 이제 그만 날 좀 놓아달라고! 나를 꽉 쥐고 있으니 날개가 저려 죽겠어!’ 하고 눈을 부릅떠도 여자 사람은 천천히 걸어갔어요. 근처에 있는 무슨 책방에서 일을 한다는데 ‘오늘 하루만 책방에서 같이 있다가 밤에 보내주고 싶네’라는 마음의 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아 덜컥했어요. 여자 사람은 다행히 마음을 고쳐먹고는 얼마 떨어지지 않은 숲으로 나를 데려갔어요.
보내주기 아쉬웠는지 나를 또 찬찬히 쳐다보더니 나무 위에 올려줬어요. ‘두 번 귀여웠다간 뼈도 못 추리겠네’ 하고는 쏜살같이 튀었지요. 아이쿠 십년감수했네!
뭐 암튼 까치 패거리들에게서 구해준 건 생큐! 엄마는 저녁이 되면 잘 찾아볼 테니 너무 걱정은 말라고. 10월이 되면 나는 떠나겠지만 내년에 꼭 다시 돌아와서 ‘소쩍, 소쩍’ 안부 전할 테니 이 소쩍새를 잊지나 마시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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