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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 8일치로 3개월 버텨, 무관심 속 신용불량 나락으로"지금 이곳에선 2024. 1. 23. 13:15
"임금 8일치로 3개월 버텨, 무관심 속 신용불량 나락으로"
[태영사태 ①-르포] 태영건설 서울 청년주택 사업현장에서 만난 노동자들
24.01.23 12:00l최종 업데이트 24.01.23 12:00l
새해 들어 태영건설의 워크아웃(채권단 공동관리)으로 경제 전반에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 물가상승과 고금리, 경기침체에 따른 부동산 시장의 위축 때문이지만, 태영 윤씨일가의 무리한 사업확장과 부실경영도 원인으로 꼽힌다. 태영 대주주의 뒤늦은 자구노력으로 워크아웃은 시작됐지만, 시장의 불안은 여전하다. 게다가 수많은 협력업체와 노동자 등에게 피해가 이어지고 있다. <오마이뉴스>는 태영사태를 둘러싼 부동산발 위기의 현장과 대안 등을 모색해본다.[편집자말]
▲ 태영건설의 서울 상봉 청년주택 개발사업현장. 지난해 11월부터 현장 노동자들에 대한 임금지급이 미뤄지면서 17일부터 공사 전면중단에 들어갔다. 한 노동자가 건물 앞에 서 있는 모습.ⓒ 김종철
지난 16일 오후 서울 중랑구 지하철 7호선 상봉역 앞.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태영건설 상봉 청년주택 사업장에서 철근팀장을 맡고 있는 박중수(58)씨. 전화기 너머로 굵직한 목소리가 전해졌다. "천천히 넘어오세요"라고. 휴대폰의 구글 지도 화면은 걸어서 10여분. 다가구 주택이 즐비하게 차 있는 골목길로 안내했다. 저 만치 길 옆으로 공사 현장을 알리는 커다란 입간판과 함께 하늘 위로 각종 건축 자재를 실어나르는 거대한 임시 크레인도 보였다.
예년보다 춥지 않은 날씨였다. 공사 현장을 알리는 커다란 철판 너머로 '크르릉~'같은 기계음들이 들려왔다. 현장 옆쪽으로 공사 관계자들이 드나드는 문이 보였다. '보행자 출입구'라는 푯말이 보였다. 직원들은 별도의 보안문을 통해 현장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물론 기자처럼 외부인의 출입은 철저하게 통제됐다.
노란색 안전모에 갈색 안경을 쓴 박씨가 문을 열고 나왔다. 이어 동료 2명도 함께 기자를 맞았다. 그들과 인근 식당으로 자리를 옮겼다. 탁자 위에 따뜻한 물이 올라왔다. 안전모와 마스크를 벗자 거무스레한 얼굴이 엿보였다. 박씨는 올해 26년차로 공사현장에서 잔뼈가 굵은 베테랑급이다. 상봉 현장에선 철근팀장을 맡고 있다.
자리에 앉자, 그는 한숨에 내밷었다. 그리고 대뜸 "너무 답답하다"고 했다. 온 나라가 태영건설 워크아웃으로 들썩거리는데, 정작 자신들 이야기는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는다고 했다. 신문이나 방송, 인터넷 어디를 들춰봐도 그렇다. 정부나, 태영이나, 채권단의 입에서 공사 현장 노동자, 협력업체 직원 등의 임금 지급에 대한 언급 자체를 하지 않고 있다는 것.
"석달동안 8일치 임금으로 버텨…"
▲ 태영건설 워크아웃(채권단 공동관리절차) 사태가 좀처럼 가라앉지 않고 있다. 서울 상봉 청년주택 사업장에서 노동자들이 철근공정 작업을 하고 있는 모습. 이들 대부분은 지난해 11월부터 3개월째 임금을 제때 받지 못하고 있다. 지난 17일 이들 역시 임금체불 등 이유로 공사 중단을 선언했다.ⓒ 김종철"보세요. 오늘 16일인데, 우리가 11월부터 한푼도 못받고 일하고 있어요. 회사(하도급업체)에선 일단 일을 진행해달라고 해서 해왔는데... 다른 곳은 올스톱이잖아요. 그나마 여긴 (서울)시에서 주관을 하니까..."
청년안심주택은 서울시가 지난 2017년부터 추진해 온 신혼부부를 포함해 젊은 세대를 위한 내집 마련 사업이다. 상봉 사업장은 연면적 5만352평방미터, 지하 4층~ 지상25층 주상복합건물로 782세대가 들어선다. 계획대로라면 올해 말이면 공사가 끝나야 한다. 박 팀장은 "초기 공사 때 예상치 못한 암반이 발견돼, 당초보다 공사기간이 4-5개월 늦춰졌다"고 했다.
현재 8층까지 올라간 상태. 박 팀장과 함께 철근팀으로 일하는 노동자만 40여명이다. 이날처럼 영상의 날씨라도 지상 5층 이상 높이의 현장은 또 다르다. 공기(공사기간)를 맞추기 위해 쉴 새 없이 철근을 나르고, 해체하고, 고정하고… 그나마 공공기관 발주 사업현장에, 대형건설사가 참여하는 사업장이었던 점(태영은 상봉현장의 지분 30%를 갖고있다)이 위안거리라면 위안이었던 것.
하지만 작년 하반기부터 현장 분위기가 이상했다고 한다. 박 팀장은 "작년 11월부터 이상한 이야기가 나돌기 시작했다"면서 "태영 지방 현장이 (멈춰)서고, 어음이 돌고있다고 하면서..."라며 씁쓸해 했다.
태영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현금 유동성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일종의 '어음'성격인 외상매출채권담보대출(외담대)로 자금을 조달했지만, 만기에 맞춰 이를 제대로 갚지 못하고 있다. 태영이 하도급업체에 공사대금 등을 현금 대신 외상매출채권으로 주고, 해당업체는 이를 담보로 은행에 어음할인을 받아 자금을 조달해온 것이다. 문제는 태영건설이 만기일에 맞춰 외담대를 상환하지 못해, 은행도 해당 어음 할인을 사실상 거부해왔다.
태영으로부터 상봉 현장공사 맡은 업체는 전북에 본사를 둔 A사다. 박 팀장 등 현장 노동자들은 A사와 계약을 맺는다. 물론 부정기적이다. 계약이 1년을 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공사 진행상황에 따라 단기 계약이다. 이들도 지난 10월 21일부터 일을 맡았다.
박 팀장과 함께 나온 김아무개씨는 15년차다. 그 역시 답답하기는 마찬기지다. 김씨는 "A업체에선 일단 일을 하자고 계속 우리를 압박하고 있다"면서 "태영이 3개월짜리 어음을 (공사) 대금으로 줬다고 하는데, 은행에서 이것을 안 받아주니까..."라고 말했다. 그가 말을 곧장 이어간다.
"작년 11월부터 태영 어음돌리기 시작... 하도급업체는 '지켜보자' 말밖에"
▲ 태영건설의 서울 상봉 청년주택 개발사업장. 이곳은 지하4층~지상25층의 782세대 단지가 올해 말 들어설 예정이었다. 하지만 지난해 11월부터 석달째 임금이 지급되지 않아 지난 17일 현장 노동자들이 작업을 중단했다.ⓒ 김종철"A사는 '지켜보자'고 말만 해요. 언제 어떻게 지급하겠다는 말이 없어요. 그래놓고 '현장이 안 돌아가면 안된다'고 하는데... 여기 현장에 나와있는 태영 직원들은 월급 다 받고 있다고 해요. 정말 웃기지도 않죠. 정작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몇달째 돈 한푼 못 받고 있는데..."
박 팀장이 대꾸한다.
"A사 입장에선 오히려 태영 눈치를 봐요. 태영쪽에 강하게도 못해요. 나중에 다시 태영 공사를 따야하니까요. 우리 노동자를 볼모로 삼고, 아무도 책임은 안지려고 하고... 정부라도 나서서, 하도급 업체나 현장 노동자들 임금부터 챙겨야는 것 아닌가요? 누가 그런 말을 합니까?"
잠시 모두 말을 잇지 않았다. 침묵이다. 스스로 막내라는 또 다른 김아무개씨가 입을 열었다. 그는 "3개월째 임금이 밀리다보니까 생활 자체가 안된다"고 했다. 그는 이제 갓 2살짜리 아이 아빠다. 아이 분윳값, 기저귀도 제대로 사 들고 간 지도 오래다.
"신용카드로 급전을 내서 돌려막기로 생활을 했는데... 1주일 연체되니까, 바로 신용에 문제생기기 시작하더라고요. 카드 정지 등 문자가 오고, 신용 상태가 바로 추락하면서 불량자 수준으로... 이번 사건으로 신용불량자로 떨어진 사람이 꽤나 많아요."
그는 부모님에게 급하게 돈을 융통했다. 밀린 카드 비용부터 바로 갚았다. 그렇다고 당장 신용이 회복되는 것도 아니었다. 친척 등으로부터 빌린 돈으로 일단 생활은 하고 있다.
15년차 김씨도 크게 다르지 않다. 그는 고2, 중3 등 두 자녀를 두고 있다. 학원비 등 한창 돈이 들어갈 때다. 하지만 학원 보내는 것은 언감생심이다. 옆 동료의 이야기를 듣던 그 역시 쓴 웃음을 지었다. 그는 "아내도 TV 보고 알고 있죠. 차마 말을 잘 건네지 않더라고요"라며 "아내의 외벌이로 간신히 버티고 있지만, 가족들에게 좀더 잘해주지 못하는 미안함 때문에 잠을 설친다"고 했다.
"분유, 기저귀 하나도... 카드 돌려막기로 한순간에 신용불량자 나락으로"
▲ 태영건설의 서울 상봉 청년주택사업장에서 철근공정팀장을 맡고 있는 박철민씨. 건설 현장에서만 26년째 일하고 있는 베테랑이다.ⓒ 김종철박 팀장 역시 자녀가 둘이다. 대신 둘다 30대 초중반이다. 아직 독립적인 가정을 꾸리진 않았다. 박 팀장은 "큰 아이는 여자친구도 있지만 아직 결혼을 생각 못하고 있다"고 했다. 조그마한 전셋집이라도 마련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 싶지만 이 역시 녹록지 않다. 그 역시 가족에 대한 미안함에, 얼굴 보며 먼저 말을 건네지 못한다고 했다.
기자가 "석달 가까이 임금 한 푼 없이 생활 하시느라 고생이 많으셨다"고 하자, 이들은 서로 마주보며 입가에 옅은 미소를 띠었다. 박 팀장은 "솔직히 말해서, 건설현장 노동자들은 대체로 심성이 착하고 좋다"고 했다.
그는 최근 10여년 사이 건설 현장 노동자에 대한 처우가 개선된 부분도 있다고 했다. 문재인 정부 때는 기업들도 현장 목소리를 듣고, 반영하려는 노력이라도 했다는 것. 경조사 비용이나 휴일 수당, 기상악화 등으로 일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을 때도 노사간 협의를 통해 간접지원도 해줬다고 했다.
박 팀장은 "윤석열 정부 들어서 적어도 이런 관행이나 현장에서의 노사 협의 등이 사라졌다고 보면 된다"면서 "대통령이 나서서 건설노조와 노동자를 악마로 취급하는데, 기업들이 우리를 제대로 대해주겠는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임금 체불도 마찬가지다. 그는 "과거 공사 현장에서도 시공사 등의 부도가 있었지만, 최근 몇 년 사이 이처럼 3개월씩 체불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고 했다. 하도급 업체들도 자체 현금으로 밀린 임금부터 주는 분위기였다고 했다.
이들과 함께 상봉 현장을 지키는 노동자들은 100여명. 대부분은 두 달 반이 지나도록 임금을 받지 못하고 있다. 박 팀장 등 철근골조 담당했던 이들은 지난 10월 20일 이후 8일치 임금만 받았을 뿐이다.
박 팀장의 휴대폰이 울렸다. 박철민 건설노조 서울경기부북지역 교섭위원이었다. 그가 상봉 사업장에 방문했다고 했다. 그는 잠시 자리를 비웠다. 태영 워크아웃 개시에 따라 채권단의 실사가 진행되면서 대응책을 논의하기 위해서다. 박 팀장 등 상봉 현장 노동자들도 더 이상 기다릴 수 없다.
"태영이나 정부나, 너무 무책임... 최소한의 삶을 살 수 있도록 해야"
▲ 태영건설의 워크아웃(채권단 공동관리절차)이 시작과 함께 대금지급도 유예되면서 하청업체 노동자들의 피해도 더욱 늘어나고 있다.ⓒ 김종철잠시 시계를 보더니, 김씨가 말을 잇는다.
"뉴스를 보면, '태영살려야 한다' '채권단이나 하도급 업체 도와야 한다'는 말만 나와요. 그런데 정작 제일 힘들게 일하는 사람들 이야기는 누구도 하지 않아요. 지금 현장 임금이 얼마나 밀렸고,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우리는 그 이야기를 듣고 싶은 거예요."
듣고 있던 후배 김씨도 한숨을 내쉰다. 그는 "채권단이 실사를 한다고 하는데, 아마 우리에게 또 기다리라고 할 것 같다"고 했다. 이어 "이미 두 달 반 이상 기다리고 있는데, 언제까지 또 기다려야 하는가"라며 "당장 최소한 사람답게 살 수 있는 방안을 내주고 난 다음에 실사든, 조사든 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그들과 식당을 나섰다. 공사장 정문에 레미콘 차량이 대기하고 있었다. 태영 건설 현장 중에 거의 유일하게 돌아가고 있다. 건설노동자들의 희생에 따른 것이다. 하지만 얼마나 지속될지 아무도 장담 할 수 없다. 현장 입구에서 박철민 건설노조 교섭위원을 만났다. 그는 "태영뿐 아니라 정부도 너무 무책임하다"라며 "이대로라면 이곳 현장도 '셧다운'될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다시 공사장 옆으로 돌아 나와 박 팀장을 만났다. 사진을 찍어도 되느냐고 했다. 얼굴을 드러내도 상관없다고 했다. 떳떳하기 때문이라고. 그리고 꼭 하고싶은 말이 있다고 했다.
"책임을 져야죠. 부실경영을 했으면 그에 맞게. 정부도 제대로 관리감독 안했으면... 책임은 지지 않고, 정작 현장에서 묵묵히 일한 사람들에게 다 떠넘기고 말이죠. 정부나 서울시도 적극 나서서 현장 노동자들부터 챙겨줬으면..."
이들과의 인터뷰 이후, 박 팀장 등 상봉현장 노동자들은 17일부터 현장 출근을 거부하고 있다. 태영 워크아웃 개시와 함께 대금 지급이 유예됐고, 이들 하청업체 노동자의 임금 지급도 당장 담보할 수 없게 됐기 때문이다. 태영쪽은 1월말까지 11월치 임금 지급을 준비중이라고 했다. 하지만 12월치 임금 지급은 명확하지 않다. 일을 시켰으면 제때 임금을 지급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하다. 이처럼 '너무나 당연한 일'이 유독 사회적 약자에게만 당연하지 않은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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