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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극한의 가성비 추구 ‘체리슈머’가 늘어난다
    문화 광장 2022. 12. 23. 20:51

    극한의 가성비 추구 ‘체리슈머’가 늘어난다

    [WEEKLY BIZ]

    [Cover Story] 알뜰 소비 전략, 내년 소비 트렌드로

    곽창렬 기자

    입력 2022.12.15 22:00

    체리슈머/일러스트=김영석

    마흔 살 직장인 김모씨는 ‘파티장’으로 불린다. 그는 월 1만7000원짜리 넷플릭스 계정을 만든 뒤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 공유 사이트를 통해 모집한 세 명을 끌어들여 그룹을 만들었다. 이렇게 모인 네 명은 한 달에 각각 4250원씩 내고 계정을 나눠 갖는다. 김씨처럼 계정을 만들어 공유하는 사람을 ‘파티장’이라고 하고, 돈을 내고 계정을 공유받는 사람을 ‘파티원’이라 부른다.

    김씨는 웨이브와 티빙, 디즈니플러스도 같은 방식으로 사람을 모아 계정을 공유한다. 한 달 1만6000원으로 네 종류의 OTT를 시청하는 셈이다. 김씨는 “계정을 공유하던 사람이 그만 보겠다고 탈퇴해도 금방 다른 사람을 채울 수 있을 정도로 대기자가 많다”고 했다.

    김씨처럼 최대한 알뜰하게 소비하는 전략적 소비자를 가리켜 최근 ‘체리슈머’라는 신조어가 생겼다.

    김난도 서울대 소비자학과 교수 등은 ‘트렌드 코리아 2023′에서 내년 국내 소비 트렌드 가운데 하나로 체리슈머의 등장을 꼽았다. ‘체리피커’(cherry picker)와 컨슈머(소비자)를 합성한 단어다. 체리피커가 케이크에 올려진 체리만 쏙 빼먹듯 혜택만 누리는 얌체 소비자라는 부정적인 의미가 강하다면, 체리슈머는 남에게 크게 민폐 끼치지 않는 선에서 자원과 정보를 총동원해 알뜰하게 소비한다

    는 의미여서 더 긍정적이다.

    김수진 서울대 트렌드분석센터 연구원은 “찰스 디킨스의 소설 ‘크리스마스 캐럴’에 등장하는 주인공 스크루지 영감은 돈이 있어도 아예 소비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구두쇠 소리를 들었지만, 체리슈머들은 자신이 가진 돈으로 이익을 극대화한다는 점에서 다르다”며 “향후 몇 년간 경기가 하락하고 물가가 오를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체리슈머가 소비자 트렌드를 이끄는 대세로 떠오를 것”이라고 했다.

    ◇400원에 사고파는 OTT 하루 시청권

    체리슈머의 대표적인 소비 전략 가운데 하나가 ‘공동 구매’다. 꼭 사고 싶지만 혼자 모든 비용을 감당하기는 부담스러울 경우 여러 사람이 함께 사들이는 대신 비용은 나눈다.

    OTT 계정 공유가 대표적인 예다. 초창기 OTT 업체들은 대체로 계정 하나에 프로필을 최대 7개까지 둘 수 있도록 했다. 계정 하나로 가족이 동시에 접속해 볼 수 있도록 하겠다는 취지였다.

    이런 후한 인심을 바탕으로 유료 구독자를 대거 끌어모았다. 그런데 체리슈머는 가족이 아니라 남과 계정을 공유해 비용을 절약하는 방법을 고안해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이 국내 OTT 이용자 3000여 명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약 52%가 유료로 구독한 계정을 가족이 아닌 타인과 공유 중이다.

    현재 국내에는 OTT 계정 공유를 위해 사람을 모으는 사이트가 10여 개에 이른다. 심지어는 하루 단위로 계정을 공유하는 사이트도 등장했다.

    넷플릭스 등의 이용권을 구매해 계정을 만든 뒤 이를 하루 단위로 쪼개 400~600원에 판다. 영화와 드라마 등을 단기간에 몰아서 보겠다는 사람들이 몰리면서 하루짜리 공유 계정은 빠르게 동나고 있다.

    쿠팡이츠 배달라이더의 모습. 쿠팡이츠는 배달비를 아끼려는 주문자들을 위해 서울 등 일부 지역에서 공동 배달 서비스를 시행 중이다. /쿠팡이츠

    배달료가 오르면서 최근엔 ‘배달 공구’도 유행이다. 여러 사람이 배달 음식을 함께 주문한 뒤 배달료를 나눠 내는 것을 말한다. 특정 음식점에서 파는 음식을 함께 주문하고, 제3의 장소를 배달 지역으로 지정해 각각 음식을 가져간다. 배달앱 ‘쿠팡이츠’는 배달 공구 소비자들을 겨냥해 지난 8월부터 ‘친구 모아 함께 주문’이라는 배달 공구 서비스를 시작했다.

    넉 달 정도 서비스를 진행한 결과 주로 20대 소비자가 평일 오전 10시~12시에 직장이 많이 몰린 도심에서 가장 많이 공동 배달을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주문량이 많은 메뉴는 커피나 샌드위치, 샐러드 등 디저트류라고 한다. 배달 업계 관계자는 “배달앱 입장에서도 한 번에 많은 주문을 받을 수 있고, 손님을 더 끌어모을 수 있기 때문에 공동 배달을 마다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최저가 확인은 필수, 기프티콘도 할인 구매

    체리슈머들은 기프티콘이나 영화 관람권도 웬만하면 제값 주고 사지 않는다. 이들이 즐겨 찾는 곳이 온라인 쿠폰 거래 플랫폼이다. 플랫폼 운영 업체는 온라인 쿠폰을 쓰는 대신 팔려는 사람으로부터 쿠폰을 사들인 뒤 약간의 이윤을 붙여 다시 내놓는데, 대체로 정가보다 10~20% 싸다는 게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모바일 쿠폰 거래 플랫폼 ‘니콘내콘’의 경우 4500원짜리 스타벅스 아이스 아메리카노(톨 사이즈) 쿠폰이 20% 할인된 3600원에 팔리고 있다. 사용 기한이 9일 남은 CGV 영화 할인권은 1만5000원짜리가 30% 이상 할인된 9960원에 나와 있다. 지난달 기준으로 ‘니콘내콘’의 앱 다운로드 수는 99만건, 회원은 71만3000여 명에 이른다. 니콘내콘 운영사인 더블앤씨 윤성식 디렉터는 “2020년만 해도 월 이용자 수가 9700여 명에 불과했는데, 지금은 3만2000명이 넘는다”며 “최근 들어 소비자들이 더 영리해지면서 이용자가 크게 증가하고 있다”고 했다.

    내가 사는 가격이 최저가가 맞는지 두세번 확인하는 것도 체리슈머에겐 필수다. 28세 여성 직장인 이모씨는 온라인 쇼핑으로 물건을 구입할 때 ‘최저가’나 ‘특가’ 등이 붙어 있는지 먼저 확인한 뒤 ‘프라이스웨건(price wagon)’이라는 앱을 열어 진짜 특가가 맞는지 재확인한다. 상품 정보를 입력하면 해당 상품의 할인율이 어느 정도인지 판별해주는 앱이다.

    예를 들어 현재 한 쇼핑몰에서 210g짜리 햇반 24개를 2만4210원에 판매 중인데, 이런 정보를 앱에 입력하면 ‘soso~ 딜’이라는 평가가 뜬다. 할인 폭이 크지도 않고, 그렇다고 비싸지도 않은 그저 그런 가격이라는 것이다. 햇반 외에 만두, 스팸, 콜라, 참치 등도 비교할 수 있다. 이씨는 “몇천원 차이라도 이렇게 꼼꼼히 비교하면 한 달에 2만~3만원은 아낄 수 있다”고 했다.

    돈을 아끼기 위해서라면 ‘국적 변경’도 마다치 않는다.

    올해 초부터 온라인 커뮤니티와 소셜미디어엔 아르헨티나·튀르키예·인도 등으로 거주 국가를 변경해 유튜브 프리미엄 구독료를 아꼈다는 글이 많이 올라온다. 국내에서는 월 1만원 넘는 구독료가 이들 국가에서는 2000~3000원 정도로 저렴하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가상사설망(VPN)을 통해 우회 접속해 현지 요금을 적용받는 것이다.

    ◇조각 상품 내놓는 기업들

    가격에 민감한 체리슈머가 늘자 기업들도 이들을 사로잡을 만한 상품과 서비스를 발빠르게 내놓고 있다. 중고거래 플랫폼인 당근마켓은 올해 7월 서울과 경기도 일부 지역을 대상으로 인근 주민들이 공동 구매할 수 있는 ‘같이사요’ 서비스를 시작했다.

    이곳에는 “방어회를 배달해서 먹고 싶은데, 비싸니까 절반씩 나눠서 먹을 사람” “신선란 60구짜리를 구매하려고 하는데, 너무 많을 것 같아서 나누실 분 구해요” 같은 글들이 올라온다. 당근마켓에 따르면 서울 관악구 기준으로 ‘같이사요’에 올라온 공동 구매 게시글 수는 7월에 비해 154% 늘었다.

    공동 구매보다 값을 더 낮추기 위해 소비자를 생산자와 직접 연결하는 플랫폼도 생겼다. 지난해 9월 출시된 공동 구매 플랫폼 ‘올웨이즈’는 2명 이상의 소비자가 공동 구매를 위해 모이면 생산자와 직접 거래할 수 있도록 주선한다. 과일이나 채소 등이 주거래 품목이다.

    소비자와 생산자 간 직거래로 이뤄지다 보니 일반 온라인 소매가 대비 40% 정도 저렴하다는 게 이 업체의 설명이다.

    출시 1년여 만에 이용자 300만명을 넘어섰고, 누적 거래액이 600억원에 이른다. 이 회사 강재윤 대표는 “30~50대 여성들 사이에서 품질이 좋고 값이 싸다는 소문이 나면서 이용자 수가 급증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저가를 찾아헤매는 소비자들을 위한 가격 구독 서비스도 등장했다. 중견 IT 업체 코리아센터가 내놓은 이 서비스는 고객에게 최저가 상품을 무료로 추천하고 제안한다.

    코리아센터 산하 가격 비교 사이트인 ‘에누리닷컴’과 가격 비교 사이트 ‘다나와’가 보유한 13억개 쇼핑 상품 데이터 가운데 가장 가격이 낮은 제품을 실시간으로 확보해 전달해 주는 방식이다. 김기록 코리아센터 대표는 “눈에 보이는 상품이 아닌 무형의 가격을 구독하는 모델을 새롭게 개척했다”며 “원하는 상품을 일일이 찾아다니지 않아도 가격과 정보를 한 번에 볼 수 있다”고 했다.

    주머니 사정이 넉넉지 않은 체리슈머를 겨냥한 ‘조각내기’도 유행이다. 롯데마트는 지난해 12월 와인을 한잔씩 맛볼 수 있는 코너인 ‘테이스팅 탭’을 개설했다. 서울과 광주광역시, 창원 등 전국 세 곳에 있는 ‘보틀벙커’ 매장에서 80여 종의 와인을 30~50ml 단위로 쪼개 판다. 소비자는 한 병에 2만~10만원짜리 와인을 1000~8000원만 내고 한 잔씩 맛볼 수 있다.

    지난 추석에는 1병에 100만원이 넘는 ‘보르도 그랑크뤼’ 특등급 와인 다섯 종을 30ml 한 잔에 5만원씩 팔았는데, 하루 만에 전량이 다 팔렸다. 이영은 롯데마트 보틀벙커팀장은 “다양한 경험을 중시하는 소비자와, 적은 양이라도 원하는 제품을 조금이라도 맛보고 싶어하는 소비자가 증가하고 있어 내놓은 상품”이라며 “비싼 와인을 맛보고 싶은데 망설였던 사람들이 대거 매장을 찾고 있다”고 했다.

    금융계에는 ‘조각 투자’ 상품도 등장했다. 특정 투자 상품을 조각처럼 나눠 여러 투자자가 함께 상품에 투자해 이익을 배분받는 방식이다. 초기 투자 비용이 많이 드는 미술품, 부동산 등에서 주로 이뤄진다. 조각 투자 플랫폼 ‘피스’는 지난해 4월 문을 열었는데, 처음 내놓은 상품이 ‘롤렉스 시계’였다. 총 1억1800만원 상당의 롤렉스 시계 11개에 투자자 100여 명이 몰리면서 상품은 30분 만에 다 팔렸다. 한우 송아지도 쪼개서 사고 판다.

    한우 자산 플랫폼 ‘뱅카우’는 송아지를 최소 4만원부터 투자할 수 있도록 사람들을 모았다. 투자자가 고른 송아지를 농가가 약 2년간 키운 뒤 경매에서 팔아 농가와 투자자들이 수익을 나눠 갖는 방식이다. 지난 2월에는 송아지 100여 마리에 대한 투자를 받았는데, 하루 만에 약 10억원을 투자받아 완판됐다.

    ◇체리슈머는 기업에 부담? 팬덤 고객 늘려야

    하지만 대부분 기업 입장에서는 체리슈머가 반갑지만은 않다. 가격과 정보에 민감한 소비자들이 늘수록 극단적인 가격 경쟁과 이윤 하락에 내몰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가격 기재 오류나 시스템의 허점을 귀신같이 찾아내고 널리 공유해 기업을 거덜내는 경우도 종종 있다. 지난 10월엔 편의점 CU와 미래에셋페이가 한 달간 할인 행사에 나섰다가 할인 제도의 구멍을 간파한 소비자들에 의해 ‘대란’이 일어나 행사를 조기 종료하기도 했다.

    당시 “1만400원짜리 아이스크림을 200원에 샀다”는 식의 자랑이 온라인과 소셜미디어에 난무했다. 계정 공유로 체리슈머의 집중 표적이 된 OTT 업체들은 생존을 위협받을 지경이다. 넷플릭스에 따르면 올해 1분기 기준으로 다른 사람과 계정을 공유한 사례는 전 세계적으로 1억 가구에 달했다. 넷플릭스는 계정 공유자들 때문에 연간 60억달러(약 7조8000억원)가 넘는 손해를 보는 것으로 추산했다. 결국 넷플릭스는 최근 전체 직원의 4%인 450명을 해고하고, 영상 중간에 광고를 삽입한 저가 요금제를 도입하는 등 자구책 마련에 나섰다.

    OTT 업체들은 계정 공유를 막는 방안도 검토 중이지만, 이 경우 구독자가 대거 이탈할 수 있어 쉽사리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한국콘텐츠진흥원 조사에 따르면 OTT 구독료가 10% 오를 경우 계속 이용하겠다고 답한 구독자 비율은 51%에 불과했다. 38%는 다른 OTT로 옮기겠다고 답했고, 11%는 구독을 중단하겠다고 했다. 국내 한 OTT 업체 콘텐츠 담당 팀장은 “계정 공유를 어느 수준까지 허용할지, 광고를 어느 선까지 방영할지 시뮬레이션을 돌리며 고민하고 있지만 쉽지 않다”고 말했다.

    사실 단돈 100~200원에도 예민하게 반응하는 소비자들이 최근에야 등장한 것은 아니다.

    소비자 중 어디까지가 체리슈머이고 어디부터 체리피커 또는 블랙컨슈머인지 딱 잘라 구분하기도 어렵다. 하지만 인터넷과 소셜미디어의 발달로 정보 공유 속도가 빨라지고, 인플레이션과 경기 침체까지 겹치면서 가격에 민감한 소비자들이 날로 증가하는 것도 부인하기 어려운 사실이다.

    결국 기업들은 애플이나 테슬라처럼 팬덤을 확보하거나 파타고니아처럼 차별화된 가치를 제공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부 교수는 “체리슈머의 등장은 결국 기업과 소비자의 일종의 기 싸움으로 봐야 한다”며 “혜택만 누리려는 소비자를 원망하기보다 충성 고객으로 유도할 전략을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WEEKLY BIZ#cover story

     

    https://www.chosun.com/economy/mint/2022/12/15/WPGGYEW3SREXDP2BOSOOKPJU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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