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짝퉁 소굴’ 오명 씻고 ‘민영기업의 정글’로
중국을 다시보다 <5>시장경제의메카 저장성(浙江省) <2>
● 중국 500大 민영기업 중 202개나 차지
저장성(浙江省) 항저우시(杭州市) 의 관광명소인 시후(西湖) 주변. 깔끔한 도로 곳곳에 유럽의 어느 거리로 착각할 만큼 우아하고 특색 있는 고급 레스토랑들이 즐비하다. 세계적인 패션 브랜드의 부티크가 모인 ‘명품거리’는 서울 청담동은 저리 가라 할 정도로 화려하다. 거기에 벤틀리와 페라리, 포르셰 등 고급 승용차 매장들까지. 포르셰 매장에 들어가 보았다. 최저 120만 위안(약 1억5,000만원)에서 최고 175만 위안(2억1,000만원)에 이르는 승용차 4대가 전시돼 있었다. 그런데 그 중 2대는 이미 팔렸고(sold) 1대는 예약됐다(reserved)는 표시가 붙어 있다.
부자가 많은 것은 이곳이 중국의 민영기업 메카이기 때문이다. 2005년 중국 500대 민영기업 중 저장성 기업이 무려 202개를 차지하며, 중국 과학아카데미가 선정한 50대 혁신기업 중 저장성 기업이 19개에 이른다.
저장 상인들은 정부의 지원에 기대지 않고 오로지 맨주먹과 의지만으로 기업을 창업해 엄청난 부를 일궜다. 정부의 계획과 전폭적인 지원, 외자 유치를 통해 발전한 상하이(上海), 썬전(深?) 등 14개 연해(沿海) 도시와 대조적이다. 저장성에선 ‘시장(市場)’과 ‘경쟁(競爭)’이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상이다. 자본주의의 선배인 한국도 경쟁 강도 면에서는 명함도 못 내밀 정도다.
지난 5일, 저장성 원저우(溫州)에 있는 중국 최대 라이터업체 대호(大虎) 라이터의 공장에서도 어김없이 시장원리는 작동하고 있었다.
2층 공장에서 260여 명의 직원들이 금속제 라이터 생산에 열중하고 있었는데, 독서실처럼 구획된 개인 작업대마다 각각 노란색과 빨간색 깃발이 꽂혀 있다. 노란색은 불량품을 많이 낸 ‘관리대상’ 직원이라는 뜻이다. 불량품 개수에 따라 보너스도 깎인다. 그래서인지 반팔 작업복을 입은 직원들은 덥고 습기 찬 공기 속에서도 무척 진지하게 라이터를 조립하고 있었다. 거의 대부분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의 앳된 얼굴들이다. 1,000여명의 직원들은 평균 1,400위안(약 17만원)의 월급을 받으며 하루 10∼12시간씩 일한다.
보일러 배관공 출신인 이 회사의 저우다후(周大虎·56) 회장도 해외 68개국에 라이터를 수출해 2억 위안(약 2,400억 원)의 매출을 올리기까지 16년 간 3,500개 라이터 업체와의 무한경쟁을 뚫고 지나왔다. 현재 원저우의 라이터 기업은 500여 개. 3,000여 개 기업이 10여 년 만에 사라진 것이다.
저우다후 회장은 “기업을 창업해 수천 개 기업과 경쟁하려면 엄청난 노력이 필요하다”면서 “지난 91년 창업할 때 성공하지 않으면 집에 들어가지 않겠다고 맹세했고 실제로 조그만 성공을 이루기까지 공장에서 5년을 먹고 잤다”고 말했다.
귀가 시간도 아끼기 위해 공장 한 귀퉁이에 2평짜리 쪽방을 만들어 가족이 5년을 살았다는 것이다. 주방이 없어 바닥에 주저앉아 밥을 지어먹고, 화장실이 없어 근처 공중 화장실에서 용무를 해결했다. 이렇게 해서 성공한 그는 최근 장쩌민(江澤民) 전 주석과 원자바오(溫家寶) 총리로부터 “중국을 대표하는 민영 기업가”라는 찬사를 받았다.
● 경쟁 체질화, 첨단기술·고급브랜드 개발로 한국 위협
원저우 공상연합회의 왕신푸(王心阜) 부회장은 “누군가는 창업하고 누군가는 망하는 것은 시장경제의 특징”이라며 “시장경제의 가치에 맞추는 사람은 성공하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도태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말했다. 저장성 출신인 완샹그룹 루관추(魯冠球) 회장은 “시장이 있는 곳에 반드시 저장 상인이 있다”고 말했다.
시장과 함께 저장성 경제도 급성장했다. 1970년대만 해도 저장성의 1인당 GDP는 중국 중위권에 불과했다. 하지만 지금은 3,400달러(2005년)로 베이징(北京), 톈진(天津), 상하이에 이어 4위이다. 농촌을 제외한 도시인구만 따진다면 저장성이 사실상 중국에서 가장 부유한 지역이다. 또 저장성 도시 거주자의 이자수입은 상하이의 4.5배이고, 배당수입은 5.3배에 이른다(2004년 기준).
저장성 경제는 초기엔 저임금을 바탕으로 한 ‘짝퉁’ 제품 산지로 출발했다. 1987년엔 항저우의 도심광장에서 사람들이 원저우산 가짜 저질구두 화형식을 벌여 저장 기업인들에게 큰 충격을 주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 저장성은 더 이상 짝퉁 생산기지, 저임금 생산기지에 머물지 않는다. 저장의 기업인들은 이미 한국을 위협하는 차세대 브랜드와 첨단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고급 신사복 업체 바오시냐오는 1996년 창립 직후부터 고가 브랜드 전략으로 승부를 걸었다. 이탈리아에서 디자이너와 원단을 수입한 뒤 평균 3,000위안(약 36만원)짜리 신사복을 팔아 10년 만에 중국 3대 신사복 업체로 성장했다.
이 회사 우즈쩌(吳志澤·47) 회장은 “브랜드가 인정받으려면 그 나라의 경제력과 문화가 인정받아야 한다”고 전제, “지난 20년간 계속 발전한 중국의 경제력은 이미 인정받고 있고 중국 문화도 재조명 받고 있어 5년 안에 세계 브랜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과거 당(唐)·송(宋) 시대의 시안(西安)과 카이펑(開封)은 지금의 파리처럼 세계 패션을 주도했다”면서 “과거 중국이 가졌던 것을 복원만 하면 된다는 점에서 더 자신 있다”고 말했다.
● 저장대의 ‘친시장(親市場) 개혁’ 저장대 ? 실적 따라 교수 연봉 5배 차이
지난 2001년, 당시 장더장(張德江) 저장성위원회 서기는 판윈허(潘雲鶴) 저장대 총장과 함께 미국 스탠퍼드 대학을 방문한 뒤 그 규모와 시설을 보고 감탄했다.
장 서기는 귀국 후, “지역이 발전하려면 좋은 대학이 있어야 한다”며 건축 중이던 저장대 새 캠퍼스를 더욱 크게 늘렸다. 그렇게 해서 새로 완성된, 항저우시의 저장대 새 캠퍼스를 둘러보면 급성장하는 중국의 국력을 실감할 수 있다. 서울대(42만평)의 1.5배에 이르는 60만평 부지엔 거대한 인공호수 옆으로 초현대식의 실험적 건물들이 끝없이 이어진다. 학생식당에선 3,000명이 동시에 식사할 수 있다. 그 규모는 여기서 끝이 아니다. 세계최대가 되겠다며 110만평을 더 늘리는 공사가 한창이다.
저장대는 지난 98년 9월 옛 저장대와 항저우대, 저장농업대, 저장의과대 등 4개 대학이 통합된 것으로 중국대학 개혁의 대표적 모델이다.
대학 통폐합 성공과 시장경제 원칙에 충실한 학교운영에 힘입어 저장대는 베이징대, 칭화(靑華)대에 이어 중국 3위의 명문대로 올라섰다. 이 학교는 같은 연공의 교수라도 연구업적과 수업능력평가에 따라 연봉이 최대 5배까지 차이가 나는, 철저한 인센티브제를 적용한다.
저장대 경영대는 아예 대학 캠퍼스를 벗어나 기업들 속으로 파고들었다. 첨단기업단지인 ‘파라다이스 실리콘밸리’ 한가운데에 3층짜리 정부빌딩을 임차해 글로벌창업연구소(GERC)를 개설한 것. 기업컨설팅과 창업지원 등을 한다.
왕중밍(王重鳴) 소장(저장대 경영대학원장)은 “기업과 대학이 하나가 되는 ‘제로 디스턴스(zero distance)’ 전략”이라며 “기업들에 최고의 인력을 제공하려면 기업과 최대한 가까이 있어야 한다는 취지”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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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중국취재단 4진
변용식 편집인 (단장)
강효상 사회부장
이지훈 경제부 차장대우
조중식경제부 차장대우
최규민 국제부 기자
5년후면 한국 자동차와도 경쟁”
완샹그룹 루관추 회장
입력 : 2007.06.18 01:15
환갑이 넘은 나이에도 그의 눈빛은 강렬하고 목소리는 쩌렁쩌렁했다. 중국 최대 자동차 부품회사 완샹(萬向) 그룹의 루관추(魯冠球·62·사진) 회장.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작은 자전거 수리점에서 시작, 지금은 중국 10대 갑부가 된 그는 여러 점에서 고(故) 정주영 회장과 닮았다. 완샹은 4만명의 종업원이 GM, 벤츠, 현대차 등 세계 40개국 자동차 회사에 부품을 공급해 연간 약 4조원의 매출을 올린다. 그는 빠르게 성장하는 중국 자동차 산업이 언제 한국을 추월할 것인가 하는 질문에 잠시 생각한 뒤 “빠르면 5년, 늦으면 10년이면 한국과 경쟁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의 자동차 기술을 평가한다면? “독일이나 일본에는 약간 못 미치지만 품질이 좋고 가격 경쟁력이 있다. 특히 한국 기업가의 열정에 감동 받는다.”
―완샹의 최종 목표는? “완성차 생산이다. 휘발유 차는 선진국과 기술 격차가 너무 크기 때문에 곧바로 전기차로 건너뛰어 9년째 연구 중이다. 지금까지 수억 위안을 투자했는데, 언제쯤에야 통장으로 돌아올지 모르겠다. 매일 돈이 불타고 있다.(웃음)”
―중국이 한국보다 빨리 전기자동차 양산이 가능할 것으로 보나? “그렇게 믿고 있다.”
―그 근거는? “첫째, 개혁·개방 20여년간 중국은 매년 두 자릿수 이상 성장했다. 우리는 그만큼 능력이 있다. 둘째, 국가에서 전기차 연구를 전폭 지지하고 있다. 현재 중국에 차세대 자동차를 개발하는 업체가 하이브리드카(전기와 휘발유를 번갈아 동력으로 이용하는 차) 6개, 수소 연료차 3개, 전기자동차 2개 등 11개에 이른다. 정부에선 최근 신(新) 에너지를 연구하던 분이 과학기술부장(한국의 장관에 해당)이 됐다. 너무도 좋은 소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