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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약한 직업인의 어느 성탄 예배 [프리스타일]지금 이곳에선 2026. 1. 7. 20:16
고약한 직업인의 어느 성탄 예배 [프리스타일]
지면에서는 늘 진지하기만 한 〈시사IN〉 기자들, 기사 바깥에서는 어떤 생각을 할까요? 친한 친구의 수다라고 생각하고 편하게 읽어주세요.
김연희 기자
입력 2026.01.07 07:02 호수 955

2025년 12월19일 경기도 안산시 4·16가족협의회 강당에서 일찍 온 참석자들이 4·16가족과 함께하는 성탄 예배를 기다리고 있다. ⓒ시사IN 김연희
기자 일에는 고약한 구석이 있다. 여러 면에서 그렇지만 타인의 고통이 나의 일감이 된다는 점에서 특히 더하다. 가족, 일터, 집, 그 외에 일생에서 가장 소중했던 무언가를 잃은 사람들의 단장(斷腸) 같은 아픔이 나에게 전이되어서는 아니다. 고백하자면 오히려 그 반대다. 긴장감 속에서 취재를 하고, 인터뷰한 내용을 정리하고, 마감 시간에 쫓겨 기사를 완성한 뒤 한숨을 돌리며 그제야 깨닫기를 반복한다. 일하기에 급급해 상실에 응당한 추모와 애도는 뒷전으로 밀렸구나.
‘4·16가족과 함께하는 성탄 예배’에 간다는 지인을, 교인이 아님에도 따라 나선 데에는 그런 부채감이 있었을 것이다. 크리스마스를 한 주 앞둔 금요일 저녁, 경기도 안산시 4·16가족협의회 강당은 작고 소박한 교회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강당에 줄 지어 깔려 있는 노란색 간이 플라스틱 의자들 사이에서, 맨 앞줄의 하늘색 의자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 자리에만 머리에 구름을 인 것처럼 푹신한 방석들이 놓여 있어 더욱 눈에 띄었다. 상석이라 할 수 있는 이 자리는, 이날 예배에 특별 초대된 12·29 제주항공 참사 희생자 유가족들을 위해 마련된 자리였다.
오후 7시30분 예배가 시작되고, 단원고 2학년 1~10반 학생들, 교사, 일반인, 선원 희생자들의 그리운 이름이 하나씩 불리고, 제주항공 참사 희생자들을 애도하는 침묵의 시간이 이어졌다. 단상에 오른 김유진 제주항공 참사 유가족협의회 대표는 한마디 한마디를 힘겹게 내뱉었다. 그는 2024년 12월29일의 참사로, 신앙심이 독실하던 부모님과 남동생을 잃었다. 예배 도중 제주항공 참사 유가족들의 의자 위에 깔려 있던 방석의 정체도 밝혀졌다. ‘진실 버스를 타고 전국을 다닐 때 엉덩이가 아팠던 기억이 난다’며 창현 어머니 최순화씨가 준비한 것이었다.
마지막 순서로, 초대에 감사를 표하기 위해 제주항공 참사 유가족들이 마이크를 잡았다. 발언은 대부분 짧았다. “아들을 잃었습니다. 39세입니다.” “저는 딸과 사위를 보냈습니다.” “같이 여행을 갔는데, 저는 외국에서 일하느라 다른 비행기를 타서 아내와 아이들이 떠나고 저만 남았습니다.” ‘진상규명’ 문구가 적힌 하늘색 조끼를 입은 제주항공 참사 유가족들의 손에는 세월호 유가족들이 준 선물이 담긴 갈색 종이봉투가 들려 있었다. 이날 예배의 타이틀인 ‘함께 기다리는 사람들’이, 그날 밤 그곳에 모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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