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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구름 안을 이리저리 거닐듯이 [단편선과 플리들]카테고리 없음 2025. 2. 2. 19:44
따뜻한 구름 안을 이리저리 거닐듯이 [단편선과 플리들]
사이키델릭부터 포크까지 장르를 넘나드는 인디 뮤지션 단편선이 보물 상자처럼 모아놓은 플레이리스트(플리) 속 반짝이는 노래와 빛나는 앨범을 소개합니다.
단편선 (음악가)
입력 2025.02.02 08:36 호수 906
2024년은 특히 연말로 갈수록 끔찍했다. 내내 파국으로 치닫는 듯했다. 이럴 때일수록 우리를 우리답게 만들어주는 것들에 관해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어야 한다고 믿는다.
이 글을 적고 있는 나의 직업은 음악가다. 우연한 계기로 〈시사IN〉 지면을 통해 간간이 음악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되었다. 오늘은 2024년에 가장 자주 들은 음반 중 하나를 소개하고자 한다.
‘가장 훌륭한’이나 ‘가장 아름다운’ 따위의 수사가 어울리는 음반인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내게는 지난 한 해 모국어로 불린 음반 중 가장 마음에 와닿은 음반, 바로 최미루의 〈뉴챗(nEwCHAt)〉이다. 최미루와 그의 음반 〈뉴챗〉에 대해선 알려진 바가 많지 않다. 일렉트로닉 뮤지션인 키라라가 KT&G 상상마당과 함께 만든 ‘키라라의 일단 앨범내기’ 프로젝트에 최미루가 참여했고, 이 음반이 그 프로젝트 결과물로 발표되었다는 정도다. 〈뉴챗〉은 음악가 최미루가 처음으로 선보이는 작품집이다.
최미루의 〈뉴챗(nEwCHAt)〉
이 음반은 장르적으로 포크와 일렉트로닉의 결합, 즉 ‘포크트로니카’로 분류할 수 있다. ‘일렉트로닉’이라는 단어에서 자칫 쿵쿵거리는 댄스 비트를 떠올릴 수도 있겠지만, 최미루의 전자음은 맑고 포근하다. 듣기에 따라서는 어릴 적 가지고 놀던 옛날 게임기 소리 같기도 하다.
오래된 친구에게 조근조근 말하듯 노래하는 최미루의 목소리가 담백한 어쿠스틱 기타의 연주, 그리고 몽글거리는 전자 사운드를 만나 따뜻한 구름 속을 거니는 것 같은 무드를 조성한다.
포크는 이야기를 중시하는 장르다.
최미루가 쓴 음반 소개에 따르면 제목 ‘뉴챗( New Chat)’은 생성형 AI 챗봇과 대화를 시작할 때 누르는 버튼이다. 최미루는 그 버튼을 누르고 ‘왜 살아야 하는가’라고 물어본 적이 있다고 한다. ‘왜 살아야 하는가’라는 물음은 이 음반의 중심을 이루는 이야기다.
〈뉴챗〉 속 최미루는 그 물음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이리저리 다닌다. ‘자화상(1번 트랙)’을 그리기 위해 거울 앞에 앉았다가 곧 밖으로 나가기도, ‘물수제비(타이틀곡)’가 수면 위에 만드는 파동을 관찰하기도 한다. ‘아몬드 나무(3번 트랙)’를 심고 있는 나이 지긋한 노인에게 삶에 관해 여쭈기도 한다. 골똘히 바라보고 조심스레 묻는다.
그것들을 바라본다 한들 ‘왜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답을 찾기는 어려울 터이다. 그럼에도 최미루는 바라보고 묻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 애를 쓴다.
그러한 태도를 나는 간절함이라 부르고 싶다. 〈뉴챗〉 음악이 마음에 와닿은 것은 최미루의 담담한 목소리에 배어 있는 깊은 간절함 때문이 아니었을까.
‘가장 훌륭한’이나 ‘가장 아름다운’ 같은 수사는 대부분 기술적인 우위를 전제로 한다. ‘기예’라는 말이 있듯 기술적 숙련도는 예술의 중요한 요소 중 하나다. 하지만 〈뉴챗〉은 다른 길로 간다. 뽐내는 대신 자신의 속도에 맞추어 자기 이야기를 써 내려간다.
눈에 잘 띄지 않는 작은 부분들까지도 세심하게 붓질하듯 다듬는다. 〈뉴챗〉의 좋은 점 중 하나는 귀 기울여 들을수록 더 많은 ‘겹’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것들은 소박하지만 이내 아름다운 균형을 만들어낸다. 곳곳에 다정함과 간절함이 깃든, 그리고 ‘AI 시대의 인간다움’이라는 실존적 질문을 담아낸 음악. 2024년의 가장 인상적인 데뷔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