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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한미군 ‘10배 청구서’ 꺼내 든 트럼프…한반도의 위험이자 기회지금 이곳에선 2025. 1. 8. 20:05
2018년 6월12일 싱가포르 제1차 북-미 정상회담 당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한겨레 자료사진
오는 20일 제47대 미국 대통령에 취임하는 도널드 트럼프의 복귀는 한반도에 위기다. ‘시스템 파괴자’를 자임하며 ‘공짜 안보는 없다’를 외치는 트럼프의 귀환이 몰고 올 불확실성은, ‘위기’(危機)라는 한자어 그대로 위험이자 기회라는 뜻에서 위기다. ‘돌아온 트럼프’에 대응해 한국은, 한반도 8천만 시민·인민은 위험을 회피하고 비핵·평화·번영의 한반도로 갈 기회의 창을 열 수 있을까?
“한국은 현금인출기”
트럼프는 한국을 “현금인출기”(money machine)라 부른다. 한국이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을 한해에 100억달러는 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미가 2024년 10월4일 합의한 제12차 방위비분담특별협정(SMA)에 따른 한국 분담 몫의 10배 가까운 금액이다.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에 국방비를 국내총생산(GDP)의 5%로 올리라는, 대만엔 “방위비용을 (GDP의) 10%는 써야 한다”는 압박과 다르지 않다.
‘안보 무임승차’는 안 되니 미국의 보호를 받으려면 ‘돈’을 내라는 것이다. 정작 미국의 국방비는 지디피의 2.5~2.9% 선이다. 트럼프식의 ‘비용을 들이지 않는 패권 유지 전략’, ‘약탈적 거래주의’다. 방위비 분담금 협상을 다시 하겠다는 예고나 마찬가지다. 이 문제는 주한미군의 지위와 규모에 영향을 끼칠 불씨를 품고 있다.
트럼프의 ‘돈’ 중심 세계관은 통상에도 먹구름을 몰고 올 위험이 있다. 2024년 한국의 대미 무역 흑자는 557억달러로 역대 최대다. 트럼프 1기 마지막 해인 2020년 227억달러의 두배가 넘는다. 관세를 “가장 아름다운 단어”라 추어올리는 트럼프가 이를 빌미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을 압박할 위험이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배경이다.
한국은 세계 1위의 대미 투자국(2023년 215억달러)인데, 바이든 행정부의 중국 배제 공급망 재구성과 인플레이션감축법(IRA)·반도체산업육성법(CHIPS) 등의 영향이다. 그런데 트럼프는 탈탄소·친환경 에너지 전환에 지원금을 주는 인플레이션감축법을 “녹색 사기”(Green New Scam)라 폄훼한다.
바이든 행정부의 압박과 지원책에 이끌려 미국에 공장을 짓고 있는 한국의 자동차·2차전지·전자 업체들은 진퇴양난이다. ‘돌아온 트럼프’에 맞서 한국의 통상·안보 이익을 지켜야 할 정부는 ‘유고’ 상태다.
“김정은과 잘 지낼 것
트럼프는 김정은 조선노동당 총비서 겸 국무위원장과의 인연을 강조한다. “나는 김정은을 매우 잘 안다”, “난 김정은과 매우 잘 지낸다”, “핵을 가진 자와는 잘 지내는 게 좋다”는 식이다. 말을 현실화할 포석에도 재빠르다.
2018년 6월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실무 준비팀에 참여한 앨릭스 웡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2인자인 부보좌관으로 발탁하고, 핵심 측근인 리처드 그리넬 전 주독일대사를 북한 문제를 포함한 ‘특별임무를 위한 대통령 특사’로 지명했다. ‘트럼프 정권인수팀이 김정은과 직접 대화 추진을 검토한다’는 언론 보도를 뒷받침하는 인사다. 하지만 2019년 2월 하노이 2차 북-미 정상회담에서 트럼프의 ‘변심’에 상처받은 김정은의 반응은 아직은 싸늘하다.
김정은은 미국 대선 직후인 지난해 11월21일 “우리는 이미 미국과 함께 협상 주로의 갈 수 있는 곳까지 다 가보았으며 결과에 확신한 것은 침략적이며 적대적인 대조선 정책”이라며, 짐짓 트럼프의 복귀에 기대가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김정은은 연말 노동당 전원회의에선 “최강경 대미 대응 전략”을 천명했다. 아직은 접점이 없다. 트럼프 취임식 직후인 22일 최고인민회의에서 김정은이 어떤 이야기를 할지 지켜볼 필요가 있다.
2024년 6월19일 평양 금수산영빈관 정원을 함께 걷고 있는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푸틴이라는 ‘열쇠’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향배는 2025년 한반도 정세와 ‘트럼프 2기’의 대외정책 기조를 가늠할 핵심 변수다. 정전 또는 종전을 둘러싼 트럼프-푸틴 전략게임에 북-러 및 북-미 관계를 포함한 한반도 정세가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김연철 전 통일부 장관은 “북·미·러 삼각관계가 정세를 결정한다”고, 문정인 연세대 명예특임교수는 “북-미 협상이 시작될 수 있는 유일한 통로는 푸틴”이라고 짚었다.
외교안보 분야 전문가들은 “한반도 정세 변화 과정에서 ‘한국 패싱’(한국 따돌리기)을 피하려면 러-우 전쟁과 윤석열식 냉전외교가 겹쳐 망가진 한-러 관계의 복원이 급선무”라고 주문했다.
한국의 선택
한 원로는 “한국의 국가 전략 목표는 한국전쟁 이후 군사정전체제를 항구적 평화체제로 전환하는 것일 수밖에 없다”며 “그 이유가 무엇이든 현상변경 의지가 강한 트럼프 시기에 평화체제 전환을 가능케 할 기회의 창을 열어야 한다”고 말했다. 트럼프의 ‘시스템 파괴’ 의지가 역설적으로 한반도 평화의 씨앗을 품고 있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트럼프 1기’를 상대한 문재인 정부의 핵심 관계자는 “트럼프는 자신이 원하는 걸 얻을 수 있다면 다른 문제엔 상대적으로 무관심·관대한 경향이 있다”며 “한국이 ‘내어줄 수밖에 없는 것’과 ‘반드시 얻어내야 할 것’을 나눠 전략적으로 풀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그 근본적 잣대는 ‘국익’과 대미 자율성의 확장이다. 이와 관련해 미국이 방위비 분담금 인상과 한-미 자유무역협정 재협상을 압박하면, 이를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문제와 연계해 접근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아울러 군사주권을 제약해온 한-미 미사일 지침의 사거리·탄두중량 제한을 역대 정부가 집요한 협상으로 2021년 5월 종료시킨 것처럼, 장기적으론 한국의 농축·재처리 권리를 제한한 한-미 원자력협력협정을 개정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무엇보다 다수 전문가들은 “‘약탈적 거래주의’를 앞세우는 트럼프를 한국이 효과적으로 상대하려면 국민의 압도적 지지를 받는 민주정부의 구성이 선결 과제”라고 입을 모았다.
이제훈 선임기자 noma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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