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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겨레 사진기자들의 ‘2024년 마음 한 장’
    지금 이곳에선 2025. 1. 4. 13:13

    이 순간

    한겨레 사진기자들의 ‘2024년 마음 한 장’

    2024년, 여러분이 웃고 울었던 현장에 한겨레 사진기자들도 있었습니다. 한 해 끝자락까지 그 마음에 남은 사진을 한 장 한 장 모았습니다. 새해에도 우리 사회와 사람들의 마음을 잇기 위해 더욱 노력하겠다고 다짐하며 ‘2024년 마음 한 장’을 모아 소개합니다.

    #1: 모두 함께 같은 마음으로 지켜낸 것

    지난 4일 밤 국회에서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직원들이 특공대의 진입을 막기 위해 집기 등으로 본청 로텐더홀 앞 문을 막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지난 5월 제44주년 5·18 민주화운동 추모식과 문화제를 취재하기 위해 광주로 향했다. 일을 마치고 철수하기 전 잠시 5·18 민주화 운동의 현장인 광주 동구 금남로를 찾아 옛 전남도청 광장이 내려다보이는 전일빌딩에 올랐다. 그곳에서 내려다보이는 5·18 민주광장은 1980년 당시 시민들이 ‘민주화’를 부르짖고 계엄군에 최후까지 저항하던 역사적 장소다.

    몇번이나 보았던 광장이지만 그날은 이상하게 끝까지 항거했을 시민들의 모습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그리고 아직 채 한 달이 지나지 않은 12월3일 밤 비상계엄이 선포되고 계엄군에 맞서 함께 힘을 모아 국회를 지키려 했던 시민들의 모습이 눈앞에 펼쳐졌다. 믿을 수 없게도 1980년 5월18일과 똑같이 계엄군에 맞서 항거하는 시민들의 모습이었다.

    이렇게 모두 함께 같은 마음으로 싸워서 지키려 한 것이 무엇인지 분명히 알게 된 순간이었다. 다만 하나 작은 바람이 있다면 다섯살인 우리 딸만큼은 엄마가 직접 겪은 비상계엄을 책으로만 알았으면 좋겠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한겨레 ‘오늘의 스페셜’ 연재 구독하기)

    #2: ‘세월호 어머니’의 10년 세월

    한겨레는 지난 10년 동안 세월호 참사 희생자인 단원고 2학년 8반 안주현 학생의 어머니 김정해씨와 함께해왔다. 사진 왼쪽부터 2016년 4월23일 유가족들과 함께 해경이 나눠준 때 묻은 구명조끼를 입고 세월호가 침몰한 전남 진도군 조도면 앞바다를 찾은 김씨, 2018년 4월16일 정부합동영결식을 마친 뒤 경기도 안산 합동분향소에 있던 아들의 위패와 영정을 집으로 옮긴 김씨, 2019년 2월12일 단원고에서 열린 명예졸업식에서 졸업장과 졸업앨범을 받아든 김씨. 맨 오른쪽은 지난 3월21일 10년 만에 사고 해역이 내려다보이는 동거차도를 처음 찾은 김씨. 우리는 세월호 참사를 잊지 않고 내년도 후년도 함께할 것을 약속한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10년 전 세월호 참사 관련 취재 메모에는 “2014년 4월16일 오전 9시를 조금 넘긴 시간, 자동차가 기계적으로 낼 수 있는 최대의 속도로 진도 팽목항으로 달려갔다. 곧바로 사고현장에는 접근할 수 없었다. 근처 쉬미항에서 출항하는 해경 배에 힘겹게 올랐다. 뱃길로 2시간 30분을 달려간 사고현장은 해가 저물어 벌써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하늘에서 해군 수송기가 발포한 조명탄에 컴컴했던 사고해역 동거차도 앞바다가 순간적으로 카메라 뷰파인더에 들어왔다. 세월호는 어둠 속에서 실종자 304명과 함께 서서히 침몰하고 있었다. 대한민국은 세월호에 살아 있던 304명 중 단 한 명도 구조하지 못했다. 선장을 비롯한 선원들은 도주했고, 국가의 정부조직도 제대로 작동되지 못해 벌어진 어처구니없는 세월호 참사였다”고 기록했다.

    부정하고 부패한, 거짓말을 일삼는 정권을 국민은 용서하지 않았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토요일 저녁이면 광장에 모여들어 촛불을 켰다. 스무 번의 촛불은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 제1조가 무엇을 뜻하는지 보여주었다.

    그 10년이 흘러간 2024년 끝자락에 끔찍하게도 국민을 향해 군의 총부리를 들이댔던 ‘내란 수괴 피의자’ 대통령 윤석열의 탄핵소추안이 지난 14일 국회에서 가결되었다. 앞으로도 국민의 촛불은 그 어떤 바람에도 꺼지지 않을 것이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3: 보여줘야 할 현장, 한국옵티칼하이테크 고공농성

    지난 1일 오후 경북 구미 한국옵티칼하이테크 고공농성장에서 김진숙 지도위원이 박정혜 부지회장을 안아주고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한겨레가 요즘 (쟁의)현장에 안 보이는 것 같아요.” 지난 1일 고용승계를 요구하며 329일째 고공농성을 이어가던 경북 구미 한국옵티칼하이테크 현장을 응원하기 위한 ‘희망뚜벅이’ 마지막 날 취재를 위해 공장을 찾았을 때 들은 말이다. 이래저래 현장을 오래 비우기도 했지만, 사실 돌이켜보니 나 자신조차도 오랜만에 농성, 특히 고공농성 현장을 찾은 것 같았다.

    예전 경기 평택 쌍용차 굴뚝탑 농성, 부산 한진중공업 크레인 농성 등 수없이 찾았던 현장에서 느꼈던 고공농성자들이 높은 곳에 오른 절박함을 다시 느낄 수 있었다.

    노동자들은 극한상황에 몰릴 때, 어디 호소할 곳이 없을 때 ‘우리를 좀 봐달라고, 우리의 이야기를 좀 들어달라고’ 외로운 저 높은 곳으로 올랐다.

    그곳이 크레인이든 굴뚝탑이든, 건물 옥상·광고탑·철탑이든 어디든지. 이날 부산 호포역에서 출발해 꼬박 열흘간을 걸어 구미 농성장에 도착한 김진숙 민주노총 금속노조 지도위원이 카메라를 든 나를 보고 어디서 왔냐고 묻는다. 그동안 부산에서 쭉 희망뚜벅이를 기록하던 카메라와 다른 낯선 카메라가 보이자 내게 물은 것이다.

    한겨레라고 하니 ‘고맙다’는 말씀을 하신다. 그 얘기가 오히려 이런 현장에 ‘더 관심을 가져달라’는 부탁으로 들렸다. 기사에는 우리가 보여주고 싶은 게 있고, 독자들이 보고 싶은 게 있다면, 우리가 보여줘야 할 것도 있다. 최근 더욱더 우리는 뉴스의 전달방식을 고민하면서 독자들이 보고 싶은 것과 우리가 보여주고 싶은 것에 너무 치우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앞 두 가지에 너무 집중하다 보니, 한겨레가 ‘보여줘야 할 현장’을 놓치고 있지 않나 생각해 본다. 나 혼자 한다고 되는 일이 아니지만, 그래도 한해를 정리하는 ‘마음 한 장’을 한국옵티칼하이테크 고공농성장 사진 한 장으로 마무리한다. 2025년 1월6일이면 한국옵티칼하이테크 박정혜 수석부지회장과 소현숙 조직2부장이 고용승계를 요구하며 고공농성에 들어간 지 만 1년이 된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4: 사과해요 나한테

    경기 화성시 아리셀 공장 화재사고 유가족 협의회가 지난 6월30일 오후 추모분향소가 마련된 경기 화성시청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참석한 유가족이 눈물 흘리고 있다. 김영원 기자 forever@hani.co.kr

    올해 처음 직접 본 것들이 많다. 지난 6월24일에는 경기 화성시의 아리셀 공장 화재 현장에 갔다. 불이 난 곳으로 달려가기는 난생처음이었다. 리튬 1차전지에서 시작된 불이 순식간에 공장을 뒤덮어 노동자 23명이 숨지고 9명이 다쳤다. 선배와 도착한 화재 현장은 이미 불길이 잦아든 상황이었다. 밤 9시 넘어서까지 취재하고 회사로 돌아가며 ‘B컷’을 편집했다.

    유가족으로 추정되는 이들이 현장에서 누군가와 통화하거나 소방 관계자와 대화하며 울고 있었다. 누군가의 슬픔과 절망을 허락 없이 기록했다는 죄책감이 들었다. 지켜보는 마음이 아팠다. 보도할 수 없었다.

    영정 없는 추모분향소가 차려진 화성시청에서 6월30일 유가족이 취재진 앞에 섰다. 화재 당일 봤던 이들이 눈에 띄었다.

    흰 종이에 검정 펜으로 쓴 중국어와 한국어 손팻말을 들고 진상규명과 회사의 제대로 된 사과를 요구했다. 카메라 앞에서 눈물을 보이던 유가족의 얼굴, 서로 꽉 잡아 덜덜 떨리는 손, 위층에서 이를 내려다보는 어떤 이의 실루엣. ‘쓸 수 있는’ 사진을 찍으며 봤던 이 날의 풍경이 머리와 가슴에 깊이 남았다.

    언론 앞에 나와 대국민 사과를 했던 박순관 에스코넥(아리셀 모기업) 대표는 유가족들에게 개별적으로 합의를 종용하고, 심지어 중국 임금 기준으로 합의금을 제안하기도 했다. 그는 김앤장 법률사무소 소속 변호사를 선임하고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등 혐의로 재판받고 있는데, 아리셀의 실질 경영인은 자기 아들인 박중언 아리셀 총괄본부장이라며 혐의를 부인하고 있다.

    유가족들은 경기 광주시 에스코넥 앞에서 농성을 벌이고 있다. 이들은 가슴에 남은 잿빛 상처는 돌보지 못한 채 여전히 제대로 된 사과를 요구하며 길 위에 서 있다. 김영원 기자 forever@hani.co.kr

    #5: 초심

    지난 10월5일 서울 여의도 불꽃축제에서 불꽃이 터지고 있다. 360도 카메라로 찍었다. 정용일 선임기자 yongil@hani.co.kr

    10월5일 서울 여의도에서 열린 세계불꽃축제는 나를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게 하는 시간이었다. 이른 시간부터 명당이라 생각한 곳을 찾았지만 모두 허사였다. 벌써 돗자리와 카메라들이 빼곡하게 들어차 있었다. 나에게 허락된 자리는 없었다.

    어렵게 노들섬으로 자리를 잡았지만 정작 불꽃이 잘 보이지 않았다. 조금이라도 잘 보이는 곳을 찾아서 사진을 찍었지만, 결과는 참담했다. 그렇게 그날 늦은 밤까지 좌충우돌하다 끝이 났다. 노력한 만큼 결과가 나오지 않아 실망도 컸지만 소중한 것을 얻었다. 아직도 더 노력하고 배워야 한다는 것을. 정용일 선임기자 yongil@hani.co.kr

    #6: 대한민국 입시 현주소

    지난 3월31일 종로학원이 초·중·고 학부모를 대상으로 ‘의대증원, 향후 입시전망 설명회’를 서울 종로구 성균관대학교 새천년홀에서 열었다. 설명을 듣는 학부모 옆에 앉은 한 어린이가 게임을 하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막 스무살이 되었을 때,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을 다시 보겠다고 서울 강남에 있는 입시학원에 다녔습니다. 거기서 소위 말하는 대치동 키즈들을 처음 만났습니다. 서울 최상위권 대학에 합격했지만 다시 수능을 준비하는 이들이 가고 싶은 대학은 오직 의과대학뿐이었습니다.

    지역은 상관없이 무조건 의과대학만 가면 되는 아이들이 많았습니다. 지방 의과대학에 합격했지만 서울에 있는 의과대학을 다니려고 다시 수능 준비를 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들에게 왜 의사가 되고 싶냐고 물어보면 “엄마랑 아빠가 의사야”, “아빠랑 외삼촌이 의사고, 우리 언니도 의대 다니고 엄마가 의대 가래”라고 말합니다.

    지금은 치과의사인 고등학교 동창에게 수능을 앞두고 고등학교 지구과학 선생님이 “왜 의대를 가고 싶으냐”고 묻자 “엄마가 가라고 해서”라고 웃으며 말했던 장면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7: 짓밟힌 국민

    간밤 계엄군의 국회 진입 과정에서 쌓은 바리케이드와 깨진 유리창 등으로 아수라장이 된 국회 비품창고에 지난 4일 오전 출입금지 선이 붙어 있다. 윤운식 선임기자 yws@hani.co.kr

    간밤에 계엄군의 국회 진입 과정에서 외부와 통하는 국회 비품창고의 문이 부서졌다. 한 사람의 명령에 민의의 전당이 짓밟히는 모습은 전 세계에 생중계됐다. 치욕스럽다. 이를 감싸는 무리는 국민을 모욕하는 것이다. 군홧발에 밟힌 국민의 마음은 40년이 넘었지만 아직도 치료 중이다. 깨진 문은 금방 고칠 수 있겠지만 산산이 부서진 국민의 마음은 언제 또 붙을 지 모른다. 내란죄를 저지른 자와 그 동조자들 그리고 그것을 모르쇠 하는 무리들, 반드시 심판받아야 할 대상이다. 윤운식 선임기자 yws@hani.co.kr

    #8: 손끝이 아리는 칼바람 속에서

    이태원 참사 희생자인 고 이남훈씨의 어머니 박영수씨가 지난 1월22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광장에 마련된 10·29 이태원 참사 희생자 합동분향소 앞에서 10·29 이태원 참사 특별법 공포를 촉구하는 15900배를 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지난 1월은 참 추웠습니다. 체감온도가 영하 20도를 기록하고 장갑을 끼고 있어도 손끝이 얼어 아렸습니다.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은 특별법 제정을 위해 그 칼바람 가운데 서 있었습니다. 17일에는 희생자의 영정 사진을 품고 걸었습니다. 18일에는 머리카락을 밀었습니다.

    22일에는 밤샘 기도를 올렸습니다. 28일에는 두 번째 기도를 올렸습니다. 29일에는 오체투지를 했습니다. 30일에는 윤석열 대통령의 거부권에 결국 주저앉아 눈물을 흘려야 했습니다. 이들이 그토록 바라던 특별법은 5월이 되어서야 제정됐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진상 규명도 재발 방지도 지지부진입니다. 지켜보는 일이 괴로울 때가 있습니다.

    고통이 그대로 전해질 때, 그리고 되풀이될 때입니다. 이태원 참사 유족들의 모습에서, 세월호 참사가, 스텔라데이지호가, 그 외 많은 참사가 지나갑니다.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고 믿으려 합니다. 새해에는 거리 위에 시린 마음으로 서 있는 사람들이 줄었으면 합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9: 전봉준투쟁단 맞이하는 응원봉의 시민들

    전국농민회총연맹 전봉준투쟁단 트랙터가 지난 22일 저녁 서울 용산구 한남동 대통령 관저 인근에 도착해 시민들의 환호를 받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경기 과천시 남태령 고개에서 넘어온 트랙터들이 서울 용산구 한남동 대통령 관저 인근에 모습을 드러내자 순간 환호성이 터졌다. 시민들은 응원봉을 차도 방향으로 연신 흔들어 대거나 엄지를 치켜들었다. 윤석열 대통령 체포·구속을 촉구하며 트랙터 상경 시위에 나선 ‘전봉준투쟁단’이 남태령 고개에서 경찰에 막혀 대치를 이어간 지 28시간. 뚫릴 것 같지 않던 장벽을 허물고 대통령 관저 인근까지 행진한 전봉준투쟁단 트랙터 행렬을 기다리던 시민들은 환호했다.

    이런 시민들의 환호와 외침이 대통령 관저를 넘어 헌법재판소까지 다다라 이른 시일 안에 시민들이 진정 원하는 세상이 오길 바란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https://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1175427.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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