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충재 칼럼] 윤석열에겐 자비가 필요치 않다지금 이곳에선 2024. 12. 20. 12:18
▲윤석열 대통령이 12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대국민 담화를 하고 있다.대통령실
내란 피의자인 대통령 윤석열이 일체의 사법절차에 저항하고 있다. 수사기관들의 소환에 불응하고, 헌법재판소 서류도 받기를 거부했다. 윤석열은 언제나 상상하는 것 그 이상이다. 법과 원칙을 입에 달고 살던 검찰총장 출신의 그가 이런 치졸한 방법까지 동원할 줄은 생각하지도 못했다.
수사 피의자 가운데 가장 악질로 분류되는 경우가 고의로 출석을 회피하는 사람들이다. 일부러 집을 비워 통지서를 받지 않는 수법이 대부분이다. 윤석열은 이런 최소한의 감당도 하지 않는다. 버젓이 한남동 관저에 머물면서도 '수취 거부' '수취인 불명'으로 빠져나간다. 그러면서 관저에 배달된 자신의 생일 축하 꽃바구니는 골라서 받았다. 오죽하면 헌재조차 "이런 피의자는 처음"이라며 혀를 내두르겠나.
윤석열은 지난 12일 대국민담화에서 "탄핵하든 수사하든 당당히 맞서겠다"고 했다. 앞서 1차 탄핵안 표결 직전엔 "법적·정치적 책임 문제를 회피하지 않겠다"고도 했다. 그런 당당함과 기백은 온데간데없다. 윤석열이 주도한 계엄을 실행한 군과 경찰 지휘관들은 내란죄로 줄줄이 엮여 사법심판대에 올랐다. 그런데 정작 우두머리인 윤석열은 수사도, 탄핵 재판도 못 받겠다며 버티고 있다. 이런 사람이 국가지도자였다는 사실이 도무지 믿기지 않는다.
대통령이 된 이래 윤석열은 국정 실패에 제대로 책임을 인정한 적이 없다. 그를 늘 따라다니는 말이 '격노'였다. 누군가에게 화를 낸다는 것은 자신의 잘못이 없다고 생각해서다. '바이든-날리면' 사태는 언론 탓이고, 이태원 참사는 시민들 잘못이고, 의료 대란은 전공의 때문이고, 총선 참패는 선관위가 원흉이란다. 그러니 "대통령이 수사기관이 부른다고 가야 하느냐"는 기상천외한 말이 아무렇지 않게 나오는 것이다.
계엄 선포문에서도 윤석열은 줄곧 남 탓만 했다. 탄핵을 남발하고 예산을 삭감한 야당 때문에 계엄령을 발동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투다. 윤석열을 계엄에 이르게 한 동기가 그것만은 아니겠지만 취임 후 줄기차게 전 정부 탓, 야당 탓을 해왔던 것을 보면 그 말이 맞는 것 같다. 자신은 밤잠 못 자고 열심히 국민을 위해 일했는데 다른 세력의 방해로 국정이 엉망이 됐다고 여기는 것이다.
윤석열이 그렇게 자신있다면 수사기관에 직접 출석해 당당하게 밝히면 될 일이다. 참모들 뒤에 숨고, 변호사들을 앞세울 게 아니라 계엄을 왜 선포했고, 언제부터 마음먹었는지, 준비는 어떻게 진행했는지를 사실대로 진술하면 된다. 그런 주장이 얼마나 황당하고 터무니없는지는 국민이 판단할 것이다.
'악질 피고인' 윤석열에게 돌아갈 건 헌재 파면 결정뿐
윤석열은 버티기가 통할 거라고 생각하지만 착각이다. 헌재의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결정이 이를 분명히 보여준다. 박근혜도 처음엔 "진상규명에 최대한 협조하겠다"고 다짐했지만 검찰과 특검의 조사 요구에 온갖 핑계를 대며 거부했다. 이에 헌재는 "박근혜가 검찰이나 특검 조사에 응하지 않았고 청와대 압수수색도 거부했다"며 헌법 수호 의지 부족을 파면 근거로 못박았다.
그나마 박근혜는 탄핵안이 통과되자 본인의 '부덕과 불찰'을 탓하며 "참으로 괴롭고 죄송스러운 마음"이라며 고개를 숙였다. 윤석열은 자신의 잘못으로 구속된 군 지휘부나 현장에 동원된 군인, 경찰 등에 대한 일언반구의 사과도 없다. 윤석열의 책상 위에는 아직도 모든 책임은 내가 진다는 의미의 'The buck stops here'라고 쓰인 명패가 놓여있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은 당시 대통령이던 도널드 트럼프를 향해 'The buck never stops there(그쪽에선 절대 책임지지 않는다)'며 비꼬았다. 윤석열의 집무실 명패도 이렇게 바꿔야 할 모양이다.
윤석열은 비상계엄으로 민주주의를 위험에 빠트린 것도 부족해 수사기관을 조롱하고, 알량한 법지식으로 국민들을 모욕하고 있다. 악질도 이런 악질이 없다. 그런 윤석열에게는 일말의 자비도 필요하지 않다.
'지금 이곳에선'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고물가 우려 재점화…美 10년물 국채금리 6개월만 최고치 (3) 2024.12.20 '선결제 원조' 5·18주먹밥 아짐 "나눔도 용기, 대단허지 진짜" (5) 2024.12.20 2030 여성들이 윤석열 탄핵에 앞장 선 이유... 가디언의 분석 (5) 2024.12.20 헌법재판소 재판관 6명으로 탄핵 가능? (3) 2024.12.20 '롯데리아 계엄 모의' 노상원은 보살이었다…"줄서는 유명 점집" (3) 2024.12.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