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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한 시민을 다른 시민이, 흥분한 계엄군을 다른 군인이 자제시켰다지금 이곳에선 2024. 12. 8. 12:17
분노한 시민을 다른 시민이, 흥분한 계엄군을 다른 군인이 자제시켰다
[주간조선] 20대 기자가 겪은 '계엄 국회' 6시간
김연진 기자
입력 2024.12.08. 05:28
윤석열 대통령이 긴급 대국민 담화를 통해 비상계엄령을 발표한 가운데 지난 12월 4일 서울 여의도 국회 내부로 계엄군이 진입하자 보좌진들과 충돌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서울의 봄’을 2024년에 경험할 줄이야. 지난 12월 3일 오후 10시30분쯤이었다.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는 속보를 받아들고 처음에는 믿지 않았다. 계엄사령부 포고령을 확인하고도 꿈을 꾸는 건지 현실인지 헷갈렸다. 눈으로 직접 봐야 할 것 같아 무작정 택시를 잡아탔다. “국회로 가주세요.”
택시 안에서 ‘만약 사실이라면 이번 주 기사는 어떻게 하나’ ‘모든 언론과 출판이 계엄사의 통제를 받으면 누가 내 기사를 보는 거지’ 같은 생각이 이어졌다. 기사님이 “헬기 소리가 난다”고 하자 정신이 퍼뜩 들었다. 헬기 3대가 굉음을 내며 서울 영등포구 상공을 지나고 있었다.
국회의사당 국회3문 방면으로 들어가는 길은 꽉꽉 막혔다. 택시에서 옴짝달싹하지 못하는 상황이 됐다. 도로 가장자리에 내린 뒤 국회를 향해 뛰었다. 정문은 이미 막혀 있다는 소식을 듣고 우회로를 선택한 건데, 3문 앞에서도 담을 넘으려는 국회 관계자들, 그리고 이를 막는 경찰이 복작복작 엉켜 있었다. 그런 와중에 몇몇 의원들이 보좌진들의 도움을 받아 1m 남짓 되는 담장을 넘어 국회 안으로 들어갔다. 국회 밖에서 지켜보던 사람들 사이에서 박수와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국회 담을 넘어가자 달려온 경찰들
국회 담장 주변을 돌면서 경찰이 배치되지 않은 ‘빈틈’을 노리기로 했다. 넘을 만한 곳을 찾았고 기자를 비롯한 여러 사람이 월담 시도를 하자 경찰들이 헐레벌떡 뛰어왔다. 하지만 이미 담을 넘어간 사람들을 밖으로 끌어내진 않았다. 사내 메신저에 “담을 넘었다”고 보고하는 글을 올렸다가 1분 만에 삭제 버튼을 눌렀다.
담을 넘기 전 만난 다른 매체 기자가 “메신저를 감시하고 있을 수 있으니 조심하라”고 당부한 것이 문득 생각났다. 처음 겪는 사건이 몰고 온 불확실성은 두려움을 키웠다. 늦은 시간이었지만 지인들로부터 “어디냐” “몸조심하라”는 연락이 이어졌다.
국회 본관까지 가는 길이 이렇게도 길었나. 종종걸음으로 빠르게 이동했지만 “의원도 아닌데 왜 들어오냐”며 붙잡히진 않을까 노심초사했다.
눈앞에 펼쳐진 본관 바깥 모습은 그야말로 아수라장이었다. 건물 내부 진입을 시도하는 계엄군과 이를 막으려는 국회 관계자들이 대치하고 있었다. 군데군데 언성이 높아졌지만 “밀지 마세요” “흥분하지 마세요”라면서 서로를 자극하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도 보였다.
흥분한 군인을 다른 군인들이 잡아끌고, 분노한 시민을 다른 사람들이 저지했다. 20여분간의 실랑이 끝에 계엄군은 뒤로 물러나는 듯했지만 이내 누군가가 외쳤다. “이쪽으로 와주세요, 창문을 깨고 있어요.” 12월 4일 오전 0시 35분께 계엄군은 국회 본관 2층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실로 연결된 유리창문을 깨고 강제 진입했다.
기자는 국회 관계자들에게 출입증을 확인받은 뒤 정문을 통해 본관 안으로 들어갔다. 본관에 진입한 계엄군이 본회의장으로 향하는 것을 막기 위해 국회 보좌진 등이 소화기를 뿌리자 뿌연 연기가 복도를 채웠다. 국민의힘 당대표비서실 앞 출입문까지 들어온 계엄군을 국회 보좌진, 직원 등이 바리케이드를 쳐 막아섰다.
소파와 의자, 탁자 등은 로텐더홀로 통하는 출입문 앞에 성처럼 겹겹이 쌓여 계엄군의 진입을 차단했다. 본회의장 앞에서 아는 얼굴을 여럿 마주했지만 마냥 반갑게 인사할 순 없었다. 로텐더홀에 모인 사람들은 황당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한 국민의힘 의원실 비서관은 “집에서 택시를 타고 국회에 10시 40분쯤 도착해 담을 넘어 들어왔다”고 말했다.
피곤한 표정으로 본회의 생중계 방송을 지켜보던 한 국회 출입기자는 “이게 무슨 일인지 모르겠다”며 탄식했다. 12월 4일 오전 0시 45분, 한 야당 의원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160명 정도 본회의장에 들어와 있다”며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을 준비 중이다”라고 말했다. 헌법 제77조 5항에는 ‘국회가 재적의원 과반수의 찬성으로 계엄의 해제를 요구한 때에는 대통령은 이를 해제하여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재적의원 과반 찬성’을 위해선 최소 150명의 국회의원이 본회의장에 모여야 한다. 이를 충족했다는 걸 확인하고 나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계엄군과 보좌진이 대치하는 긴박한 상황 속에서도 우원식 국회의장은 “절차적 오류 없이 (의결)해야 한다. 아직 안건이 안 올라왔다”면서 10분간 안건 상정을 기다린 것으로 알려졌다.
우 의장은 안건이 올라오자 오전 0시47분 본회의를 개의했다.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은 오전 1시께 가결됐다. 국민의힘 의원 18명과 야당 의원 172명을 포함해 총 190명이 참석했고, 만장일치였다. 전날 밤 10시23분쯤 윤석열 대통령이 긴급 기자회견을 통해 비상계엄을 선포한 지 2시간30여분 만이다.
국회의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이 통과된 뒤에야 2㎝ 길이로 찢어진 손등 상처가 눈에 들어왔다. 담을 넘으면서 생긴 듯한 왼쪽 허벅지의 멍도 아파오기 시작했다. 로텐더홀에 모여 있던 사람들은 본관 3층 창문 밖으로 계엄군이 철수하는 모습을 확인했다. 본회의 표결 직후 여야 대표들의 기자회견도 이어졌다. 로텐더홀에선 국회 관계자들이 원형으로 둘러앉아 물을 마시며 대화를 나눴다. 기자들은 콘센트 옆에 앉아 노트북과 휴대폰을 충전하면서 숨을 돌렸다.
오전 3시께 조승래 민주당 수석대변인이 “수방사 특임대가 이 대표를 체포·구금하려던 시도가 CCTV로 확인됐고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 우원식 의장을 체포하려고 움직였다는 시도도 확인됐다”고 밝혔고 오전 4시쯤에는 우 의장이 긴급담화문을 발표했다. 윤 대통령이 오전 4시27분경, 긴급 대국민담화를 통해 비상계엄 선포를 해제한다고 선언할 때까지 마음을 놓을 수 없는 시간이 이어졌다.
30대 경찰 “여기서 왜 이러고 있나”
이날 국회 앞 근무를 섰던 기동대 소속의 30대 경찰은 “누구의 지시인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국회의원은 들여 보내라고 했다가 다 막으라고 했다가 혼란스러웠다”며 “여기서 왜 이러고 있나 회의감이 들었다”고 말했다.
정민철 민주당 성북을 대학생위원장은 계엄령이 선포되자마자 택시비 4만원을 내고 국회 앞으로 달려왔다고 했다. 4일 0시부터 4시까지 국회 앞을 지켰다는 정 위원장은 “대학생 친구들과 ‘우리는 잡혀가도 싸운다’며 모였지만 집에서 자다가, 혹은 동네 산책하듯이 온 시민들도 굉장히 많았다”고 말했다.
“SNS나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한 정보 공유가 워낙 빠른 시대다. 필요한 정보들은 바로바로 올라오더라. (계엄 관련) 게시글 조회 수가 100만을 훌쩍 넘고 서버가 터지기도 했다. 예전엔 자고 일어나면 세상이 바뀐다는데 이제 그런 건 안 되겠구나 싶었다.”
윤 대통령의 계엄령 선포는 대한민국을 45년 전으로 되돌렸지만 국민들은 과거로의 후퇴를 막아냈다.
평범한 일상은 당연한 것이 아니었다. 추운 날씨에 패딩과 목도리로 꽁꽁 싸맨 시민들은 비상계엄 선포 해제 이후에도 쉽사리 국회 앞을 떠나지 못했다. 자발적으로 모여든 시민들로 인해 동이 트기 전인 오전 5시쯤에도 국회 앞은 그 어느 때보다 환한 느낌이었다. 긴박했던 6시간이 지나고 삼삼오오 모여 수다를 떠는 시민들의 표정은 그리 어둡지만은 않았다.
https://www.chosun.com/politics/2024/12/08/RX65LRXUCVBHRB2DPKSIG7BON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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