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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인재 몰린다...'남유럽 문제아' 포르투갈의 부활 비결지금 이곳에선 2024. 10. 2. 15:34
자본·인재 몰린다...'남유럽 문제아' 포르투갈의 부활 비결
[WEEKLY BIZ] [Cover Story] 관광자원, 싼 물가, 디지털 기반 시설 '삼박자' 갖춰...돈과 사람 몰려
입력 2024.09.26. 18:06업데이트 2024.09.29. 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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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투갈 경제가 부활하고 있다. 코로나 이후 관광객이 넘쳐나면서, 이달 초 찾은 포르투갈 수도 리스본의 아우구스타 개선문 앞엔 관광객들 발걸음이 줄줄이 이어지는 모습이었다. 유명 식당도 전부 만석이라 ‘오버투어리즘(과잉 관광)’ 문제까지 불거질 정도였다. 실제로 지난해 포르투갈을 찾은 관광객은 2650만명으로, 전년 대비 19% 늘었다. /정철환 특파원
포르투갈 북부의 중심도시 포르투(Porto). 도루(Douro)강을 낀 아름다운 자연경관과 포르투 와인으로 유명한 이곳은 여름휴가 시즌이 끝난 9월 중순에도 관광객들로 가득했다. 영화 해리포터에 영감을 준 장소로 유명한 ‘렐루(Lello) 서점’ 앞은 관광객들이 80m에 달하는 줄을 섰다. 서점 직원은 “그나마 휴가철이 끝나서 이 정도”라며 “8월 말까지만 해도 두세 배 더 긴 줄이 서 있었다”고 했다.
수도 리스본도 마찬가지다. 추석 연휴 직전 찾은 리스본은 ‘오버투어리즘(overtourism·과잉 관광)’이라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로 사람들이 넘쳐났다. 중심가인 아우구스타 거리는 발 디딜 틈이 없었고, 식당들은 모조리 만석이었다. 기념품 가게 주인 주앙(39)씨는 “코로나 대유행 때 본 손해를 작년에 다 만회했다”며 “경기가 계속 나아지는 게 느껴진다”고 했다.
그래픽=김의균
포르투갈은 최근 저성장 위기를 겪고 있는 유럽 경제에서 예외적 ‘우등생’으로 꼽힌다. 2021년 5.7%, 2022년 6.8% 고성장을, 지난해는 2.3% 성장했다. 같은 기간 유럽연합(EU)의 경제성장률은 각각 6.0%, 3.5%, 0.5%였다. 포르투갈은 이후 파이낸셜타임스(FT)와 이코노미스트 등에 단골로 등장하며 그리스, 이탈리아, 스페인 등과 함께 ‘PIGS(Portugal·Italy·Greece·Spain)의 부활’이란 주제로도 종종 다뤄진다.
WEEKLY BIZ가 직접 확인한 포르투갈의 실제 분위기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다. 상대적으로 낮은 물가, EU 회원국이라는 장점, 노동시장 개혁 등을 통해 경제 전체에 활기가 돌아 보였다. 리스본대에서 만난 대학원생 카를라(25)씨는 “취업문이 예전보다는 확실히 넓어졌다”며 “몇 년 전만 해도 다들 해외 취업을 알아보고 있었다”고 했다.
그래픽=김의균
◇남유럽 재정 위기를 딛고 일어서다
포르투갈 경제를 이야기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와 그 뒤를 이은 유럽 재정 위기다. 당시 포르투갈은 이탈리아, 그리스, 스페인 등과 더불어 막대한 재정 적자와 공공 부채로 심각한 위기에 빠져 있었다. 국가 부채는 2012년 국내총생산(GDP)의 129%에 달했고, 재정 적자는 GDP의 9.8%(2009년)까지 치솟았다. 다른 국가들 역시 비슷하거나 더 심각한 처지였다.
그래픽=김성규
‘남유럽의 문제아’란 조롱을 받으며 ‘PIGS’라고 불리던 이 4국은 결국 당시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주도한 EU의 구제 금융 프로그램에 맞춰 민·관 양쪽에 모두 걸친 강력한 구조 조정을 했다. 선심성 복지에 몰려 있던 정부 재정은 긴축의 칼날을 맞았고, 탄력적인 고용과 해고가 가능한 노동 개혁에 나서야 했다.
국민의 강한 반발과 저항이 있었지만, 이로 인한 체질 개선의 성과는 분명했다. 고성장을 이어가는 포르투갈을 비롯해 그리스 역시 2022년 5.9%, 지난해 2.4%의 경제성장률을 보인 데 이어 올해 1분기에도 2%대 성장을 보인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스 외국인 직접투자(FDI)도 포르투갈 수준에는 못 미치지만 2022년 76억달러로 사상 최고치를 보였다.
2015년 27.5%에 달했던 실업률은 올 들어 10% 아래로 떨어졌다. 이탈리아와 스페인 역시 여기에는 못 미치지만 유사한 흐름을 보이며 유럽 다른 국가들에 비해 견조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특히 최근 0~1%대 낮은 성장률을 보이는 독일과 영국, 프랑스 등 유럽의 대표 국가들에 비해 눈에 띄는 경제 성적이다.
그래픽=김성규
이 같은 남유럽의 견조한 성장엔 코로나 이후 관광산업의 회복이 주원인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지난해 포르투갈을 찾은 관광객은 2650만명으로, 전년 대비 19% 늘었고, 코로나 직전의 기록(2460만명)을 뛰어넘을 만큼 호황이다. 관광산업은 포르투갈 전체 국내총생산(GDP)의 약 15%를 차지한다. 지난해 숙박 매출만 60억유로(약 9조원)에 달했다.
리타 마르케스 전 관광·상무 장관은 반면 “관광산업의 호황이 큰 역할을 한 것은 사실이지만, 단순히 그것만은 아니다”라며 “그 기저의 변화를 살펴봐야 한다”고 현지 매체에 말했다. 지난 10여 년간 포르투갈 경제의 체질 개선과 이와 연관된 경쟁 우위 요소가 더 근본적이라는 것이다.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외국인 투자다.
포르투갈 정부 집계에 따르면 2022~2023년 포르투갈엔 해마다 90억달러(약 12조원) 이상의 외국인 직접투자가 이뤄졌다. 코로나 이전인 2019년의 103억달러(약 13조7000억원)에는 아직 못 미치지만, 2020년의 40억달러(약 5조3000억원)와 비교하면 두 배 이상으로 늘었다.
그래픽=김성규
마르케스 전 장관은 “해외투자가 관광산업뿐만 아니라 재생에너지와 친환경 산업, 스타트업들에 활발히 이뤄지면서 포르투갈 경제의 성장을 이끌고 있다”며 “포르투갈이 예전보다 더 ‘투자하기 좋은 곳’으로 바뀌었다는 뜻”이라고 했다. 여기에는 지난해 말로 종료된 ‘골든 비자’ 제도도 상당한 역할을 했다. 포르투갈 기업이나 부동산에 투자하면 영주권을 주는 제도다.
2021년 이후 1만2400여 개 골든 비자가 발급됐고, 이를 통해 유치된 자금은 70억유로(약 10조4500억원)에 달한다. 지난해는 부동산 투자에 대한 영주권 발급을 중단하는 제도 개편을 앞두고 신청이 몰려들면서 4억유로의 투자가 추가로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일러스트=김성규
◇자본과 인재가 모두 몰리는 나라
포르투갈은 이제 자본뿐만 아니라 글로벌 인재들이 선호하는 나라가 됐다.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지난 몇 년 새 불고 있는 스타트업 붐이다. 지난해 말 기준 포르투갈에서 운영 중인 기술 스타트업은 4000개 이상. 이 중 70%가 최근 5년 새 설립됐다.
2022년에는 한 해에만 700개가 넘는 스타트업이 생겼다. 스타트업이 늘어나고, 해외투자자들의 관심도 커지면서 ‘웹 서밋’이라는 글로벌 스타트업 행사도 생겨 매년 11월 활발하게 운영되고 있다.
스타트업 창업자 중 상당수가 해외에서 IT와 바이오 등 첨단 기술 업종에 종사하던 포르투갈 출신 젊은이들이다.
포르투갈의 인공지능(AI) 번역 기술 업체 ‘언바벨(Unbabel)’, 클라우드 기반 콜센터 플랫폼 ‘토크데스크(Talkdesk)’, AI 기반 금융 사기 방지 기술 업체 피드자이(Feedzai) 등이 대표적이다. 창업자들이 모두 미국 실리콘밸리 등에서 일하던 인물들이다. 포르투 근처의 항구도시 마토지뉴스에 위치한 헬스케어 기술 업체 ‘녹(Knok)’ 역시 국내외 인재 60여 명이 어울려 만든 회사다.
현재 세계 10여 국에서 5G 기반 비대면 원격진료, AI 기반 진료 기록 관리 등 다양한 첨단 의료 서비스를 제공한다. 가장 큰 시장은 포르투갈이지만 영국, 이탈리아, 스위스, 브라질 등에서도 빠르게 사업을 확장하면서 명실상부한 글로벌 스타트업으로 발돋움했다.
이들은 왜 미국 실리콘밸리나 영국 런던처럼 돈과 인재가 모이는 곳으로 옮겨가지 않을까.
아나 레앙 녹 부사장을 만나 이를 물으니 “포르투갈에서 어렵지 않게 인재와 자본을 구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포르투갈의 관광자원과 저렴한 물가, 우수한 디지털 기반 시설 덕분이다. 그는 “이른바 ‘디지털 노마드’로 불리는 젊은 인재들이 ‘즐기면서 일할 수 있는’ 요소들이 여기에 모두 있다”고 했다.
포르투갈 젊은이들의 높은 교육수준도 한몫했다. 필리프 핀투 녹 부사장은 “포르투갈 젊은이들은 어려서부터 외국어 교육을 받아 언어 능력도 훌륭하다”며 “여기서 영어와 이탈리아어, 독일어 고객 상담 직원들을 직접 채용할 수 있어 굳이 외국에 나갈 필요가 없다”고 했다.
◇‘살기 힘들다’며 나갔던 이들도 돌아와
유럽 재정 위기 직후인 2013년 포르투갈의 실업률은 18.3%에 달했다. 재정 긴축과 구조 개혁의 영향이 컸다. 이후 노동 시장 개혁과 경기 회복에 힘입어 실업률은 2019년 6%대까지 떨어졌다.
지난해 말에는 6.5%였다. 3%대인 독일에 비해서는 높지만, 다른 남유럽 PIGS 국가인 이탈리아(7.9%), 그리스(10.8%), 스페인(11.3%)에 비하면 현저히 낮은 수준이다.
그래픽=김성규
경제 상황이 개선되고, 일자리도 늘어나면서 어려웠던 시절 해외로 나갔던 포르투갈인들이 역(逆)이민을 하는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포르투갈 정부 집계에 따르면 2022년 11만7843명이 포르투갈로 돌아왔다. 포르투갈 이민청은 “이는 전년 대비 21% 늘어난 것”이라며 “역이민 증가 등에 힘입어 6년 연속 순이민 증가세가 나타났다”고 밝혔다.
그래픽=김성규
포르투갈은 그러나 특정 산업(관광업) 의존도가 크고, 제조업 기반이 취약하다는 게 약점으로 꼽힌다. 또 관광업 호황과 해외 이민 유입이 늘면서 부동산 가격이 급등하고 있다. 이로 인해 글로벌 경기가 위축되면 급격히 자국 경기가 악화하며 다시 경제 위기에 처할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포르투갈·유럽 경제 전문가인 히카르두 마메드 리스본대 경제학부 학장은 “포르투갈 경제가 여러모로 체질 개선이 됐다고 하지만, 구조적 경쟁력의 관점에서는 아직 갈 길이 멀다”며 “기반 시설 투자 역시 관광에 필요한 대중교통 시스템 등에 대거 이뤄지고 있는데, 이것이 산업 경쟁력으로 이어지지는 않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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