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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대로 뒤덮은 거대 황새들…“미래가 아닌 지금, 변해야 할 때”지금 이곳에선 2024. 9. 9. 09:32
경북 영주·상주 지역 청소년들이 7일 오후 서울 강남역 일대에서 열린 ‘907 기후정의행진’에 참여해 국내 대표적인 멸종위기종 황새의 종이 인형탈을 쓰고 1m 장다리 위에 올라 춤을 추고 있다. 주변에는 2급수 이상에서 사는 한국 고유종 물고기 흰수마자 인형을 든 청소년들이 함께 하고 있다. 나무닭움직임연구소 제공
“멸종위기종이 더 이상 생겨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우리의 모습 같아서요.”
전날 서울 강남대로 일대에서 진행된 ‘907 기후정의행진’에 참여해 황새 탈을 쓰고 춤을 춘 김서은(14)양은 8일 한겨레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는 “우리도, 앞으로 태어날 아기들도 점점 더 안 좋은 환경에서 생활할 거 같아서 그게 너무 안타깝다”고 했다.
경북 영주 영광여자중학교 2학년생인 김양은 이번 행진에서 국내 대표적인 멸종위기종 황새의 인형탈을 쓰고 1m 장다리 위에 올랐다. 역시 황새로 분한 다른 중학생 친구들과 힘찬 날갯짓을 하다 바라본 강남대로의 행진 풍경이 놀라웠다. 김양은 “장다리 위에서 보니 앞뒤로 저 멀리까지 사람들이 빼곡하게 차 있었다. 기후위기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정말 많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했다.
환경 연극을 하는 ‘나무닭움직임연구소’의 공연예술 캠프에 참가한 경험이 있는 경북 영주·상주 지역 청소년들은 이날 황새와 함께, 역시 멸종위기종인 흰목물떼새와 2급수 이상에서 사는 한국 고유종 물고기 흰수마자의 모습으로 변해 행진했다. 모두 김양의 영주 집 인근 내성천에서 과거 흔히 볼 수 있던 생물들이다.
내성천은 원래 모래가 흐르는 깨끗한 강이었지만, 4대강 개발 사업으로 영주댐이 생기면서 옛 모습을 잃었다. 김양은 “집 앞 내성천에서 놀다 피부병에 걸린 친구가 있다. 내성천이 예전과 달리 구정물로 변하는 걸 보면서 환경오염이 심각해지고 있고, 크게는 기후위기와 관련 있다 느꼈다. 내년에도 기회가 되면 기후정의행진에 꼭 참여하겠다”고 말했다.
7일 오후 서울 강남역 일대에서 열린 ‘907 기후정의행진’에 참여한 경북 영주·상주 지역 청소년들이 멸종위기종인 흰목물떼새의 모습으로 분장한 채 행진하고 있다. 나무닭움직임연구소 제공
김양이 황새로 변한 이날 강남대로 일대엔 3만명에 이르는 시민이 모였다. 행사를 주최한 907 기후정의행진 조직위원회는 “애초 예상한 참석 인원 2만명을 훌쩍 넘겼다”며 이렇게 추산했다. 오후 1시께부터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시민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참가자들은 강남역에서 시작해 역삼역·선릉역·포스코사거리를 거쳐 삼성역을 향해 행진했다. 온실가스를 대량으로 방출하는 대기업 본사가 즐비한 곳이다. 행진에서, 기후위기의 직접적 피해자로 꼽히는 ‘미래 세대’인 어린이·청소년의 목소리는 한층 거셌다.
행진에 참여한 윤현정 청소년기후행동 활동가는 지난달 29일 헌법재판소가 ‘탄소중립기본법’에 대해 헌법불합치 판결을 내린 사실을 언급하며 “지금부터가 본격적인 시작이다. 우리 삶을 지킬 최전선을 함께 만들어가자”고 제안했다.
서울 목동에서 온 이재인(14)양은 “기후위기가 더 심해지면 어릴 적부터 봐왔던 코카콜라 마스코트 북극곰을 더 이상 볼 수 없을 것이란 얘기를 들었다”며 “우리가 지구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 친구와 함께 행진에 참여하게 됐다”고 밝혔다. 친구 차하윤(13)양도 “학교 수업 시간에 아마존의 나무가 계속 사라지는 영상을 본 적이 있는데, 올해 여름이 너무 더워 기후위기가 먼 나라 얘기가 아니란 걸 체감했다”고 말했다.
7일 오후 서울 강남역 일대에서 열린 ‘907 기후정의행진’에 참여한 경북 영주·상주 지역 청소년들이 멸종위기종인 황새와 흰목물떼새의 모습으로 분장한 채 행진하고 있다. 나무닭움직임연구소 제공
2019년에 처음 시작돼 올해로 네번째 열린 기후정의행진에 청소년들의 참여는 부쩍 늘고 있다. 이영경 조직위 기획팀장은 “예년보다 올해 청소년 참가자가 확실히 늘었다. 특히 기후환경 동아리나 아예 학교 단위로, 청소년 단체 차원에서 참가한 이들이 늘고 있다”며 “원래 학교 단위 참석은 대안학교가 많았는데 이젠 일반 학교에서 오는 이들도 많아졌다. 직접 만든 펼침막에 학교 이름을 써서 들고 온다”고 말했다.
김보림 청소년기후행동 활동가는 “한해 전 단순 참가자로 왔다가 올해 집회에선 깃대를 드는 등 자원 활동을 하는 친구들도 봤다. 청소년 참가자들이 확실히 늘어난 느낌”이라며 “특히 이번 기후소송 때 국민 참여 캠페인을 하면서 보니, 본인이 사는 지역에서 다양한 활동에 참여하거나 실질적 변화를 만들려고 노력한다는 청소년들이 많더라. 캠페인 참가자 5천명 가운데 90%가 10~20대였다”고 했다.
청소년들의 ‘기후행동’은 아무래도 당사자성과 관련돼 있다. 지금의 청소년들은 어른들보다 기후가 변화한 지구에 더 오래 머물게 된다. 이들에게 기후위기는 곧 인권의 위기다.
행진에 앞서 발표된 ‘청소년인권 기후정의선언문’ 작성에 참여한 수영(17) 청소년인권모임 내다 활동가는 “기후위기 최전방에 있는 우리는 미래 세대가 아니라 지금 함께 변화를 만드는 시민들”이라며 “청소년 인권도 결국 기후정의와 연결돼 있다. 인간이 자연과 자원, 동물을 착취하는 구조를 멈추는 것이 기후정의를 실현하는 방법”이라고 말했다.
윤연정 박고은 박기용 기자 yj2gaz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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