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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의 마법' 바닷물에 적시면 가격 20배로… 혈세 '줄줄'지금 이곳에선 2024. 8. 17. 13:09[추적 : 지옥이 된 바다 1부]④ 세금 포식자가 된 쓰레기본보, 정부 속이는 '가짜 바다 쓰레기' 추적예산 투입 해양 쓰레기 수거… 감독은 구멍컨트롤타워 없어 나랏돈 빼먹는 범죄 만연해수부는 기본적 현황 파악도 안돼 '무관심'
편집자주
콧구멍에 플라스틱 빨대가 박혀 피 흘리는 바다거북, 배 속에 찬 쓰레기 탓에 죽은 향유고래. 먼바다 해양 생물들의 비극은 뉴스를 통해 잘 알려졌죠. 우리 바다와 우리 몸은 안전할까요? 한국일보는 3개월간 쓰레기로 가득 찬 바다를 찾아다녔습니다. 동해와 서해, 남해와 제주에서 어부와 해녀 63명을 만나 엉망이 된 현장 얘기를 들었고, 우리 바다와 통하는 중국, 일본, 필리핀, 미국 하와이를 현지 취재했습니다. 지옥이 된 바다. 그 가해자와 피해자를 추적했습니다.
해양쓰레기는 돈이 된다. 정부나 지자체, 공공기관이 바다 쓰레기 수거를 민간업체에 맡기고 용역비를 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허술한 감시망 탓에 각종 방법으로 사기 행각을 버려 쓰레기는 줍지 않고, 돈만 챙기는 업체가 적지 않다. 일러스트=신동준 기자
유독 고요한 한여름의 아침이었다. 2021년 8월, 전남 장흥군에서 0.8마일(약 1.3㎞) 떨어진 남해 앞바다에 수상한 배 두 척이 나란히 떠 있었다. 두 선박은 곧 서로의 좌현과 우현을 바짝 붙이더니 떨어지지 않도록 줄로 단단히 동여맸다.
"자, 옮깁시다."
충남 대천에서 온 배인 'XX 03호'의 선장 변모씨가 '△△ 1호' 선장 임모씨에게 말했다. 선원들은 03호에 실렸던 돈이 되는 '물건'을 다른 배로 옮겼다. 두 사람은 자신들이 속한 업체 사장인 최모씨와 그의 동생의 지시를 받고 움직였다. 작업이 끝나자 물건을 건네받은 1호가 항구 방향으로 뱃머리를 틀고는 유유히 사라졌다.
경북의 한 바다 어항에 자루에 담긴 쓰레기가 놓여있다. 원다라 기자
돈이 되는 물건은 '해양 쓰레기'였다. 바다에서 쓰레기를 주워오면 정부에서 돈을 준다. 사장 최씨는 해양환경공단과 장흥군 삼산방조제 주변 해역의 폐기물 118톤을 치우는 대가로 2억9,500만 원을 받기로 했다. 그런데 왜 충청도 쓰레기를 전라도에서 넘겨받았을까.
최씨의 업체는 대천의 해양 쓰레기를 치우는 계약도 했는데, 대천에선 이미 약속한 물량을 채웠기에 더 주워봤자 돈을 받을 수 없었다. 최씨는 대천 쓰레기까지 합쳐 118톤을 주워왔다고 속이고 공단으로부터 약속한 돈을 받았다. 최씨는 이 일이 들통나 사기 등의 혐의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하지만 그는 억울함을 호소하며 만연한 업계 비리를 언급했다. 최씨는 한국일보 통화에서 "우리만 그런 게 아니다. 특정 업체들이 담합해 매년 수백억 원 규모의 사업을 따내는 등 비리가 횡행한다"고 주장했다.
최씨의 말처럼 해양 쓰레기로 사기 쳐 나랏돈을 빼먹는 일은 흔히 일어난다. 가짜 해양 쓰레기를 만들거나 쓰레기 양을 부풀리는 등 수법도 다양하다. 한국일보 특별취재팀은 판결문 분석과 정부·지방자치단체, 관련 업체 등을 취재해 그동안 알려지지 않은 다양한 사기 사례들을 분석했다.
육상서 가져오고 무게 속이고 사기 판쳐
육상 쓰레기를 바닷물에 적시면 가치가 20배로 뛰는 '마법' 같은 일이 벌어진다. 한 해양폐기물 수거업체는 2020년 7월부터 10월까지 3개월간 해가 지면 인적이 드문 경북 포항의 조선소에서 몰래 작업을 했다.
뭍에서 수거한 폐그물 등을 바닷물에 담갔다 빼는 수법으로 128톤의 가짜 해양 쓰레기를 만들어낸 것이다. 이들은 완전범죄를 꿈꿨다. 바다에 나가서 수거해온 것처럼 선박 운항 기록도 꾸몄다. 육상 폐기물로 처리했다면 1,600만 원을 받을 양이었지만, 이 업체는 한국어촌어항공단으로부터 20배에 달하는 3억2,000만 원을 받았다.
깊이 있을수록 비싼 해양 쓰레기. 그래픽=박구원 기자
수거한 쓰레기 무게를 속여 돈을 더 받아내는 수법도 흔하다.
전남 신안의 폐기물 처리업체는 2021년 한 군청과 해양폐기물 등 총 149톤을 수거하기로 계약했다. 하지만 업체 대표는 서류를 조작해 쓰레기를 적게 줍고 돈만 챙기기로 마음먹었다.
해양 쓰레기 처리 과정을 보면 ①쓰레기를 주워 트럭에 실은 뒤 공인받은 계량소에서 무게를 측정한 사진을 찍고 ②이 사진을 근거로 계량소에서 무게 증명서를 받아 중간처리업체에 넘기면 ③중간처리업체가 이를 폐기물 등록 시스템에 올린 후 지자체에 비용을 청구한다.
회사는 이 과정에서 수거한 쓰레기 중량을 속여 돈을 더 타냈다. 계약한 해양폐기물 양의 절반가량만 주워놓고는 이전에 많은 쓰레기를 수거했을 때 찍어놓은 사진을 활용해 계량소에서 무게 증명서를 받았다. 허술한 시스템 탓에 범죄가 성공하는 듯했지만, 빈 배로 입항했는데 쓰레기 양이 너무 많이 측정된 것을 수상히 여긴 해경에 꼬리가 밟혔다. 업체 대표는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다.
어민들이 고기를 잡다가 그물에 걸린 쓰레기를 뭍으로 가져오면 돈을 주는 '조업 중 인양 쓰레기 수매 사업'도 허술하긴 마찬가지다. 전북 군산에 사는 백모씨는 쓰레기가 담긴 100L와 200L짜리 마대 자루 수백 개를 트럭에 싣고 지역 수협을 찾아갔다.
그는 "내 배를 타고 바다에서 조업하다가 수거했다"며 쓰레기 자루를 주고 205만 원을 받아 챙겼다. 하지만, 백씨에게는 배가 없었다. 이 쓰레기는 바다에서 주운 게 아니라 새만금 방조제 주변에 널려 있던 폐그물이었다.
인천 영종도 을왕리 해수욕장 인근에 폐그물과 밧줄이 방치돼 있다.(특정 사건과 관련 없음) 코리아타임스 제공
해양 쓰레기 관련 예산? "누구도 몰라"
예산이 제대로 쓰이지 못하는 사업도 허다하다. 해양수산부가 쓰레기 문제 해결을 위한 대안으로 대대적으로 홍보했던 '쓰레기 처리선' 프로젝트가 대표적이다. 해수부와 산업통상자원부는 이 사업 예산으로 480억원을 편성했고, 실제 지난 5년간 약 200억원을 투입했다. 바다에서 수거한 쓰레기를 배 위에서 열분해해서 이때 나온 에너지를 연료 삼아 운항한다는 아이디어였다.
그러나 쓰레기를 태우면 많은 양의 유해가스가 발생하는 까닭에 국제해사기구(IMO) 규정을 위반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애초 정부는 이 배를 올해 안에 건조하려고 했지만 기약 없이 미뤄졌고, 예산도 삭감됐다. 업계에선 "영해상에서 쓰레기를 태우는 건 불법이고, 공해상에서 태워도 IMO 규정에 저촉될 수 있다는 점은 해양 쓰레기 전문가라면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 기본 상식"이라고 꼬집었다.
이에 대해 해수부는 "IMO 규정 위반 여부는 충분히 검토 후 사업을 추진했다"며 "건조 작업이 지연된 건 원자재 가격 상승 탓"이라고 말했다.
서로 다른 공공기관이 비슷한 사업을 벌이는 일도 있다. 감사원은 2020년 해양폐기물 수거관리실태 특정감사에서 "침적 폐기물 사업과 관련해 해양환경공단과 한국어촌어항공단과의 주체별 사업지가 중복돼 있다"고 지적 받았다.
해양 쓰레기 예산을 집행하는 공공기관들은 "모든 사업 현장을 다 들여다볼 수는 없는 것 아니냐"고 반문한다. 2년 전부터는 일부 현장에서 감리 제도를 도입해 민간업체에 맡긴 해양 쓰레기 처리 사업을 감독하고 있다고도 했다. 하지만 일부 감리업체 사이에서는 '제도가 실효성이 없다'는 푸념이 나온다. 한 감리업체 관계자는 "선정된 업체 중에 전문성이 없는 곳이 많을뿐더러, 감리 표준과 권한도 없다 보니 면피성 날림 조사가 횡행한다"고 말했다.
해양수산부의 해양 쓰레기 주요 사업. 그래픽=박구원 기자
더 큰 문제는 해양 쓰레기 정책에 얼마나 많은 돈이 들어가는지 누구도 정확히 모른다는 점이다. 컨트롤타워가 사실상 없기 때문이다. 해양 쓰레기 사업은 해수부와 환경부, 지자체가 시행한다. 국가 재정과 지자체 예산을 함께 투입하는 일도 있지만 각자 벌이는 사업도 많다.
예컨대 해저면에 가라앉은 침적 폐기물 수거·처리 사업은 해수부가 국비 168억 원(2024년 기준)을 투입한다. 반면, 조업 중 인양 쓰레기 수매 사업은 각 지자체가 총 85억 원을 들여 진행한다.
사업이 중구난방으로 벌어지다 보니 관리 사각지대가 발생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본보가 해수부 측에 "해양환경공단과 어촌어항공단 한국수산회가 해수부 예산으로 해양 쓰레기 사업을 하던 중 발생한 비리 사건 현황을 알려달라"고 요청하자 "별도로 관리하고 있지 않다"고 답했다.
국고보조금이 들어가는 지자체 침적쓰레기 정화 사업이나 수매 사업과 관련해 물어봐도 같은 답변이 돌아왔다. 손종필 나라살림연구소 전문위원은 "주무부처가 기본 현황도 파악 못하고 있다는 건 예산이 제대로 쓰이는지 관리감독이 안 되고 있다는 의미"라며 "해수부가 해양 쓰레기 문제에 관심이 없다고 봐야 한다"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해수부 관계자는 "우리 부의 해양 쓰레기 예산이나 지자체가 국비 지원을 받아 하는 사업 예산은 알고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본보가 지난 3개월간 해양 쓰레기 관련 예산 총액과 각 사업별 세부 예산을 알려달라고 요청했지만 이를 밝히지 않았다.
지난달 11일 충남 지역의 한 항구 인근 수협에 수 년간 바다에서 건져 올린 폐기물이 쌓여 있다.(특정 사건과 관련 없음) 이한호 기자
예산 집행과 관리에 구멍이 많다 보니, 해양 쓰레기 예산을 주머니에 쉽게 챙길 수 있는 돈으로 여기는 이들이 적지 않다. 충남 지역의 한 어업 종사자는 "어촌계에 폐그물이 보이면 누군가 부리나케 가지러 와서 바다에서 주웠다고 속인다"며 "이런 건 너무 흔해 비리도 아니다"고 전했다.
예산을 공돈처럼 여겨 관리감독 허술
해양 쓰레기 예산을 공돈처럼 여기는 이들이 적지 않은 이유는 정부가 수거량에만 관심을 두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해수부가 지자체 사업 실적까지 종합 집계하는 항목도 쓰레기 수거량뿐이다. 매년 수거량을 취합해 발표하기에, 공공단체들과 지자체들의 경쟁이 치열하다.
진짜 쓰레기든, 가짜 쓰레기든 많이 주워오는 게 중요할 뿐 수거 과정의 비위 가능성을 점검하는 절차는 허술하다는 얘기다.
감사원은 지난해 11월 해양환경공단 감사에서 "예산은 큰 폭으로 증가하고 있는데, 침적 폐기물 수거 실적 증가율은 높지 않다"며 "매년 추진 계획을 현실성 있게 수립해 정부로부터 지원받은 위탁 사업비를 효율성 있게 집행해야 한다"고 밝혔다.
정부가 꾸준히 예산을 투입하고 있는데도 해양 쓰레기 문제가 갈수록 심각해지면서 관련 정책을
근본적으로 점검할 때가 됐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는 2020년 예산결산 보고서에서 "해양 쓰레기 처리는 지역과 목적에 따라 사업수행방식과 사업수행 주체가 달라서 비효율이 발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해양 쓰레기 관련 사업들을 체계적으로 통합ㆍ정비할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바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올해 해수부에 관련 예산으로 3,000억 원 정도를 편성한 것으로 분석했다.
적지 않은 돈이 투입되는 만큼 효율적인 사업 관리나 예산 유용 사례 감시가 더욱 중요해졌다. 손 연구위원은 "관리감독이 철저하지 못하면 눈먼 돈을 노린 업자들의 배만 불리게 될 것"이라며 "쓰레기 수거 목표치만 보고 예산만 얹는 식이 아니라, 종합적인 대책 수립이 우선돼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일보 특별취재팀
팀장 : 유대근 기자(엑설런스랩)
취재 : 진달래·원다라·이서현 기자(엑설런스랩), 조영빈(베이징)·허경주(하노이) 특파원, 한채연 인턴기자
사진 : 이한호·최주연·정다빈 기자
영상 : 박고은·김용식·박채원 PD, 제선영 작가, 이란희 인턴PD
※<제보받습니다> 한국일보는 해양 쓰레기 문제를 집중 취재해 보도해 나갈 예정입니다. 해양 쓰레기 예산의 잘못된 사용(예산 유용, 용역 기관 선정 과정의 문제 등)이나 심각한 쓰레기 투기 관행, 정책 결정 과정의 난맥상과 실효성 없는 정책, 그 외에 각종 부조리 등을 직접 경험했거나 사례를 직·간접적으로 알고 있다면 제보(dynamic@hankookilbo.com) 부탁드립니다. 제보한 내용은 철저히 익명과 비밀에 부쳐집니다. 끝까지 취재해 보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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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다라 기자 dara@hankookilbo.com
한채연 인턴 기자 baby8006@naver.com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4080707050003988?utm_source=taboo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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