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라제기의 영화로운 /영화 '스윙키즈'(2018)문화 광장 2024. 6. 29. 18:57
라제기의 영화로운 /영화 '스윙키즈'(2018)
한국일보의 영화전문기자. 문화부장, 에디터를 거쳐 영화라는 우물을 깊고 넓게 파는 중이다. 홍콩배우 임달화를 닮은 외모를 발판으로 최근 클럽하우스에 ‘다롸몰’을 열어 영화로운 이들과 접선하고 있다.안녕하세요, sooji2님. 이번 주 잘 보내셨나요. 어느덧 주말이 눈앞입니다. 주말 짬 내서 영화나 드라마 한 편 보고 싶지 않으신가요. 이왕이면 세상사를 좀 더 넓은 눈으로 보게 해주거나 사회 흐름을 콕 집어주는 작품 말이에요. ‘라제기의 영화로운’은 의미 있는 영화나 드라마 관람을 원하시는 분들에게 작은 도움을 드리려고 합니다.“너는 좋겠다. 돌아갈 집이 있고 부모가 있어서.”영화 ‘스윙키즈’ 속 로기수(도경수)올해 6.25가 남다르게 느껴지는 이유😞영화 '스윙키즈'(2018)
얼마 전 서른 중반 후배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요즘 애들은 김성재가 누군지 몰라요. 듀스도 처음 들어본다고 하더라고요.”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김성재와 듀스가 여러분 연령대를 알 수 있는 기준 중 하나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연예인뿐만일까요. 한국 현대사에 굵은 글씨로 남은 일들을 누군가는 알고, 또 누군가는 잘 모릅니다. 6.25 전쟁을 모르는 분은 없어도 세부 내용에 들어가면 고개가 갸우뚱해지는 분들이 적지 않을 겁니다.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북한을 최근 방문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정상회담을 열었습니다. 푸틴 대통령은 양국의 우정을 과시하기 위해 김 위원장에게 러시아제 리무진 ‘아우르스’를 선물했는데요. 차 번호판에 숫자 ‘7 27 1953’이 새겨져 있었습니다.역사에 밝은 사람들은 무슨 의미가 담겨 있는지 짐작할 만합니다. 1953년 7월 27일은 6.25전쟁 정전협정일로 북한은 전승기념일로 여깁니다. 러시아가 북한의 혈명이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저 번호판을 단 아우르스를 선물한 것으로 보입니다(자세한 내용은 여기에서👉'7 27 1953'...푸틴이 선물한 車 '아우르스' 번호판 의미는[북러정상회담]).러시아와 북한이 양국 관계를 동맹 수준으로 끌어올리면서 한반도 정세는 더욱 불안정해졌습니다. 6.25 발발 74주년을 눈앞에 두고 있는 상황이라 러시아와 북한의 밀착이 더 예사롭지 않게 보입니다.오늘은 6월 25일 앞두고 6.25 전쟁을 소재로 한 영화 ‘스윙키즈’(2018)를 함께 돌아볼까 합니다. 거제포로수용소를 배경으로 한 영화입니다. 잊히기 쉬우나 잊혀서는 안 되는 현대사의 한 자락을 살펴보게 하는 작품입니다(사진 제공: NEW).👉좌우 대립 치열했던 거제수용소‘스윙키즈’ 이야기는 오로지 경남 거제도, 특히 포로수용소를 중심으로 펼쳐집니다. 영화는 뉴스 영상 형식을 빌려 앞부분에서 짤막하게 거제포로수용소를 간략하게 소개합니다. 수용소는 전장에서 잡힌 북한군과 중공군 포로를 수용하고 있습니다.포로들은 양 갈래로 갈라져 있습니다. 북한에 충성을 다하려는 공산 포로와 한국 쪽에 선 반공 포로로 나뉘어 있습니다. 전쟁 중 자신들 의도에 반해 북한군에 강제 징집된 이들이 적지 않았으니 북한군이 둘로 쪼개져 서로 으르렁댈 만도 합니다.이북 출신인데다 ‘인민의 영웅’ 로기진을 형으로 둔 로기수(도경수)는 반공포로를 반동으로 여깁니다. 그는 소련(현 러시아)에서 무용 공부를 하기도 한 인물인데요. 우연히 미군 잭슨(자레드 그라임스)의 탭 댄스를 보고선 마음을 뺏기고 맙니다.수용소 소장은 수용소를 이념의 선전장으로 활용하고 싶어합니다. “(공산주의 포로들을 미국의) 단맛에 중독시켜서” 남쪽에 더 많이 남게 하려고 합니다. 북한 소환을 거부하는 포로가 많을수록 또 다른 승리를 거둘 수 있다는 생각에서입니다. 수용소를 또 하나의 전장으로 보는 거죠. 그는 가장 미국적인 탭 댄스를 이념 전선에 써보라고 잭슨에게 강권합니다.
👉만국공통어 춤은 평화로 이어질까잭슨은 로기수의 천부적인 재능을 꿰뚫어 봅니다. 그는 비밀 공연으로 알게 된 여인 양판래(박혜수)를 통역으로 쓰는 한편 탭 댄스팀의 일원으로 받아들입니다. 중국에서 어떤 일을 했는지 알 수 없는, 하지만 춤 하나는 기가 막히게 추는 중공군 포로 샤오팡(김민호)이 합류하고, 억울하게 잡혀 와 아내를 찾고 싶어 하는 민간인 포로 강병삼(오정세)이 함께 하게 됩니다.잭슨은 우여곡절 끝에 팀을 꾸렸으나 팀워크가 원활할 리 없습니다. 기수는 “미제” 운운하며 잭슨에게 반감을 노골적으로 표시하거나 판래를 여자라고 업신여깁니다. 반공 포로 쪽 수용시설에 있는 병삼에게는 반동이라며 적의를 드러냅니다. 말이 통하지 않는 샤오팡은 없는 사람 취급합니다. 잭슨은 “수용소에서는 공산주의도 자본주의도 중요하지 않고 춤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하나 기수는 아랑곳하지 않습니다.기수는 겉으로는 잭슨에 맞서나 그의 마음은 흔들립니다. 탭 댄스 소리와 리듬은 이미 그의 마음속에 자리 잡았습니다. 병삼은 샤오팡과 춤으로 대화를 나눌 수 있을 정도로 춤에 흠뻑 빠져듭니다. 판래는 노래와 웃음을 팔아 동생들을 먹여 살리려 하면서도 춤에서 새로운 희망을 발견합니다. 기수와 병삼 등은 잭슨이 위기에 빠지자 그를 돕고 팀을 되살리기 위해 깜짝 이벤트를 펼치기도 합니다.👉어쩔 수 없는 이념의 골기수와 잭슨, 판래, 샤오팡, 병삼이 춤이라는 단꿈에 빠지나 현실은 현실입니다. 기수의 중학교 동창 광국(이다윗)이 수용소에 들어오면서 공산 포로와 반공 포로는 더욱 첨예하게 맞섭니다. 광국에게 미제와 반공 포로는 타도해야 할 적일 뿐입니다. 광신도 같은 그는 기수가 미국 물에 든 거 아닌지 의심의 눈초리를 보냅니다. 살아남기 위해선 기수도 탭 댄스를 멀리하고 눈치를 더욱 볼 수밖에 없습니다.‘수령님’과 공산주의에 맹종하는 광국은 꽤 상징적인 인물입니다. 그는 전쟁으로 손과 발을 잃었습니다. 기수처럼 춤을 추며 새로운 삶을 도모할 수 없습니다. 희망이 사라진 그가 매달리는 건 맹목적인 충성과 적개심입니다. 춤은커녕 걷기도 힘들어 보이는 광국의 모습은 기수의 화려한 발놀림과 강렬한 대조를 이룹니다.광국 이외에도 북한 상층부로부터 지령을 받는 비밀 지도자가 공산 포로 쪽에 있기에 수용소는 바람 잘 날 없습니다. 수용소 소장은 비밀 지도자를 잡아내 공을 세우는 한편 잭슨의 탭 댄스팀을 활용해 “자유의 춤을 추는 공산주의자”를 보여주고 싶습니다. 북한과 남한과 중국과 미국 사이에서 국경 없는 우정을 나누고 싶은 잭슨 일행의 생각은 부질없어 보입니다.
👉그들의 우정은 현실이 될 수 있을까영화는 강대국의 논리와 이데올로기의 경직성에 희생된 사람들의 사연을 담으려 합니다. 기수는 형 기진의 영웅적 활약으로 언행에 제약이 많습니다. 기진은 거인이라 불러도 될 정도로 덩치가 크나 지능지수는 5세 정도 수준에 불과합니다. 권력자들이 완력은 세나 지능은 높지 않은 사람들을 기만해 세상을 자기마음대로 움직이려 한다고 영화는 암시하는 듯합니다.잭슨은 미국인이나 미군에선 아웃사이더입니다. 그의 피부색 때문입니다. 잭슨과 기수를 싫어하는 한 미군 병사는 상관인 잭슨이 자신에게 명령하자 처음에는 못 들은 척합니다. 그러고선 “군대에선 흑인의 명령도 명령인 걸 깜박했다”고 눙칩니다. 잭슨은 흑인이기에 최전방으로 보내졌다고 말합니다. 소장은 그런 잭슨을 자신의 진급을 위한 도구로만 봅니다.🙅 ♀️다음에는 스포일러가 있습니다.영화는 춤으로 표현되는 인간애와 평화와 희망이 현실의 높은 벽 앞에서 무너지는 모습을 절정 대목에서 보여줍니다. 기수가 다리에 총을 맞는 장면은 상징적입니다. 정말 이데올로기의 골은 깊고 약육강식의 법칙은 피할 수 없는 걸까요. 약자들의 연대를 통한 평화는 불가능할 걸까요.영화는 피에 물든 무대 모습으로 끝을 맺지 않습니다. 시간이 흘러 노인이 된 잭슨이 역사박물관이 된 거제포로수용소를 찾는 장면을 보여줍니다. 무대에는 다섯 사람이 조화롭고도 아름답게 춤을 췄던 순간이 새겨져 있습니다. 잭슨은 무대 바닥을 어루만지며 옛 시간을 떠올립니다.21세기에도 강대국들은 서로 으르렁대고 자기 나라 잇속을 챙기기에 정신없습니다. 그렇다고 세상이 변하지 않은 거 아닙니다. 영화는 대립과 갈등만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우리에게 말하려 하는 듯합니다. 수용소에 걸린 구호 하나가 의미심장합니다. “전쟁의 계속은 당신들에게 죽음을 의미할 뿐이다.”✋구독자님들 한 주 잘 보내셨나요. 이번 주 '영화로운'은 어떠셨는지요. 여러분에게 고마움을 작게라도 표하기 위해 다음 주에 영화 예매권 증정 이벤트를 하려고 합니다. 예매권이 적어 많은 분에게 드릴 수는 없으나 적극적인 응모 바랍니다. 다음 주 중 안내 이메일을 따로 보낼 예정입니다. 안내 이메일을 안 보셔도 됩니다. 다음 주 '영화로운'을 열면 이벤트에 참여하실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유심히 살펴봐 주십시오. 주말 더위 조심하시고 잘 쉬십시오.🤗무얼 볼지 고르다가 시간만 허비한다는 ‘넷플릭스 증후군’이라는 말까지 생긴 시대, OTT 콘텐츠 2편씩 추천해 드립니다.
‘라제기의 영화로운’은 매주 금요일 오전 11시에 보내드립니다.영화로운 주말 보내세요 😄영화로운 구독 페이지를 공유해주세요.오늘 영화로운은 어떠셨나요?의견을 보내주시면 더 좋은 레터를 만드는 데 참조하겠습니다.본 메일은 회원님의 동의를 얻어 발송되는 메일입니다.뉴스레터 수신을 원치 않으실 경우 수신거부를 클릭해 주세요.서울특별시 중구 세종대로 17 한국일보사 Copyright © Hankookilbo한국 일보 이메일 서비스 중에서 발췌 url 없슴
'문화 광장'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재산 5000억 제니퍼 로페즈, 19만원 이코노미석 탔다고 조롱당해 (0) 2024.07.02 고두심 "꼰대 연극? 이토록 무례하고 엉망인 정치에 경종 울리고 싶었다" (1) 2024.07.01 아버지 덕에 세계 정상, 아버지 탓에 좌절…박세리 부녀의 '골프 인생' (0) 2024.06.23 “며느리 셋이 젊은 남자들과 바람 났습니다”···치명적 불륜이 바꾼 프랑스역사 [사색(史色)] (0) 2024.06.23 "너무 피로해서 시청 중단"...'도파민 범벅' 넷플릭스 드라마의 자기모순 (0) 2024.06.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