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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운동을 세계에 알린 앨버트 테일러의 가옥 딜쿠샤지금 이곳에선 2024. 2. 29. 20:14
3.1운동을 세계에 알린 앨버트 테일러의 가옥 딜쿠샤
1919년 3·1운동 독립선언서를 외신으로 처음 보도한 미국인 앨버트 테일러(1875년∼1948년)의 가옥이다. 서울시는 2017년 딜쿠샤 고증 연구를 거쳐 2018년 복원 공사에 착수했으며, 해당 공사는 2020년 12월 완료돼 2021년 3·1절을 기해 일반에 공개되었다.
외국어 표기Dilkusha(영어)종목국가등록문화재 제687호수량/면적1동 / 현황실측면적 293.8㎡지정(등록)일2017년 8월 8일소재지서울특별시 종로구 사직로2길 17 (행촌동)출처: 문화재청
1919년 3·1운동 독립선언서, 제암리 학살 사건 등을 외신으로 처음 보도한 미국인 앨버트 테일러(1875년~1948년)의 가옥이다. 딜쿠샤라는 이름은 앨버트의 아내 메리 린리 테일러가 인도의 딜쿠샤 궁전에서 따와 작명한 것으로 페르시아어로 ‘기쁜 마음의 궁전’을 의미한다. 당시 AP통신사의 한국 특파원이었던 앨버트는 1923년 현재의 서울특별시 종로구 사직로에 지하 1층, 지상 2층짜리 양옥을 지었다.
앨버트는 항일 독립운동을 돕다가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된 후 1942년 일제에 의해 추방당할 때까지 이곳에서 아내와 함께 살았다. 그는 우리나라에서 추방된 뒤 1948년 미국에서 사망하였고, 그의 유해는 아내 메리가 그해 9월 입국해 양화진 외국인선교사묘원에 안치했다.
딜쿠샤는 붉은 벽돌, 아치형 창문 등 양옥 중에서도 독특한 외관을 가지고 있고 벽돌을 쌓은 방식이 매우 특이해 건축사적으로 가치 있는 건물로 평가된다. 영국과 미국의 주택 양식이 혼합되어 있으며, 일제 강점기 근대 건축 양식으로도 연구 가치가 있다. 1963년 국가 소유가 되었으나 정부의 방치로 일반인의 입주가 일어난 탓에 건물 곳곳에 금이 가 있고 누수 현상이 일어나는 등 훼손이 심하게 진행됐으며, 2015년 정밀안전진단 결과 D등급을 받은 바 있다.
이에 2016년 2월 서울시가 기획재정부·문화재청·종로구와 딜쿠샤 보존과 관리를 위한 업무협약을 맺고 딜쿠샤를 문화유산으로 복원하는 데 합의했고, 그후 2017년 8월 8일에 딜쿠샤가 등록문화재 제687호로 지정되었다. 서울시는 2017년 딜쿠샤 고증 연구를 거쳐 2018년 복원 공사에 착수, 건물 정면 토지 매입비 등 총 43억 원을 들여 2020년 12월 완공했다. 그리고 2021년 3·1절을 기해 일반에 개방되었다.
복원된 딜쿠샤 전시관의 내부 1·2층 거실은 테일러 부부가 거주할 때의 모습을 당시 사진 6장을 토대로 재현했다. 예컨대 가구 등은 대부분 1800년대 후반∼1900년대 초반 출시된 고전 제품을 구매해 배치했고, 구하지 못한 물건 일부는 제작했다. 또 사진 등 고증 자료가 없는 나머지 공간은 테일러 가족이 한국에서 살았던 모습과 테일러의 언론 활동 등을 조명하는 6개 전시실로 구성했다.
마지막 수정일
2021. 04. 21.
[네이버 지식백과] 딜쿠샤 (시사상식사전, pmg 지식엔진연구소)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3334471&cid=43667&categoryId=436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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