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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라제기의 영화로운/영화 '호텔 뭄바이'(2018)
    문화 광장 2024. 1. 27. 17:48

    라제기의 영화로운/영화 '호텔 뭄바이'(2018)

    한국일보의 영화전문기자. 문화부장, 에디터를 거쳐 영화라는 우물을 깊고 넓게 파는 중이다. 홍콩배우 임달화를 닮은 외모를 발판으로 최근 클럽하우스에 ‘다롸몰’을 열어 영화로운 이들과 접선하고 있다.
    안녕하세요, sooji2님. 이번 주 잘 보내셨나요. 어느덧 주말이 눈앞입니다. 주말 짬내서 영화나 드라마 한 편 보고 싶지 않으신가요. 이왕이면 세상사를 좀 더 넓은 눈으로 보게 해주거나 사회 흐름을 콕 집어주는 작품 말이에요. ‘라제기의 영화로운’은 의미 있는 영화나 드라마 관람을 원하시는 분들에게 작은 도움을 드리려고 합니다.

    “터번은 명예와 용기의 상징이죠... 이걸 벗고나면 가족에게 큰 치욕이죠... 부인이 원하신다면 이걸 벗겠어요.”
    영화 ‘호텔 뭄바이’ 속 아르준(데브 파텔)
    ‘힌두 민족주의’의 망령😟

    영화 '호텔 뭄바이'(2018)
    인도는 우리에게 알 듯 모를 듯한 나라입니다. 적극적인 우주 개발에 나서 지난해에는 달 착륙에 성공한 곳입니다. 정보통신산업이 발달했고 관련 분야에서 많은 인재를 배출했으나 여전히 후진적인 면모가 남아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뿌리 깊은 계급제도인 카스트의 폐해, 힌두교와 이슬람 사이의 종교 갈등 등이 사회 문제로 지적되기도 합니다.

    최근에는 힌두교 민족주의를 노골적으로 앞세운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의 정치 행보가 눈길을 잡고 있습니다. 모디 총리는 힌두교와 이슬람교 갈등의 상징적인 장소가 된 인도 북부 아요디아에 있는 힌두교 사원 개관식에 최근 참석했습니다. 1992년 힌두교도들이 이슬람사원을 때려 부순 일로 2,000명이 숨진 유혈사태가 있었던 곳입니다.
    종교 갈등의 뇌관 같은 곳에 총리가 방문한 점만으로도 정치적 파장이 큽니다. 4월 총선에서 3연임을 노리는 모디 총리의 정치적 포석이라는 분석이 나옵니다(자세한 내용은 여기에서👉2000명 숨진 '피의 땅' 들어선 인도 라마신 사원... 모디의 '힌두 민족주의' 본격화).

    인도는 힌두교도가 인구의 78% 정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이슬람교도는 14% 정도입니다. 힌두교도에 비하면 무척 작은 비중이나 인구 수를 따지면 만만치 않습니다. 약 1억7,200만 명 정도로 한국 인구의 3.5배 정도됩니다. 저 어마어마한 수의 사람들 삶이 국가 지도자로부터 존중 받지 못한다니 입맛이 씁니다.
    인도 종교 갈등은 어떤 모습으로 분출되고 있는 걸까요. 그리고 그 갈등의 가까운 원천은 무엇일까요. 오늘 소개해 드릴 ‘호텔 뭄바이’(2018)는 인도의 현실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영화입니다. 인도와 호주, 미국이 합작했습니다(사진 제공: 에스와이코마드).

     
    👉인도를 뒤흔든 뭄바이 테러
    2008년 11월 인도 금융 중심 도시 뭄바이가 배경입니다. 이슬람 극단주의자 청년 9명이 보트를 타고 뭄바이로 향하는 모습으로 영화는 시작합니다. 청년들이 파키스탄을 출발해 바다에서 듣는 훈시가 화면에 깔립니다. “알라 신께서 너희를 기억하신다. 천국을 예비하셨다. 알라는 위대하시다!” 청년들이 어떤 단체 소속이고 어떤 일을 벌이기 위해 뭄바이로 향하는지 직감할 수 있는 말입니다.
    청년들은 보트에서 내려 택시를 나눠 타고 사람들이 몰린 지역으로 흩어집니다. 중앙기차역에 도착한 2명은 화장실로 가 배낭에서 소총을 꺼내 들더니 밖으로 나가 무차별 사격을 합니다. 도시 곳곳에서 비슷한 살상극이 벌어집니다.
    식당에서 저녁식사를 즐기고 일어나려던 미국인 관광객들도 예외는 아닙니다. 사람들은 아수라장을 피해 뭄바이 최고급 숙박업소 타지 호텔로 향합니다. 세계 각국 부자들과 주요 인사들이 머무는 곳이니 안전하리라 판단한 듯합니다. 하지만 이곳에선 더 잔혹한 지옥도가 펼쳐집니다.
    호텔로 피신한 사람들 사이에 테러리스트가 끼어 있습니다. 그들은 한쪽 구석으로 가 배낭에서 총을 꺼내 난사를 시작합니다. 폐쇄된 공간인 호텔에 갇힌 사람들은 그들에게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먹을 거리입니다. 사람들은 각자의 방에서 또는 불을 끈 식당에서 총구를 피해야 할 형편입니다.
    경찰이 일찌감치 개입해 사태를 해결하면 좋으련만 대테러 특수부대는 1,3000km 떨어진 뉴델리에만 있습니다. 사람들은 테러리스트와 공포의 밤을 보내야 합니다. 숨으려고 하는 사람들, 그들을 찾아내 사살하려는 테러리스트의 숨바꼭질이 가슴을 조입니다.

    👉테러의 뿌리는 1992년 아요디아 충돌
    테러리스트들은 뭄바이에 도착했을 때 커다란 건물과 활기 찬 도로를 보며 박탈감을 느낍니다. 그들의 지도자들은 “너희 아버지, 너희 할아버지가 빼앗긴 거”라고 이들의 증오심을 조장한지 오래입니다. 영화는 테러리스트의 정확한 신분, 그들이 소속된 단체를 명시하지 않습니다.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했습니다. 테러리스트들이 속했던 곳은 파키스탄 이슬람 무장단체 라쉬카이타이바입니다.
    이슬람교도의 뭄바이 테러는 2008년이 처음은 아닙니다. 1993년 폭탄 테러가 발생해 257명이 숨졌습니다. 같은 해 일명 뭄바이 봉기로 수 많은 이슬람교도들이 목숨을 잃은 것에 대한 보복이었습니다. 뭄바이 봉기는 1992년 아요디아에서 힌두교도와 이슬람교도가 유혈 충돌한 것에 자극 받아 일어난 사건입니다.
    2002년과 2003년에도 이슬람 테러리스트는 뭄바이를 표적 삼아 공격을 감행했습니다. 영화가 묘사하고 있는 끔찍한 테러는 1992년 아요디아에 뿌리를 둔 일련의 갈등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영화 속에서 테러리스트들은 인면수심의 범죄를 저지릅니다. 그들의 행동을 두둔할 이유는 없겠으나 그들의 속마음을 들여다 볼 필요는 있습니다. 영화는 테러 단체 지도자들이 젊은이들의 순진함과 순수함을 이용하고 있음을 암시합니다.
    폐쇄회로(CC)TV로 테러리스트들을 본 경찰은 경악합니다. 너무나 어린 사람들이 총을 들고 잔혹한 행위를 벌이기 때문입니다.


    👉종교의 의미가 무엇이길래
    영화에는 다양한 종교가 등장합니다. 많은 이들이 힌두교를 믿으나 미국에서 온 데이비드(아미 해머)는 기독교 신자, 러시아에서 온 바실리(제이슨 아이작스)는 러시아정교 신자로 여겨집니다. 호텔 직원 아르준(데브 파텔)은 시크교도입니다. 데이비드의 아내인 인도인 자흐라(나자닌 보니애디)는 이슬람교도입니다.
    인도 밖에서 온 사람들은 힌두교와 이슬람 갈등과 무관해 보이나 호텔에서는 생명을 위협 받을 정도로 큰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종교 갈등이 인도 내부 사정에 불과할 수 있으나 인류의 안녕을 위협할 수 있는 일임을 영화는 그렇게 간접적으로 표현합니다.
    투숙객들과 호텔 직원들이 테러리스트를 피해 있는 곳에서도 종교를 매개로 한 작은 갈등이 벌어지기도 합니다. 한 영국 노부인은 자흐라가 테러리스트와 한통속이라고 매도합니다. 그들과 같은 말을 쓴다는 이유에서죠. 노부인은 터번 쓰고 수염을 기른 아르준에게 공포를 느끼기도 합니다.
    아르준은 신실한 신자이나 맹신도는 아닙니다. 그는 직업의식에 충실해서 투숙객들을 구하기 위해 갖은 위험을 무릅씁니다. 그런 그에게도 편견은 예외 없이 작동합니다. 아르준이 노부인에게 하는 말은 그래서 의미가 깊습니다. “이걸 이겨내려면 모두 힘을 합쳐야 해요.”
    👉증오는 증오를 부를 뿐
    위기에 처한 사람들은 종교에 대한 불신을 곧잘 드러냅니다. 자흐라는 호텔에 갇힌 상태에서 어머니와 통화하다가 “기도한다고 뭐가 달라져요”라고 퉁명스럽게 말합니다. 종교 문제로 곤경에 처했으나 종교가 자신을 구해주지 못한다는 현실 인식이 담겨있습니다. 바실리는 기도하는 한 사람을 보며 이렇게 냉소적으로 말합니다. “기도 좋아하시네. 그 놈의 종교 때문에 이 꼴이 났잖아.” 종교의 진정한 역할을 되묻게 하는 말입니다.
    믿는 이들에게 종교는 절대적입니다. 하지만 믿지 않는 이들에게는 상대성이 작용해야 하지 않을까요. 데이비드는 식당에서 주문을 할 때 소고기 패티가 들어간 버거를 원합니다. 아내 자흐라가 “여기는 인도”라고 따끔하게 지적하자 깜박했다며 다른 음식을 주문합니다. 소를 신성시하는 인도 힌두교를 염두에 둔 행동입니다. 데이비드는 자신이 힌두교도가 아니라는 이유로 억지를 부릴 생각이 없습니다. 자신이 찾은 지역의 종교를 존중하는 태도입니다.
    힌두교도든 이슬람교도든 기독교도든 이교도를 폭력적으로 대하는 게 과연 신의 뜻일까요. 모디 총리의 힌두 민족주의는 결국 폭력의 연쇄반응이라는 부메랑으로 돌아오지 않을까요. ‘호텔 뭄바이’는 잔혹한 테러와 더불어 뜨거운 인간애를 보여주나 현실은 차갑기만 한듯합니다.
    ✋벌써 1월의 끝자락입니다. 시작이 반이라고 하는데 우리 올해의 반을 다 보내고 있는 건가요? 2월이 들어서면 봄이 온다는 신호라 마음이 더 분주해집니다. 그래도 봄은 심장을 데우는 계절이니 거부할 수 없습니다. 괜히 감상에 젖는 1월 마지막 주말, 따스하게 보내시길 바랍니다. '영화로운'에 대한 의견 주시는 거 잊지말고요^^.🤗

    무얼 볼까 고르다가 시간만 허비한다는 ‘넷플릭스 증후군’이라는 말까지 생긴 시대, OTT 콘텐츠 2편씩 추천해드립니다.


    ‘라제기의 영화로운’은 매주 금요일 오전 11시에 보내드립니다.
    영화로운 주말 보내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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