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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터기 없이 “5분 거리 3만원”...택시인줄 알고 탔는데 가짜였다
    지금 이곳에선 2023. 12. 27. 10:53

    미터기 없이 “5분 거리 3만원”...택시인줄 알고 탔는데 가짜였다

    입력2023.12.27. 오전 3:30 수정2023.12.27. 오전 9:44 기사원문

    박혜연 기자

    연말 노리고 판치는 ‘가짜 택시’

    진짜 같은 ‘가짜 택시’ - 지난 20일 오전 3시쯤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앞에서 불법 영업을 하고 있는 ‘나라시 택시’의 모습. 차량 상단에 ‘TAXI’ 팻말이 있고 노란색 영업용 번호판을 달아 일반 택시처럼 보인다. /박혜연 기자

    지난 20일 새벽 3시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앞. 영하 10도에 눈이 오는 길거리에서 패딩을 껴입은 시민 열댓 명이 택시를 기다리고 있었다. 언 손으로 휴대전화 택시 호출 앱을 누르던 시민들 사이로 ‘택시’ 팻말을 단 차량 3대가 멈춰 섰다.

    한 여성이 차량 운전자에게 다가가 “상암동요”라고 하자, 운전석에 있던 남성은 “빙판길이라 5만원은 줘야 한다”고 했다. 이태원에서 서울 마포구 상암동까지는 약 15㎞로 심야 할증을 적용하면 2만원대에 갈 수 있다.

    운전석에 있던 남성은 차에서 내려 “현금 주시면 바로 간다”며 호객 행위를 했다. 만취한 남성이 비틀거리며 “가양역까지 얼마냐”고 묻자, 남성은 “10만원”이라고 했다. 고민하던 남성은 “계좌 이체를 하겠다”며 택시에 올라탔다.

    본지는 이날 호객 행위를 한 차량 번호를 서울 콜센터에 신고했다. 하지만 콜센터는 “영업용으로 등록돼 있지 않은 일반 승용차”라고 했다. 일반 차량을 택시인 것처럼 꾸민 일명 ‘나라시 택시’였던 것이다.

    연말을 맞아 택시 수요가 많아지자 서울 도심에서 불법 택시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나라시 택시로 불리는 이 차들은 과거 서울 시내와 유흥업소를 중심으로 성행했다. 2010년대에 집중 단속으로 모습을 감췄다가 최근 다시 나타나고 있다고 한다. 과거 나라시 택시는 일반 승용차를 그대로 이용했는데, 지금은 승용차를 택시처럼 위장해 운용한다.

    업계 관계자는 “올해 경기가 어려워 택시 영업자로 등록하는 데도 비용이 많이 드니 아예 불법으로 영업하는 택시들이 등장했다”고 했다.

    나라시 택시는 터무니없이 비싼 요금을 현금으로 요구한다. 외관은 일반 택시와 비슷하지만 정식 등록 차량이 아니기 때문에 미터기가 없고, 번호판 숫자나 글자가 이상한 경우도 있다.

    심야에 택시 이용 수요가 많은 홍대·강남·이태원·서울역·김포공항 등에 주로 나타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태원역에서 만난 A씨는 “이태원역에서 경리단길까지 택시로 5분 걸리는 거리인데 3만원을 달라고 하더라”며 “1㎞ 정도 떨어진 거리인데 뻔뻔하게 비싼 값을 부르니 오히려 당황스러웠다”고 했다.

    직장인 김모(26)씨는 “미터기 없는 택시가 비싼 요금을 요구하는 게 수상하다고 생각했지만 택시가 1시간 넘게 안 잡히니 순간 타야 하나 싶었다”며 “하지만 납치당할까 무서워 안 탔다”고 했다.

    나라시 택시는 불법이지만, 책임 소재가 불분명한 ‘회색 지대’에 있어 단속이 안 되고 있다.

    서울시 관계자는 “시청에서는 영업용 택시의 불법 행위를 다룰 뿐, 자가용으로 영업하는 택시는 신고가 들어와도 조사할 권한이 없다”고 했다.

    경찰 관계자는 “자가용으로 택시 영업을 하는 건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 위반이기 때문에 행정 조치가 우선”이라며 “정식 택시가 아니면 영수증도 없이 현금 거래를 하기 때문에 사실상 적발이 쉽지 않다”고 했다.

    20년 경력 택시 운전자 이근수(44)씨는 “최근 서울역에서 나라시 택시가 검은 승합차에 하얀색 자가용 번호판을 떡 하니 달고 영업 중이어서 사진으로 증거를 남겼다”며 “가짜 택시가 분명한데, 경찰은 증거가 충분하지 않다며 사건을 접수하지 않았다”고 했다.

    이수원 서울개인택시운송사업조합 홍보본부장은 “조합 차원에서 나라시 택시를 경찰에 신고해도 관심을 갖지 않으니 입건도 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요즘 나라시 택시는 2인 1조 등 팀으로 작업하면서 경찰을 피해 가기 때문에 집중 단속이 필요하다”고 했다. 불법 택시는 운수사업법에 따라 2년 이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 벌금이 부과된다.

    나라시 택시를 탄 승객은 사고 시 보험 처리를 못 받는 경우가 많다. 정식 택시 운전자는 사고가 나면 본인뿐 아니라 승객의 피해까지 보상받는 보험에 가입된다. 하지만 일반인은 탑승자 보장 보험에 가입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다.

    오윤성 순천향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무엇보다 불법 택시 운전자의 신분을 보장할 수 없기 때문에 강력 범죄에 노출될 수 있다”며 “번호판이 이상하거나 미터기 없이 현금을 요구하는 택시를 발견하면 탑승하지 말고 즉시 신고해야 한다”고 했다.

    ☞나라시 택시

    ’떠돌이 택시’라는 의미로 한자 流(흐를 류)의 일본어 발음인 ‘나가시’에서 유래했다. 우리나라에서는 불법으로 택시 영업을 하는 승용차를 뜻하는 은어로 통용되고 있다.

    박혜연 기자 salud@chosun.com

     

    https://n.news.naver.com/article/023/0003807176?ntype=RANK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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