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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노벨 문학상 예측 1위 찬쉐 “고통에도 희망은 핀다”지금 이곳에선 2023. 9. 28. 14:08
올해 노벨 문학상 예측 1위 찬쉐 “고통에도 희망은 핀다”
데뷔작 ‘황니가’ 국내 출간 맞아 한국 언론과 첫 인터뷰
입력 2023.09.28. 03:00업데이트 2023.09.28. 11:39
중국 소설가 찬쉐는 “소설 ‘황니가’의 인물들이 보여 주는 완강한 저항력과 인내력, 불멸의 욕망 등은 일부 경험 많은 독자들에게 상당한 공명을 일으킬 수 있으리라고 믿는다”라고 했다. /게티이미지코리아
중국 소설가 찬쉐(殘雪·70)는 검은 눈(雪)으로 글을 빚어낸다. 그의 필명이 가리키듯, ‘녹지 않아 사람들에게 짓밟히는 눈’은 점차 검게 물들어갈 운명. 그러나 완벽히 검은 눈이란 없을 텐데, 찬쉐의 글은 그것이 실제로 존재하는 것처럼 펼쳐 보인다. 찬쉐가 1987년 낸 첫 장편소설 ‘황니가(黃泥街·열린책들)’의 국내 출간을 맞아 그를 서면으로 만났다.
한국 언론 첫 인터뷰. “이 작품에는 제 청춘의 폭발력이 가득합니다. 단숨에 써 내려갔지요. 당시 저는 끊임없이 재능을 폭발시켜야만 죽음을 상대로 싸워 이길 수 있다는 사실을 의식했습니다.”
‘황니가’는 검은 비와 먼지가 연중 쏟아지고, 오물과 동물 사체가 방치된 거리다. 소설의 상징과 비약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거리의 썩은 냄새가 활자를 뚫고 나온다.
쥐가 고양이를 죽이고, 귀신이 등장하는 이 거리에서 현실과 꿈의 경계는 모호하다. 사람들은 ‘왕쯔광(王子光)’이란 미지의 존재를 기다리며, 각자의 방식으로 치열하게 죽음에 맞선다. 찬쉐는 “이 책은 ‘당신은 어떻게 죽음의 느낌이 엄습해 오는 것을 이겨 낼 수 있느냐’고 묻는다”고 했다.
찬쉐는 ‘중국의 카프카’ 소리를 듣는 작가다. 프란츠 카프카를 비롯한 아방가르드(전위예술) 문학의 전통을 이으면서, 동시에 중국의 무속 신앙을 결합해 독특한 작품 세계를 구축해 왔다. 소설 ‘마지막 연인’으로 미국 최우수 번역 도서상(2015)을 받는 등 영미권에서 주목받았다.
27일 기준 영국 베팅 업체 ‘나이서오즈(Nicer Odds)’가 점치는 올해 노벨 문학상 후보 1위. 그는 수상 가능성에 대해선 “불가능에 가깝다고 생각한다”고 말을 아꼈다. “제가 숭배하는 보르헤스나 칼비노 같은 문학 선배들도 이 상을 받지 못했거든요.”
찬쉐는 “아마도 저는 황니가의 주민이었을 것”이라고 했다.
1953년 중국 후난성에서 태어난 그는 네 살 때 부모와 떨어져 지냈다. 지역 신문사에서 근무하던 부모가 반공주의자로 몰려 노동 교화소로 끌려갔다. 그를 돌봐주던 조모는 영양실조로 죽었다. “어린 시절 저는 매일 류머티즘 통증과 영양실조에 시달렸습니다. 제 첫 작품인 ‘황니가’를 쓸 당시 재봉사로 일하면서 생계를 유지했고, 동시에 어린아이를 돌봐야 했기 때문에 저의 시간은 산산조각 난 상태였습니다.
길어야 30분씩 시간을 내 이 작품을 썼지요.” 그 비결에 대해선 이렇게 말했다. “저는 철학자들의 사변 이성의 개입을 철저히 배제하고, 감성과 일체화된 이성을 사용합니다. 작품을 사전에 치밀하게 구상한 적이 없습니다. 펜을 들었다 하면 곧장 소설의 분위기 속으로 들어갈 수 있었지요.”
찬쉐는 여러 작품에서 사회 밑바닥의 인간 군상을 천착해 왔다. 그는 이것이 문화혁명(1966~1976) 시기의 경험이 반영된 것이냐는 질문에 “폭발한 자기 영혼의 상태를 작품화했다고 하는 편이 더 정확할 거다. 영혼이 억압당하고 욕망을 해소할 출구를 찾지 못하는 상태는 황니가의 주민들과 다르지 않다”고 답했다.
그는 “‘황니가’에서 펼쳐지는 삶은 추상적이지만, 안에 담긴 묘사를 일률적으로 추악하다고 간주하지 않기를 바란다”고 했다. “우리 모두가 ‘황니가’에 나오는 인물들과 같은 체험을 하지 않나요? 우리 삶에는 당연히 고통이 있지만 희망도 꺼지지 않고 있습니다. 그래서 다들 죽은 생선 같은 눈을 크게 뜨고 굳세게 살아 나가는 것이지요.”
다음은 인터뷰 전문.
-글을 쓰던 초창기 열정이 담긴 ‘황니가’를 다시 보면 어떤 생각이 드나요?
“저는 늦게 성숙하는 사람입니다. ‘황니가’를 쓸 때, 저는 서른 살이었습니다. 이제 일흔이 넘어 다시 이 작품을 읽다 보면 당시의 젊음을 부러워하면서 즐기게 됩니다.
당시에는 제가 얼마나 젊었었는지를 실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 작품에는 청춘의 폭발력이 가득합니다. 단숨에 써 내려갔었지요. 어떤 배치나 구상도 필요치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저는 너무나 완벽하다는 생각이 들고 아무리 다시 읽어도 싫증이 나지 않습니다.”
-작가 인생 전체를 돌이켜볼 때, ‘황니가’는 어떤 의미를 갖고 있나요?
“‘황니가’는 제 생명력의 폭발이었습니다. 처음 그 작품을 쓰기 시작했다는 것은 제가 이 세상을 문학 인생으로 살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하지요. 이는 저의 새로운 신분이었습니다. 이 작품의 발표는 사회적 지위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단지 찬쉐의 세계와만 관련이 있지요. 당시 저는 자신이 끊임없이 재능을 폭발시켜야만 죽음을 상대로 싸워 이길 수 있다는 사실을 의식했습니다.”
-작품에선 비참한 현실을 사는 이들이 ‘왕쯔광’이란 미지의 존재를 기다리며 죽음을 향해 갑니다. 문화혁명 직후의 중국 사회를 녹여내려고 했던 걸까요?
“문화혁명이라는 제재를 작품으로 썼다기보다는 폭발한 자신의 영혼의 상태를 작품화했다고 하는 편이 더 정확할 겁니다. 영혼이 억압당하고 욕망을 해소한 출구를 찾지 못하는 상태는 황니가의 주민들과 다르지 않습니다.
과거의 상황을 돌이켜보면 저의 그런 욕망을 체감하고 이해해 주는 사람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저의 잠재의식이 제게 반드시 싸워야 한다고, 죽음의 신이 나를 옭아매고 있다고 다그쳤습니다. 죽음의 신은 허무, 다시 말해서 일상생활 속에 한순간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목표였습니다.
중국인으로서 제가 가장 두려워했던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그래서 그 죽음의 신이 압박하는 장면을 글로 써 내려간 것이지요. 다 쓰고 나니 무척 기뻤습니다. 이때부터 저는 죽음의 신과 대치하는 방법을 찾은 셈이었으니까요. 아울러 제 삶이 전에 없던 의미를 찾게 갖게 되었습니다. 저로서는 지금까지도 당시의 상황이 무엇보다도 기쁘고 즐겁습니다.”
-작품에 이데올로기 보다는, 인간의 추악한 삶에 대한 상상과 묘사가 자주 드러납니다. 생존을 위해 고군분투했던 어린 시절 때문에 작품에 이데올로기가 존재할 여지가 없다는 분석이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는지요?
“충분히 설득력 있는 평가입니다. 유년 시절 생사를 위한 싸움에는 확실히 이데올로기가 끼어들 자리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이해는 여전히 얕은 차원의 열독의 결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황니가’에 펼쳐지는 삶은 추상적입니다. 가장 바람직한 것은 세속적인 심미관으로 접근하여 그 안에 담긴 묘사를 일률적으로 추악하다고 간주하지 않는 것입니다. ‘황니가’의 인물들이 보여 주는 완강한 저항력과 인내력, 살아가기 위해 (죽은 생선 같은 눈을 크게 뜨고 뭔가를 변별하려고 애쓰는) 불멸의 욕망 등은 일부 경험 많은 독자들에게 상당한 공명을 일으킬 수 있으리라고 믿습니다.
이 책에서 작가는 당신은 어떻게 죽음의 느낌이 엄습해 오는 것을 이겨 낼 수 있느냐고 묻습니다. 모든 등장인물이 작가의 분신이 되어 의미를 찾느라 죽어라고 몸부림을 치지요. 그 의미가 바로 왕쯔광입니다. 한 다발 빛이 시종 사람들의 마음속에 꺼지지 않고 남아 있는 것이지요.”
-여전히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어린 시절 기억은 무엇인가요?
“저는 유년 시절에 항상 병치레를 했습니다. 매일 류머티즘의 통증에 시달렸고 항상 류머티즘과의 투쟁 과정에 있었습니다. 당시에는 생활 조건이 너무 안 좋았고 항상 영양실조에 시달렸습니다. 하지만 저는 천성적으로 몸 관리에 철저하고 경험을 축적할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성년이 된 후에도 저는 특별히 자신을 잘 보살폈고 지금도 40년째 병원에 한 번도 가지 않고 있습니다. 저는 지금도 일을 하고 있고 생산성이 극도로 높습니다. 소설을 쓸 뿐만 아니라 아주 두꺼운 철학서도 썼지요. 아마도 저는 황니가의 주민이었을 겁니다. 저의 생명력은 그 완강함이 보통사람들을 월등히 능가합니다. 저는 앞으로도 여러 해 계속 일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초등학교를 끝으로 학업을 중단했고, 이후 생계를 위해 여러 일을 한 다음 글을 쓰기 시작하셨죠. 타고난 재능으로 글을 쓰기 시작한 건가요, 아니면 글쓰기 연습과 독서 덕분일까요?
“두 가지 다라고 생각합니다. 문학 작품을 써내는 작가에게는 끊임없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정지하는 시간이 너무 길면 이런 능력을 상실하기 십상이지요. 이는 일종의 자아에 대한 발굴입니다.
글을 쓰면 새로운 자아를 발견할 수 있지만 쓰지 않으면 자아는 소실되고 말지요. 저는 저와 비슷한 유형의 작가들이 여러 해 동안 글을 쓰지 않다가 결국 더 이상 글을 쓰지 못하게 되는 경우를 본 적이 있습니다.”
-과거 “이성을 완전히 배제한 채로 작품을 쓴다”라고 말한 적이 있으시죠. 어떤 뜻인가요?
“제가 말하는 것은 작품의 구상에 대한 사변이성의 개입을 배제한다는 것입니다. 저는 제 소설이 실천이성의 운용이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저는 작품을 사전에 치밀하게 구상한 적이 없습니다. 펜을 들었다 하면 곧장 소설의 분위기 속으로 들어갈 수 있었지요.
제게는 어휘들이 자동적으로 떠오르고 구조도 저절로 형성되었습니다. 대부분의 소설가들과 달리 저는 오로지 실천이성의 길을 걸었고 이런 글쓰기 방법이 인간의 감정에 더 쉽게 들어갈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황니가’는 저의 첫 번째 작품입니다. 제가 이 작품을 쓸 당시 저는 여전히 재봉사로 일하면서 생계를 유지했고, 동시에 어린아이를 돌봐야 했기 때문에 저의 시간은 산산조각 난 상태였습니다.
저는 이렇게 부스러기 시간 가운데 15분, 20분, 길어야 30분의 시간으로 이 작품을 썼지요. 그러다가 반년이 지나 저는 철학을 연구하면서 철학 관련 저서를 썼습니다. 그제야 저의 이러한 능력을 ‘실천이성’이라고 명명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저는 대단히 이성적인 작가이지만 저의 이성은 일반 철학자들의 사변이성이 아닙니다. 반대로 실천 속에서 발휘되는 이성이라고 할 수 있지요. 이는 감성과 일체화된 이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작품이 난해하다고 여기기는 독자도 있을 겁니다. 찬쉐의 작품을 처음 읽는 한국 독자들이, 책장을 끝까지 덮지 않을 수 있게 팁을 알려준다면요?
“제 작품을 읽기 위해서는 약간의 훈련이 필요합니다. 실험문학과 서양의 위대한 고전문학들을 진지하게 읽는 것이 그 훈련의 내용이지요. 여기에는 단테나 세르반데스, 셰익스피어, 카프카, 보르헤스, 부르노 슐츠, 이탈로 칼비노, 로베르트 무질 같은 작가들이 포함됩니다. 이러한 작가들의 작품을 전혀 접해 보지 않은 독자들은 제 작품 안으로 들어가기가 어려울 겁니다.”
-스스로 작품에 대해 “중국 사회의 본질을 철저히 묘사했기 때문에 동시에 세계성을 가질 수 있었다”라고 말한 적이 있으시죠. 구체적으로 듣고 싶습니다.
“저는 어떤 철학적 차원에서 그 말을 했던 것입니다. 중국 사회의 본질이 바로 찬쉐의 본질이고 저의 작품은 줄곧 이러한 차원의 본질을 묘사해 왔습니다. 저는 스스로 자신이 중국인을 대표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중국인들은 세계인들과 같은 점도 있고 다른 점도 있지요.
저는 중국인들의 특이한 점이 실천성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서양인들은 상대적으로 실천성보다는 사변성이 강하다고 할 수 있지요. 저는 줄곧 저의 작품에서 실천하는 민족으로서의 중화민족의 특성을 드러내 왔습니다. 우리는 실천을 통해서 자신을 인식해야 합니다.
물론 지금까지 현실 속의 중국인들은 아직 이러한 상태에 도달하지 못했습니다. 저는 문학가이자 모든 것을 먼저 인식하는 지식인으로서 중국인의 가능성을 펼치고자 합니다. 외국인들은 종종 저의 작품이 신기하다고 말하지요.”
-죽음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해 괴로운 인물을 작품에 자주 가져오십니다. 이와 관련해 ‘소설이 그려내는 세계가 제한돼 있다’는 혹평도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그런 열독과 이해는 앞에서 언급한 아주 얕은 차원의 열독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황니가’의 인물들이 고통을 겪기는 하지만 하나같이 죽음을 기다리는 것은 아닙니다. 그들은 마음속에 희망을 품고 있지요. 예컨대 왕쯔광이 그들의 희망입니다. 구청장도 희망이라고 할 수 있지요.
우리 모두가 이 소설에 나오는 인물들과 같은 체험을 하지 않나요? 우리의 삶에는 당연히 고통이 있지만 희망도 꺼지지 않고 있습니다. 그래서 다들 죽은 생선 같은 눈을 크게 뜨고 굳세게 살아 나가는 것이지요. 잿빛으로 희뿌연 하늘에서 어떤 사람이나 사물을 변별해 내려고 애쓰면서 말입니다.”
-한국 독자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한국에 ‘황니가’를 비롯해서 저의 작품을 읽는 독자들이 갈수록 많아지기를 기대합니다. 이 책은 사람들에게 영혼을 감시하는 신기한 방법을 가르쳐줄 것입니다. 이런 작품을 읽을 때는 사회학적 시각으로 읽지 않는 것이 가장 바람직합니다.
‘황니가’에 등장하는 것과 같은 갖가지 곤경에 직면했을 때 어떤 반응을 보일 수 있는지를 상상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 작품은 저의 데뷔작으로 책 속에는 아직 자아의 활동이 전개되지 않고 있습니다. 그 이후에 쓴 작품들을 읽어야 찬쉐라는 문학적 영혼이 이 세상에서 어떻게 자유를 추구해 나가는지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매년 유력한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되고 있습니다. 이와 관련해 중국 내부에서의 반응은 어떤가요? 그리고 만약 노벨문학상을 받게 된다면, 찬쉐 작품의 어떤 특성이 수상을 이끌어낸 걸까요.
“중국의 문학계에서는 대부분의 독자들이 저 찬쉐가 노벨문학상을 수상하지 못하기를 기대할 겁니다. 중국의 문학계는 비교적 수구적이기 때문에 진정으로 창의적인 작품, 특히 여성작가의 뛰어난 창의성을 싫어하는 편이거든요.
저도 자신이 노벨문학상을 수상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숭배하는 보르헤스나 칼비노 같은 몇몇 뛰어난 문학의 선배들도 이 상을 수상하지 못했거든요. 만일 뜻밖에도 제가 노벨문학상을 받는다면 그건 이 상의 수준이 한 층 높아졌다는 것을 의미할 겁니다. 전력으로 과거에 간간이 보여주던 통속화의 경향에서 벗어나 보다 높은 문학의 경지로 올라가고 있다는 것을 암시하는 징후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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