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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유·인권·법치 한꺼번에 날린 '강제동원 해법'
    지금 이곳에선 2023. 3. 20. 13:40

    자유·인권·법치 한꺼번에 날린 '강제동원 해법'

    강제동원 판결 해법에는 일본이 빠졌다. 가해자의 반성과 사과 없이도 ‘지도자가 결단하면’ 해결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이 장면은 대통령 윤석열에 대해 생각보다 많은 지점을 노출한다.

    기자명김은지 기자 다른기사 보기 입력 2023.03.20 07:10809호

    3월7일 윤석열 정부의 강제동원 해법을 규탄하는 시국선언이 국회에서 열렸다.

    ⓒ시사IN 이명익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였다. 3월6일 윤석열 정부는 ‘강제동원 판결 해법’을 제시했다. 두 달 전 외교부가 공개 토론회에서 밝힌 안에서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했다(‘강제동원 배상 판결, 정부의 해법에 일본은 빠져있다’ 기사 참조 https://www.sisain.co.kr/49444).

    정부 최종안의 핵심은 한국 재단(행정안전부 산하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이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에게 돈을 지급하는 것이다.

    포스코 등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으로 수혜를 입은 한국 기업이 자발적으로 낸 돈으로 기금을 마련할 예정이다. 사안을 채권·채무와 같은 돈 문제로 협소화해 마무리 짓겠다는 계획이다.

    정부가 밝힌 ‘제3자 변제’ ‘대위변제’ ‘병존적 채무인수’와 같이 낯선 법률 용어가 가린 한 줄은 명징하다. 애초에 이 사건의 시발점인 일본이 쏙 빠졌다는 사실이다.

    일본 기업의 참여는 명시되지 않았다.

    추후 일본이 동참할 수도 있으니 ‘개문발차(버스 문을 열어두고 출발한다는 뜻)’ 식으로 한국 정부가 나서 강제동원 판결을 매조지겠다는 뜻이다. 2018년 대법원 판결은 일제강점기 조선인을 강제 노동에 동원시킨 일본 기업의 책임을 명시했다.

    반인도적 불법행위에 대한 위자료를 피해자에게 줘야 한다는 결정이다.

    당시 일본의 반발이 이 사건을 제자리걸음하게 했다. 지금껏 일본은 식민지 지배가 불법이라거나, 조선인 노동자와 ‘위안부’를 강제동원했다는 사실을 명확히 시인한 바 없다. 대법원 판결 또한 국제법 위반이라고 주장한다.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 당시 한국에 독립 축하금 성격의 돈을 건넸기에 개인의 청구권이 없다는 논리다. 정부안이 발표된 3월6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1998년 10월에 발표된 (김대중·오부치) 일·한 공동선언을 포함해 역사 인식에 관한 역대 내각의 입장을 전체적으로 계승하고 있다는 것이 일본 정부의 입장”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역대 내각의 입장’에는 강제동원 문제가 이미 해결됐다고 주장한 아베 총리 시기도 포함된다. 강제동원에 대한 일본의 사과로 간주하기 어려운 발언이다.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와 일본 경제단체연합회(게이단렌)가 가칭 ‘미래청년기금’을 공동 조성하는 방안을 검토한다고 알려졌다. 이 또한 일본 피고 기업의 참여와는 거리가 멀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해법을 낸 이유를 박진 외교부 장관이 3월6일 밝혔다. “정부는 최근 엄중한 한반도 및 지역·국제 정세 속에서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 법치, 인권이라는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는 가장 가까운 이웃인 일본과 함께 한·일 양국의 공동 이익과 지역 및 세계의 평화 번영을 위해 노력해나갈 수 있기를 바란다.”

    윤석열 대통령 또한 같은 날 “여러 어려움 속에서도 강제징용 판결 문제 해법을 발표한 것은 미래 지향적 한·일 관계로 나아가기 위한 결단”이라고 자평했다.

    “지지율 1%가 나오더라도 할 일은 하겠다” “어차피 할 것 아니냐. 그러면 미리 매를 맞는 게 낫지, 내년 총선 앞두고 할 것인가”라는 윤 대통령의 전언이 ‘관계자발(發)’로 함께 보도됐다.

    강제동원 판결 해법이라는, 윤석열 대통령이 오랜만에 보여준 통치행위는 생각보다 많은 지점을 노출한다.

    윤 대통령이 강조해온 법치, 자유, 인권, 민주주의와 같은 ‘보편적 가치’를 대하는 그의 태도에 관한 것이다. 어떤 핵심 조건(이번 사안에서는 가해자의 반성과 사과)이 없더라도, 특정 정책은 ‘지도자가 결단하면’ 할 수 있다고 판단한다. 이번 해법에 대한 비판을 ‘어차피 맞을 매’라고 생각한다는 점도 살펴볼 구석이 많다.

    일본이 정당한 것처럼 주객전도

    윤석열 대통령은 기본적으로 강제동원 판결을 ‘반일(反日)’이라는 시각으로 바라본다. 정부안에 대한 비판을 쉽게 ‘반일 선동’이라고 치부하기도 한다.

    윤석열 대통령은 제104주년 3·1절 기념식에서 일본과의 협력을 강조했다.

    ⓒ연합뉴스

    조성렬 전 주오사카 총영사는 이러한 인식이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지금 윤석열 정부가 만든 상황은 마치 우리가 국제법을 위반했고 일본이 정당한 것처럼 주객을 전도시켰다. 우리 대법원 판결이 한·일 청구권 협정에서 놓친 강제동원 피해자 문제를 다룬 것임에도, 마치 이를 위반한 판결을 내렸기에 한국 정부가 그것을 수습해서 해법을 가져와야 한다는 게 일본 프레임이다.

    그걸 그대로 수용했다.”

    강제동원은 전시 범죄로, 보편 인권의 문제다. 가해자 자리에 일본이 아니라, 미국·중국·러시아·영국 등 당시 주변국 어느 나라가 들어가도 이 사건의 본질이 전범이라는 점은 달라지지 않는다.

    피해자들은 가짜 취업 조건에 속아 근무를 시작했다.

    그것이 거짓임을 깨달은 다음에도 그만두지 못한 채 강제 노동을 해야 했다. 도망가지 못하도록 감시당했고, 도망가고 싶다고 말한 사실만으로도 두드려 맞았다. 실제 도망갔다 잡혀와 보복을 당하기도 했다. 회사가 지급했다는 임금은 저금됐다는 말만 들었지 직접 만져본 적도 없었다. 결국 한 푼도 받지 못한 채 해방을 맞이했다. 그조차도 운이 좋아 살아남은 경우다.

    강제 노동 중 미군의 공습으로 숨진 이들도 많았다. 강제동원 판결은 이러한 전시 범죄에 대한 책임을 묻고 있다. 송두환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은 정확히 이 지점을 지적한다. 3월7일 그가 발표한 성명서는 현재 윤석열 정부 해법에서 일본이 빠진 게 왜 문제인지 인권의 언어로 설명한다. 가해자의 반성 없이는, 그 누가 아무리 좋은 대책을 내놓아도 문제가 해결될 수 없다는 의미다.

    “강제동원 피해의 배상 문제는 단순히 금전적인 채권·채무 문제가 아니다. 인권침해 사실의 인정과 사과를 통한 피해자의 인간 존엄성 회복과 관련한 문제다. 일본 기업과 일본 정부가 일제강점기의 강제동원 등 불법행위를 인정하고 피해자와 그들의 가족에게 사과하는 것은 피해 회복과 화해, 한·일 양국의 미래지향적 협력 관계 설정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유엔총회가 2005년 채택한 ‘국제인권법의 중대한 위반행위와 국제인도법의 심각한 위반행위의 피해자 구제와 배상에 대한 권리에 관한 기본원칙과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배상에는 사실 인정과 책임 승인을 포함한 공식적 사죄, 피해자에 대한 기념과 추모, 모든 수준의 교육에서 위반행위에 대한 정확한 설명이 포함되어야 한다.”

    박진 외교부 장관이 3월6일 강제동원 피해 배상에 대한 해법을 발표하고 있다.

    ⓒ시사IN 조남진

    무엇보다 강제동원 피해 당사자가 반발하고 있다. 2018년 대법원 판결 당사자 중 생존해 있는 3명(양금덕·김성주·이춘식) 모두 명확하게 정부안에 반대 의사를 밝혔다. 정부의 최종 발표를 들은 양금덕 할머니는 “동냥처럼 주는 돈은 받지 않겠다”라고 말했다. “잘못한 사람은 따로 있고 사죄할 사람도 따로 있는데 (이런 식으로) 해결해서는 안 된다.

    노인들이라고 해서 너무 얕보지 마라. 반드시 (일본이) 사죄를 먼저 한 다음에 다른 모든 일을 해결해야 한다.”자유와 인권 등 양국의 공동 이익을 위한다는 윤석열 정부의 한·일 관계 개선안이 낳은 모순이다. 가장 자유와 인권이 필요했던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자유와 인권을 침해한다는 비판을 피하기 힘들다. 자유는 국가라는 대표적 공권력에 대항하기 위해 개인의 권리를 지키는 차원에서 발전해온 개념이다.

    윤석열 정부 관계자들의 대법원 판결에 대한 부정적 태도는 ‘법치’에도 의문을 품게 만든다. 관련 언설이 잦았다. 3월6일 정부 해법 발표 이후 대통령실의 한 관계자가 한 발언이다. “우리가 대법원 판결을 부정할 이유는 아무것도 없지만, 어쨌든 국제법적으로, 그리고 1965년 한·일 양국 정부의 약속에 비추어보면 2018년 대법원 판결은 일본으로서는 한국이 합의를 어긴 것이라는 결론이 된 것이다.”

    한덕수 국무총리도 비슷한 발언을 한 바 있다. 지난해 9월28일 아베 전 총리 국장 참석차 일본을 방문한 한 총리는 기자들과 만나 “국제법적으로 보면 일반적으로 이해되기 어려운 일이 일어난 건 사실이고, 그것 때문에 대한민국의 신인도에 손상을 받은 것도 사실이다”라고 말했다.

    윤석열 대통령 ‘40년지기’로 불리는 석동현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사무처장은 “일본에 반성이나 사죄 요구도 이제 좀 그만하자”라고까지 주장했다. 그는 대법원 판결을 “무식한 탓에 용감했던 어느 대법관 한 명이 대법원 전원합의체에 회부하지도 않고 외교부나 국제법학회 등에 의견조회도 하지 않은 채 얼치기 독립운동(?) 하듯 내린 판결 하나로 야기된 소모적 논란과 국가적 손실이 너무나 컸다”라고 비판했다.

    정확하지 않은 이야기다. 2012년 대법원 1부(주심 김능환)에서 파기환송된 다음, 2018년 대법원 전원합의체에서 확정된 판결이다. 그사이 사법 농단이 벌어졌다. 당시 양승태 사법부는 박근혜 정부 요청에 따라 강제동원 소송을 지연시키거나 결과를 바꾸려 했다는 의혹을 샀다. 그 대가로 상고법원 설치와 법관 해외파견 확대 등을 거래하려 했다는 혐의를 받았다. 해당 사건을 수사 지휘했던 이가 지금의 윤석열 대통령이다.

    일본 강제동원 피해자인 양금덕(왼쪽)·김성주 할머니가 3월7일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시사IN 이명익

    법원 판결은 신성불가침이 아니고, 다른 의견을 가질 수 있다. 새 판례로 재해석될 수 있다. 민사 판결은 두 당사자(원고·피고)에 의해 조정될 수도 있다. 하지만 둘 다 조정안에 참여하길 원치 않은 상황에서, 이미 확정된 판결을 존중하라는 말은 법치까지 갈 필요가 없는 얘기다. 입법·행정·사법과 같은 삼권 분립의 개념을 더할 필요도 없다. 검찰총장 자리에서 정치권으로 직행하면서 윤석열 대통령은 ‘법치’를 정치인 윤석열의 주요 키워드로 내세운 바 있다.

    게다가 법원 판결에 대한 정부 관계자들의 공개적인 부정 반응은 결과적으로 한국의 협상력까지 떨어뜨렸다. 협상 테이블에 참여한 적이 있는 한 전직 외교관은 이번 정부의 최종안을 낸 과정을 ABC 학점 중 C 학점이라고 평가했다. “원래 결론과 시한을 정해두고 하는 협상은 실패하게 되어 있다. 우리 패를 다 보여주고 상대방에게 뭘 해달라고 하면, 될 것도 안 된다. 입장 바꿔 생각해봐라.”

    세계를 제대로 보고 있는가

    남관표 전 주일 대사의 지적도 비슷하다. 3월7일 더불어민주당 평화·안보대책위원회 회의에 참석한 그는 “외교는 51대 49의 결과를 놓고, 서로 자기가 51이라고 말하는 게 교섭의 일반적인 관행이다. 그런데 이번 정부안을 보면 과연 우리가 무엇을 얻었나?

    더 큰 문제는 우리 정부가 외교 교섭에서 이런 식의 자세와 역량을 가지고 대일 문제를 처리해 나간다면 앞날은 정말 어두울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대선 당시 윤석열 후보가 유행시킨 “좋아 빠르게 가”와 같은 일처리에 외교부 내부에서도 불만이 나왔다.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라며 속도 조절을 주문한 원로 그룹의 조언에도 윤석열 대통령의 강제동원 해결 의지가 확고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윤 대통령의 소신이 “지지율 1%가 나와도 해야 할 일”이라는 발언으로 외화되었다.

    이에 대해 한 전직 외교관은 무책임하거나 위험한 발언이라고 지적했다. “왕조시대 임금이라면 국민이 뭐라고 생각하든지 간에 자기가 다 책임지고 결심해서 할 수도 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불가능한 이야기다. 국민 1%가 찬성하면, 그건 하면 안 되는 정책이다. 모두가 다 반대하는데 혼자 선지자적으로 할 수 있는 결정이란 게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없다. 국민을 설득하고 납득시키지 못하면 할 수 없다고 생각해야지, 그걸 어떻게 하나. 위험한 말이다.”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이춘식 할아버지(손 든 이)가 2018년 대법원 승소에 대한 소감을 밝히고 있다.

    ⓒ시사IN 신선영

    남는 질문은 하나다. 이렇게까지 해서 우리가 얻는 것은 무엇일까. “복합 위기와 심각한 북핵 위협 등 안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한·미·일 3자 협력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라는 것이 윤석열 대통령의 지난 3·1절 경축사다.

    “104년이 지난 오늘 우리는 세계사의 변화에 제대로 준비하지 못해 국권을 상실하고 고통받았”기에 이제는 변화하는 세계사의 흐름을 제대로 읽고 “과거 군국주의 침략자에서 우리와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고 안보와 경제, 그리고 글로벌 어젠다에서 협력하는 파트너”가 된 일본과 잘 지내야 한다는 논리다.

    그로부터 닷새 후 내놓은 강제동원 해법은 이러한 윤 대통령이 가지고 있는 세계 정세 대응의 연장이다. 과연 그럴까. 남기정 서울대 일본연구소 교수는 윤석열 정부가 ‘한·미·일 vs 북·중·러 구도’에 적극 편입하는 것은 위험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인도, 베트남, 남미, 유럽 등을 보면 굉장히 복잡하게 움직인다. ‘민주주의 대 권위주의’ 구도는 국제정치의 실제 현실이라기보다는 가상 현실에 가깝다. 이에 매몰돼 있다가 실제 현실의 생존 게임에서 부적응자가 되지 않을까 걱정된다. 우리는 지금 제대로 세계를 보고 있는가?”

    정부의 강제동원 해법 발표 이후 대통령실은 윤석열 대통령의 3월 방일, 4월 방미 계획을 밝혔다.

    한·일 정상회담과 한·미 정상회담을 연속으로 가진 다음, 5월 일본 히로시마에서 열리는 G7 정상회의에 초대받아 한·미·일 정상회담을 하는 그림을 그리는 중이다. 이 시기에 맞춰 발표된 강제동원 해법이라는 게 외교가의 정설이다. 정부의 발표 직후,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은 이례적으로 한밤 성명을 내며 환영의 뜻을 밝혔다.

    3월6일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는 이번 윤석열 정부의 해법이 “한·일 양국만이 아니라 미국에도 이익이 될 것이다”라고 논평했다.

    그러는 사이 피해자만 다시 미안하다고 이야기하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3월7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연 93세의 강제동원 피해자 김성주 할머니는 윤석열 정부에 대한 원망을 힘겹게 쏟아냈다.

    기자회견을 마무리하며 사회자가 끝으로 할 말이 있느냐는 질문에 김 할머니는 청중을 향해 이렇게 말했다. “죄송합니다. 이렇게 신경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로 인해 (여러분들이) 오래 고생하신 덕분에 역사에 대해서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일본은 잘못된 것을 반성을 해야 하는데, 조금도 우리에게 미안하다는 생각을 안 합니다.”

    양금덕 할머니가 자택에서 일제 시기 강제 노동에 동원된 여학생의 단체 사진을 가리키며 설명하고 있다.

    ⓒ김흥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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