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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터뷰] “금보다 비싼 은, 잡초를 화초로 만드는 게 브랜드”…바꿔도 바뀌지 않는 ‘존재의 힘’
    지금 이곳에선 2023. 2. 2. 09:43

    [인터뷰] “금보다 비싼 은, 잡초를 화초로 만드는 게 브랜드”…바꿔도 바뀌지 않는 ‘존재의 힘’

    홍성태 한양대 명예교수 “통념 깨고 나만의 고착개념 만들어야 성공 브랜드”

    “에르메스∙포르셰 브랜드 철학도 본질 유지와 껍질 변화에 방점”

    “쓸데없는 것이 돈을 벌게 해주는 ‘원츠’ 시장도 브랜드에서 생존 갈려”

    입력 2023.02.02 06:33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김춘수의 시 ‘꽃’ 앞부분이다. 의미 없는 대상에 불과했던 ‘몸짓’에 이름이 불리면서 ‘꽃’이란 의미 있는 존재가 된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시다.
    존재를 인식하고, 다른 존재와 구별하며, 존재에 의미까지 부여하는 이름. 사람이 이름으로 인식되는 존재라면, 기업은 무엇을 통해 의미 있고 구별된 존재로 인식될까? 사람과 사물에 이름이 있다면, 기업엔 브랜드가 있다.
    하루에도 부지기수의 브랜드가 쏟아진다. 하지만 수십년의 세월에도 살아남거나 대중의 기억에 각인되는 브랜드는 소수뿐. 이런 브랜드는 어떻게 만들어지는 걸까. 최근 ‘브랜드로 남는다는 것’을 출간한 브랜드 전문가 홍성태 한양대 명예교수에게 브랜드는 무엇이고, 어떤 가치를 갖고 또 어떻게 기억되는지 브랜드 생존 방식을 물었다.

    홍성태 한양대 경영대학 명예교수가 브랜드의 가치와 특성을 설명하고 있다. /전태훤 선임기자
    화초와 잡초 사이
    -브랜드란 무엇인가?
    “한마디로 존재의 시작이다. 쉽게 말하면 이름 붙이기다. ‘도가도 비상도 명가명 비상명(道可道 非常道 名可名 非常名)’으로 시작하는 노자의 도덕경도, 성경 첫 장인 창세기도 모두 이름을 붙이는 것으로 시작한다.
    아이에게 이름을 지어주는 것도 아이의 존재를 세상에 알리는 시작이다. 좋은 뜻을 담아 아이가 그렇게 자라 주길 바라는 부모의 마음도 이름 안에 담겨 있다. 기업의 브랜드도 그렇다. 회사의 존재를 세상에 알리는 수단이자, 비전과 가치인 것이다.
    화초와 잡초를 구분하는 것이 하나 있다. 잡초는 학술적으로 구분은 되지만 사람들에게 알려진 고유 이름이 없다. 한마디로, 이름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화초가 되거나 잡초가 된다. 이름과 브랜드가 중요한 이유다.”
    도덕경의 첫 구절은 노자의 은유적 표현 때문에 해석이 여럿이다. 보통 ‘도를 도라 부르면 도가 아니고, 이름을 부르는 순간 그 이름도 이름이 아니다’ 정도로 해석한다.
    금보다 비싼 은…티파니의 가치
    -브랜드 가치는 어떻게 만들어지나?
    “브랜드는 대부분 허명(虛名)이거나 아무 의미 없는 단어 조합이다. 자라(Zara), 구글(Google) 등도 그렇다. 여기에 상징적 의미가 붙으면 실명(實名)이 된다. 무의미한 합성어에 생명을 불어넣는 작업이 브랜딩인 거다.
    브랜드는 본질의 가치를 뒤바꾸기도 한다. 요즘 순금 한 돈(3.75g)의 시세는 30만원쯤 된다. 같은 무게의 순은은 금값의 1.2%가량인 3500원 정도다. 혹시 누군가 금보다 싼 은 제품을 사겠다고 티파니(Tiffany) 매장에 들렀다면 금값 이상의 은값을 치러야 할지 모른다. 왜? 티파니기 때문이다. 제품이든 서비스든 기능에 상징적 의미를 더할 때 비로소 브랜드의 가치가 생긴다. 그것이 브랜드의 힘이다.”
    브랜드의 시작과 끝
    -무엇을 위한 브랜드인가?
    “히말라야 정상을 떠올리면 눈 덮인 험준한 산봉우리가 생각나고, 사막 한가운데를 생각하면 이글거리는 태양, 광활한 모래언덕과 낙타, 타는 듯한 갈증 등이 연상된다. 가보지 않아도 영화 속 장면이나 잡지 사진, 독서와 방송 등을 통해 간접경험을 했기에 가능한 일이다. 브랜드도 대중의 머릿속에 이런 인식을 심어주는
    초코파이 하면 ‘정(情)’이 함께 떠오르는 것도 그런 거다. 이런 게 고착개념이다. 더 이상 브랜드에 대해 고민하지 않고 자동으로 구매하는 상태를 말하는 거다. 예컨대 커피라 하면 바로 스타벅스를 떠올리는 것처럼 말이다. 이런 고착개념화로 잠금효과(lock-in effect)가 생기면 다소 불편하고 비싸도 그 브랜드를 소비하게 된다. 브랜드의 궁극적인 목적은 소비자를 묶어 두는 고착개념화에 있다.”
    고착개념에서 벗어나라
    -통념에서 벗어나라니, 고착되어야 성공한 브랜드 아닌가?
    “1964년 블루리본 스포츠란 이름으로 시작한 나이키는 1971년이 돼서야 회사명을 지금의 이름으로 바꾸고 ‘스우시’ 로고와 함께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이 당시 미국에 불었던 조깅 열풍은 스포츠 브랜드의 판도를 바꾸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나이키에 앞서 세계 스포츠 시장을 선점해온 아디다스는 조깅 붐을 무시했는데, 이게 나이키에 시장을 내주는 빌미가 됐다, 나이키는 그 틈을 타고 선보인 조깅화로 호응을 얻으면서 시장 반전을 끌어냈다. 조깅은 스포츠가 아니라고 생각한 아디다스가 고착개념에 빠진 실수였다.
    이후 나이키도 고착개념에 빠지는 실수를 했다. 1980년대 에어로빅 열풍을 타고 리복이 목이 높은 에어로빅 신발로 치고 나왔다. 당시 나이키는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 에어로빅이 무슨 운동이냐’는 고착개념에 사로잡혀 에어로빅 시장의 잠재력을 무시했다. 그나마 일찍 정신을 차린 것이 다행이었다. 리복의 에어로빅화에 ‘한방’ 먹은 나이키는 서둘러 목이 높은 에어조던 시리즈를 내놓으면서 반격에 나섰다.
    별생각 없이 ‘그렇구나!’ ‘이건 원래 이래’라고 받아들이면 은연중에 고착개념이 생긴다. 고착개념에서 벗어나는 훌륭한 사고법 중 하나는 ‘왜?’라는 질문을 꾸준히 하는 거다.
    본죽 사례를 보자. 보통 죽은 아플 때 먹는 음식이다. 그런데 본죽은 아플 때도 먹지만 건강식으로도, 과음 후 해장으로도 즐겨 찾는 메뉴가 됐다. ‘죽은 아플 때 먹는다’는 고착개념을 깬 것이다.”
    새로운 고착개념을 만드는 것은 본질을 찾는 과정
    -남다른 브랜드는 어떻게 만드나?
    “고착개념에서 벗어났다면, 이젠 ‘나만의’ 고착개념을 만들어야 한다. 잘 아는 에이스침대 사례다. 이 회사는 인간의 평균 수면 시간이 8시간 정도, 즉 삶의 3분의 1을 침구와 보내는 것에 주목하고 침대를 가구가 아닌 과학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기막힌 발상을 떠올렸다.
    그래서 나온 것이 1993년 ‘침대는 가구가 아닙니다. 침대는 과학입니다’라는 세대를 뛰어넘는 슬로건이다. 침대가 가구라는 고착개념에서 벗어난 뒤, 과학이라는 새로운 고착개념을 만들었다.고착개념에서 벗어나려고 반대되는 생각만 해서는 답이 안 나온다.
    반대 방향이 아닌, 제대로 된 방향을 찾아야 한다. ‘◯◯은 ▢▢이 아디다. △△이다’라는 가정을 계속 해 보면 본질에 다가갈 수 있다. 본질을 찾는다는 것은 브랜드를 정의하는 일이기도 하다.
    애플의 유명한 슬로건 ‘Think Different(다르게 생각하라)’도 컴퓨터가 빠르게 연산하는 기계라는 고착개념에서 벗어나려는 브랜드 전략에서 나온 거다.
    ‘죽은 환자식이 아닌 건강식이다’는 본죽의 사례와, ‘운동화는 운동할 때만 신는 신발이 아니라 ‘그냥 하는’ 도전정신’이라 한 나이키의 ‘Just Do It’, ‘침대는 가구가 아닌 과학’이라 했던 에이스침대가 그런 좋은 예다.
    요컨대 일반 통념에서 벗어나 또 다른 고착개념을 만들어야 성공한 브랜드가 된다.”
    ‘침대는 과학’이라는 에이스침대의 브랜드 광고 슬로건의 전파력이 얼마나 강했는지 짐작할 만한 해프닝도 있었다. 서울의 한 초등학교 저학년 시험에서 ‘가구가 아닌 것을 고르라’는 문제가 나왔는데, 보기에 ‘세탁기’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상당수 학생이 ‘침대’를 답으로 골라 학교 측이 이를 설명하느라 애를 먹었다는 내용이 일간지 독자투고란 실리기도 했다.

    홍성태 한양대 경영대학 명예교수 /전태훤 선임기자
    바뀌지만 안 바뀐다
    -변화와 일관성 사이에서 어떤 고민을 해야 하나?
    “궤변처럼 들리겠지만, 바뀌면서도 바뀌지 않아야 한다. 다른 말로 지속성(continuity)이라고 하는 게 좋겠다. 변하지 않아야 한다는 게 아니라, 본질은 유지하되 껍질을 바꾸면서 신선함을 더해야 한다는 의미다. 에르메스 백을 보자. 수십 년간 똑같은 백은 없다시피 색상과 디테일에 변화를 줘도 에르메스 백엔 한눈에 알 수 있는 정체성이 있다. ‘모든 것이 변하지만, 변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Everything changes, but nothing changes)’는 에르메스의 광고 캠페인에서도 브랜드 철학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90년이 넘은 포르셰도 수없이 많이 디자인을 바꿔가며 신차를 출시했지만, 동그란 헤드라이트에서 연상되는 ‘개구리’ 이미지는 지금까지도 모든 차종에서 어떤 형태로든 이어지고 있다. ‘바꿔라, 하지만 바꾸지 마라(Change it, but do not change it)’는 포르셰 디자인 철학이 녹아 있어서다.”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
    -디자인이 브랜드를 좌우한다는데.
    “고객에게 내밀 수 있는 디자인을 넓게 보면 사람의 오감(五感) 모두 해당하지만, 보통은 시각적 이미지가 영향을 미친다. 사람들이 선천적으로 아름다움을 갈망하기 때문이다. 책을 겉표지로 판단해선 안 된다고 하지만, 여전히 표지가 판단의 중요한 잣대인 게 현실이다. 오죽하면 ‘보이지 않는 손길(Invisible Touch)’을 작가 쓴 해리 백위드는 ‘더 예쁜 쥐덫’을 만들라고 했을까.
    보드카 브랜드 앱솔루트는 디자인으로 브랜드 마케팅에 성공한 사례로 볼 수 있다. 앱솔루트는 보드카가 가진 ‘독하고 거센 싸구려’ 러시아 술이란 이미지를 없애기 위해 병 모양을 디자인 핵심 요소로 앞세워 브랜드 마케팅을 했다. 유명 팝아티스트 앤디 워홀이나 제프 쿤스 등에게 술병을 주제로 예술 작품을 만들게 해 전시회를 열기도 했다. 디자인이 새로운 브랜드 이미지를 만든 거다.”
    ‘보드카=러시아 술’이란 인식 때문에 많은 이들이 앱솔루트를 러시아 브랜드로 생각하지만 사실은 스웨덴의 보드카 브랜드다. 특히 앱솔루트의 독특한 병 모양은 스칸디나비아를 대표하는 디자인으로 꼽히기도 한다. 앱솔루트는 매년 연말 한정판을 내놓는데, 병에 색을 칠한다거나 새로운 무늬와 아트 소재를 넣는 식으로 병 디자인을 바꾼다. 병이 예뻐서 수집하는 이들도 상당하다.
    쓸데없는 것이 돈을 벌게 한다
    -필요하지 않은 것을 원하는 심리는 뭔가?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것을 찾는 것이 니즈(needs) 시장이다. 꼭 필요하지 않아도 원하고 찾게 되는 것이 원츠(wants) 시장이다. 의식주 범주 안에서 먹고 사는 것에 급한 니즈 시장과 달리, 원츠 시장은 수요와 가격에 제한이 없는 훨씬 큰 시장이다.
    돈을 벌어야 하는 브랜드라면 원츠 시장을 공략하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
    도쿄 긴자에 가면 멜론 하나에 3만엔, 우리 돈으로 30만원이 넘는 과일 가게가 있다. 터무니없이 비싼 가격을 받고도 1833년에 처음 문을 연 이후 200년 가까이 명맥을 유지하는 비결은 뭘까? 내가 먹을 과일이 아니기 때문에 3만엔짜리 멜론이 팔리는 거다.
    ‘쓸데없이 비싼’ 과일을 사는 것은 누군가에게 값진 선물을 해주고 싶은 원츠 때문이다.
    반드시 비싼 것이 소비욕구를 자극하는 건 아니다. 예컨대 카카오톡의 ‘선물하기’도 원츠 시장을 파고든 마케팅 전략이 들어있다. 갖고는 싶은데 내 돈 주고 사기에는 아까운 물건을 받을 때 좋아하는 심리를 잘 이해하고 있는 기능이다.
    이 세상은 쓸데없는 것이 돈을 벌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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