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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재벌집 막내아들’이 말해주지 않은 것
    문화 광장 2022. 12. 29. 09:32

    ‘재벌집 막내아들’이 말해주지 않은 것

    등록 :2022-12-29 08:21

    수정 :2022-12-29 09:10

    남지은 기자 사진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제이티비시)은 원작 웹소설과는 다른 ‘인과응보’식 결말로 지난 25일 끝났다. 과거로 회귀해 진도준(송중기)으로 살았던 윤현우(송중기)는 현재로 돌아왔다. 이를 두고 “진도준에 빙의된 것이 맞다”, “꿈이었다” 등의 여러 해석이 나오는데, 중요한 것은 돌아온 윤현우가 참회했다는 사실이다. 그가 침묵하던 비밀을 꺼내면서 진씨 일가는 무너지고 순양그룹은 전문 경영인 체제가 됐다. 원작에서 윤현우는 진도준으로 살며 순양그룹 회장 자리를 꿰찬다.

    원작과 다른 결말에 애청자들은 불만을 토로하기도 한다. 순양그룹 일가의 오너리스크를 관리하던 윤현우는 그룹 창업주 진양철(이성민) 회장의 막냇손자로 회귀한 뒤, 진씨 삼남매와 줄곧 승계 싸움을 해왔다. 시청자들은 진도준이 나쁜 재벌을 벌주려는 게 아니라, 회장 자리를 쟁취하려고 경쟁하며 나아가는 것에 쾌감을 느껴왔다. 원작과 같은 길을 잘 달리던 그가 마지막에 이르러 갑자기 방향전환을 한 것이다.

    윤석진 충남대 국문과 교수는 “올드미디어가 가진 도덕적인 부분을 피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앞에서 나온 문제적인 것들을 ‘드라마에서는 어느 정도 해결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지금과 같은 선택을 한 것 같다”고 짐작했다. 그는 “원작대로 끝맺었더라도 잡음은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도 그럴 것이 <재벌집 막내아들>은 드라마가 지금껏 재벌 문제를 그리던 방식과 달라 방영 초기에는 다소 낯설었던 면도 있다. 

    이 드라마에서 재벌의 비리는 파헤쳐야 할 사안이 아니다. 주인공이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능력치를 쌓는 데 필요한 장치일 뿐이다. 박지희 숭실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박사는 <한국 웹소설 ‘재벌집 막내아들’에 나타난 신자유주의 시대 현실 재현 양상 연구>라는 논문에서 “한국 웹소설 재벌물은 정경유착에 대한 비판이나 기업 비리 등을 고발하는 것에는 관심이 없다. 

    진흙탕 같은 현실을 주물럭댈 수 있는 능력자가 되거나 과거 정보를 이용해 미꾸라지처럼 상황을 모면하는 걸 더 선호한다. 재벌물은 경쟁과 효율성이 제일의 가치라는 걸 인정하는 신자유주의 시대의 이데올로기를 보여주는 거울로 작동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플랫폼의 변화로 짧은 시간에 몰입해야 하는 웹소설 재벌물의 인기가 드라마로 옮아온 것이다.

    긍정적인 사회 현상에서 비롯한 변화는 아니라는 점에서 근본적인 문제를 들여다볼 필요는 있어 보인다. 

    박지희 숭실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박사는 논문에서 “‘이번 생애는 망했다’(이생망)라거나 절대 올라갈 수 없는 계급 사회를 이야기하는 ‘수저계급론’은 이미 지배계급의 불가항력적인 힘을 인정하고 들어가는 말이다. 그것이 신자유주의 시대에 재벌물이란 키워드가 독자에게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었던 이유다. 재벌은 휴머니즘이 결여된 악독하고 부정적인 인물이 아니라 독자에게 대리만족을 안겨줄 시원하고 거침없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진 자로 재탄생한다”고 했다.

    <재벌집 막내아들>에서는 1980~2000년대 우리 사회를 뒤흔든 근현대사들이 진씨 삼남매와 진도준의 자리싸움에 활용되고, 순양그룹이 현실의 재벌그룹 사례를 반영하고 있다. 극과 현실을 동일화할 우려도 적지 않다. 그래서 준비했다. <재벌집 막내아들>이 말해주지 않은 것을 알아보는 시간. 별것 아닌 것처럼 스쳐 지나갔지만 알고 보면 우리가 알아둬야 할 ‘큰일’인 사건도 많다. 드라마를 즐겁게 감상했다면, 생략된 사실도 진지하게 들여다보자.

    ■ 어린 도준의 영특함 강조 ‘13대 대선 자금’…현실은

    1987년 ‘13대 대통령 선거’는 진양철 회장이 10년 동안 왕래 않던 막내아들 진윤기의 둘째 진도준을 달리 보기 시작한 계기다. “와이에스”와 “디제이”를 놓고 고민하는 진양철의 답답함을 풀어준 이가 어린 도준이다. “저라면 대선 자금은 노태우 쪽에 걸겠어요. 

    대통령은 노태우 후보가 될 테니까요” 한술 더 떠 “대선 자금은 셋 모두에게 주라”는 조언까지 한다. “1등이 졸업하고 나면 2등, 3등도 1등하는 날이 올테니까요. 저라면 3등이 1등이 되기 전에 빨리 주겠어요. 그것도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많이. 3등일 때 주면 은혜를 입었다고 생각하겠지만 1등이 된 다음에 주면 그땐 당연하다고 생각할 테니까요.”

    어린 손주 덕에 진양철은 노태우 당선자로부터 “각하의 임기 동안 반도체 독점 사업권”을 약속받는다.

    하지만, 어린 도준의 영특함이라며 넘기기에는 당시 선거 자금 뜯어가는 행위가 너무 노골적이다. <한겨레21>이 2003년 8월21일 보도한 ‘선거자금은 이렇게 진화했다’라는 기사를 보면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은 세무조사와 사찰이라는 양 칼날을 동원해 기업인들이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게 해놓고’ 돈을 뜯어냈다”고 나와 있다.

    <한겨레21>은 “전두환 전 대통령은 13대 대선을 앞둔 1987년 10월 안기부장, 재무장관, 국세청장, 은행감독원장 등을 통해 대선 자금을 모금했다.

    국세청장의 경우 롯데 회장에게 그룹의 세무조사를 위한 내사 사실을 알려주면서 무마 명목으로 50억원을 청와대에 제공하도록 유도한 것으로 나타나는 등 5공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을 긁어모았다”고 보도했다. 노태우 전 대통령은 <노태우 회고록>에서 “1987년 대통령 후보로 나섰을 때 전두환 전 대통령으로부터 선거자금으로 1400억원을 지원받았고, 당 재정위원∙후원회 등에서 모은 500억원을 더해 2000억원 정도 선거자금을 사용했다”고 공개했다.

    ■ 진양철의 반도체 집념 ‘CAL기 폭파’…현실은

    드라마는 반도체를 향한 진양철의 확신과 열정을 보여주려고 비행기(CAL) 폭파 사고를 등장시킨다. 진양철은 바그다드 출장 중에 어린 도준의 메모를 발견하고 항공편을 변경하고 서울에 온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영진반도체를 사기 위해서다. “고래 싸움에 새우가 이기려면 몸집을 키워야 하니 영진반도체를 사라”는 어린 도준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항공편을 변경하지 않았다면, 진양철은 CAL기에 탔다. 1987년 승객 115명의 목숨을 앗아간 대한항공(칼, KAL) 858기다. 반도체를 향한 열정이 그를 살린 셈이다.

    폭파 사고는 선거 2주를 앞두고 일어났다. 바그다드에서 출발해 아부다비와 방콕을 경유해 한국에 도착할 예정이었다. 남자는 죽고 북한 공작원 김현희가 대통령 선거 하루 전에 체포됐다. 이 사건은 여러 가지 석연찮은 일이 많았다.

    2019년 3월31일 <한겨레> ‘전두환 정권, 87년 대선 직전 김현희 송환 시도했다’ 기사를 보면, “대한항공(칼, KAL) 858기 사건을 정략적으로 이용하려고 전두환 정권이 바레인에 붙잡혀 있던 김현희를 대선 전에 국내로 송환하기 위해 치열한 외교전을 벌였던 정황이 31일 외교부가 공개한 25만쪽 분량의 1987~1988년 외교문서를 통해 공식 확인됐다”고 나와 있다. 또 “전두환 정권이 이 사건을 대선에 정략적으로 이용하려 했던 정황도 2006년 ‘국가정보원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가 공개한 문건 등에서도 드러난 바 있다.”

    ■ 진도준의 첫 도장깨기 한도제철…사실은

    진도준과 순양의 첫 대결로 ‘한도제철 인수 사업’이 등장한다. 진양철은 한도제철 인수를 장남 진영기한테 맡기면서 경영 능력을 파악한다. 진도준은 분당 땅을 팔아 번 240억원으로 외국계 투자 회사를 설립하고 오세현을 사장으로 내세워 한도제철 인수에 뛰어든다. 진도준은 중간에서 매각 금액을 계속 부풀리고, 진영기는 한도제철을 인수하지만 무리한 투자로 빚을 7천5백억원 갖게 된 것과 마찬가지 결과를 낸다. 

    한도제철 에피소드로 진영기의 무능, 진동기의 욕심, 그래도 장남을 믿고 싶은 진양철의 마음도 엿보였다. 투자능력을 앞세운 진도준의 도장깨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실제로는 한도제철의 부도는 아이엠에프의 시작이 되는 큰 사건이다. 한도제철은 한때 재계 14위였던 한보그룹 계열사인 한보철강공업을 가리킨다.

    한보철강은 한보그룹의 주력사로 한보 사태의 핵심 기업이다. 한보그룹 정태수 회장은 뇌물을 주고 4조원이 넘는 불법대출을 받았는데 자금난을 해결 못 해서 부도 처리된다.

    한보철강의 부도는 다른 기업들의 부도로 이어지면서 아이엠에프 사태가 발생하게 된다. 극 중에서 한도제철은 진영기가 모든 자금을 다 끌어와 순양그룹 즉 현실의 삼성에 인수되는 것처럼 나오지만 실제로 현대그룹에 인수된다.

    ■ 순양의 아진자동차 인수…사실은

    진양철이 반도체와 함께 주력하는 것이 자동차다. 뒤늦게 뛰어든 순양은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한다. 그때 등장하는 것이 ‘아진자동차 인수’ 이야기다. 진양철은 대출금 4조5천억원을 상환 못 해 최종 부도 처리된 아진자동차 인수에 뛰어든다. 

    청와대를 찾아가 재벌 그룹 빅딜에 대한 조건으로 “아진자동차를 달라”고 당당하게 요구하고, 미라클 인베스트먼트의 도움으로 인수한다. 진양철의 자동차에 대한 진심이 부각된 장면이자, 진도준의 전략이 도드라진 장면이다.

    극중에서 아진자동차는 순양이 인수하지만, 현실에서는 아진에 해당하는 기아를 현대가 인수한다. 삼성은 순양처럼 현실에서는 당당하지 못했다. 기아자동차 인수 과정에서 <삼성 X 파일>이라는 것이 공개되면서 여러 이야기가 오갔다. 삼성이 기아를 흔들어 인수하려고 전방위 로비를 펼쳤다는 내용이다.

    <한겨레21>이 2005년 8월1일 내보낸 ‘자동차 시장에 뛰어든 물귀신’ 기사에서 “삼성이 금융계열사를 동원해 기아그룹을 흔들었고, 삼성이 대선 후보와 커넥션을 했다는 등의 풍문이 있었”는데 “<삼성 X 파일>을 통해 정관계를 상대로 전방위 로비를 펼친 삼성의 막후 공작이 일부 드러난 것”이라고 되어 있다. 기사에서 삼성은 “당시나 지금이나 기아차를 인수할 여력도 생각도 없(었)고 밝히고 있”다.

    ■ 뉴 데이터 테크놀로지 실은…

    극 중에서 뉴 데이터 테크놀로지는 진도준이 진화영과 진동기를 통쾌하게 한 방 먹이는 데 활용된다. 진화영 진동기한테 뉴 데이터 테크놀로지 주식 관련 정보를 슬쩍 흘린 뒤 어느 정도의 수익을 보게 하며 덫을 놓는다. 그러면서 순양백화점과 순양금융을 모두 갖게 된다.

    뉴 데이터 테크놀로지는 실제 새롬기술을 모티브 삼았다. 

    새롬기술은 다이얼패드라는 무료 인터넷전화 서비스를 선보이며 1999년 8월 코스닥에 상장했다. 김대중 정부의 아이티사업 육성 정책과 맞물려 닷컴 버블 시기에 코스닥 상장된 후 6개월 만에 150배가 상승하는 등 화제를 모았다. 그러나 드라마처럼 어느 순간 폭락하면서 손실을 본 이들이 많다. 개미투자자는 물론, 진화영처럼 대기업 중에도 있다고 한다.

    이 에피소드는 진도준의 ‘민낯’을 볼 수 있다. 진도준은 진화영과 진동기의 계열사를 먹겠다는 생각에 개미투자자들을 생각하지 않는다. 진도준의 엄마는 순양생활과학 주식을 샀다가 충격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순양생활과학은 순양과 정부의 빅딜로 구조조정을 단행했고 수많은 소액투자자(개미투자자)들이 피해를 봤다. 드라마에서 뉴 데이터 테크놀로지는 진도준의 도장깨기용으로 사용되지만, 실제로는 많은 개미 투자자들의 인생에 좌절을 안겼다.

    ■ 순양 3세 승계 포기…사실은

    진도준 살해교사범이 알려지면서 순양그룹은 위기를 맞는다. 불매 운동과 여론 뭇매를 맞자 순양 일가는 대국민 사과와 함께 3세 승계를 포기한다. 가족끼리 물고뜯던 이들이 약속을 지킬 수 있을까. 삼성 이재용 당시 부회장도 2020년 대국민 사과문에서 ‘4세 경영’ 포기 발언으로 언론의 관심을 끈 적이 있다. 언뜻 보면 굉장한 선언 같지만, 당시에는 눈 가리고 아웅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2020년 5월12일 <한겨레> 칼럼 ‘삼성 4세 경영 어차피 어려운 터에’를 보면, “4세 경영 포기라는 게 실상 ‘할 수 없는, 불가능한 일’을 ‘안 하겠다’고 한 것과 마찬가지라는 허망함을 띠고 있다”고 분석했다. 당시 △이부회장의 아이들은 20살 아들과 16살 딸이라 4세 경영 여부는 먼 미래 일이고, △그가 총수를 하기 시작한 지 6년밖에 되지 않은 점 등을 들었다.

    “2008년 이건희 회장의 사퇴 선언과 차명계좌 4조5천억원 사회 환원, 지배구조 개선 약속도 지켜지지 않았다”며 “이 부회장의 신약이 의구심을 남기는 것과 무관치 않은 사연”이라고 했다. 드라마에서 진도준도 할아버지가 남긴 비자금을 기부한다.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

     

    https://www.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1073590.html?_ns=r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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