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6.02 14:01
[MT리포트]동물의 역습, 울리지 않는 조기경보①
[편집자주] 1997년 코로나19 대유행을 경고한 도널드 버크 피츠버그대학 공중보건대학원 교수는 인수공통감염병과 맞설 무기로 '과학적 근거를 강화한 대비'를 강조했다. 어떤 바이러스가 어디서 어떻게 발생했는지 신속히 파악해야 준비를 갖춰 대응할수 있으며 이것이 '과학방역'의 시작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안타깝게 '사후 대응' 수준에 머물고 있다. 그 사이 인류를 위협할 바이러스를 품은 원숭이, 박쥐 등은 각종 인수공통감염병 유행을 통해 우리에게 불길한 신호를 보낸다. 윤석열 정부의 '과학방역'이 나가야할 방향을 짚어본다.

"동물이 보낸 또 하나의 불길한 신호인거죠."
송창선 대한인수공통감염병학회장(건국대 수의학과 교수)은 최근 '원숭이두창'의 전 세계적 확산에 대해 평가해달라는 질문에 이 같이 답했다. 원숭이두창은 △전파 경로가 제한적이고△변이가 확인되지 않은데다△이미 백신도 있어 '대유행'을 일으킬 가능성은 낮지만 동물로부터 넘어오는 인수공통감염병이란 평가를 받는다. 원숭이두창의 사례가 자주, 광범위하게 발생하고 있다는 점에서 인수공통감염병의 심각성이 체감된다는 설명이다. 송 회장은 "문제는 우리가 얼마나 빨리 동물들이 보내는 이상징후를 인지할 수 있는지 여부"라고 강조했다. '과학방역'의 첫 번째 조건은 인수공통감염병의 발빠른 '감시'와 '인지'라는 조언이 의료·과학계에서 나온다. 민경덕 충북대 수의학과 교수는 "가장 효과적인 인수공통감염병 통제 방법은 동물에서 사람으로 넘어오는 전파 경로를 차단하는 것"이라며 "이를 위해서는 동물 단계 혹은 동물로부터 소수의 사람들이 감염되는 단계에서 상황을 인지하는 것이 필요조건"이라고 강조했다. 이는 감염병 예방의 기본이자 첫 단추지만 20여년간 사스와 신종플루, 메르스, 코로나19에 이르기까지 굵직한 대유행을 겪고도 아직 꼼꼼한 감시 시스템이 마련되지 않은 것이 우리 방역의 현실이다.(머니투데이 5월 30일자 보도 참조. "감염병 밖에서 오는데"...WHO 파견 역학조사관 달랑 '2명') '인수공통감염병'(人獸共通感染病, zoonosis )은 전세계적 코로나19 대유행을 겪으며 조명된 단어다. 사람과 동물 사이에서 상호 전파되는 전염성 질병으로, 특히 동물이 사람에 옮기는 감염병을 가르키는 말이다. 코로나19가 '실험실에서 의도적으로 만들어진 바이러스'라는 설도 있지만, 박쥐에서 야생 상태의 중간숙주 동물(족제비, 오소리 등)을 거쳐 인간으로 넘어왔다는 것이 정설이다. ![]() 그런데 코로나19만 인수공통감염병인 것이 아니다. 2003년과 2015년 유행한 사스와 메르스는 박쥐에서 기원했고 2009년 신종플루는 돼지에서 발원했다.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20세기 이후 발생한 신종 감염병의 75% 이상이 인수감염병이다. 인류를 위협하는 대다수의 감염병은 동물에서 오고있다고 보면 된다. 왜 그럴까. 우선 동물이 너무 많다. 지구상에는 5만여 종의 척추동물이 있는데 이들이 보유한 바이러스는 100만 종이 넘는다. 이들 모두가 변이를 일으켜 인간으로 넘어올 '통로'를 확보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만큼 인수공통감염병 잠재 후보군이 많은 셈이다. 이 잠재후보군이 넘어올 '숙주'인 인간도 많다. 약 60년전 30억명 수준이던 세계 인구는 현재 80억명에 육박한다. 급격히 늘어난 인구의 살 터전과 자원 확보를 위한 개발이 진행된 가운데 80억 인류와 100만종 바이러스를 품은 야생동물이 보다 빈번히 섞이며 인수공통감염병이 확산되는 것이다. 송 교수는 "기후변화까지 맞물리면 인수공통감염병 확산은 더 자주, 넓게 발생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 최근 미국 조지타운대 글로벌보건안보센터 연구팀은 섭씨 2도 기후 온난화 시나리오에 근거해 앞으로 50년간 최소 1만5000건의 새로운 종간 바이러스 전파가 발생할 것이라는 연구결과를 과학저널 '네이처'에 실었다. 인수공통감염병은 이처럼 세계 곳곳에 포진한 인간과 동물의 경계지역에서 조용히 발생하기에 현지 감염병 상황을 감시할 '안테나' 확보가 방역의 기본이라는 것이 의료·과학계 공통된 설명이다. 이 때문에 미국과 유럽 등 주요국은 세계보건기구(WHO) 인력 파견은 물론,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 유럽질병예방통제센터(ECDC) 등 자체 조직을 통한 감시 네트워크도 갖춰둔 상태다. 특히 미국은 국토안보부와 국방부 산하에도 국방첨단과학기술연구소를 두고 글로벌 감시망을 가동한다. 초기 방역 대응에 삐걱대는 모습도 보였지만 미국의 이 같은 감시망을 통한 빠른 인지는 국가 차원의 발빠른 백신지원 결정으로 연결됐다. 하지만 우리의 감시 체제는 아직 걸음마 상태다. 수차례 감염병 유입을 겪으며 '검사·추적·치료' 등 사후대응 체계는 잘 갖춰뒀지만 정작 감염병 감시와 인지를 위한 컨트롤타워는 마련되지 않은 상태다. 김우주 전 대한감염학회 이사장(고대구로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1온스의 예방이 1파운드의 치료보다 낫다는 영국 속담이 있듯이 대비가 중요하다"며 "우리나라가 대응은 강한데 대비에는 약한 것은 안전불감증 때문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인수공통감염병 감시체계 마련은 '과학방역'을 표방한 새 정부의 숙제이기도 하다. 정부가 과학적 방역 체계를 구축하기 위해 제시한 주요 원칙은△활용 가능한 최대한의 정보와 근거에 기반한 방역 정책 추진 △전문가 중심의 집단지성을 활용한 방역 정책 수립 △인구집단 특성·행동양식·수용성을 충분히 고려한 정책 등이다. 이를 바탕으로 슈퍼컴퓨터를 도입하고 민간 전문가 중심의 감염병 위기대응 자문기구를 신설한다는 계획인데, 감염병 감시 체계 구축에 관한 내용은 없는 상태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현 정부 출범 전 대통령직 인수위에서 WHO와 미국과 유럽의 방역당국 등에 역학조사관을 파견하는 방안이 논의된 것으로 알고있다"며 "현지 사정을 알아야 거기에 맞는 정책을 준비하고 대비할 수 있다는 것이 핵심 문제의식"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