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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취임사를 비판한다지금 이곳에선 2022. 5. 13. 13:13
대통령 취임사를 비판한다
등록 :2022-05-11 18:53수정 :2022-05-12 02:35
‘오직 자유’와 성장지상주의가 답?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0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 잔디마당에서 열린 제20대 대통령 취임식에서 취임사를 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왜냐면] 이도흠 | 한양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윤석열 대통령의 취임사는 한마디로 “19세기의 자본가가 쓴 허위와 모순투성이의 성명서”다. 이에 담긴 개념과 의식이 그 정도 수준이고, 미사여구로 포장했을 뿐이지 문제와 원인, 대안이 서로 부합하지 않기 때문이다. 윤 대통령은 취임사 전체를 포괄하는 말로 서두를 연다. “이 나라를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체제를 기반으로 국민이 진정한 주인인 나라로 재건하”겠다는 것이다.
자본주의 체제 400년의 경험을 통해 전 세계인이 알게 된 것은 견제 없이 자유민주주의와 시장체제를 기반으로 하면 실제 국민이 아니라 권력자와 자본가가 주인이 된다는 사실이다. 기업의 단 한 가지 목적은 이윤을 늘리는 것이고 자본은 이를 위해 국가와 동맹을 맺고 온갖 불법과 폭력, 더 나아가 전쟁도 마다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본주의가 발전한 미국과 유럽은 자유의 개념을 재정의하거나 이에 정의를 조화시키거나 국가와 시민사회가 시장을 견제하는 시스템을 만들거나 직접민주주의와 숙의민주주의로 보완하거나 사회민주주의 정책을 채택하고 있다.
이번 취임사의 핵심어 중 핵심어는 ‘자유’다. 35번 나올 뿐만 아니라 모든 대안으로 이를 내세우고 있다. 하지만 자유의 개념 또한 19세기적 개념에 머물고 있다. 이제 자유는 “모든 억압과 구속, 폭력으로부터 벗어나 뜻한 대로 행하는 것”만을 뜻하지 않는다.
이는 소극적 자유(freedom from)일 뿐이다. 이제 자유는 타자를 빈곤, 억압, 구속으로부터 벗어나게 할 때 느끼는 희열인 대자적 자유(freedom for), 노동을 통하여 새로운 가치를 생산하여 진정한 자기실현을 하거나 수행과 정진을 통하여 새로운 존재로 거듭나는 적극적 자유(freedom to)를 포함한다. 소극적 자유만을 추구하는 한, 불평등, 공정과 정의의 상실, 구조적 폭력의 증대 등 자유로부터 빚어지는 폐단을 극복하기 어려우며 엘리트를 제외한 나머지의 자유는 오히려 축소된다.
윤 대통령은 팬데믹 위기, 기후변화, 에너지 위기, 분쟁의 평화적 해결의 후퇴, 양극화 심화, 민주주의의 위기 등을 지적하면서 “가장 큰 원인으로 지목되는 것이 바로 반지성주의”라고 말하고 있는데 인과적 오류이자 적반하장이다. 민주주의의 위기만으로 국한해도, 자본과 국가의 유착, 언론의 기업화, 시민사회와 공론장의 붕괴, 부족주의, 에스엔에스(SNS)의 확대가 원인이고 반지성주의는 이에 따른 현상일 뿐이다. 무엇보다 윤석열은 이를 획책한 장본인이다. 적반하장이라는 소리를 듣지 않으려면 성찰부터 해야 한다.
무지하면서도 독선적인 것보다 더 두려운 것은 대통령의 주변에 극단적인 신자유주의자들이 전면과 후면 모두에 포진하고 있는 점이다. 아니나 다를까 기후위기와 양극화를 거론하면서도 “도약과 빠른 성장을 이룩하지 않고는 해결하기 어렵다”며 성장 일변도의 정책을 취하겠다는 것을 표명하고 있다. 가장 큰 희생자인 노동에 대해서는 단 한마디도 없다. 기후위기와 불평등의 근본 원인은 성장 일변도의 신자유주의 때문이다. 신자유주의 체제의 사령부인 국제통화기금(IMF)이 낙수효과는 허구이고 그 반대로 저소득층을 지원하여 경제를 활성화하는 분수효과가 더 효력이 있다며 이미 오래전부터 유턴을 하였다.
피케티나 스티글리츠와 같은 진보적 경제학자만이 아니라 보수주의자들도 불평등과 기후위기의 대안으로 지속가능한 발전과 조세혁명, 글로벌 자본세 등을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기후위기와 불평등의 원인이 견제가 없는 자유주의 시장 경제와 성장정책인데 이를 대안으로 제시한 것은 모순과 오류의 극치다.
과학기술과 혁신을 대안으로 제시한 것도 구세기적 발상이다. 중세의 주술의 정원에서 계몽의 시대로 나아갈 때는 과학기술이 대안이었다. 하지만 20세기부터 이미 과학기술의 비인간화, 도구화, 반지성화를 지적하였다. 기후위기와 불평등, 팬데믹의 한 원인도 이것이기에 인간과 생명의 얼굴을 한 과학기술이 대안으로 제시되고 있다.
평화 또한 폭력과 전쟁이 없는 상태라는 소극적이고 낡은 평화관에 머물고 있다. 구조적 폭력을 없애는 것이 진정한 평화의 길이다.
마지막으로 한마디 더! 국내 문제든, 북한 문제든. 국제 문제든, 협력과 연대를 강조하고 있는데, 문제를 원인과 대책 없이 당위적으로 개인의 협력과 연대로 해결하자는 것은 히틀러가 즐겨 사용하던 어법이다. 시대에 부합하는 인식과 성찰을 바란다.
#대통령# 취임사를# 비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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