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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기로운 유럽생활 /산 자의 공간과 죽은 자의 공간지금 이곳에선 2025. 1. 12. 14:18
슬기로운 유럽생활 /산 자의 공간과 죽은 자의 공간
VOL.40|2025.01.06안녕하세요, 독자님유럽에서 날아온 마흔 번째 편지를 개봉해 주셔서 오늘도 감사합니다. ✈️새해 첫 슬유생으로 인사를 드립니다. 모두 건강한 시간들을 보내고 계신가요? 오늘은 제가 좋아하는, 그리고 아마도 많은 분들이 좋아하실 글로 슬유생을 열어 보려고 합니다. 2015년 6월 한국일보에 실렸다가 이후에는 동명의 책으로 엮인 김영민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의 글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입니다."아침을 열면서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 얼굴에 비누를 가득 칠한 채 중얼거리는 거다. "나는 이미 죽었고 내가 속한 정치공동체도 이미 죽었다"라고. 무슨 말이지? 나는 멀쩡히 살아서 이렇게 세수를 하고, 정부는 어김없이 세금을 걷어가고, 국회 인사청문회에서는 변함없이 그다지 질이 높지 않은 쇼가 상연되고 있는데? (…) 이러한 시절에 아침을 열 때는 공동체와 나의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첫째, 이미 죽어 있다면 제때 문상을 할 수 있다.둘째, 죽음이 오는 중이라면, 죽음과 대면하여 놀라지 않을 수 있다.셋째, 죽음이 아직 오지 않는다면, 남은 생을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해 보다 성심껏 선택할 수 있다.넷째, 정치인들이 말하는 가짜 희망에 농락당하지 않을 수 있다.다섯째, 공포와 허무를 떨치기 위해 사람들이 과장된 행동에 나설 때, 상대적으로 침착할 수 있다. 그렇게 얻은 침착함을 가지고 혹시 남아 있을지도 모르는 자신의 생과 이 공동체의 미래에 대해 생각해보는 거다.화전민이나 프리라이더가 아니라 조용히 느리게, 그러나 책임 있는 정치 주체로 살아 보고야 말겠다는 열정을 가져보는 거다. 그러나 오늘날 많은 사람들에게 열정이란 그 자체로 지나치게 큰 야망처럼 보인다."마지막 문장이 다소 안타깝기는 하지만... 그래도! 죽음을 생각함으로써 삶을 살 수 있다는 역설을 통해 얼핏 어두워 보이는 모든 것이 꼭 어둡지만은 않다는 깨달음을 주는 것 같아요. 이런 확신이 어쩌면 상황을 덜 비관하는 태도로 이어지는 것 같기도 하고요.하하, 새해를 여는 글 치고는 다소 무거웠나요. 이 글로 올해 첫 슬유생을 여는 건 오늘의 주제와도 연관이 있기 때문입니다. 독일을 비롯한 유럽의 여러 국가, 도시를 걷다 보면 시내 한복판에 묘지가 조성돼 있는 것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습니다. 유명하거나 역사적으로 의미 있는 이들을 기릴 목적으로 만든 게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을 위한 묘지가 도심 한가운데 위치하는 건데요.한국에서는 '살아 있는 사람들의 공간'으로부터 조금 거리를 두고 '죽은 자들이 머무는 공간'을 만들곤 하기 때문에 도시 곳곳에서 우연히 마주한 묘지들을 저는 괜한 호기심으로 둘러보곤 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유럽의 묘지에 대한 이모저모를 여러분과 함께 이야기하고자 합니다.산 자의 공간과 죽은 자의 공간묘지가 도시의 중심부에 위치하게 된 이유는 여럿입니다. 일단 종교적 의미가 강합니다. 중세와 근대 초기 기독교 전통은 망자를 '봉헌된 땅'에 묻는 것을 강조했습니다. '봉헌된 땅'은 대개 교회 부지 주변 또는 내부에 있는 경우가 많았고요. 교회와 가까운 곳에 묘지가 있으면 여러 종교 의식을 거행하거나 죽은 자를 위한 기도를 하기에도 편리합니다. 교회는 주로 유동 인구가 많은 도시의 중심에 위치하곤 하죠.도시의 성장 및 확대와도 묘지 위치는 관련이 깊습니다. 원래 도시 외곽에 위치하는 묘지가 상당했는데, 인구가 늘고 도시가 커지면서 묘지가 있는 곳까지 도시가 확장된 겁니다. 커뮤니티로서의 기능도 묘지는 갖고 있습니다.한국에서와 마찬가지로 묘지는 망자를 중심으로 사람들이 모이는 장소인 만큼 너무 고립된 곳에 묘지를 조성하는 것은 아무래도 불편하다고 본 겁니다. 가족, 친구, 지인들이 정기적으로 묘지를 방문하고 관리하기 위해서도 주거지 인근에 묘지가 있는 것이 낫겠죠.일부 묘지는 문화적 랜드마크, 시민의 자부심을 상징하는 장소로서의 역할도 했습니다. 실용적으로 접근하면 망자를 먼 매장지까지 옮기는 것이 어려웠던 터라 사는 곳과 가까운 곳에 묘지를 만든 것이라고도 볼 수 있겠습니다.제가 거주하는 독일 베를린에서도 묘지를 많이 볼 수 있는데요. 베를린시 홈페이지에서는 묘지를 이렇게 묘사하고 있습니다."묘지는 고인의 매장지이자 살아있는 자에게는 애도의 장소 역할을 합니다. 또한, 묘지는 침묵, 회복, 만남의 장소로 사용되며, 이는 특히 대도시에서 중요한 여가 요소입니다.게다가, 과거의 예술과 공예 형태를 보존함으로써 과거를 기록하는 문화적 유적지입니다. 그러나 자연도 여기에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이런 방식으로 묘지는 보존되고 개발되어야 할 도시 생활의 광범위한 필수 구성 요소를 포괄합니다."아래 지도는 베를린 묘지 문화 홍보 등을 목적으로 한 '나의 동네, 나의 묘지' 사이트에서 캡처한 베를린 묘지 장소입니다. 정말 베를린을 '꽉' 채우고 있죠.
묘지이자 공원? '보는 재미'도 상당앞서 소개한 베를린시 설명에서 눈에 띄는 부분이 있습니다. '중요한 여가 요소'라는 표현인데요. 실제로 베를린을 비롯, 많은 도시에서 만난 묘지들이 죽은 자를 추모하는 공간으로 기능할 뿐만 아니라 여가를 즐기는 공원으로도 활용되고 있습니다.아무래도 묘지인 터라 벽이나 울타리 바깥에 비해 인적이 드물고 조용한 이곳에서 책을 읽거나 명상에 잠기는 이들을 유럽에서는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습니다. 소풍을 즐기는 아이들도 이따금 만날 수 있고요.독일에서는 '묘지의 날'도 기념하는데요. 독일 중앙원예협회 산하 독일묘지정원사협회(BdF)는 2001년부터 매년 9월 셋째 주말을 묘지의 날로 정하고, 묘지와 관련된 다양한 행사를 개최합니다. 지난해에도 크고작은 전시회, 음악회 등이 묘지 곳곳에서 열렸습니다.꼭 묘지의 날이 아니더라도 묘지에서 열리는 다양한 행사에 쉽게 참여할 수 있습니다.베를린을 기준으로 보면, 지난 1일 슈탄스도르프 남서쪽 묘지를 통과하는 새해 산책 행사가 열렸습니다. 새해 산책을 통해 19세기 및 20세기 무덤 양식을 배울 수 있는 것은 물론, 하인리히 질레, 프리드리히 빌헬름 무르나우, 오토 그라프 램스도르프 등 주요 인물의 무덤을 만날 수 있었다고 하네요.
이렇게 유럽인들의 삶과 가까이 존재하는 장소인 만큼, 관심이 있으신 분들은 유럽 여행 중 묘지를 한 번쯤 들르시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어떤 묘지가 여행객들에게 좋은지를 추천하는 정보도 상당히 많거든요. 여행 관련 잡지인 '원더러스트'는 10개의 장소를 추천하고 있습니다. 목록에 있는 장소 중 몇 곳을 소개해 볼게요.- 영국, 옥스퍼드셔: 윈스턴 처칠 전 영국 총리 무덤이 있습니다. 영국 역사의 위대한 인물들이 묻힌 웨스트민스터 사원 대신 마지막 안식처로 택한 곳입니다- 프랑스, 파리: 소설가 오스카 와일드 무덤이 있습니다. 조각가 제이콥 앱스타인이 만든 이 무덤에는 생식기를 보이는 남성의 조각이 놓여 한때 논란이 됐습니다.- 이탈리아, 로마: 영국 시인 존 키츠가 이곳에 묻혔습니다. 자신의 작품이 인정 받지 못하는 데 대한 불만이 컸던 그는 묘비에 "여기에 물에 이름이 쓰여진 사람이 있다"고 묘비에 적었습니다.- 체코, 프라하: 소설가 프란츠 카프카의 유해가 이곳에 있습니다.1890년대 문을 연 '유대인 묘지' 주변으로는 큼지막한 나무들이 우거져 있습니다. 묘지를 방문하는 남성은 검은색 두건을 착용하는 것으로 경의를 표합니다.- 오스트리아, 빈: 베토벤, 브람스, 슈베르트, 모차르트 등 유명 작곡가의 무덤이 한꺼번에 모여 있습니다. 그러나 모차르트 유해는 다른 곳에 묻혔고 이곳은 단순히 '추모의 공간'으로서 조성한 무덤이라는 게 특징입니다."친애하는 돌리" 반려동물 묘지도반려동물을 많이 키우는 국가에서는 반려동물 묘지를 따로 마련하기도 합니다. 반려동물 묘지 역사는 1881년 영국 런던에서 시작됐다고 추정됩니다. 유로뉴스에 따르면, 당시 '체리'라는 이름의, 아주 다정하다고 알려진 말티즈가 죽음을 맞았다고 합니다. 체리의 가족들은 마침 하이드파크 묘지의 문지기인 '윈브리지'와 친분이 있었고, 그곳에 체리를 묻을 수 있도록 허가를 받았다고 해요.당시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동물의 사체를 강이나 쓰레기통에 버리곤 했는데, 인간에게만 적용되는 행위로 여겨진 매장을 동물에게도 허용한 것이죠. 반려동물에 대한 애도 역시 당시에는 매우 어색한 것이었다고 하니, 체리의 묘지는 사실 굉장한 파격이었겠죠. 이후 반려동물을 묻을 수 있는 묘지라는 소문이 빠르게 퍼지면서 윈브리지 앞으로 반려동물 매장 요청이 넘쳐 났고, 그렇게 반려동물 묘지가 생기기 시작했다고 전해집니다.가장 유명한 반려동물 묘지는 1899년 프랑스 파리에 문을 연 아니에르쉬르센 동물묘지(Cimetière des Chiens et Autres Animaux Domestiques)입니다. 파리 시민들이 동물 사체를 센 강에 버리는 것을 막고, 동물의 권리에 대한 인식을 높이고자 '의도적으로' 조성한 묘지라는 점에서 '동물을 위한 최초의 묘지'로 불리기도 합니다. 개, 고양이, 새, 기타 가축 등의 네 구역으로 나뉘어 운영되고 있는데, 현재 약 9만 마리 이상의 동물이 이곳에 묻혀 있다고 합니다. 아래 그림을 통해 묘지가 어떻게 구성돼 있는지를 대략 알 수 있습니다.
반려동물의 죽음이 인간의 것에 못 미친다고 결코 말할 수 없을 겁니다. 반려동물의 묘지에서도 떠나보내는 이의 아픔과 애정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습니다. 11년간 전세계 반려동물 묘지를 방문한 뒤 최근 사진집을 펴낸 미국의 사진작가 폴 쿠도나리스는 이렇게 말합니다. "사람들은 어떤 동물에든 유대감을 가질 수 있습니다.저는 그것이 아름다움의 일부라고 생각합니다. 모든 종의 동물이 어떻게든 사람의 마음을 만질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습니다. (…) 반려동물의 죽음은 인간의 죽음과 다른 경험입니다. 반려동물은 인간이 결코 하지 못하는 방식으로 우리 자신의 거울이 되므로, 마치 당신의 일부가 죽어서 결코 회복할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오늘의 이야기를 준비하며 저도 베를린에 있는 화장터, '크레마토리움'을 다녀와 봤어요. 연방총리실 건물을 설계한 유명 건축가 악셀 슐테스와 샬로테 프랑크의 작품인 이 건물은 노출 콘크리트 외관, 가느다란 기둥 29개가 떠받치는 내부를 특징으로 하는데요. 화장터 주변으로 다양한 시기에 조성된 묘지가 있습니다.마치 어느 예술 작품 안을 거니는 기분으로, 그리고 누군가 사망한 그 당시로 되돌아간 것처럼 얼마간 화장터와 묘지를 거닐면서 삶과 죽음에 대해 새삼 생각해봤던 시간이었습니다. 살아있는 동안 살아있는 것이 아깝지 않게 살자는 막연한 생각도 한 스푼 정도 하면서요.아아,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는 글처럼 삶의 에너지를 전달하고 싶었는데... 글이 뜻대로 흘러가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래도 새해를 여는 슬유생을 통해 여러분께 드리고 싶었던 메시지는 단순합니다. 지난해보다 올해, 독자 여러분 모두의 하루하루가 두근두근하고, 팔딱팔딱하기를 바랄게요. ♥️
영국의 자선단체인 아동 협회(The Children's Society)가 최근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영국 아동 25.2%가 삶에 불만족하고 있는데, 이는 유럽 국가 중 최고 수치라고 합니다. 사회적 불평등이 이런 결과로 이어졌다는 분석인데, 한국은 여기서 어떤 시사점을 얻어야 할까요?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틱톡이 '오래된 노래'를 '현재'로 소개하는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고 합니다. 올해 상위 50개에 오른 음악 50개 중 19개가 5년 이상 된 곡이었다는데요. "군중 속에서 돋보이기 위해 덜 알려진 트랙을 고르고자 하는 심리"가 반영돼있다는 분석이 나옵니다.오늘도 독자님들이 보내주신 소중한 의견과 함께 슬유생을 마무리해 보겠습니다. 이번 주도 무탈하고 풍족하게 보내시길 바랍니다! 💪💬 아름다운 풍경. 군데군데 설명 참조 부탁합니다 언젠가는 가보지 않을까요?기대를 하면서... 마지막까지 잘보내시고 새해 복많이 받으세요~^^💬 유럽에서 본 가장 예쁜 크리스마스 마켓 풍경을, 함께 하는 기회 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진 속 크리스마스 마켓은 '베를린 훔볼트대' 앞에 있었던 마켓입니다. ㅎㅎ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D💬 한 해를 잘 마감하셔서 고맙습니다. 늘 건강하셔요.💬 충분합니다.→ 감사합니다. 올 한 해도 열심히 독자님과 만나기를 소망합니다!💬 기자님은 어떤 분인가요.→ ㅎㅎ 앗, 이렇게 어려운 질문을요.💬 유럽 사람들은 보통 몇 명이랑 연애하나요? 막 20명 이상씩 연애하고 그러나요? 10명도 많은 것 같은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ㅎㅎ 숫자보다는 밀도가 중요한 게 아닐까 싶기도 하고. 언젠가 한번 취재를...💬 25년 계획이 있나요.→ 재미 없는 답변이지만... 특별한 계획은 없습니다 T.T지난 뉴스레터 살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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