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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트럼프發 보호무역의 역설…WTO 이코노미스트 "관세 폭탄, 美 서민의 삶부터 때릴 것"
    지금 이곳에선 2024. 12. 6. 19:45

    트럼프發 보호무역의 역설…WTO 이코노미스트 "관세 폭탄, 美 서민의 삶부터 때릴 것"

    [WEEKLY BIZ][Cover Story]

    랄프 오사 WTO 수석 이코노미스트 인터뷰

    홍준기 기자

    윤성현 인턴기자

    입력 2024.12.05. 16:56업데이트 2024.12.06. 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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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김의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첫 재임 기간(2017~2021년)에 세계무역기구(WTO)는 굴욕을 경험했다. 트럼프는 2019년 글로벌 무역 분쟁의 최고재판소 역할을 해온 WTO 상소 기구 위원 신규 임명을 ‘보이콧’해 기능을 마비시켰다. 조 바이든 대통령까지 상소 기구 위원 선임에 반대 입장을 이어가면서 상소 기구는 지금까지도 ‘개점휴업’ 상태다. WTO를 향한 트럼프의 불만은 여전하다.

    트럼프의 측근인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전 무역대표부(USTR) 대표는 지난해 6월 펴낸 책 ‘공짜 무역은 없다(No Trade is Free)’에서 응고지 오콘조이웨알라 WTO 사무총장을 “제네바(WTO 본부 소재지)에 있는 중국의 동맹”이라고 공격하기도 했다. 자유무역을 수호해온 WTO 체제가 중국에만 득이 되고 미국엔 피해를 입혔다는 맥락에서다.

    자유무역의 경제적 이점과 무역 분쟁이 가져오는 피해에 대해 연구해온 학자인 랄프 오사 세계무역기구(WTO)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관세는 자유로운 무역을 통해 거래되는 저렴한 수입품을 많이 쓰는 저소득층에게 더 큰 타격을 주는 역진적 세금"이라고 했다. /세계무역기구(WTO)

    지난달 선거에서 차기 대통령에 재선된 트럼프는 WTO의 눈치를 보지 않고 관세 인상이라는 ‘칼’을 휘두르고 싶어 한다. 관세 장벽을 높여 해외 제품 유입을 막음으로써 미국 내 제조업 일자리를 보호하겠다는 논리다. 트럼프의 정책은 그를 믿고 찍어준 지지자들의 삶을 정말 개선해줄까.

    WTO의 랄프 오사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최근 WEEKLY BIZ 인터뷰에서 “(관세 인상 같은) 보호무역 조치가 일자리를 지켜냈다는 증거는 찾기 어렵다. 무엇보다 관세는 저소득층에게 더 큰 타격을 주는 역진적 세금”이라고 했다. 고관세 정책이 뛰어난 정치 구호일지는 몰라도, 실제로는 서민층 지지자들의 삶까지 뒤흔들어 놓는 나쁜 정책이라는 지적이다.

    오사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자유무역에 대해 연구해온 전문가다. 런던정경대(LSE)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프린스턴대·시카고대 등에서 자유무역의 효과와 무역 전쟁이 가져오는 손실에 대해 연구했다. WTO의 수석 이코노미스트로 지난해 1월부터 일하고 있다.

    그래픽=백형선

     

    ◇“관세는 역진적인 세금”

    트럼프는 지난달 25일 “(취임일인 내년) 1월 20일 첫 행정명령 중 하나로 멕시코와 캐나다에서 들어오는 모든 제품에 25% 관세를 부과하기 위한 서류에 서명하겠다”고 밝혔다. 트럼프 1기 당시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을 보완해 새로 맺은 자유무역협정인 미국·멕시코·캐나다 협정(USMCA) 덕분에 세 나라 사이엔 관세 장벽이 없었는데 이를 대폭 높이겠다는 얘기다.

    그는 모든 교역 상대국을 대상으로 ‘보편 관세’ 부과를 예고하기도 했다. 오콘조이웨알라 WTO 사무총장은 지난 4월 로이터와 인터뷰에서 “보편 관세가 부과되면 교역 상대방 역시 같은 수준의 보복에 나설 것”이라며 “교역의 안정성과 예측 가능성을 훼손하는 관세 부과가 일어나지 않길 희망한다”고 했다.

    –트럼프의 보편 관세가 가능한 일일까.

    “WTO 체제 아래서 관세는 손댈 수 없는 대상이 아니다. 모든 회원국은 관세를 올리거나 내릴 권한이 있다. 다만 이러한 관세율의 조정은 (자유무역을 지향하는) WTO의 규칙 내에서 교역 상대국과의 협의를 통해 이뤄져야 한다.”

    그래픽=백형선

    –트럼프의 주장대로, 미국 같은 선진국의 제조업 일자리가 저렴한 개발도상국 상품 때문에 위협받는 것은 사실 아닌가.

    “생각보다 복잡한 문제다. 미국이 중국과 무역을 늘려나가면서 제조업 주력 지역은 실제로 소득 감소를 경험했다. 하지만 농업 등 미국이 우위에 있는 산업 비중이 높은 지역은 (수출이 늘면서) 소득이 오히려 증가했다. (관세 부과 같은 조치로) 무역 장벽을 세우는 조치가 전체 일자리를 늘리는 데 효과적인지도 회의적이다.

    높은 세율의 관세는 수입품과 경쟁하는 일부 산업을 보호하는 ‘미봉책’에 불과하다. 수입 원자재를 많이 이용하는 산업, 수출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부문은 그만큼 일자리가 줄어든다. 특히 무역 상대국이 보복에 나선다면 이러한 (일자리 감소) 효과는 더 커진다. 또한 관세는 저소득층에게 상대적으로 더 큰 영향을 미치는 역진적 세금이다.

    자유로운 교역을 통해 (관세가 낮아지면) 소비자들은 좀 더 싼 가격에 다양한 제품을 구매할 수 있다. 특히 저소득 가구는 저렴한 수입 식품을 많이 구매하는 대신 무역의 직접적 대상이 아닌 ‘외식’ 등의 서비스는 덜 이용한다. 교역이 저소득층의 삶을 윤택하게 하는 효과는 매우 중요한데도, 많이 간과된다.”

    그래픽=백형선

    ◇“균열 생긴 자유무역, 무너지면 세계 소득 5% 증발”

    트럼프가 과거 첫 재임 기간 중국과 ‘무역 전쟁’을 시작한 이후 글로벌 교역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는 것을 부정하긴 어렵다. 일부에선 ‘탈세계화(de–globalization)’를 우려한다. 내년 1월 출범할 트럼프 2기 행정부가 대(對)중국 고관세 정책 외에 모든 교역 상대국을 대상으로 보편 관세라는 ‘무기’를 휘두를 경우 자유무역이 더 도태된다는 점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탈세계화가 실제로 진행 중인가.

    “아직 탈세계화가 진행된다는 징후는 관측되지 않았다. 무역 규모 증가는 세계적인 경제 성장과 속도를 맞춰 나가고 있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교역 규모는 (2019년 56%에서 2022년 63%로) 안정적으로 유지되고 있는 게 그 증거다. 문제는 지정학적 ‘경계선’을 따라 나타나는, 확실한 분열의 징후다.

    미국과 중국의 무역 갈등이 심화하기 시작한 2018년 이후 양국 간 무역량은 미·중이 각각 다른 나라와 거래하는 양에 비해 30%가량 느리게 성장했다. 더 넓게 보면 유엔 총회의 투표 패턴을 기준으로 봤을 때, 지정학적으로 가까운 사이인 이른바 ‘블록’ 내 국가 사이의 교역에 비해 다른 블록에 속한 국가 사이의 거래는 4% 정도 느리게 성장하고 있다.”

    그래픽=백형선

     

    –심각한 무역 분절화는 어떤 결과를 가져올까.

    “무역 분절화는 모든 국가에 해롭다. 모두를 패배자로 만든다. WTO 연구에 따르면 무역 분절화는 최악의 경우 전 세계적으로 실질 소득이 5% 감소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그간 자유로운 무역은 경제 성장의 ‘강력한 엔진’ 역할을 해왔다. WTO 설립 후 약 30년 동안 국가 간 경제력 격차도 많이 좁혀졌다.”

    –자유무역이 국가 간 경제 격차 해소에 어떻게 도움이 됐나.

    “WTO가 설립된 1995년 이후 중·저소득 국가의 1인당 소득은 거의 세 배 수준이 됐다. (자유로운 무역이 보장되면서) 지난 30년간 개발도상국 간 무역은 연평균 9.7%라는 놀라운 수준의 성장률을 기록했다. 이 국가들 간 무역은 1995년엔 전 세계 무역의 10% 미만이었는데, 2022년엔 글로벌 무역의 약 25%를 차지하는 6조1000억달러 규모까지 성장했다.

    또 WTO를 중심으로 국가 간 협력이 긴밀해지면서 (관세나 비관세 장벽으로 인해) 발생하는 불필요한 ‘비용’들이 많이 줄었다. 이러한 자유무역의 효과는 국가 간 경제 격차 축소를 이끌어낸 요인 중 3분의 1 정도를 차지한다.”

    1995년엔 글로벌 무역의 절반 이상을 차지했던 선진국 사이의 무역은 2022년 39%까지 감소했다.

    선진국도 자유무역의 덕을 봤지만, 경제 발전 초기 단계인 개도국이 자유무역이라는 ‘순풍’을 타고 더 빠른 속도로 경제 규모를 키워나간 결과다. 오사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최근 국제 무역 환경에 대해 “글로벌 무역 무대에서 개도국과 신흥국의 역할이 중요해졌다”고 했다. 과거 냉전 시기처럼 각 진영의 ‘맹주’가 무역 흐름을 좌지우지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의미다.

    그래픽=백형선

    ◇“자유무역, 지구적 과제 해결 돕는 ‘증폭기’”

    –경제 성장 외에, 자유무역이 국제사회에 주는 이득이 있나.

    “기후변화와 같은 환경 차원의 문제를 포함해 오늘날 인류가 당면한 주요 과제를 해결할 때도 자유무역의 힘은 필요하다. 자유무역은 기후변화 대응 정책의 효과를 극대화하는 ‘증폭기’다. 각국이 환경 차원에서 ‘비교 우위’를 가진 분야에 집중한다면 더 효율적인 기후변화 대응이 가능하다.

    예를 들어 각국이 온실가스를 가장 적게 배출할 수 있는 기술력을 갖춘 산업 분야를 자신의 전문 분야로 삼고 나머지는 교역을 통해 조달한다면 기후변화 대응에 큰 도움이 된다. 무역을 통해 친환경 에너지 관련 기술이 널리 퍼져 나가기도 한다.

    이러한 효과가 가장 잘 드러나는 제품이 태양광 패널이다. 자유무역의 결과로 (기술이 각국에 보급되고 기업 간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면서) 태양광 패널의 가격은 매우 싸졌다. 덕분에 태양광 패널이 더 광범위하게 보급됐다. 역으로 보호무역 기조는 기후변화 대응에도 큰 걸림돌이 된다.”

    –자유무역이 첨단 기술 발전에도 도움이 될까.

    “인공지능(AI)이나 로봇 같은 혁신 기술의 발전을 위해서도 개방된 무역과 국제 협력은 매우 중요하다. AI 모델이 제대로 작동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반도체를 예로 들어보자. AI 반도체는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설계되고, (한국·대만 등) 아시아 국가가 생산한다.

    첨단 반도체 생산 장비 중엔 유럽산이 많다. 이처럼 서로 공조하는 생산 공정이 제대로 돌아가려면 자유무역이 제대로 이뤄져야 한다. (자유로운 무역 환경 내에서 보장되는) 국가 간 데이터 이동 역시 AI 기술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러한 다양한 양질의 데이터로 훈련해야 AI가 편견을 갖지 않고, 더 혁신적인 성능을 갖출 수 있다. 반대로 자유로운 데이터 흐름이 차단된다면 기술 발전이 지체되고 (기술 개발에 필요한) 비용은 증가한다.”

    –각국은 첨단 기술 영역에서 협력보다는 ‘경쟁’을 원하지 않나.

    “그런 측면도 있다. 하지만 AI와 같은 첨단 기술이 모두가 신뢰하는 기술로 발전하려면 국제 협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신기술이 발전하는 과정에 모두는 안전성·신뢰성 및 개인 정보 보호 차원 등의 문제에 대해 걱정한다.

    이런 우려에 대처할 제대로 된 시스템을 구축하려면 국가 간 협력이 필수다. 또한 각국 규제가 일관성을 갖추는 것 역시 중요하다. WTO와 같은 기구는 첨단 기술 분야의 국가 간 조율 과정에도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본다.”

    중국 정부는 지난 3월 미국의 인플레이션감축법(IRA)에 따른 전기차 보조금 지급에 대해 WTO에 문제 제기를 했다. 미국 전기차에만 지급하는 보조금이 차별적이며 글로벌 전기차 공급망을 심각하게 왜곡한다는 취지였다.

    –국가들이 기업들에 지급하는 보조금 정책은 어떻게 평가하나.

    “보조금 지급은 친환경 에너지 전환 같은 분야에서 발생하는 시장 실패(자유 시장의 기능으로만 문제를 해결할 수 없어 정부의 개입이 필요한 상황)를 해결하는 수단이다. 다만 이러한 보조금 역시 WTO의 관련 규정을 지켜야 한다. 그러지 않는다면 (자국 기업에만 유리한 보조금이) 다자간 무역 체제에 악영향을 준다. 물론 현재 WTO의 보조금 규정이 완전무결하다고 볼 수는 없다. 많은 회원국이 (모호하다는 등의 지적이 적지 않은) 보조금 관련 규정의 개정을 원하는 상황이긴 하다.”

    –미·중 무역 전쟁 심화로 WTO가 작동하지 않는다는 지적에 대한 의견은.

    “WTO는 여전히 글로벌 무역의 중추 역할을 한다. 지금도 75% 이상의 상품 무역이 WTO의 최혜국 관세(다른 국가와 차별 없는 수준의 관세)를 적용받으면서 이뤄진다. 상소기구가 작동하지 못하는 상황이긴 하지만 WTO는 무역 분쟁 해결과 무역 분쟁을 줄이기 위한 각종 제도 시행 등 나름의 역할을 담당한다. 매우 복잡한 지정학적 환경 속에도 WTO는 의미 있는 진전을 이어 왔다. WTO가 지향하는 ‘규칙에 근거한 예측 가능한 자유무역’은 글로벌 경제 안정을 위해 필수 불가결한 요소라고 믿는다.”

    ◇“무역은 코로나 팬데믹 극복에도 도움”

    –코로나 사태로 글로벌 무역 환경은 어떻게 변했나.

    “코로나 팬데믹으로 공급망의 혼란이 초래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무역이 전 세계적인 코로나 대응 과정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사실도 잊지 말아야 한다. 국제적인 공급망 덕분에 각국이 코로나 대응에 필요한 약품과 위생용품의 생산을 빠르게 늘렸다. 생산을 많이 한 국가가 필요한 나라에 신속하게 수출하면서 코로나 극복에 기여했다.

    글로벌 무역은 코로나에 따른 초기 봉쇄 조치 이후 대략 3분기 만에 회복했다. 코로나 백신부터 마스크까지 코로나 대응에 필요한 모든 것들의 무역이 빠르게 늘었다. (코로나가 확산한) 2020년 의료용품 교역은 16% 증가했고, 마스크 수출입은 80%가량 늘었다. 이처럼 감염병 사태는 자유로운 다자간 무역이 ‘경제 안보’를 보장하는 가장 신뢰할 만한 안전장치라는 점을 증명했다.”

    ☞세계무역기구(WTO)

    글로벌 자유무역을 보장하기 위해 1995년 설립된 국제기구. 한국을 포함한 166국이 회원국이다. 무역과 관련한 규칙 수립, 국가 간 협상 증진 등이 목적이다. 무역 분쟁과 관련한 판정을 내리는 ‘법원’ 역할도 맡아왔다. 하지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첫 재임 기간이던 2019년 국가 간 분쟁 해결의 최종심 역할을 하던 상소 기구 위원 선임에 반대하면서 상소 기구는 지금까지 ‘개점휴업’ 상태다. 이 때문에 분쟁 해결 기능이 위축되고 위상이 낮아졌다는 평가를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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