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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 미스터리)①또 하나의 굴종…'미군정 57호'를 아십니까지금 이곳에선 2024. 10. 4. 10:05
(외교 미스터리)①또 하나의 굴종…'미군정 57호'를 아십니까
금융기관에 일본돈 강제 예입…사실상 한국인 사유재산 몰수
2024-10-03 06:00:00 ㅣ 2024-10-03 06:00:00
[뉴스토마토 박주용 기자] 반세기 넘게 풀리지 않는 '외교 미스터리'가 있습니다. 또 하나의 외교 굴종 사태인 일명 '미군정 57호'인데요. 이 법령으로 인해 상당한 규모의 한국인들 사유 재산이 몰수됐습니다. 미군정 57호는 광복 직후 3년간 남한을 통치한 미 군정청이 1946년 2월21일 공포한 법령으로, 일본돈은 모두 지정은행에 예입해야 한다는 강제 법령이었습니다.
1946년 2월21일 공포된 미군정 법령 제57호 전문. (사진=국립중앙도서관 제공)
원금 일부 대일청구권 보상…상당수 '증발'
3일 이 법령에 따르면, 1946년 3월2일부터 7일까지 미 군정청이 지정한 7개 금융기관(조선은행·조선식산은행·조흥은행·조선상업은행·조선신탁회사·조선저축은행·금융조합연합회)에 1원권 이상 종류의 일본은행권과 대만은행권을 예입해야 했습니다. 또 예입한 뒤에는 어떠한 경우에도 해당 화폐의 모든 거래를 금지하도록 규정했습니다. 다시 말해 일본돈을 유통시키지 않은 겁니다.
당시 위반할 경우 군정재판소 결정에 따라 처벌한다는 내용이 법령에 있었습니다. 조선인이 소지한 모든 일본은행권을 강제로 예치시키고 보관증을 줬다고 합니다.
그러나 당시 법령 어디에도 해당 은행에 일본은행권을 예입할 경우, 이를 상환해 준다는 내용은 없었습니다. 오히려 이 법령을 위반할 경우 군정재판소 결정에 따라 처벌한다는 벌칙까지 둬 사실상 당시 조선인이 소지한 모든 일본은행권을 강제로 예치시키도록 했습니다. 사실상 조선인의 일본돈을 모조리 몰수한 셈입니다.
미군정 57호는 당시 엔화를 다수 보유하고 있던 조선인들에겐 청천벽력이나 다름없는 법령이었습니다. 어릴 때 일본으로 건너가 사업을 하거나 노동을 통해 일본돈 중심의 사유 재산을 형성했지만, 강제로 은행에 예입해야 하는 상황에 처했기 때문입니다. 공권력을 동원한 미국의 재산권 침해 사례로, 굴종 외교 사례 중의 하나라는 평가가 나옵니다.
10만명 이상의 피해자들 사례도 제각각입니다. 지난 2022년 9월16일 방송된 <SBS> 프로그램 '궁금한 이야기Y'에 나온 김규정씨는 자신의 아버지 김규식씨의 일본은행 현금 보관증을 갖고 있었습니다. 보관증에 적혀있던 금액은 1만2020엔으로, 현재의 돈으로 환산하면 100억원의 가치입니다. 김규식씨는 조흥은행에서 보관증을 받게 됐지만 다른 은행과 합병을 하면서 기록이 사라져 결국 보상을 받지 못했습니다.
또 일부 보상이 이뤄지긴 했지만, 이마저도 적은 액수였습니다. 일본은행권을 예입한 후 30년이 지난 후에야 보상이 진행됐기 때문에 물가상승분을 감안하면 턱없이 모자란 금액이었습니다. 금액이 적어 거부한 사람들은 강제로 서명하게끔 협박한 사례도 있었습니다.
실제 박정희정부 당시 중앙정보부(현 국가정보원)의 협박에 의해 적은 보상 금액에도 돈을 수령했다고 합니다. 당시 군부정권 시대의 강압적인 사회 분위기 탓에 이에 대한 불만이 전국적으로 표출되지 못한 것으로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이와 함께 1975년 신문에 딱 1번 10개월 안에 예입금을 찾아가라는 공고를 냈는데 대부분은 이 공고를 보지 못해 보상금을 찾아가지 못했다고 합니다. 이어 어떤 사람들은 수령한 적이 없는데 수령했다고 기록되어 있었으며, 피해자들은 대부분 괴로워하다 사망했다고 합니다.
(그래픽=뉴스토마토)
일본돈 행방 의구심…보상 주체도 '미국' 아닌 '일본'
이러한 일이 벌어지게 된 것은 보상금이 박정희정부가 한·일 협정의 결과물로서 일본으로부터 받아낸 '대일 청구권 자금'의 일부였기 때문입니다. 앞서 박정희정부는 한·일 협정 체결 10년 후인 1975년 7월1일부터 1977년 6월30일에 걸쳐 일제 강점기의 한국 민간인 피해자에 대한 보상 자금을 확립해 자격을 갖춘 이들에게 보상금을 지급한 바 있습니다.
당시 미국은 한국 정부에 이관했다고 주장하는데 미군정 때 7개 금융기관에 예치한 돈은 모두 어디로 간 것이며, 박정희 정권은 대일 민간 청구권 자금으로 일부를 내줬는지 여부가 의문입니다. 보상 주체가 미국이 아닌 일본이 되기 때문입니다.
현재로선 한·미 행정협정(한·미 주둔군지위협정, SOFA)과 한·일 협정에 따른 대일청구권 영향으로 피해자들이 제대로 된 보상을 받기 어려운 상황에 있습니다. 이와 관련해 헌법재판소는 지난 2017년과 2023년 두 차례 미군정 57호에 따른 손해배상 청구에 대해 "부적법하다"며 이를 각하했습니다.
이장희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는 <뉴스토마토>와의 통화에서 "우리가 모르는 사례들이 굉장히 많이 있는데 그중 하나가 미군정 57호 법령"이라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6·25 전쟁 땐 미국이 일본에 굉장히 많은 특혜를 줬다.
군수 부분은 일본만 도맡아 할 수 있도록 했다"며 "이런 맥락에서 미군정 57호 법령도 화폐와 관련해 일본과 이승만정부 사이에 우리가 모르는 게 상당히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습니다.
박주용 기자 rukaoa@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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