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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명동 퇴근길, 원래 ‘지옥도’였다…최악의 악이 됐을 뿐
    지금 이곳에선 2024. 1. 16. 10:17

    명동 퇴근길, 원래 ‘지옥도’였다…최악의 악이 됐을 뿐

    입력 : 2024.01.16 06:00 수정 : 2024.01.16 06:01

    전지현·이예슬 기자

    줄서기 표지판 ‘혼란’ 이후

    수도권에 눈이 내린 지난 9일 오후 서울 중구 명동입구 정류장에서 시민들이 버스를 타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에 직장을 둔 수도권 주민들에게 왕복 3시간이 넘는 출퇴근은 일상이다. 퇴근길은 원래 붐비는 것이고, 오지 않는 버스를 하염없이 기다리는 것도 이들에겐 익숙한 일이었다. 늘상 그랬기에 잠잠했던 수도권 ‘출근러’(통근자)들의 분노는 새해 초 서울 중구 ‘명동입구(02253)’ 정류장 사태로 폭발했다. 향할 곳이 없어 떠돌기만 하며 누적된 불만이 ‘줄서기 표지판’을 과녁 삼아 쏟아져 나온 것이다.

    서울시는 지난달 27일 설치한 ‘줄서기 표지판’이 정체 원인으로 지목되자 부랴부랴 도입 시점을 유예하고 대책 마련에 나섰다. 지난 8일부터 정류장에 계도요원이 배치됐다. 이후 ‘남대문세무서·서울백병원(중)(02001)’ 정류장 또한 ‘교통지옥’이라는 지적이 제기되자, 시는 이곳에도 계도요원 2명을 투입했다. 정류소 신설 방침도 밝혔다. 줄서기 표지판이 아니었다면 생기지 않았을 현장의 변화였다.

    계도요원 투입이나 정류장 분산만으로 고질적인 ‘퇴근길 지옥’이 해결될 수 있을까. 경향신문이 지난 9일과 12일에 퇴근길 이 일대에서 만난 시민들은 “확실히 안내하는 사람이 있으니 혼잡이 덜하다”면서도 “퇴근하는 인파가 그대로인데, 정류장을 분산한다고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 모르겠다”는 반응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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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좁은 정류장에 차 많은 통로

    “꼬리 문 버스 체증 예고된 일”

    퇴근길 원래 막힌다지만…

    지난해 말·올해 초 명동입구 정류장을 이용하던 시민들은 영문도 모른 채 갑작스러운 차량 정체를 맞닥뜨렸다. “버스가 너무 안 오고, 온통 난리인데 이유도 모른 채 서 있었어요.” 서울 시청역에서 경기 용인 수지로 퇴근하는 함모씨(32)가 말했다. 지난 3일 오후 5시30분쯤부터 그는 M4101 버스를 1시간30분 기다렸다. 보통 20분이면 오던 버스였다.

    그나마 도착한 버스도 만석에 ‘입석 불가’라 몇 대를 떠나보냈다. 결국 지하철역으로 향했다는 그는 “기다려도 다음 차를 탈 수 있다는 확신이 안 들더라”고 했다.

    줄서기 표지판이 교통 체증에 미친 영향은 데이터로도 확인된다. 서울교통정보센터(TOPIS)에서 확인한 결과, 표지판이 운영되기 시작한 지난달 27일 숭례문에서 한국은행 앞까지 이어지는 남대문로 약 500m 구간의 오후 9시 평균 속도는 시속 2.53㎞였다.

    그날 오후 7시(시속 5.35㎞)부터 급격하게 느려진 차량 속도는 오후 9시 시속 2.53㎞로 바닥을 찍고 오후 11시에도 시속 3.64㎞에 머무르다 자정에야 시속 14.13㎞로 회복했다.

    이튿날인 지난달 28일 오후 9시(시속 2.25㎞)는 지난해 전체 기간 중에서도 가장 느린 축에 속했다. 오후 9시 기준 이때보다 체증이 심했던 날은 크리스마스이브(12월24일)가 유일했다.

    대혼잡의 이유를 몰랐던 시민들은 줄서기 표지판이 문제였다는 사실을 “나중에 뉴스를 보고 알았다”고 했다. 직장인 박모씨(50)는 “그전에는 버스 타는 곳 표시가 바닥에 있어서 오히려 표지판이 생기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다”며 “그런데 표지판 생기고 오히려 혼잡해졌다”고 했다.

    인지영씨(26)는 “왜 이렇게 막히지, 생각뿐이었는데 나중에 알고 화가 났다”며 “누가 봐도 좁은 정류장에, 차가 많이 다니는 통로인데 정해진 자리에 버스가 서려면 정체가 일어날 수밖에 없다는 걸 모르고 정책을 짰나 싶었다”고 했다.

    서울시 도입 중단 대책 마련

    정류장 분산·안내원 배치

    시민들 “그나마 나아졌다”

    전문가 “시뮬레이션 필요”

    퇴근길 불편 해소될까

    결국 서울시는 지난 5일부터 기존 12개 노선을 제외한 다른 노선들의 줄서기를 유예했다. 표지판 옆에는 ‘시민 불편해소 위해 줄서기 표지판 운영 유예(1.5~1.31)’ 안내가 붙었다. 퇴근길 시민들은 남아 있는 12개 노선의 표지판을 보고 “다 뽑아버린다고 하지 않았나”라며 의아하다는 듯 대화를 나눴다.

    지난 9일 정류장에서 8800번 버스 표지판을 찾던 김영미씨(56)는 뒤늦게 유예 안내 공지를 읽고 딸에게 “지난주엔 표지판이 있던데, 이젠 그냥 탈 수 있나봐”라고 속삭였다.

    퇴근시간(오후 5~9시)에 배치된 교통 계도요원들은 좌석이 다 찬 버스를 출발시키느라 여념이 없었다. “오라이, 오라이!” 버스를 안내하는 소리가 계속됐다.

    꼬리물기로 버스가 정류장에 도달하지 못한 채 머무르면 “○○○○번 타시는 분들 이리 오세요”라면서 탑승을 돕기도 했다. 시민들은 계도요원이 배치된 후 그나마 퇴근길 상황이 나아졌다고 했다. 경기 화성 동탄에 거주하는 양하진씨(36)는 지난 9일 “한동안 퇴근시간이 30~40분은 더 걸려서 명동입구로 안 다니다가 정비를 한다고 해서 와봤다”며 “안내요원도 있으니 확실히 달라진 듯하다”고 했다.

    명동입구·백병원 정류장 재편 등 정류장 분산 대책에는 회의적인 의견도 나왔다. 동탄으로 퇴근하는 김지은씨(24)는 지난 12일 “노선을 어떻게 바꿀지는 모르겠지만, 서울역에서 명동으로 오는 버스들의 목적지가 그대로라면 결국 똑같지 않을까”라고 했다. 그는 명동입구 다음 정류장인 백병원에선 이미 버스가 만석으로 오는 일이 잦아 “40분 넘게 서서 2대쯤 보내는 일은 부지기수”라고 했다.

    같은 이유로 백병원 근처에서 퇴근하지만 명동입구 정류장을 찾는다는 서찬영씨(47)도 “백병원에선 6시에 와도 7시30분은 돼야 버스를 탈 수 있다”고 했다. 서씨는 “정류장이 너무 멀어지면 정류소를 옮겨 버스를 타는 처지에선 곤란할 듯하다”고 했다.

    지난 11일 서울 중구 남대문세무서·서울백병원 광역버스 정류소에서 계도요원이 버스를 타려는 시민들을 안내하고 있다. 연합뉴스

    “충분한 ‘시뮬레이션’ 있어야”

    교통 전문가들은 대중교통 정책은 시행 전 충분한 시뮬레이션을 거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김병관 경기연구원 교통계획·교통공학 연구위원은 “명동·종로 등은 워낙 밀집지라 버스 정류장을 분산해봤자 큰 차이가 나지 않을 수 있다”며 “주먹구구식으로 할 게 아니라 연구와 시뮬레이션을 통한 충분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했다.

    지난 9일 서울 강남의 신논현역·강남역 인근 정류장에서 만난 시민들도 ‘명동 버스 대란’을 보며 공감이 됐다고 했다. 이 일대는 수도권 광역버스 노선이 집중돼 있어 이른바 ‘버스열차’가 서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20년 가까이 동탄에서 강남까지 출근했다는 오동현씨(53)는 “강남은 예전에는 줄이 50m 넘게 서기도 했는데, 요즘은 확실히 개선됐다”며 “(줄서기 표지판은) 탁상행정이더라”고 했다.

    직장인 정모씨(31)는 “강남도 버스가 하도 많아 바로 앞 정류장인 KCC사옥에서 이 정류장까지 30분씩 걸리곤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 정류장에서 만석이 되는 일이 많아 다음 정류장에선 사람들이 거의 못 탄다”고 했다. 퇴근길 교통 대란은 서울시의 정책 변경에 따른 혼란 이전에 근본적으로 서울에 집중된 일자리, 천정부지로 치솟은 도심 집값, 신도시 난개발 등 구조적인 문제가 배경에 있다.

    김진유 경기대 스마트시티공학부 교수는 “서울은 이미 도시가 감당할 수 있는 교통량을 초과한 상태”라며 “사회 시스템을 한꺼번에 개선하지 않고 지금 있는 도로에 표지판을 분산 설치하는 것만으로는 문제가 해결될 수 없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중장기적으로는 서울시의 교통 정책이 ‘대중교통 친화적 도시 재편’으로 일관되게 나아가야 한다고 했다.

    유정훈 아주대 교통시스템학과 교수는 “서울과 같은 대도시는 혼잡을 줄이기 위해선 승용차가 아닌 대중교통 중심으로 가야 한다”며 “사대문 안에서 버스전용차로가 끊어지지 않게 연결하고, 신호등을 버스 우선으로 두는 등 전향적인 대중교통 친화 정책을 펼쳐야 한다”고 했다.

     

    https://www.khan.co.kr/national/national-general/article/20240116060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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